* * *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터오는 것과 동시에, 유스티아 귀족들 사이에는 클로비스 저택에 자리 잡은 ‘손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클로비스 저택의 서쪽 별채는 방문객을 위한 것이었으나, 워낙에 방문이 까다로운 탓에 머무는 이가 없어 암암리에 ‘유령 별채’라고까지 불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클로비스 저택의 서쪽 별채에, 단 하룻밤 만에 들어앉은 손님이라니. 사람들의 관심이 와르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헬레나는 현재 백부인 제플린 안코스의 눈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벤투스의 내전이 언제 정리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데다가, 방문객의 존재를 완벽히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여 그녀는 공식적으로 에르치니아에 머물던 안토니아 가주의 친척이라는 명목하에 클로비스 저택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손님이라는 충격이 가시고 나자, 사람들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헬레나의 존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혼의 젊은 영주. 그리고 클로비스 가신들의 우두머리 격인, 게오르크 안토니아의 친척이라는 소녀.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사실’을 놓고 게오르크가 제 가문의 핏줄로 영주의 옆자리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냐는 그럴듯한 추측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에드윈은 분명 헬레나가 안토니아 가의 사정으로 인해 잠시 클로비스 저택에 의탁하게 된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본디 말하는 입이 셋을 넘어가면 사실무근의 소문도 진실처럼 부풀려지기 마련. 더불어 에드윈의 혼인 문제는 모든 귀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는 사안이었다.
헬레나가 클로비스 저택에 머무는 것이 에드윈과의 혼인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라는, 꽤 그럴듯한 소문을 접한 귀족들은 당장에라도 저택을 뛰쳐나올 것처럼 시끄럽게 들끓었다. 개중에서도 시셀리 가주는 인내심이 무척 짧은 편에 속했다.
“나는 분명 돌아가라 전했던 것 같습니다만, 시셀리 공.”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아 더욱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베오른 시셀리는 제 앞에서 무감하게 눈을 번득이는 에드윈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이리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도 모자라, 사용인들의 업무까지 방해해야 했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더니.”
무미건조한 음성이 나직하게 허공을 울렸다.
“내 귀가 정상이 아닌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미친 겁니까.”
한없이 평온한 어조였지만, 그 어떠한 협박보다도 섬뜩했다. 하지만 베오른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상태로도 끝끝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는 영주님을 보필할 의무가 있는 가신으로서, 현재의 황당무계한 소문을 잠재울 방법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매단 베오른이 언뜻 결연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황당무계’라는 말을 유달리 힘주어 발음한 그가 겸허한 눈을 가장하며 제 앞의 영주를 바라보았다.
에드윈은 경멸이나 혐오조차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무표정하게 입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 방법이라는 게.”
“.......”
“당신 딸을 아내로 맞이해라?”
고저 없는 물음이 목을 내리치듯 떨어졌다.
무색의 격노가 섬찟한 살기가 되어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베오른은 제대로 된 대답조차 내어놓지 못하고 희게 질린 얼굴로 어깨만 덜덜 떨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형형한 눈으로 저를 독촉하던 패트리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영주 부인이야말로 저를 가장 높은 가격에 팔아 치울 수 있는 자리라는 거.’
베오른은 그녀의 적나라한 말에 짐짓 불편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팔아 치우다니, 너는 여자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그러나 패트리샤는 더없이 냉정한 얼굴로 곧장 조소했다.
‘피차 다 아는 사이에 새삼 체면이라도 차리시게요? 아버지가 아들도 아닌 저를 이렇게 곱게 키우신 이유가 자식에 대한 애정, 뭐 그런 거겠어요? 비싸게 팔아 치울 수 있는 상품에 대한 투자라면 모를까.’
‘.......’
‘그러니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죠, 우리. 아버지가 원하는 것과 제가 원하는 게 우연히도 맞아떨어졌다는 것. 그것만 기억하시라고요.’
딸인 패트리샤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 제안을 밀어붙여야 했다. 하다못해 지금의 소문이 가라앉을 때까지만이라도 표면적인 약혼이나마 유지하는 것이 어떻겠냐, 그런 대안이라도 내세워야 하는데. 그렇지만 당장 눈앞에서 직면한 에드윈의 기세에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감정 한 조각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드윈이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무례는 차일 묻도록 하겠습니다.”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그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종을 집어 들었다. 그 작은 동작에도 베오른은 커다랗게 어깨를 떨었다.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굳게 닫혀 있던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하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시셀리 공께서 몸이 좋지 않으신 듯하니 저택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라 이르십시오.”
“명 받들겠습니다. 이만 일어나시지요, 베오른 님. 모시겠습니다.”
곧장 고개를 숙여 보인 하인트가 베오른을 향해 정중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그는 결국 그대로 클로비스 저택을 나서야 했다.
이후 베오른이 탄 마차는 영주의 명에 따라 빠르게 시셀리 저택에 당도했다. 지친 얼굴로 마차에서 내려서는 그의 앞으로 한 여인이 달려왔다.
“아버지!”
결 좋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패트리샤가 베오른의 앞에 멈춰 섰다. 뛰느라 조금 상기된 얼굴의 그녀가 연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받아들이시겠대요?”
“.......”
베오른은 잔뜩 기대감에 찬 딸의 얼굴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서 대답을 읽어낸 패트리샤의 얼굴이 차츰 식어 내리더니, 이윽고 완전히 굳어졌다. 모아 쥐었던 두 손을 떨어트린 그녀가 싸늘한 음성을 냈다.
“한시적인 약혼은요? 그 건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베오른은 매서운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틀며 웅얼거렸다.
“그게, 얘야. 아무래도 그런 얘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
하지만 새된 목소리가 그의 변명을 칼같이 끊어 냈다.
“그러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죠! 그것도 못하시면서 대체 뭘 바라시는 건데요? 아버지께서는 ‘그런’ 분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한도 끝도 없이 기다리고만 계실......!”
짝-!
바로 그때,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패트리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부드러운 천에 겹겹이 둘러싸인 몸이 땅바닥 위로 볼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주제도 모르고......!”
두꺼운 손으로 그녀의 뺨을 내려친 베오른이 일그러진 얼굴로 노성을 내질렀다.
“그래도 하나뿐인 자식이라고 이날까지 먹여 주고 키워 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계집애가 꽤 영악하길래 오냐오냐해 줬더니 어디서 아비와 맞먹으려 들어!”
씨근덕대던 그가 주변의 사용인들을 향해 버럭 외쳤다.
“이 아이를 당장 방에 가두고 사흘간 물 한 모금도 주지 마라! 혹시라도 방에 접근하는 자가 있다면 직접 목을 벨 것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아가씨, 얼른 일어나세요!”
가주의 분노에 겁먹은 하녀들이 다급한 손길로 패트리샤의 몸을 일으켰다.
벌써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멍하니 감싸 쥐고 있던 그녀는 사람들의 손에 떠밀려 방 안에 들어서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패트리샤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멍청한 새끼. 하여간 이럴 때만 부모 운운하지.”
베오른의 손찌검으로 입술이 터진 탓에 혀끝에 미미한 피 맛이 감돌았다.
그녀는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쓸어 넘기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틀에 놓인 새장 안에는 작은 새 한 마리, 그리고 새의 깃털이 수북이 쌓인 둥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새장의 문을 연 패트리샤가 둥지를 뒤덮고 있던 깃털을 걷어 내자 자그마한 주술석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든 그녀가 광기 어린 눈으로 주술석을 작동시켰다. 주술석이 은은한 빛을 뿜어낸 지 얼마지 않아,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들렸다.
[......아가씨?]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패트리샤가 주술석을 내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도로시.”
* * *
며칠 후, 헬레나로 인한 소란이 사그라들었을 즈음. 레이린은 에드윈의 허가를 받고 마거릿의 티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마차에 올랐다.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밖에 나오니까 기분은 좋네요.”
레이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연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생긋 웃음 지었다.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순한 인상의 얼굴에 미소까지 떠오르니, 안 그래도 어린 티가 나던 얼굴이 한결 더 앳되어 보였다.
헬레나는 호의가 그득히 묻어나는 얼굴로 레이린에게 말을 붙였다.
“동행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제트리아 양.”
“별말씀을요. 엄밀히 따지자면 주최자이신 마거릿 영애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니까요.”
레이린은 예의 바른 미소를 띤 채 가볍게 답했다.
며칠 전, 레이린의 앞으로 마거릿 리브릭의 이름이 적힌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편지에는 그간 건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느라 연락이 늦었다며, 며칠 후에 티파티를 주최할 예정이니 시간이 된다면 참석해 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레이린은 편지에서 시선을 떼고 머릿속으로 일정을 조율하던 중, 문득 창밖으로 정원을 거니는 헬레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쉬운 기색이 묻어나는 얼굴로 연신 마을 쪽을 힐긋거리던 헬레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서쪽 별채로 돌아갔다. 노을을 뒤로 한 채 멀어지는 그녀의 어깨는 미묘하게 아래로 처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모습을 본 레이린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간 일이 바빠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헬레나는 갑작스럽게 낯선 땅에 홀로 머물게 된 처지였다. 아무리 제플린 안코스를 비롯한 정적들의 암살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지만, 마냥 의연하게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 또한 아니었다. 그것이 열여덟 해 만에 처음으로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게 된 사람에게라면 더더욱.
결국, 레이린은 답지 않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펜을 들어 마거릿에게 허락을 구했다.
「별채에 머물고 계시는 손님과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마거릿은 흔쾌히 초대장을 한 장 더 보내 주고는 헬레나를 곤란하게 할 만한 일은 없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이후 레이린에게서 초대장을 건네받은 헬레나는 볼을 붉히며 기뻐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괜찮은데.......’
헬레나는 애써 들뜬 기색을 감추며 미안함을 내비쳤다. 기쁨과 죄책감이 뒤섞인 그녀의 얼굴을 보자, 언뜻 답지 않게 펜을 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두 분.”
그때 덜컹거리던 마차가 멈추어 서더니 리오넬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린은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서며 마부석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 설핏 미소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제스 경. 괜히 고생스럽게 해드린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마부석에 앉아 있던 리오넬은 리브릭 저택의 하인에게 말고삐를 넘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감사한데요? 단장님 밑에서 구르는 거에 비하면 이런 건 일도 아닙니다.”
그러자 리오넬의 뒤를 따라 마부석에서 내려선 엘빈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 말씀 그대로 단장님께 전해드려도 됩니까?”
“그러기만 해 봐. 네가 옛적에 잃어버린 부단장에 대한 존경심을 되찾는 날이 오늘이 될 테니까.”
“어이쿠, 무서워라.”
“너 지금 웃었냐?”
“노안이 오신 것 같습니다, 부단장님.”
엘빈과 리오넬이 퍽 과격한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 호기심 가득한 눈의 헬레나 또한 마차에서 내려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 분, 이쯤 하고 들어가시죠. 마거릿 영애께서 기다리실 겁니다.”
결국 레이린의 무감한 경고가 들려오고 나서야 두 기사는 장난을 그쳤다.
곧이어 하인 하나가 나타나 엘빈과 리오넬을 저택 안의 휴게실로 안내했다. 두 사람을 배웅한 레이린과 헬레나는 또 다른 하인을 따라 녹음이 우거진 정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제트리아 양!”
탁 트인 공간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반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레이린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달려올 기세인 마거릿의 모습에 엷은 웃음을 머금으며 가볍게 묵례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마거릿 영애.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그렇다고 일어나진 마시고요.”
“어째서인지 아제트리아 양도 갈수록 제 남편을 닮아 가는 것 같네요. 누가 보면 남편이 둘인 줄 알겠어.”
레이린이 빠르게 내뱉은 말에, 막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마거릿이 입술을 비죽이며 다시금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배는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부푼 모양새였다.
따뜻한 갈색의 눈이 이내 레이린의 뒤쪽으로 옮겨 가더니 동그래졌다.
“아, 그쪽이?”
“네. 편지로 말씀드렸던 스텔라 파벨 영애이십니다.”
레이린은 현재 공식적으로 ‘스텔라 파벨’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헬레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거릿을 비롯해 테이블 주위로 둘러앉은 몇몇 여인들이 헬레나를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레이린의 등 뒤에 반쯤 숨어 있던 그녀가 머뭇거리며 사람들을 향해 예를 취했다.
“스텔라 파벨이라고 합니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마거릿 영애.”
“어머.......”
소녀의 모습은 마치 잔뜩 긴장해 털을 곤두세운 강아지 같았다. 그에 사람들은 낯선 이에 대한 일말의 경계심마저 순식간에 거두어들였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스텔라 영애께서 참석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방긋 미소 지은 마거릿은 헬레나를 배려하듯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자리를 권했다. 이윽고 공들여 준비한 태가 나는 다과들이 테이블 위로 한가득 차려졌다.
마거릿이 미리 장담했다시피, 이곳에 모인 이들은 헬레나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잡다한 이야기 위주의 대화를 이어 갔다. 그 덕에 헬레나는 처음의 어색함을 빠르게 지워 내고는 한결 편안한 기색으로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중. 잘 구워진 비스킷 하나를 집어 들던 마거릿이 눈을 크게 뜨며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스텔라 영애께서도 후계자 수업을 받고 계신 건가요?”
“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요.”
헬레나는 조금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찻잔을 들어 입을 가렸다.
두 사람의 지척에 앉아 있던 레이린은 티 나지 않게 흘긋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들은 제각기 대화를 나누는 데 열중하느라 이쪽에는 하등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사이, 헬레나의 미소가 경직되어 있음을 눈치챈 마거릿이 걱정스레 말했다.
“혹시 이런 이야기는 곤란하신 걸까요? 제가 실수를 한 거라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화들짝 놀란 헬레나가 손사래를 쳤다. 말끝이 흐려지는 것과 함께 그녀의 손이 차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게.”
말갛던 은색의 눈이 흐린 날의 구름처럼 조금 가라앉았다. 무릎 위로 손을 모아 얹은 헬레나가 끝내 속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저는 제가 영......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는지라.”
찰나 ‘영주’라는 말을 뱉을 뻔한 헬레나가 황급히 말을 고치고는 무거운 숨을 삼켰다. 나이에 비해 의연하게 보였던 얼굴 위로 옅은 그늘이 졌다.
“마거릿 영애께서도 그렇고, 아까 말씀해 주신 힐데트 영애분들께서도....... 다들 이루고자 하는 목표라든지, 의지가 굉장히 확고하시잖아요.”
그제야 ‘열여덟’으로 보이는 얼굴의 헬레나가 잇새로 짙은 탄식을 흘렸다.
“게다가 그만한 능력도 갖추셨고요.”
그녀는 본인도 이렇듯 와르르 말을 꺼내 놓는 스스로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입술을 잘게 떨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두려움에 등을 떠밀린 속마음은 주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저는 모르겠어요.”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도 없으면서 운 좋게 가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를 물려받아도 되는 건지, 만약 후계자 지위를 포기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건지.......”
빠르게 쏟아지는 말의 끄트머리에 흐트러진 숨이 섞여들었다.
“제가.”
끝내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감정마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말로 가주가 되고 싶기는 한지조차도.......”
두서없이 말을 토해 내던 헬레나는 저가 뱉은 말에 놀라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낭패 어린 기색으로 제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었다. 마거릿과 레이린이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헬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지나치게 많은 말을 꺼내 놓았다. 그런 생각이 든 헬레나가 무언가 변명이라도 할 생각으로 입술을 달싹이는 찰나.
“영애.”
마거릿의 단호한 목소리가 선명히 귓가를 파고들었다.
“영애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원래 지금은 모르는 게 자연스러운 것들입니다. 고민하시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에요.”
그러나 헬레나는 본능적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힐데트 영애들께서는 저보다도 어린 나이에 상단을 꾸려서 운영하셨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에 반해 저는.......”
연한 은색의 눈이 순수한 의문을 담은 채 깜박였다. 그러자 차분한 얼굴의 레이린이 마거릿을 대신해 말을 받았다.
“힐데트 영애들께선 스스로가 가야 할 길을 빨리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셨으니까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애께서도 구태여 벼랑에 매달리려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히 속내를 읽힌 헬레나가 눈에 띌 만큼 움찔, 손끝을 떨었다. 마거릿이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감싸 쥐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원래 사람은 벼랑 끝에 내몰릴 상황을 겪지 않아야 하는 게 맞아요.”
“.......”
“사실 그런 상황을 겪을 일이 없는 삶이 ‘정상’인 거고.”
그 말에, 헬레나의 눈이 풍랑이 이는 수면처럼 정처 없이 흔들렸다. 옅은 색의 입술을 달싹인 그녀가 혼란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그건...... 온실 속 화초나 다름없는 사람이 하는 생각이라고.......”
레이린과 마거릿이 하는 말은, 그녀가 한평생 들어온 말들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사람은 고생이라는 걸 해 봐야 철이 드는 법이지요.’
‘이런 상황이신 만큼 아가씨께서 더 의연해지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너를 위해 애쓰고 계시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 네가 빨리 한 사람 몫을 해야 해.’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후계자로서의 몫을 해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가 이따금 힘들다는 기색을 내비칠 때도, 남들은 아득바득 얻으려 하는 것을 손에 쥐고 태어났으면서 배부른 투정을 한다는 질책이 돌아왔다.
빨리 한 사람 몫을 해내야 해. 이 정도는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고통이야, 그러니 참아야 해. 모두가 그리 이야기하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의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온실 속 화초로 살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 아니던가요.”
켜켜이 쌓여 속을 짓누르던 의무감과 자괴감이 크게 흔들렸다.
“모든 인간은 더욱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갈구하죠. 한데 그들이 갈구하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야말로 온실 속 화초의 삶입니다.”
레이린은 사무적인 어조로 나직한 읊조림을 흘렸다. 헬레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을 한 채 말이 없었다.
그사이 마거릿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정신적 성숙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힘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는 사람을 기다리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순전히 이기심일 뿐이에요.”
“.......”
“영애께서 잘못되신 게 아니라는 말이랍니다.”
빙긋이 웃어 보인 마거릿은 헬레나의 손을 가볍게 토닥인 후 놓아주었다.
어차피 사람의 가치관은 제각각이다. 기실 이것은 마거릿과 레이린이 오롯이 옳다고도, 헬레나의 주변 사람들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헬레나의 주변 사람들 또한 그녀를 모질게 대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이리라.
하지만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본래 내뱉는 이와 듣는 이에게 각기 전혀 다른 모양으로 기억되는 것인지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수어져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리 판단한 마거릿은 이내 고개를 돌려 레이린과 배 속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이름 말인데요. 만약 딸이면 레이린의 이름을 붙일까 하는데.......”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단호한 거 아니에요? 그럼 조금 양보해서 ‘린’은?”
“그것도 안 됩니다.”
“아니.......”
마거릿과 레이린이 가볍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헬레나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고.’
잘못된 게, 아니라고.
무릎 위로 모아 쥔 양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시야가 조금 흐릿하게 변했으나 그녀는 끝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헬레나는 그날, 매일 몇 번이고 본인을 채찍질하곤 하던 말들을 조심스럽게 목 안으로 삼켜 넣었다.
지금껏 살아오며 자신을 독촉하지 않았던 하루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리브릭 저택에서의 티파티 이후. 클로비스 저택으로 돌아온 헬레나는 레이린을 유달리 따랐다.
레이린이 업무가 끝난 이후에는 종종 찾아 주어도 괜찮다는 말을 건넨 이후, 헬레나는 3일을 주기로 레이린의 방을 방문해 소소한 다과를 함께했다.
“레이린 양!”
들뜬 기색이 묻어나는 얼굴의 헬레나가 친밀한 부름을 내뱉었다.
“어서 오세요, 영애.”
레이린은 오늘도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나타난 헬레나를 보며 설핏 웃었다. 소녀 또한 그에 화답하듯 화사한 미소를 그렸다.
헬레나는 처음 저택에 도착했을 적에 비해 눈에 띄게 밝아진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아르망이 “영애께는 유스티아의 공기가 더 맞나 봅니다.”라는 말까지 내뱉었을까.
레이린은 제가 했던 말이 헬레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했음에 안도하며 그녀를 소파로 안내했다. 이어 익숙한 동작으로 한쪽에 놓인 주술석을 눌러 루시를 호출한 뒤 헬레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한 안부를 간단히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과를 준비해 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 목소리가 루시의 것이 아님을 기민하게 알아챈 레이린이 대번에 낯을 굳혔다.
“......누구시죠?”
본능적으로 피어오르는 살기를 갈무리한 그녀가 침착하게 주술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헬레나가 이곳에 머무는 지금, 문밖의 이가 제플린 안코스 측에서 보낸 첩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루시 선배님의 후배인 도로시라고 합니다, 아제트리아 님.”
“저는 분명 루시 양께 연락을 넣은 것으로 압니다만.”
낯설기 그지없는 이름에, 방문을 노려보던 레이린의 시선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헬레나 또한 긴장된 얼굴로 소파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때, 레이린의 손안에 있는 주술석에서 빛과 함께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레이린 님...... 콜록!]
흠칫 어깨를 떤 레이린이 주술석을 끌어당기며 미심쩍은 목소리를 냈다.
“......루시?”
그러자 주술석이 은은하게 반짝거리며 대답이 돌아왔다.
[네, 저 루시입...... 흐, 콜록!]
“어디 아파요? 목소리가 왜.......”
[요 며칠 으슬으슬하다 싶더니 오후부터 갑자기 열이 오르더라고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제 후배가...... 콜록! 대신 올라갈 거예요. 죄송합니다.]
루시는 말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 내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소파 구석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헬레나가 짙은 탄식을 토해 내며 힘없이 몸을 늘어트렸다. 레이린 또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루시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미리 이야기를 들었다면 부르지 않았을 텐데. 이만 쉬어요, 루시.”
[네, 그럼 내일...... 콜록! 아니, 적어도 모레는 찾아뵐 수 있도록 할게요. 날도 따뜻한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 콜록, 콜록!]
이내 계속해서 미련 어린 태도를 보이던 루시의 목소리가 끊어지며 주술석의 빛이 사그라졌다. 레이린은 테이블 위에 주술석을 내려놓고는 경계심 어린 동작으로 방문을 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도로시 양.”
그러자 옅은 갈색의 머리칼을 지닌, 루시보다도 어려 보이는 모습의 소녀가 태연한 얼굴로 싱긋 웃음 지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확인하셔야 하는 일인걸요.”
도로시는 방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와 다과를 차려 놓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레이린은 경계를 온전히 늦추지는 않은 상태로 헬레나와 마주 보고 앉았다. 헬레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도로시를 힐긋거리며 레이린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루시 양보다 귀엽게 생긴 분은 또 없을 것 같았는데, 도로시 양께서도 참 귀여우시네요.”
헬레나는 흐물흐물 풀어진 얼굴로 미소 지었다. 레이린은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무해하고 둥그런 인상의 헬레나가 다른 사람에게 귀엽다는 말을 내뱉는 모습이 퍽 우스워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 잠시나마 긴장했던 탓인지 목이 탔다. 무의식중에 찻잔을 집어 든 그녀가 차를 한 모금 삼켰다. 헬레나는 여전히 도로시의 귀여움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었다.
“루시 양께서 토끼 같았다면, 도로시 양께서는 조금 더 작고 귀여운.......”
그때, 찻잔을 내려놓던 레이린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임을 멈추었다. 들뜬 얼굴로 입을 움직이던 헬레나가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레이린 양?”
챙-!
그 순간, 레이린이 찻잔을 내팽개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무슨......!”
헬레나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졌다. 그사이, 레이린은 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는 곧장 몸을 돌려 도로시의 멱살을 잡아챘다.
쾅!
“윽!”
도로시의 멱살을 틀어쥔 레이린이 그녀를 거칠게 벽으로 밀쳤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벽에 등을 부딪힌 도로시가 작게 신음했다.
“너...... 콜록!”
레이린은 당장에라도 도로시의 목을 조를 듯 입을 열었다가 또다시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제기랄, 타나토스인가.’
그녀는 피 맛이 나는 입술을 거칠게 깨물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독에는 내성을 지닌 그녀가 이 정도의 고통을 느낄 정도라면 타나토스뿐이었다. 아무리 헬레나의 호위가 제 일이 아니라고 한들, 그간 이곳의 평화에 물들기라도 것인지 지나치게 안이해졌다.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이럴 리가.......”
하지만 레이린의 손에 붙들린 도로시는 겁에 질린 얼굴로 두서없는 중얼거림만을 반복했다.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눈에는 순수한 혼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기이함을 감지한 레이린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말고 또다시 왈칵 피를 토해 냈다.
“괜, 괜찮아요? 어떡......!”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헬레나가 처참한 얼굴로 달려와 레이린을 부축했다.
레이린은 눈앞이 핑핑 도는 느낌에 이를 악물고 볼 안쪽을 물어뜯으며 머리를 굴렸다. 도로시가 범인이 아니라면 클로비스 저택 내에 또 다른 첩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자칫 이곳에서 정신을 놓기라도 했다가는 헬레나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설령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헬레나를 맡긴 후가 되어야 했다.
믿을 만한 사람.
‘에드윈.’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떠올린 레이린은 도로시를 팽개치며 헬레나의 팔을 붙잡았다. 제 행동에 대한 설명을 내뱉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들며 헬레나를 이끌고 본채로 발을 움직였다.
“꺄아아악!”
“이, 이게 무슨......!”
힘겹게 본채의 홀에 다다르자마자 레이린은 또 한 번 피를 토해 내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피투성이가 된 헬레나와 레이린의 모습을 본 사용인들 몇이 비명을 질렀다. 희게 질린 얼굴의 사용인 몇은 주치의와 영주를 불러오기 위해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몇은 다급하게 레이린을 향해 달려왔다.
“세상에, 아제트리아 님......!”
“괜찮으십니까!”
레이린은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는 와중에도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부옇게 변한 시야 너머로 하인 하나가 저를 부축하려는 듯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스텔라 영애께서는 옆으로.......”
잔뜩 굳어진 얼굴의 하인이 레이린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직후.
그가 번개처럼 단검을 꺼내 들어 헬레나를 향해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이를 악문 레이린이 그의 팔목을 붙잡아 꺾으며 단검을 빼앗아 들었다.
“큭, 이게 무슨......!”
순식간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하인이 재차 헬레나의 목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레이린은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여 그의 손목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른 하인의 몸이 뒤로 넘어가고. 그 너머로 계단을 뛰쳐 내려오는 에드윈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레이린의 몸과 의식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