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주군, 저쪽에서 소란이......!”
귀를 쫑긋 세운 채 산을 오르던 리오넬의 외침보다 에드윈이 반응이 한발 빨랐다. 새파란 눈을 번득인 그가 속도를 훌쩍 높였다. 기사들은 거의 나는 것처럼 내달리는 영주를 허겁지겁 뒤쫓았다.
이윽고 나무 사이로 감춰진 자그마한 오두막이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짙은 피비린내가 훅 끼쳐 왔다. 오두막 바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발견한 기사들이 우뚝 멈춰 서며 숨을 몰아쉬었다.
“흐억.......”
“저게, 헉, 다 무슨......?”
에드윈은 가쁘게 숨을 고르는 기사들을 뒤로한 채 홀로 오두막으로 다가섰다. 그는 오두막 주위에 널려 있는 학살의 흔적들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
시체에 남은 검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에드윈은 이내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어서 그가 열린 문 안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이었다.
“커헉!”
“아, 주군! 오셨습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산적의 팔을 베어내던 엘빈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피가 튄 얼굴로 생긋 웃었다. 그 모습에 잠시 침묵하던 에드윈이 섬뜩하게 입을 뗐다.
“네가 왜 여기 있나.”
“아무래도 여기 지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잖습니까. 그래서 레이린이.......”
엘빈이 바닥에서 소리 없이 펄떡대는 산적을 발로 툭 굴리더니 오두막 안쪽을 힐긋 바라봤다.
그의 입에서 ‘레이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에드윈의 턱이 짧게 경직되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포함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마거릿 영애와 베르디 영식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이곳을 가장 잘 아는 제가 직접 찾으러 가라더군요. 그게 제일 빠르다면서.”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내 명을 어겼다는 건가.”
“저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죠! 하지만 쟤가 보통 고집이 아니더라고요.”
엘빈은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차피 저와 떨어져 있지 않는다면 자신을 호위하라는 명령을 어기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네가 안 가면 혼자 가겠다고 막 협박을 해대는데.......”
그 순간 에드윈이 성큼 발을 떼었다.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가 엘빈을 힐긋 일별했다. 그러자 말을 멈춘 엘빈이 어깨를 으쓱이며 바깥의 기사들에게 합류했다.
에드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피비린내 짙은 어둠 속, 오두막 안쪽에서 눈을 감은 채 기절해 있는 마거릿과 베르디를 돌보는 레이린의 모습이 시야에 어렴풋이 들어왔다. 그 여린 등을 응시하던 그가 서늘하게 입을 열었다.
“레이린 아제트리아.”
“......아. 오셨습니까, 영주님.”
하지만 레이린은 자못 덤덤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레이린의 코앞에 멈춰 선 그가 그녀를 무감하게 내려다보았다.
“마을에 남아 있으라는 명을 어긴 것, 정 엘빈을 합류시키고 싶었다면 리브릭 저택으로 돌아가도 되었을 텐데 기어코 이곳까지 따라온 것.”
“.......”
“둘 중 무엇부터 해명하시겠습니까.”
전에 없이 싸늘한 푸른색의 눈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 물음에 레이린은 숙였던 고개를 약간 들어 올렸다.
어둠을 등지고 선 에드윈의 눈은 그 자체로 상대를 찢어발길 듯 새파란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기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바깥과 달리, 오두막 안은 찰나 시간이 멈춘 듯 숨죽인 침묵만이 그득했다.
그때.
‘아제트리아 양은 키스티엘 경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으십시오.’
정말이지 불현듯 떠오른 목소리, 표정, 기억.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속을 불쑥 들쑤셨다. 스스로조차 당혹스러울 만큼 소란스럽게.
“그걸.......”
저를 향하는 시선을 물끄러미 마주하던 레이린이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한순간의 흔들림이 불러낸 충동.
이내 입술이 멋대로 달싹였다.
“그걸 물어보시는 이유는 분노인가요, 아니면.......”
“.......”
“......걱정인가요.”
조금 전보다 한층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벽을 세웠다. 도발하듯 말을 던졌던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레이린은 뒤늦게 입술을 깨물었다. 충동이 물러가고 이성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녀는 평소처럼 속마음을 능숙하게 숨기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짧게 후회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네. 그러지 말걸.’
하지만 방금은, 어쩐지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속절없이 휘둘려 버렸다. 왜 그랬을까. 되짚어 봐도 스스로조차 명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어 버린 말을 어쩌겠는가.
레이린은 애써 후회를 갈무리했다. 이어 버석거리는 미소를 입에 걸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치죄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에드윈은 고개를 숙인 레이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새파란 시선에 언뜻 알 수 없는 기색이 스쳐 갔다.
얼마간 침묵하던 그가 나직이 입을 뗐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금은 이쯤 하겠습니다. 리브릭 저택으로 돌아가 보고를 들은 후에 판단할 테니 자숙하고 계십시오.”
에드윈은 말을 마친 뒤 서늘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등 뒤로 허리를 더욱 깊이 숙이는 듯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는 차분한 걸음걸이로 오두막 바깥에 있는 기사들을 부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어둠 탓에 새파란 눈동자가 조금 더 짙은 빛을 띠었다. 선명한 그림자가 진 조각 같은 얼굴 위로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으나.......
‘그걸 물어보시는 이유는 분노인가요, 아니면.......’
‘......걱정인가요.’
주먹을 쥔 두 손에는 핏줄이 도드라진 채였다.
* * *
에드윈과 기사들은 부상을 입고 쓰러진 마거릿, 베르디를 급하게 마을 의원에게 보여 치료한 뒤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 정문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던 두 가주가 멀리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왔다.
“베르디! 괜찮은 것이냐!”
“마, 마거릿! 얘야! 아가!”
“두 분께서는 환자십니다. 부디 조용히.”
리오넬이 싱긋 웃으며 두 가주의 호들갑을 일축했다. 그에 저도 모르게 움찔한 메나스와 벤딜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일행은 그제야 저택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 후, 마거릿과 베르디는 이틀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그간 배정받은 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던 레이린은 에드윈의 부름을 받고 베르디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부상이 마거릿에 비해 심한 편이었기에 아직은 침대에서 움직이지는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똑똑.
“영주님. 레이린 아제트리아입니다.”
“들어오십시오.”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레이린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는 베르디와 그 곁에 둘러앉아 있는 마거릿, 두 가주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베르디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던 에드윈이 제 뒤편을 향해 까딱, 고갯짓했다.
“이쪽으로.”
“레이린, 이리 와.”
아르망이 팔랑팔랑 손짓했다. 레이린은 방 안의 이들에게 짤막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아르망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가 그녀를 제 옆으로 끌어당기며 목소리를 낮췄다.
“너 진짜 독하다. 아무리 자숙하라고 하셨다 해도 그렇지, 왜 이틀이나 자체 감금을 하고 난리야? 내가 찾아가도 문전박대하고.......”
“그만한 잘못을 했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아니, 사실 그것도 잘못이라고 할 게 아닌.......”
“됐어요. 그보다 조용히 하세요.”
레이린은 아르망의 중얼거림을 조용히 잘라 냈다. 아르망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레이린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끝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짤막한 대화가 끝나갈 무렵, 무표정한 얼굴의 에드윈이 마거릿을 향해 물었다.
“먼저 영애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겁니까.”
감정 한 조각 담기지 않은, 그래서 더욱 서늘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베르디의 침대 옆쪽에 앉아 있던 마거릿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서워.’
영주를 이리 가까이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 취임식이나 연회 등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던 것이 전부인지라, 지금처럼 그의 섬뜩한 위압감을 정면으로 받아내려니 절로 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 순간, 손끝에 자그마한 온기가 감겨 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얼굴의 베르디가 그녀의 손끝을 살짝 감싸 쥔 채로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아.’
그 다정한 미소를 마주한 마거릿이 픽 웃음을 흘렸다.
그래, 어차피 앞으로 리브릭 가문을 짊어지려면 감당해 마땅한 일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 그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겁먹지 말자.’
마거릿은 자꾸만 두근대는 심장을 다독이며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청년은, 장차 그녀의 상관이 될 사람이자 이 땅의 군주였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마주해야 할 얼굴일 텐데, 벌써 이렇게 공포로 얼어 있는 모습을 보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어느덧 떨림이 가신 손을 꾹 말아 쥔 그녀가 에드윈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입을 뗐다.
“영주님, 저는.......”
“.......”
“리브릭의 후계자가 되고 싶습니다.”
단호한 말이 내뱉어진 순간,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메나스 리브릭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마거릿! 지금 무슨-!”
“난 그대에게 발언을 허락한다 한 기억이 없는데.”
새파란 눈동자에 일순 살기가 스쳤다. 그 기세에 짓눌린 메나스가 차마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소란이 잦아들고, 에드윈의 눈짓을 받은 마거릿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후계자 업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서 사위를 들여야 한다며 덜컥 제 약혼을 결정하신 날, 저는 아버지께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녀는 당당하고도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저만큼 이 가문을, 리브릭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그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느냐고요.”
“.......”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일을 제하고, 이것이야말로 여자인 제가 편히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말만 반복하시며 저를 방에 가두다시피 하셨죠.”
마거릿의 눈이 메나스를 향해 움직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인지 충격인지 모를 감정으로 굳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은가. 메나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욱 서글펐다.
“아버지.”
“.......”
“제 행복이 왜 아버지의 생각에 가두어져야 하나요.”
단단하고 올곧은,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자만이 낼 수 있는 음성이 귓가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저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시는 것보다, 두 발로 직접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일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돕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적갈색의 눈동자는 어느새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는 리브릭의 가주가 될 겁니다. 제게 그만한 권리도, 능력도 있다는 걸 부정하실 순 없겠지요.”
“......마거릿.”
메나스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때, 어딘지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에드윈이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리브릭 공.”
“......예, 영주님.”
“영애는 그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이도, 마냥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도 아닙니다.”
“.......”
“스스로의 사랑을 이유로 타인을 억압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법이지요.”
단호하게 말을 맺은 에드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거릿을 힐긋 돌아보았다.
“후계자 승인은 청첩장을 가져오시는 날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저, 예? 그게 무슨!”
그의 말에 메나스가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벤딜 또한 경악한 얼굴을 하며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베르디와 마거릿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두 가주가 동시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니, 베르디, 이게 어떻게 된......!”
“마거릿! 너 정말......!”
“아이고, 두 분은 일단 진정을 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르망은 두 가주가 날뛰는 것을 능숙하게 제지하며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체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에드윈에게서 미리 언질을 받은 듯했다.
한편, 레이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을 나서는 에드윈을 따라 방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용인들을 물린 탓에 복도는 적막했다. 레이린의 등 뒤로 문을 닫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앞서 발을 옮기던 에드윈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새파란 시선과 함께 무심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레이린 아제트리아.”
“말씀하십시오.”
“보고는 들었습니다. 마거릿 영애는 그대가 엘빈을 앞세워 산을 오른 덕에 베르디 영식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선처를 부탁하더군요.”
“아니요. 그렇다고 해도 잘못은.......”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한 처벌은 근신 2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다만 외출하고 싶다면, 하인트에게 반드시 행선지를 알려야 합니다.”
레이린의 반발을 무시한 채 사무적으로 말을 맺은 에드윈이 곧장 멀어졌다.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이 걸음에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복도 한가운데에 남겨진 그녀는 당혹감이 깃든 눈을 했다. 근신이지만 굳이 외출을 막지는 않겠다니. 이 정도면 그저 이틀간 일을 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 아닌가.
“영주님.”
레이린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에드윈을 불러 세웠다. 그 잠깐 새에 꽤 멀어진 곳까지 다다랐던 그가 우뚝 멈춰 서더니 몸을 반쯤 돌렸다.
‘저번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쪽이었나요.’
레이린은 그리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내뱉으려던 말이 목에 턱 걸렸다. 과거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라 심장을 후벼 팠다.
‘레이린.’
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곱게 휘어지는 눈, 꽃잎 같다고 곧잘 놀리곤 했던 분홍빛 머리카락. 머릿속을 잠식한 기억에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밀려들었다.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힌다.
잠시간 침묵하던 그녀는 이내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마거릿 영애의 선택을 지지해 주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본래 묻고자 한 것과는 저만치 동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잊고 있던 기억이 스멀스멀 목을 죄어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러니 스치듯 머릿속을 지나쳤던 이 의문을 내뱉는 것이 최선이리라.
사실 메나스의 태도가 ‘보편적’이었다. 이제껏 여인이 가주나 그 이상의 중직을 맡았던 적은 없었으니까. 최근 에르치니아의 영주가 사망하여 그의 아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유스티아에도 여성 가주가 한 명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드문 경우였다. 레이린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고.
헌데 어째서?
“.......”
에드윈은 한동안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선명하다 못해 눈을 찌를 듯이 형형한 푸른빛의 눈이 차츰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레이린이 그 눈동자 너머에 담긴 생각을 읽어 보려 애쓰던 때. 긴 침묵을 이어 가던 에드윈이 희미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영주의 자리에 올랐던 여인의 존재를 압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