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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89화 (89/92)

?89. 아카데미의 가짜연인 (1)

웨인 힐 교수의 처벌이 결정 되었던 겨울의 일이었다.

방학이 되어 학생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루이스 스위니 마저 수도로 떠난 이후.

아카데미에는 스텔라 라피스와 웨인 힐 교수 그리고 몇 명의 직원만이 남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스텔라는 거의 매일 온실에 찾아오곤 했다.

“아……안녕하세요. 스텔라 양.”

교수님은 늘 안경을 고쳐쓰며 친절하게 인사에 답해주셨다.

그리고는 평범하게 온실 구석구석을 살피며, 생물의 성장이나 상태를 확인하고 기록해 두는 일을 했다.

비록 대화는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스텔라는 온실에 가는 일을 좋아했다.

그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무엇보다 열중하는 교수님을 보는 것이 좋았다. 때때로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가 비치는 것은 특히나.

물론 가끔씩 주고 받는 가벼운 대화도 좋아했다.

“아무래도, 루이스가 마법사 선생님 말씀을 잘못 들었나봐요.”

스텔라는 제 무릎을 만지작 거리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루이스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새해인데 눈이 오지 않았으니까요.”

“아마 다른 날짜랑 헷갈렸을겁니다.”

루이스가 다른 날짜랑 헷갈렸을 거라는 힐 교수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사흘이 지난 날. 정말로 많은 눈이 내렸다. 이 세상에 새하얀 물감을 쏟아버린 것 같은 많은 눈이.

스텔라는 당장 방한도구를 갖추고 온실로 달려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온실 지붕에 쌓인 눈을 긁어 내리는 일은 이제 익숙해 졌다. 그러나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 일이 간단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눈이 그치기 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기에, 스텔라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힐 교수는 조금 나은 상태였지만,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춥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두 사람은 관리 부인의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관리 부인은 눈이 오기 전에 아카데미를 떠났고, 주방은 썰렁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식재료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힐 교수는 일단 벽난로에 불 부터 붙였다.

자그마한 불씨가 곧 부피를 불리자 그 곳에서 부터 안정적인 온기가 퍼졌다.

“잠시 여기 계세요.”

힐 교수는 제 곁에 쪼그려 앉은 스텔라를 돌아보며 그리 말했다.

“교수님은요?”

“뭔가 먹어야……. 라, 라피스 양? 갑자기 왜 웃는 거죠?”

힐 교수는 갑자기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 스텔라를 바라보다가, 한가지 사실을 알아 차렸다.

제 시야가 흐려졌다는 것 말이다. 게다가 불이 온기를 키울수록 더욱 뿌옇게 되었다.

“웃어서 죄송해요. 그런데 교수님 안경이 완전히 하얗게 되어서요.”

그녀는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지만, 결국에는 다시 푸흡하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 이건 어쩔 수 없단 말입니다.”

힐 교수는 슬그머니 안경을 벗어서 구김이 가득한 옷자락에 슥슥 문질렀다.

스텔라는 안경 유리를 살피는 힐 교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론 그가 안경을 벗은 모습은 몇 번인가 보았다. 스텔라는 그 때마다 내심 감탄하곤 했고.

그가 가진 높은 콧대나 선명한 초록빛 시선이 참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꽤 멋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스텔라는 안경을 쓴 교수님의 모습도 좋아했다. 귀여운 면이 부각되는 것 같아서.

안경과의 사투를 마친 교수님은 그 두꺼운 안경을 얼른 다시 착용했다.

스텔라는 문득 작은 궁금증이 들었다.

“교수님, 혹시 안경이 없으면 곤란하실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으신가요?”

“곤란할 정도는 아닙니다. 남들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지만…….”

“어느정도인데요?”

“대 강의실 가운데 줄에 앉았을 때, 교수님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죠.”

“맨 뒤에 앉으면요?”

“제스처만 확인 가능합니다.”

애매하네. 결코 시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안경을 쓰면 마음이 안정되니까요.”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무엇으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으시는 거죠?’

스텔라는 제 생각을 차마 입으로 옮길 수 없었다. 잠시 비쳐보인 그의 시선이 묘하게 서글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라피스양은 여기 계세요. 찾아보면 뭔가 따듯하게 먹을 만한게 있을테니까요.”

힐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스텔라는 얼른 그의 옷깃을 붙들었다.

“하지만 교수님도 추우시니까, 조금 더…….”

여기에 계세요. 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못했다. 왠지 함께 있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 처럼 느껴졌으니까.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교수님의 옷에 축축함이 남아있고, 언뜻 비친 손가락은 조금 붉었으니 아직은 불가에 있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교수님은 스텔라와 마주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겨울마다 있는 일이니 익숙하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스텔라양이 걱정이군요. 이런 일에 익숙하지도 않으실테고.”

그리 이야기 하던 힐 교수는 스텔라의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었다.

젖어버린 짧은 머리카락 끝에는 동그란 물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었다.

그는 품에서 가지런히 접힌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이렇게 머리카락이 전부 젖으셔서, 감기에 걸리지나 않으실지…….”

속삭이는 그의 얼굴이 조금 가까워졌다. 곧 젖은 머리카락 위로 그의 손수건이 닿았다.

갑작스레 줄어든 거리에 스텔라는 자신도 모르게 놀란 얼굴로 교수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따위를 바라보며, 어쩐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진심으로……걱정하는 사람처럼.

‘저도 괜찮아요. 교수님.’

이렇게 이야기 해야하는데, 이번에도 말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안경 너머로 보이는 저 시선이 좋았다. 평소보다 훨씬 더 가까운 간격도 좋았다.

심장이 간지러워서, 호흡이 어려울 만큼.

그러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

교수님은 뭔가를 깨달은 것 같은 소리를 내고는, 그녀를 향해 기울어진 몸을 바로했다.

“이, 이런식으로 물기를 닦아내면 됩니다. 요령은 아시겠지요?”

그는 실습시간 같은 말만 남기고 스텔라에게 손수건을 쥐어 주었다.

스텔라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힐 교수는 미련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머리를 말리는 요령을 알려주신 거구나.’

스텔라는 귀족가의 아가씨니까, 이런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으면.’

그녀는 일렁이는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교수님이 건네주신 손수건으로 제 머리카락을 꾹꾹 눌렀다.

‘하긴 한심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제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조차 해내지 못해서, 라센 교수의 힘에 기대곤 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상처 입혔다.

그러니 그가 스텔라를 다소 한심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진짜, 바보같아.’

스텔라는 무릎을 모아 올려, 잠시 이마를 기댔다.

“라피스 양?”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돌아보니, 교수님께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두꺼운 컵을 건네고 계셨다.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스텔라는 애써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유를 덥혀서 초콜릿을 조금 녹여왔는데. 괜찮을까요?”

스텔라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그의 말대로 우유 위에 얇은 막이 생길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후후 불어가며 조금 마시자 차가운 몸 속이 따끈따끈해 져서 좋았다.

“맛있네요.”

“다행입니다.”

교수님이 배시시 웃었고, 스텔라는 조금 비켜 앉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저어, 교수님도 앉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교수실로 돌아가 봐야죠.”

“아…….”

스텔라는 자신도 모르게 실망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나 곧 씩씩하게 웃었다.

“저 때문에 일부로 여기까지 와주신 거군요. 감사드려요.”

“온실을 함께 돌봐주셨으니, 감사를 해야하는 건 저 입니다. 그 보다도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여길 비우고 기숙사로 돌아가실 때는…….”

그는 여전히 강하게 타오르는 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교수님?”

“하긴, 학생에게 불을 맡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군요.”

그리 중얼거린 힐 교수는 조금 전에 스텔라가 권한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난롯가에 펼쳐 둔 포근한 카펫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자연스레 두 사람의 어깨가 스쳤다.

침묵이 감돌았다.

스텔라는 따스한 컵을 입술에 댄 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가지……않으세요?”

“예.”

“제가 불을 제대로 끄지 못할까봐요?”

“예.”

함께 있어 준다는 건 기쁜데, 왜이리 속상한 마음이 함께 드는걸까.

“……저도 불은 잘 끌 수 있어요.”

“예. 그렇겠죠.”

“그러니까 돌아가셔도 괜찮아요. 바쁘시잖아요?”

“바쁘긴 합니다만…….”

교수님은 안경을 고쳐쓰며 스텔라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라피스 양이 걱정되어서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할 것 같아서요.”

“……네?”

“불은 위험합니다.”

교수님은 마른 장작을 몇개 더 넣었다. 잠시 주춤했던 불길은 새로운 먹이를 양식 삼아 다시 굳건해 졌다.

“학생을 위험한 곳에 홀로 두면 불안하기도 하고……. 물론, 이제 제게 교수 자격은 없습니다만.”

“그, 그건 교수님 탓이 아니에요!”

스텔라는 얼른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그는 스텔라와 같지만 다르다. 아마 라센 교수의 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딘선가에서는 두각을 드러냈을 것이다.

운이 나빠서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된 것 뿐이다. 그가 쌓아온 연구실적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았다. 속을 모를 애매한 미소만 지을 뿐.

힘겹게 밀어냈던 침묵이 돌아오고 말았다.

스텔라는 제가 무언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교수님이 곤란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분명했다.

그럼 뭐라고 대답했어야 했을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 스텔라가 주변을 맴도는게 곤란한 건 아닐까?

……귀찮게 하는 걸까.

스텔라는 컵을 곁에 내려놓고, 제 무릎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복잡한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이 차례로 떠올랐는데, 대체로 우울한 것 뿐이었다.

* * *

스텔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무척 밝았다.

‘설마 잠들었던거……?’

미치겠다, 정말.

그녀는 비참한 기분을 느끼며 몇 번 더 눈을 깜빡이다가, 어딘가 뻐근한 몸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아…….”

그러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지금까지 제가 어딘가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어딘가’란, 힐 교수님의 어깨였다.

“죄, 죄송해요!”

잠이 확 달아난 스텔라는 얼른 몸을 일으키며 사과했다.

멍청하기는! 교수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 이렇게 또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정말로 죄송해요! 무거우셨죠? 아니 그보다 바쁘신데 저, 저 때문에…….”

“괜찮습니다.”

당황하여 쏟아지는 말 사이로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스텔라는 다시 입을 꾹 다물게 되었고, 교수님은 모래로 남은 불씨를 전부 꺼트렸다.

“아무래도 라피스 양은…….”

“…….”

“기숙사로 돌아가서 조금 더 쉬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리 이야기 한 힐 교수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인사한 후, 먼저 주방을 나섰다.

발걸음을 서두르시는 것을 보니, 밤 새 돌아가지 못해 일이 많이 밀린 것이 틀림 없었다.

스텔라는 작은 불씨 하나 남지 않은 벽 난로를 바라보다가, 그 앞에 스르르 주저 앉았다.

‘교수님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서 나가버리셨어…….’

정말로 귀찮게 해드린 모양이다. 어쩌지.

* * *

그 날 이후로 스텔라는 온실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갈 수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몇 번인가 그 쪽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곤란해 하시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으니까.

스텔라는 그 때마다 속상하고, 또 창피했다.

……정말 미치도록 창피했다. 이제야 제 민낯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내가 교수님께 특별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던것 같아.’

라센 교수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픈 기억일 뿐이다. 그러니 그런 사실을 일깨우는 스텔라의 존재가 반가울리는 없었다. 어째서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걸까.

‘교수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하신 분인데.’

스텔라는 멋대로 그걸 호의라 착각하고, 망상을 키운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 곧.

‘몇 개월이나……. 혼자서.’

스텔라는 얼떨결에 갖고 있게 된 교수님의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하얀 손수건은 언젠가와 달리 하얗고 깨끗했다. 물론 스텔라가 새로 세탁을 한 덕도 있지만, 그가 처음 내어줄 때도 이렇게 정갈했다.

‘구깃구깃하고 얼룩까지 진 손수건을 들고 어쩔줄 몰라 하실 때는 정말로 귀여우셨는데.’

스텔라는 어느새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 기억을 헤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수건을 돌려 드려야 했다. 이 이상 늦어지면 뭔가 더 어색해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피하며 도착한 그의 교수실은 텅 비어있었다.

뒤늦게 출근하신 조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어제부터 몸이 좋지 않으셔서 의료동에 계신다고 하셨다.

“뭔가 교수님께 전해드릴 것이 있나요?”

조교 선생님이 친절하게 물어오셨고, 스텔라는 손수건을 꼭 쥐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건 없어요.”

그리 대답하는 입 안이 썼다.

미련한 거짓말쟁이 계집애.

* * *

머뭇거리며 도착한 의료동에서 스텔라는 어렵지 않게 힐 교수를 찾아냈다.

신기하게도 그는 예전에 스텔라가 누워있었던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물론 교수님께서 그런 걸 알고 계실리는 없으니까……. 괜히 의식하는 건 그만 두었지만 말이다.

교수님은 이렇게 아프셔서도 교수님이었다.

침대맡에 책이나 노트를 몇개 씩이나 쌓아 놓고 계셨다. 이럴 때는 조금 푹 쉬시면 좋을 텐데.

스텔라는 침대위에 늘어진 책을 조심스럽게 집어들어 스툴에 정리해 두었다.

그녀가 가져온 손수건도 함께 둔 후에는, 다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음, 책을 다 치웠는데도 아직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해. 자는 모습도 멋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안경을 쓴 채 주무시고 계셨다.

‘불편……하시겠지?’

스텔라는 안경을 써 본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것 같다는 들었다. 얼굴에 뭔가를 얹어놓고 자는게 편안할 리 없으니까.

스텔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일단 조심스레 안경 다리 양 쪽을 붙잡았다.

‘교, 교수님 죄송해요!’

이유 모를 사과를 한 후에는 천천히 안경을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두꺼운 유리가 서서히 떨어지면서 교수님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속눈썹……길다.’

그리 생각하던 중, 교수님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스텔라는 안경을 쥔 채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설마 깨어나시는 건 아니지?’

다행히 그건 아닌 듯, 꼭 감은 두 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쉰 후, 다시 안경을 살살 벗겨냈다. 긴장으로 어느새 호흡마저 잊고 말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집중한 끝에, 가까스로 그를 깨우지 않고 안경을 벗기는 일에 성공했다.

“후우.”

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깊이 쉬었다.

‘스툴에 같이 두면 일어나신 후에 쉽게 찾으실 수…….’

하지만 그 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깜짝 놀란 스텔라가 안경을 쥔 채, 교수님을 내려다 보았다.

어느새 그의 초록빛 눈동자가 완전히 드러나 있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녀를 쥔 그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마, 기분 탓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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