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너무 예뻐서 못 멈출 것 같으니까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야지.”
학생들이 무사히 떠나는 것도 확인했고, 교직원들과 인사도 마쳤다.
“마차까지 배웅해 드릴게요.”
루이스가 밝게 웃으며 그리 말했으나,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왜요?”
“내가.”
그는 손을 내밀며 나직이 대답했다.
“그대를 바래다줘야지.”
“하지만, 기숙사는 바로 저기인걸요. 바래다주실 것도 없어요.”
루이스의 턱 끝이 가리키는 대로 기숙사는 아주 가까웠다.
“그냥 내가 그리하고 싶어.”
이안은 재차 손을 내밀었다.
“평소처럼 말이야.”
그 말은 왠지 서글프게 들렸다. 아마 지금이 그 ‘평소’의 마지막이기 때문일 거다.
루이스는 괜히 웃었다.
“알았어요.”
손을 붙잡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여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들의 평소처럼 말이죠?”
“그래.”
그는 맞닿은 손을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손가락이 하나씩 전부 끼워져 완벽하게 맞물렸다.
두 사람은 익숙한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학생 몇 명이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는데,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학장님께서 별말씀 없으셨어요?”
루이스는 단상에서 원고를 발견하고 눈썹을 움찔거렸던 학장님을 떠올렸다.
“설마. 클레어의 훌륭한 문장 덕분에 기부금 문의가 꽤 늘었다고 하니까.”
“역시 클레어네요. 저도 굉장히 좋았어요.”
“클레어 이리스는 기본적으로 머리도 좋지만, 그보다는 타고난 감각이 탁월하지. 눈치가 빠르고 핵심을 빨리 짚을 수 있어.”
“그래서 졸업 후에도 회장님의 일꾼으로 두고 싶으셨던 건가요?”
“훌륭한 인재를 선점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나는 이 사실을 그대에게서 배웠지.”
“제게서요?”
이안은 루이스와 이어진 손을 장난스레 흔들며 웃었다.
“내가 그대의 인력을 아무리 마음에 들어 해도, 그대는 스위니 온실에 귀속되겠지.”
“그야……. 어릴 때부터 저는 후계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까요.”
“그렇지? 스위니 부부께서 그대를 선점하고 말았지.”
그야 루이스는 두 분의 하나뿐인 딸이니까.
하지만 이마저도 안타깝다고 말하는 이안이 재미있어서, 루이스는 키득키득 웃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그대도 남은 1년 동안 믿을만한 인재를 찾아두는 편이 좋아.”
왤까? 스위니 온실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학생 대부분은 귀족 가의 자제들이다. 온실의 일을 배우려고 하지는 않을 터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전하의 청혼을 받아들였기 때문인가요?”
“그래.”
“제 편이 되어 줄 귀족이 필요하다는……말씀인가요?”
아무래도 루이스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이상적인 황태자비가 아닐 테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온실과 내 옆자리를 혼자서 병행하는 것은 힘들 거야.”
“……전하 말씀은 어쩐지 우리 관계가 성립되는 데는 장애물이 전혀 없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이미 결혼에 성공한 이후를 걱정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장애물……은 있겠다만. 그 부분은 언젠가 그대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안은 다른 손으로 잠시 제 턱을 쓸어 냈다.
“내가 바라는 아가씨께서 나를 택한다고 말씀하신다면.”
루이스는 봄과 여름 사이에서 들었던 그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이어지는 각오까지.
“곁에 두시겠다고 하셨죠. 그 무엇을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 이 세상 어떤 것을 거스른다 하더라도.”
참 이상한 일이다.
그의 맹세와 무게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같은 말을 듣고도 묘한 불안에 휩싸였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무척 안심되었다.
두 사람이 거슬러야 하는 많은 것들이 이미 예견되었음에도 말이다.
“최선을 다해서 찾아볼게요.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요.”
“기대하지.”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에 어느새 기숙사 현관에 도착했다. 이안이 손을 놓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방 앞까지 데려다주려는 모양이다. 평소처럼 말이다.
“아 맞다. 교양 미술 말인데요.”
루이스는 두, 세 계단 정도 앞서 걸으면서 이안을 돌아보았다.
눈높이가 비슷해서 참 좋다며, 몇 번인가 이렇게 한 적이 있었다.
“암기뿐인 과목이지만 참 좋았어요. 기본적으로 감상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다음 새 학기의 연회에 그림을 전시할 미술가를 고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무엇이든 배워두면 쓸모가 있는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다음 학기에는 휴이트 교수님의 역사 수업을 하나 더 들어보도록 해. 정말 괜찮으니까.”
“으.”
“왜 그래?”
“제가 교수님의 ‘원칙’을 집어 던진 전과가 있어서요. 분명히 저를 더욱 싫어하게 되셨을 걸요.”
루이스는 작지만 단단했던 교수님의 눈사람을 떠올렸다.
이안은 그날의 루이스를 떠올리며 웃었다. 악마 같은 얼굴을 하고는 커다란 눈덩이를 집어 던지는 건강한 얼굴이 아주 좋았다.
“걱정할 것 없어. 그걸 대신할 ‘대원칙’을 세운 것도 그대니까.”
“정확히는 우리 세 사람이었죠.”
“그리고 교수님은 꼬마 눈사람의 복수를 위해 그대의 성적에 따로 손을 댈 사람은 아니야.”
“그야……그렇죠.”
무섭지만 아주 공정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물론 수업 중에 작은 복수를 당할 수는 있겠지만.”
“…….”
“그분의 수업은 그걸 감내할 가치가 있지.”
“그리고 또 어떤 수업이 좋았어요?”
루이스의 물음에 그는 제가 들었던 수업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두 사람은 계단을 다 올랐고, 어두워진 복도까지 지나 루이스의 방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 마주 선 두 사람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참 빨리도 도착했다고 말이다.
바깥에서 방까지 이르는 길이 그다지 멀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서운할 정도로 짧았던가 싶었다.
루이스는 평소에 이안과 어떻게 인사했던가를 떠올렸다.
그녀는 언제나 단출한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럼 회장님도 돌아가서 쉬세요.’ 라던가, ‘안녕히 주무세요.’와 같은 말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한 인사가 얄미웠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말이다.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아주 깊숙하게 스며든.
루이스는 그 사실을 그대로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 가까스로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하지만 첫 마디의 끝이 묘하게 떨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모처럼 마주했던 시선마저 거두었고, 이제는 이어진 손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툭.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차가운 손끝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와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그의 손길에 따라서 흔들렸다. 그 부드러운 결을 타고 흘러내린 손이 둥근 귓가를 지나 하얀 얼굴선을 쥐었다.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루이스의 얼굴을 들어 저를 보게 했다.
어쨌든 인사를 할 때는 서로 얼굴을 보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게다가 ‘평소’처럼 하겠노라고 말 한 건 그였으니까 말이다.
“잘 자.”
“…….”
“자다가 용맹하게 이불을 걷어차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그, 그게 뭐예요.”
루이스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외투는 잘 챙겨 입어야 해. 장갑이랑 머플러도. 눈을 치울 때는 꼭 털 장화를 빌려 신고.”
“……알아요.”
“시몬이 늘 말하는 것 같지만, 여름에는 찬 걸 너무 많이 먹어도 안 되고.”
“그것도 알아요.”
“아는 것만으로는 안 돼, 중요한 건 잘 실천하느냐니까.”
“실천할 거예요.”
“옳지.”
비로소 루이스의 얼굴이 한결 나아졌고, 그는 손끝에 닿은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늘은 정말로 고생 많았어. 이제 들어가서 푹 쉬어.”
“가……시려 고요?”
“음, 그래야 하지 않을까. 모든 졸업생은 오늘 자정을 기해서, 아카데미의 거주권이 말소되거든.”
자정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라는 생각이 잠시 루이스를 스쳤다.
그러나 곧 이안을 기다리는 헤셰와 시종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며 고집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루이스는 여전히 맞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인사는 손을 놓고 하는 편이 나을까.
인사 후에 손을 놓으면 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곤란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루이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단단히 엮인 손을 풀어냈다. 멀어지는 틈으로 겨울의 한기가 살며시 스며들었다.
그가 다시 그녀를 붙잡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손은 자연스레 떨어지게 되었다.
루이스는 허리 근처로 돌아온 손끝을 가만히 쥐었다.
앞으로는 아마……. 이렇게 홀로 주먹을 쥐며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하게 될까.
쓸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털어 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바깥에서 이안을 기다릴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랬다.
루이스는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려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굳이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까지 바래다주신 거요.”
“별말씀을.”
“그……. 제가 좀 여기에서 일이 많았는데, 늘 제 편에 서주신 것도요.”
“내 특권이지.”
“제 이상한 이야기도 다 믿어주시고요.”
“이상하지는 않았어. 다만 그대가 홀로 그런 기억을 감당했다는 점이 속상할 뿐이야.”
너그러운 대답에 루이스는 살포시 웃고 말았다.
“절……편애해 주신 것도요.”
“그래.”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말해 주었다.
“난 그대를 편애해. 무척이나.”
루이스는 그의 말이 갖는 억양이나 호흡을 기억해 두었다. 언젠가 홀로 있을 때도 남몰래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마침내 그 기억이 완벽하게 자리 잡았을 때, 그녀는 이제 유예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하는 말을 전했고, 둘도 없을 대답도 들었다. 이제 루이스가 해야 하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가세요.
그러니 루이스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함께 수도에 있을 때도 만나지 못하는 날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때에도 두 사람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인사하곤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이나 해 왔던 일이니까.
익숙하게 입술을 끌어올리자, 자연스레 눈꼬리도 웃음을 담으며 휘어졌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입술이 벌어지는데, 이상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꼭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입술 사이로 덩어리진 호흡만 빠져나왔고, 그 끝은 볼품이 없을 정도로 파르르 떨리고 말았다.
울면 안 돼!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등 뒤에 있는 문고리를 쥐었다. 그 찬 것을 쥐자, 감상에 빠졌던 마음이 다소 평소대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울었다가는 일 년 내내 그에게 걱정을 끼칠지도 모를 일이다.
끼익.
문이 조금 열렸다. 루이스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럼, 조심해서…….”
인사는 차마 맺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는 전해졌을 테니, 루이스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가 루이스의 얼굴을 다정하게 쥐어왔다.
“조심해서……?”
“…….”
“인사는 끝까지 들려줘야지.”
“……회장님은 진짜 악마예요.”
루이스는 괜스레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듣고 싶어서 그래.”
“…….”
“그냥,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그런 거야. 어떤 말이라도.”
“마, 말하기 싫었단 말이에요.”
꼭 ‘얼른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걸 어떻게 말해요. 어떻게…….”
억지로 힘을 주어 버티던 눈가에서 결국에는 눈물이 떨어져,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울고 싶지 않아서 말을 흐렸던 건데.
“죄, 죄송해요. 실은…….”
루이스는 한 걸음 더 물러서며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얼굴을 감싸준 손길이 너무나도 다정하여, 더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루이스는 얼른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는 다시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변함없는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함부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도 않은 채.
아마 루이스가 마지막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려는 걸 거다. 상냥하게도 말이다.
루이스는 조금 잠긴 목을 가다듬고 애써 입을 열었다.
“그럼.”
루이스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도 모르게 맞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부디, 조심히……?”
속살거리던 말은 다시 멎고 말았다. 그녀의 탓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그가 가까이 다가온 것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떨어졌던 몸이 순식간에 밀착되고, 머뭇거리던 입술이 닿았다. 이리도 갑작스러웠던 것은 어쩌면, 그도 무언가를 참고 있었기 때문일까.
“흐읏…….”
좁은 틈에서 남은 숨결이 흘렀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가진 모든 호흡과 말 그리고 감정까지도 그에게 통제권을 내어주고 말았다.
허리가 조여왔다. 답답하여 숨이 막힐 것 같은 감각이 좋아서 루이스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뺨을 간지럽히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자연스레 몸이 밀리는 느낌을 따라서, 루이스는 뒷걸음을 쳤다. 밤의 어둠보다도 조금 더 짙은 곳에 다다랐을 때, 어렴풋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타인의 시선은 물론, 시간마저 사라졌으니 두 사람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자연스레 턱이 들리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더운 숨과 열기가 단숨에 몰려왔다. 탐하는 것에 몰두하는 멍청한 인간은 호흡마저 잊고 말았다.
때때로 숨이 간절하여 입술이 떨어졌으나 끝끝내 떨어진 것은 되지 못했다. 살덩이가 아니라면, 길게 늘어진 은사가 결국에는 둘을 이어 두었다. 마치 한순간도 떨어지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가까스로 호흡을 들이면 다시 입술이 닿았다. 다급하여 서로 맞물리지 못해 날카로운 이로 부딪히기도 했다. 아니 실은 입술뿐이 아니었다.
상대를 깊이 각인하고자 하는 욕구는 손끝에도 있었다. 두 사람은 겹쳐진 몸이 닿지 못하는 그 모든 곳에 제 손길을 남겨 두었다.
기억해 두기 위해서, 기억시키기 위해서.
이 간절함에 눈물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이안은 입술 끝에 닿은 눈물 자국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볼을 타고 올라간 입술은 어느새 눈가에 닿아, 그는 그곳에 몇 번이라도 키스했다.
울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는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새삼 깨닫고 말았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울고 있는데도, 그 모습이 예쁘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누군가와 그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몬 힐라드라면 그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몬은 성실하고 다정하니 이 눈물을 그치게 하는 것만을 생각했으리라.
“……울지 마.”
그는 제 눈을 감은 채, 겨우 떨어진 입술 사이로 고백했다.
“그대가 너무 예뻐서 못 멈출 것 같으니까, 제발.”
아니, 간청했다.
여전히 열기를 머금은 손바닥으로, 넘칠 만큼 흐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닦아내며.
“안……울어요.”
빨개진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기에, 그는 쓰게 웃고 말았다. 예쁜 얼굴을 하고서는 울지 않았다니, 거짓말도 이렇게 달콤하면 거의 유혹이나 다름없었다.
“……안 울려고 했는데.”
“알아.”
루이스 스위니는 성실하고, 착실하다. 분명히 일 년의 이별에 단단히 대비해 두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걱정시키는 걸 싫어하는 아이니, 이런 모습을 보여 주기는 더욱 싫었을 테고.
“차마 그 말은 할……수가 없어서요.”
“나도 실은 그다지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어.”
이안은 루이스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쥔 채, 조심스레 입술 끝만 겨우 맞추었다.
“그래도 말하라고 하신 건, 저를 괴롭히려고 그러신 거예요?”
눈물과 심술이 범벅된 얼굴이 그를 바라보기에, 그의 다시 심장이 미어지고 말았다. 결국, 다시 가벼운 버드 키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괴롭히려고 그랬어.”
“나쁘시네요.”
“그래, 나쁘지. 그러니 말했잖아. 그대가 아까울 만큼 질이 안 좋은 남자라고.”
“회장님은 상냥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악마라더니, 그가 자책하자 곧바로 다정한 말이 돌아왔다.
“……착해 빠져서는.”
그리고 달래는 듯한 짧은 키스가 있었다.
“괜찮으니까.”
입맞춤이 끝나고 새삼 루이스를 토닥여 주며 속삭였다.
“그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해.”
루이스는 언젠가부터 붙잡고 있었던 그의 옷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마음을 다잡아야 했는데.
“어리광이라고 놀리지도 않을 테고, 그 말을 원인 삼아 곤란할 짓을 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런 말은.”
“내가 듣고 싶어서 그래.”
루이스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자연스레 파고들게 된 그의 품에 귀를 기울이자, 익숙해진 심장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이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었다. 이안 오드모니얼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실감이 든다고.
어딘가의 등장인물이나 주인공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눈앞에 살아 숨 쉬는 타인으로 느껴진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더 많은 의미를 품게 되었다.
“있죠.”
루이스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녀는 이 온기 어린 품을 그리고 그곳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숨이 차올랐다. 자연스레 찾아온 정적에도 그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 준 채, 기다려 주었다.
“아직, 가지 마세요…….”
어려운 고백의 마지막 숨은 다시 그에게 삼켜 졌다.
두 사람의 키스 사이사이로 말이 되다가 만 고백이 몇 번이나 흩어졌다.
그리고 루이스는 아직 제게 닿는 온기를 확인하듯 꾸욱 쥐었다.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