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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79화 (79/92)

?79. 매일 다른 곳에 키스하려고 해

언제부터더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한 것이.

아마 ‘말’의 힘을 알게 된 이후로 줄곧 그래 왔을 것이다.

말은 타인의 귀와 입을 통하며 매번 그 형태를 갈아입는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솜사탕같이 부드러운 것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니 클레어는 자연스레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무뚝뚝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타인에게 할 수 있는 말과 그럴 수 없는 말을 엄격하게 구분해 두었다.

과거의 발언이 칼이 되어 돌아와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마음에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말에는 무게도 모양도 없을 텐데, 어째서 이리도 무겁고 버거운 걸까.

“클레어!”

그녀가 제 방에 돌아왔을 때. 다급한 목소리와 따듯한 품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루이스 스위니였다.

“……기다렸어요. 정말로.”

아마 의자에도 앉지 못하고, 내내 문가에서 발을 동동거렸던 모양이다. 혹시 엇갈릴까, 함부로 밖을 돌아다니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수도로 데리러 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딘 크리시스가 말하길, 일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저는 여기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루이스의 말에 클레어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빨리 업혀! 루이스 스위니가 네 방에서 질질 짜고 있다니까!」

루이스를 이 방에 둔 이유는 클레어를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어는 이 씩씩한 친구를 언제나 걱정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계속……여기에서 기다렸어요.”

다정한 목소리에 클레어는 이제야 루이스를 끌어안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딘에게 업혀있을 때 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바닥까지 떨어져 엉망이었던 하루에 깊은 위로가 되었다.

기이한 일이다. 루이스 스위니와 알고 지낸 기간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건, 관계의 밀도가 무척 높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처음부터 무척 잘 맞는 편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루이스에게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해도 좋지 않을까……. 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일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녀는 마음속의 말을 꺼내지 못한 채, 평생을 무섭게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루이스.”

클레어는 루이스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내었다. 간격이 생기자 시야가 넓어져 비로소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약한 촛불에 기대어 확인 한 두 사람의 눈가는 똑같은 모양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클레어는 저와 닮아진 눈을 바라보며 아프게 웃었다.

“실은 나 말이야.”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늘 루이스가 부러웠어.”

“저……요?”

“응. 열심히 하잖아?”

“그건 클레어도 그렇잖아요.”

“루이스를 위해서 말이야.”

“네?”

“루이스가 열심히 하는 건 루이스를 위해서지. 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요. 라며 우물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나는 조금 달랐어.”

클레어는 루이스를 지나쳐서 침대 옆에 섰다.

흘러내린 외투를 벗어서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자, 새파랗게 멍이든 팔이 드러났다.

“클레어! 팔에……!”

루이스가 다급하게 다가왔지만,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아카데미에 온 것도 신부수업의 일환이었을 뿐이었거든.”

오라비는 ‘예쁘기만 해서는 신부로서 가치가 없으니까.’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아카데미에 입학시켰다.

“아주 싫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가치를 좋은 신부, 그 이상으로 여겨주지 않는 가족들이.”

“클레어…….”

“물론 좋은 신부가 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것도 아주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클레어는 제가 입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엉망이 되었지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는 여전히 새하얀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걸 위해서 노력하고 싶지 않았어.”

장래의 클레어가 아름답지 않아도 좋았다. 이런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피곤하고 너절한 몰골이 되어 매일매일 지친다고 해도 좋았다.

“내 노력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거든. 비록……그게 가족들을 배신하는 일이 되겠지만.”

클레어는 제 오라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가문이 그녀의 결혼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그녀가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우리 오라버니. 정말로 미친 새끼지?”

“미친 새끼네요!”

루이스는 곧바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내 오라비가 이렇게 미친 새끼라는 걸 빨리 알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아카데미 생활도 조금은 더 즐거웠을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클레어.”

“하긴.”

“클레어의 가족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밖에 자금 조달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평판이 벼랑으로 떨어졌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클레어의 결혼으로 잠깐 숨통이 트인다고 하더라도, 금방 다시 무너질 거다.

“그러니 클레어의 희생이 의미 있는 발전으로 이어질 것 같지도 않고요.”

클레어는 제 오라비의 만행을 떠올렸다. 그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자마자 가문의 사업을 멋대로 주물렀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의 손이 닿는 족족 망했다. 변명의 여지 없이 깔끔하게.

“생각해보면 오라버니가 시작한 일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없었지.”

클레어의 결혼도 분명 그렇게 망했을 것이다. 그것도 그녀의 오라버니가 결정한 것이니까.

“네 말이 옳아. 루이스.”

클레어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가족의 뜻에 따른다고 하여, 그게 건강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을 거야.”

그럴 바에야 클레어 한 사람이라도 정상적으로 자립하는 편이 나았다.

마지막 죄책감이 덜어지자, 그녀는 비로소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정략결혼은 정말로 그만두는 거죠?”

“정말로 그만둘 거야. 나중에 오라버니께서 슬그머니 강요하더라도 딱 잘라 거절해야지.”

“예쁜 드레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도 클레어의 결정을 지지해요.”

루이스는 검지를 들어 허공에 빙글 돌렸다. 돌아 서보라는 신호였다.

클레어는 얼른 몸을 돌렸다. 루이스는 클레어의 등을 조이는 리본을 풀어냈다.

“시원하다.”

“드레스는 조금 헐겁던데, 코르셋이 많이 불편하죠? 금방 벗겨줄게요.”

“으응, 아냐. 쌓아 둔 말을 했더니 개운하다는 뜻이었어.”

“맞아요. 마음에 남은 말은 묘하게 무겁죠.”

“응. 꼭 그렇더라.”

“…….”

재잘거리던 루이스가 조용해졌다. 이따금 ‘으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려워?”

“아뇨, 실수로 매듭을 잘못 건드렸더니 조금 꼬였거든요. 거의 다 했어요.”

그리 말하는 순간에 스르륵 하고 끈이 풀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호흡이 가볍게 느껴졌다. 게다가 신기할 정도로 달콤했다.

“있잖아, 루이스.”

“네?”

“나 딘 크리시스를 사랑해.”

그리 말하는 순간에 그녀를 죄던 모든 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말이야, 루이스.”

클레어는 몸을 돌려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어. 이제는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진심이야.”

“……알아요.”

루이스는 클레어를 다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클레어의 얼굴이 이렇게 편안하고, 다정한데.

그 고백에 거짓 따위가 감히 섞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 * *

클레어를 치료할 약과 붕대를 챙긴 딘 크리시스는 조용한 기숙사 복도를 정신없이 달렸다.

마차에서 보았던 그녀의 상처가 잊히지 않았다. 분노가 맺히는 것은 당연했지만 일단 치료가 우선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방 앞에 도착했다. 손을 들어 노크하려는 찰나.

루이스 스위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많이 불편하죠? 금방 벗겨줄게요.”

느려터져서는!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고 둘이 뭘 한 거람.

어쨌든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치료는 클레어가 옷을 갈아입은 후에 해야 하니까. 아니 실은, 그런 옷은 빨리 벗어버렸으면 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오늘 하루를 복기했다.

문득 후회가 들었다. 그녀에게 오늘 하루는 고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딘은 그녀에게 뭐라고 했었더라.

「그러니까. 클레어 이리스. 다음번에는 나랑 같이 고르러 가.」

……미쳤냐, 딘 크리시스. 양심도 없는 새끼! 어떻게 그런 말을 이런 날에, 그것도 맨입으로 내뱉지?

“쌓아 둔 말을 했더니 개운하다는 뜻이었어.”

문 너머에서 들리는 클레어의 목소리에 그는 제 심장 근처를 쥐었다. 양심이 아프다.

그가 클레어에게 쌓인 말을 할 것이 아니라, 클레어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야 했는데.

클레어도 황당했을 거다. 가까스로 약혼에서 벗어난 날에 다른 놈이 이렇게 날뛰어서.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사정을 잘 말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거다. 클레어는 상냥하니까. 하지만 그의 성급한 발언이 상처가 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있잖아, 루이스.”

문 너머에서는 계속해서 대화가 들려왔다.

딘은 훔쳐 듣는 것이 무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멈출 수가 없었다.

“나 딘 크리시스를 사랑해.”

“헙.”

그는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었다가 얼른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잠깐만, 클레어!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오면……!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어.”

그는 결국 문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분명히 추운 복도에 있는데도, 무릎에 닿은 얼굴에서는 여름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는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진심이야.”

‘……미치겠네.’

꿀을 바른 것 같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이제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멍청이가 된다더니, 이래서였을까?

그는 입술로 새어 나오려는 말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았다. 지금 당장 클레어에게 닿을 대답도 아니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꼭 전할 생각이다. 클레어의 기분이 최고로 좋은 어느 예쁜 날에 말이다.

* * *

루이스는 ‘고급 수학’의 강의실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고급 수학도 매해 수강인원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비인기 과목인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과목 이름이 ‘고급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름을 들은 학생은 누구라도 뒷걸음질을 치게 되어있다.

하지만 루이스는 생각이 달랐다.

‘우후후. 나는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르키메데스의 후손이지.’

조상의 빛나는 얼을 등에 업고 호기롭게 수강 신청을 했으나, 그건 몹시 멍청한 짓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학생들은 모두 ‘고급 수학’이라는 이름에 환장하는 이들뿐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아름답게 나열하는 정리자요, 진실을 찾아내는 탐구자였다. 심지어 증명이라는 말에 모두 눈을 반짝이며 행복해했다.

오직 루이스만이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 우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수학 수업을 수강하는 건데.”

루이스는 얼마 전에 딘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가위로 오리며 합쳐보는 모습을 떠올렸다. 내각의 합이 180도임을 증명하는 모양이었다.

그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삼각형 내부에서 세 꼭짓점과의 거리의 합이 가장 적은 점을 찾는 수업이 아니라!

사실과 증명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학생회실로 들어오니 오늘은 어쩐 일로 텅 비어있었다.

대신 가방이나 코트만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모두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코트?’

학생회에서, 아니 이 아카데미 전체에서 이렇게 추운 날에 저런 멋스러운 코트를 입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저 코트에 대단한 마법 기능이 있어서, 살짝 걸치기만 해도 뜨끈뜨끈하다던가?」

증명해볼까.

루이스는 학생회실의 문을 열어 잠시 복도를 살폈다. 학생회에 속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쿵 닫은 후에, 이안의 의자에 걸린 코트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길다.’

키가 큰 사람은 코트도 엄청 큰 모양이다.

‘뭔가 좋은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루이스는 변태는 아니지만, 좋은 냄새를 좋아하므로 잠시 옷에 얼굴을 묻어보았다.

킁킁. 향수인가? 아니면…….

루이스는 변태는 아니지만, 이게 대체 어디에서 나는 냄새일지 진지하게 상상해 보았다.

‘아, 그보다도 따듯한지 확인을 해 봐야지.’

얼른 옷 안쪽으로 손을 넣어보았다.

따듯하긴 한데, 이 정도의 온기는 어떤 겨울 외투라도 갖고 있을 거다.

‘입어봐야겠어.’

루이스는 변태는 아니지만, 이안의 옷을 입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양쪽 팔을 끼웠다. 손이 옷 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헐렁해진 소매를 이리저리 살폈다.

“대단한 마법 기능은 없는 것 같은데.”

“평범한 코트니까.”

“정말로요. 특별히 따듯하지도 않…….”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던 루이스는 그만 바짝 얼어 버렸다.

뻣뻣해진 목을 끼이익 돌려 뒤를 돌아보니, 조금 열린 창고 너머로 이안이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었다.

“어, 언제부터 보셨어요?”

“처음부터.”

“…….”

“괜찮아, 이해해. 타인의 옷을 몰래 만져 보는 건 묘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일이지.”

“저, 저는 그런 변태가 아니에요!”

“괜찮아. 나에게만 변태인 모양이니까. 도리어 고마울 정도지.”

“정말 아니라니까요!”

루이스는 기겁하며 서둘러 코트를 벗어 두었다.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이 코트에는 마법 기능이 없었다. 증명된 것은 루이스의 변태 취향뿐이었다.

“……그보다 거기에서 뭘 하고 계셨어요?”

루이스는 얼른 화제를 전환했고, 다행히 그는 그녀의 노력을 받아들여 주었다.

“내일부터 종이와 잉크를 판매할 예정이라,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두려고.”

아, 그래서 회장님이 외투나 재킷을 모두 벗고 계셨던 모양이다. 창고 구석에는 먼지가 많이 있으니 말이다.

“도와드릴게요.”

루이스도 이안을 따라서 재킷을 벗었다. 창고에 들어가니 그가 이미 꺼내 둔 상자 몇 개가 입구 근처에 쌓여 있었다.

“이걸 바깥으로 꺼내두면 되는 거죠?”

“그래. 조금씩만 운반하면 돼. 그대가 무리할 필요는 없어.”

루이스는 잉크병이 든 상자를 조심스럽게 옮겼다. 상자 안에서 유리병이 부딪쳐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걸 보니까, 실감이 드네요.”

“무슨 실감이?”

“시험이 코앞이라는 거요.”

“이미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무슨 소리야.”

“그야……그렇지만.”

루이스가 신경 쓰는 건 시험 그 자체가 아니었다.

시험부터 결과까지 얼마나 빠르게 시간이 흐르는지는 지난 학기를 통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마 이번에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전부 끝나있겠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루이스.”

“네?”

“고급 수학은 어때?”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으시는 거람.

“간신히 따라가고 있어요.”

“그대에게 맞는 과목은 아니라고 생각했지. 사실.”

“그런 말씀은 수강 신청 때 해주시지 그러셨어요오…….”

“굳이 선입견을 덧씌우고 싶지 않아서. 그나저나, 모르는 게 있을 때는 언제든지 물어봐도 괜찮아.”

“그럴게요.”

“작년 시험문제가 필요하면 나중에 오답리포트를 보여 줄까?”

“정말요?”

이제야 루이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고, 이안은 그 하얀 뺨을 쓰다듬었다.

“그래. 나는 그대에게 도움이 되고 싶거든. 남은 시간 동안 말이야.”

그건 아마 졸업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리라. 루이스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아지고 말았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속상해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나는 속상한데.”

이안은 루이스의 등을 제게로 당겨 안았다. 조금은 호흡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앞으로 일 년 동안, 그대가 내게 없다고 생각하면.”

시작되지도 않은 일 년의 기간은 너무나도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의 품에서 작은 위로가 들려왔다. 고맙게도.

“편지를 쓸 수도 있고요.”

“진심이 담긴 편지 말이지? 다정하고 예쁜 말을 골라 담아서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그런 편지.”

그건 오래전에 루이스가 했던 말이었다. 그것 아직도 기억해 주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녀는 쿡쿡 웃고 말았다.

“맞아요.”

“하지만 편지로는…….”

허리를 감싸던 손이 간지럽게 등을 타고 올라가,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루이스가 시선을 들자, 어느새 가까워진 그의 입술이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이렇게.”

그리 속삭이는 입술은 곧 귓가에 간지럽게 닿았다. 더운 숨소리에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끝을 꾹 쥐었다.

그가 조금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열을 머금은 입술 끝이 가느다란 목선에 닿았다.

“할 수 없으니…….”

“아, 아쉬우세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건넨 질문에, 그는 고개를 바로 하고 가느다랗게 웃었다.

“그래, 아쉬워. 그러니 오늘부터 졸업식까지 매일 다른 곳에 키스하려고 해.”

“……네?”

“물론 그대가 싫지 않다면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이 어째, ‘그래서 설마, 싫다고 대답하는 건 아니지?’ 라는 의미로 들렸다.

“자, 잠깐만요. 백번 양보해서 키스하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왜 매일 다른 곳이라는 거예요?”

“글쎄……왤까?”

그가 도리어 순진한 미소와 함께 되물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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