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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75화 (75/92)

?75. 주제넘은 망상

시몬의 가을이 지나가고, 날씨는 차근차근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단처럼 겨울을 향해 다가가다가도 어느 하루에 훌쩍, 추위를 재촉하는 비가 오기 마련이다.

새카맣게 떨어지는 마지막 가을비가 지나면.

하얀 겨울이 시작된다.

급속도로 기온이 뚝 떨어져 버린 겨울의 첫날. 루이스는 오들오들 떨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비가 오는 걸 보니, 슬슬 겨울 이불로 바꾸어야겠는데.」

어제 이안이 우산을 씌워주며 그렇게 말해 주었는데도, 루이스는 이불을 바꾸지 않았다.

아카데미 선배의 말을 잘 들을 것을 그랬다.

“엣취.”

어깨가 으슬으슬 떨려왔다. 설마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루이스는 제게 남은 일정을 떠올렸다.

일단 시험 기간이 다가온다. 그 기간에는 따뜻한 학생회실에서 잉크와 종이를 판매해야 한다.

다소 귀찮은 일이지만, 지난번보다는 나을 것이다. 물량이 떨어지더라도 ‘아카데미의 담을 넘어 잉크를 공수해 오는 제비뽑기.’에서 제외될 거라고 했으니까.

그 기간에는 교양 미술의 감상 리포트를 완성하면 마침 좋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본격적으로 시험 대비를 마무리하고, 시험을 치른다.

시험이 끝나면, 젤리를 향한 지옥의 오답리포트 일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성적이 발표되겠지.’

이번 시험은 루이스의 것보다도 이안과 시몬이 더욱 신경이 쓰였다.

처음으로 시몬 힐라드가 마음을 다하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회장님은 늘 온 마음을 다 해왔고.’

오랫동안 최선을 쌓아온 사람을 넘어서는 것을 쉽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는 두 사람이 제게 응원을 바라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를 콕 집어서 응원할 수 없었다.

루이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두 사람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는 것뿐이다.

최선의 결과를 받은 사람은 격려를 받아 마땅하니까.

‘그러고 나면……. 졸업일까.’

이안도 시몬도 클레어도 없는 아카데미 생활이라.

물론 그 외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즐겁게 보낼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아쉬운데…….’

이렇게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아마 원작에 매달리느라 제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리라.

그 먼 이야기를 생각할 시간에, 조금 더 함께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면 좋았을 텐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세심하게 기억해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야기의 세계로 다시 태어난 루이스라고 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남은 시간에 충실할 것.

“엣취!”

물론, 그렇게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이었다.

제복을 전부 갖추어 입은 루이스는 그 위로 집에서 챙겨온 두꺼운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 절대로 사용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머플러까지 꺼내어 목에 둘둘 감았다.

양말도 2개나 겹쳐 신었더니, 신발이 조금 꽉 끼었다. 걷는 느낌도 이상했지만, 오늘은 그냥 이대로 보내기로 했다.

감기에 걸리면 루이스가 바라는 멋진 겨울은 보낼 수 없게 될 테니까.

추위에 대항할 무장을 마친 루이스는 가방을 챙겨 들고 기숙사를 나섰다.

겨울바람이 머플러 사이로 새어 들어와 날카롭고 건조하게 뺨을 쓸어냈다.

루이스의 뺨은 금방 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가방을 든 손가락 끝도 아리도록 시렸다.

“루이스!”

반가운 목소리에 루이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실은 보지 않아도 그녀를 부른 상대가 클레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클레어. 안녕하세요.”

“응, 안녕.”

“몸은 괜찮아요? 지독한 감기가 꽤 오래갔잖아요.”

“보다시피 건강해. 대신 이렇게 단단히 여며 입으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아카데미의 마지막을 앓으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거든.”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는 겨울 외투에 두툼한 장갑까지 끼우고 있었다.

루이스는 털장갑을 챙겨오지 않은 제 어리석음에 통탄했다.

생각해보면 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아카데미에서, 장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루이스도 아주 단단히 무장했네.”

“저도 이 겨울을 앓으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클레어가 웃으며 루이스의 머플러를 조금 매만져 주었다.

두 사람 곁으로 바쁘게 이동하는 학생들 몇 명이 지나갔다. 보통은 늘 같은 색의 옷뿐인데, 오늘은 달랐다.

“재미있지?”

클레어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겨울만큼은 다들 제 외투를 입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어차피 다들 체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옷을 입잖아요. 색과 재질만 조금씩 다르고요.”

“거의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렇지 않은 사람이요?”

“응. 그다지 두껍게 입지 않는 사람 말이야.”

이 아카데미에 그런 멍청이가 있을 리가.

겨울이 되면 두꺼운 옷으로 몸을 둘둘 감싸는 것은, 어느 차원에서도 통용되는 인간의 상식이다.

그런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감기의 무서움을 모르는 바보들뿐일 거다.

“마침 저기에 있네.”

나란히 걷던 클레어가 먼 곳을 가리켰다.

루이스는 차원을 초월할 만큼 멍청한 짓을 하는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곳에는 이렇게 추운 날에도 모양만 그럴싸한 코트를 달랑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찬 바람이 부는데 앞 단추를 여미지도 않았다. 그쯤 되면 제 몸을 학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미관상으로는 그렇게 입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의 긴 팔과 다리가 도드라져 보이니 말이다.

얼굴 역시 머플러로 가리기 아까울 만큼 몹시 잘생겼고.

“……회장님이었네요.”

“그래. 작년에 가장 추운 날에도 딱 저런 모습이었어.”

“춥지 않으실까요?”

“춥지 않다고 하시던데.”

그럴 리가 있나.

루이스가 아는 한 이안은 남들과 비슷할 정도로 추위를 느낀다.

그러니 저런 보온성이 떨어지는 옷을 입으면 분명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추울 거다.

“그래서 작년에 학생회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랑 생각해 봤는데.”

루이스와 클레어를 발견한 이안이 멀찍이서 손을 흔들었다. 물론 그는 두 사람이 그의 옷차림에 관해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설마하니 이 나라의 황태자 전하께서, 정말로 저렇게 얇게만 입는 건 아닐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지.”

“그럼요?”

“저 코트에 대단한 마법 기능이 있어서, 살짝 걸치기만 해도 뜨끈뜨끈하다던가?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어.”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이안을 꽃처럼 아끼는 시종 아저씨들이라면, 그런 대단한 코트를 구해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검증은 해 봤어요?”

“아쉽게도 아직. 회장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꽤 친근하게 구는 편이라고는 해도……. 코트 속에 손을 넣어 볼 정도는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아, 하지만 루이스는 검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회장님과 꽤 친하잖아? 옷 속에 손을 넣을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오, 옷 속에 손을 넣다뇨!”

친하다고 해서 멋대로 옷 속에 손을 넣으면 치안대에 끌려갈 일이다. 그건 중대한 범죄이며, 신분과 관계없이 손목이 뎅겅 잘린다.

게다가 혹시라도 이안이 루이스의 손을 환영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저는 마, 마음의 준비가 아직…….”

“마음의 준비까지 필요한 일이야? 고작 코트 안쪽에 손끝만 살짝 넣어보는 일이잖아.”

아. 그랬지. 무심결에 주제넘은 망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루이스는 제 반응이 조금 창피했지만, 다행히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새 이안과 가까워져서, 그의 옷차림에 관한 대화는 중지되었으니까.

세 사람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는 나란히 학생회실로 걸어갔다.

이안의 옆에 선 루이스는 그의 코트를 내내 곁눈질했다. 정말 대단한 기능이 있는 걸까?

하지만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세 사람은 학생회실에 들어섰다. 난로를 미리 켜둔 딘 크리시스가 세 사람을 맞이했다.

그가 일 등으로 도착하는 일은 드물기에 루이스는 몹시 놀랐다.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루이스는 머플러와 외투를 벗어서 의자에 걸어두었다.

이렇게 벗어도 실내가 따듯한 것을 보면, 딘은 꽤 오래전부터 실내 공기를 덥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춥잖아.”

날씨가 추우니까 미리미리 와서 따듯하게 해 두었다는 거구나.

“뭐에요, 딘. 이렇게까지 해 주면 그 우정에 감동하게 되잖아요.”

루이스가 감탄하며 그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콜록, 콜록콜록.”

딘은 목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침 소리를 내며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루이스는 무심결에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그 기겁하는 모양새가 꼭 병균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괴로워 보이는 기침을 끝낸 딘이 게슴츠레한 얼굴로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나도 네 우정에 감동해 볼 순 없는 거냐? 콜록, 콜록.”

“미, 미안해요. 무심결에.”

건강하게 겨울을 나야 한다는 마음이 발동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건강을 바라는 마음이 우정보다 강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루이스는 기꺼이 딘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런 루이스를 가만히 바라보던 딘 크리시스가 버럭 성질을 부렸다.

“왜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그 못생긴 얼굴이 점점 더 끔찍해지는 거야! 그냥, 오지 마! 네 걱정 같은 건 쓸모도 없으니까!”

“그 끔찍함을 이겨내고 다가가는 제 우정에 감탄하지는 않으시네요.”

그 말이 끝날 때는 딘이 팽하고 코를 풀었다.

그 단정치 못한 소리가 끝난 후에 그는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으며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꽤 오래가네.”

그리 중얼거린 클레어가 딘의 이마를 짚으며 잠시 걱정했다.

“회장님, 환자를 의료동에 데려가도 괜찮을까?”

“네가?”

“나를 보내는 게 나을 거야. 가장 최근에 감기를 물리친 전적이 있으니까.”

게다가 이 감기는 클레어에게서 기인한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해. 어차피 회의를 시작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세 사람은 딘을 일으켜 세웠다. 이안이 외투를 입혔고, 클레어가 단추를 채워주었다. 루이스는 그가 가져온 회색 머플러를 세심하게 둘러주었다.

이안은 학생회 창고에서 굴러다니는 낡은 털모자까지 꺼내어 그의 머리와 귀를 덮어 주었다.

“……너무 둘둘 싸는데. 나를 북쪽의 용에게 보내는 건 아니지?”

“그랬다면 발가벗겨 보냈겠지. 북쪽의 용은 턱이 튼튼해서 언 고기를 좋아하거든.”

클레어는 그리 말하며, 얼른 딘의 팔을 잡아끌었다.

* * *

“옮을 거라고 했잖아.”

클레어는 두 걸음 정도 떨어져 걷는 딘을 가볍게 노려보며 타박했다.

“이제 다 나았어.”

“거짓말하지 마. 세상에, 이렇게 감기가 오래 가는데 왜 의료실에 가지 않은 거야?”

“그야…….”

딘은 쓰디쓴 약을 떠올렸다. 그걸 먹고 감기가 나아버리느니, 차라리 이렇게 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 감기는.

“네가 준 거잖아.”

“그런 거 주고 싶지 않았어!”

클레어는 자리에 멈추어 바락 소리를 질렀다.

“허으……어지럽다.”

“정말이지, 진짜. 너…….”

클레어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결국 그의 손을 끌며 걷기 시작했다.

“어쨌든 오늘은 꼭 약을 먹도록 해.”

“먹기 싫은데. 그걸 먹은 네 얼굴이 엄청 끔찍했단 말이야.”

“그야 당연히 끔찍……. 어쨌든 먹어!”

“그러면, 이번 주말에 상점가에 같이 가 줄 거야?”

“아픈 애가 어딜 바깥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고 있어!”

클레어는 아이를 혼내듯 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주었다.

“아픈 애……. 아닌데.”

딘은 제 이마를 건드린 클레어의 손을 붙잡아 내렸다.

열 때문에 조금 흐려진 눈동자가 갑작스레 가까워졌기에, 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그녀를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 약을 먹으면 다 나을 테니까.”

“그, 그래도 바로 나가는 건 조금 곤란해.”

“왜?”

“다시 아프면 어떻게 해.”

“안 아플게.”

눈은 조금 흐릴지언정, 그의 갈라진 목소리에는 더 없는 확신이 섞여 있었다.

클레어는 제 입술을 깨문 채 잠시 고민했다.

‘그러니까, 이건…….’

쉬는 날에 함께 상점가에 가자는 것은 아카데미에서는 데이트하자는 제안이나 다름없었다.

상점가에는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나, 재미있는 물건을 파는 가게가 많이 있으니까.

연인이나 혹은 그리될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함께 가곤 했다.

물론 친구들끼리 가는 일도 많았지만.

‘딘이 내게 친구로서 가자고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결국, 데이트라는 뜻이다.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왜?”

“있잖아, 딘.”

“아무 짓도 안 할게, 진짜! 누나가 싫어하는 건 정말로 하지 않을 테니까.”

치사하기 짝이 없다. 누나라니.

클레어는 그 마법의 단어를 사용한 부탁을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리 말하는 딘 크리시스를 귀여워했으니까. 물론 그건 지금도 그렇고.

게다가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니. 어디서 그런 깜찍한 말을 배워 왔을까.

……그가 그녀에게 하는 것 중에, 싫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클레어는 애써 미소를 그렸다.

눈치도 없는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뺨을 날카로이 스쳤다.

마치 ‘겨울이야.’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클레어는 누구보다도 이 계절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 추위 속에서 그녀는 아주 많은 것을 변화시켜야 했다.

아카데미라는 마지막 자유에서 졸업하고,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여성편력성향뿐인 남자와 결혼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딘 크리시스.”

깨닫지 말았어야 했을 어떤 마음을, 기어이.

“미안해.”

깨트려야 했다.

다시는 볼 수 없도록. 잘게 잘게 쪼개어 영원히 되 붙일 수 없을 정도로.

“…….”

“그 날은 이미 외출 허가를 받아 놨거든. 수도에 가야 해.”

다소 매몰차게 대답한 클레어는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럼, 같이 갈게.”

하지만 그는 클레어의 손목을 붙잡아 당기며 재차 간청했다.

그의 얼굴에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겨울이 짧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렇다 한들 어쩌려는 걸까.

클레어는 의문이 들었다.

자유로이,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좋을 대로 행동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잘 놀았어. 고마웠어. 그럼 다음 주에 있는 내 결혼식에 와줄 거지?

……웃음밖에 안 난다.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어서.

“드레스.”

클레어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확인하러 가는 거야.”

차마 시선을 맞출 수도 없었다. 분명히 그는 무척 아픈 표정을 짓고 있을 테니까. 다만 클레어는 제 얼굴로 이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당연했다.

차마 제대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굳이 수도까지 가서 확인해야 할 드레스란 한 가지뿐이었다.

결혼식을 위해 고른 새하얀 드레스.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는…….”

“알았어, 미안해.”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목소리는 클레어가 상상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상처나 아픔보다는, 걱정에 가까웠다.

“같이 있고 싶어서, 고집부렸던 것뿐이야. 그러니까, 클레어.”

뜨겁고 건조한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쓸었다.

“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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