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셋이 되었다
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건.”
무언가 변명하려던 이안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말은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잘못했다.”
그러니 그는 사과했다.
시몬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이안을 바라보다가, 벽에 기댄 채 베개를 끌어안고 잠이 든 루이스를 시선에 두었다.
피곤했는지 숨소리가 깊다. 저런 자세로 자는데도 말이다.
“거짓말은 쉽게 부피를 늘리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걱정……할까 봐 그랬어.”
“차라리 걱정을 시키는 편이 나아. 이안, 나를 봐.”
닮은 푸른 시선이 서로를 마주했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두 눈동자에는 유년기의 빛이 사라져 있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어린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해 주셨지.”
시몬이 어째서 한계를 두어야 하는지. 무엇이 그를 짓누르려 하는지. 전부 말씀해 주셨다.
“단순하게 ‘그렇게 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린아이가 듣기에 두려워할 법한 말까지, 전부 말씀해 주셨다.
두려웠다.
한동안 어른 귀족은 전부 그의 목숨을 노리려는 사람으로 보였을 정도니까.
그래도 그편이 나았다.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편이.
그의 한계를 두는 아버지의 행동이 걱정과 애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구나 네 자리는 비밀이 너무나도 많아. 그러니 가능한 한 루이스가 무엇이든 알게 해야 해.”
시몬은 열린 창문 밖으로 팔을 뻗었다. 창문 근처에는 루프를 보관해 두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시몬은 능숙하게 손가락 끝으로 잠금장치를 해제하여 열었다.
끼익 하며 낡은 쇳소리가 들렸고, 시몬은 그 안에서 제법 묵직한 유리병을 꺼냈다.
술이었다.
어제 이안이 사 두었던 것 말이다. 물론 어젯밤에 다 먹었다고 말 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아니 작은 것이기에 더욱.”
그리고 시몬은 서랍에서 작은 술잔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거기에 거짓이 섞여서는 안 돼.”
“내일 루이스에게 사과할게.”
“이안.”
“음?”
시몬은 여전히 불안한 듯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거짓말하지 마, 루이스에게.”
끝내 그는 경고와 간절함이 섞인 진심을 뱉고 말았다.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같으니까.”
시몬이 루이스에게 하는 거짓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그녀를 온전하게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
물론 그 말이 거짓임은 루이스도 시몬도 안다.
하지만 둘 사이엔 그 거짓이 존재해야 했다. 어떤 감정보다도 더 소중한 둘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그는 진실 된 관계를 허락받았다.
그러니 시몬은 제 충고가 주제넘은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방식이 다소 유치한 경고일지라도.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은 사실이었으니.
“다시는.”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안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거짓을 담지 않을게.”
“그래.”
“미안하다.”
“내게 사과할 것은 없어. 루이스를 친구로서 걱정하는 것은 나의 특권이니.”
시몬은 일부러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제 이안은 ‘친구로서 걱정한다.’는 포근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으음, 친구로서 말이지?”
“그래. 네가 소개해 준 친구.”
세상에 어떤 친구가 그렇게 설탕 과자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까?
툭.
시몬은 이안 앞에 술병을 내려놓고, 그 앞에 마주 앉았다.
세 사람이 깔고 앉은 포근한 카펫은 밤이 되자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다.
낮의 온기를 그대로 품고 있어서 따듯하기까지 했으니까. 마치 여름날에 바싹 마른 햇빛을 머금은 풀밭처럼.
이안은 느긋하게 병을 열었다.
좁은 입구에서 시간이 빚어낸 향긋함이 흘러나왔다.
좋은 술이다. 성인을 맞이하는 시몬의 특별한 생일을 축하하기에 적당할 정도로.
“뭔가 섞을까?”
이안이 물었고,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는 액체에 무언가를 첨가하는 법이 없었다.
묵직한 병이 기울어졌다.
가느다란 병목을 따라서 매끄러운 술이 길게 호흡하듯 빠져나왔다.
병 끝에 매달린 술은 동그랗게 방울졌다. 그러나 곧 술잔 위로 도르르 떨어져 구르고 만다. 구슬 같던 물방울이 깨어지며 유리잔에서 출렁였다.
작은 잔은 어느새 아슬아슬하도록 채워졌다.
그 안에 담긴 술과 달빛 중 어느 하나라도 더해진다면, 분명히 바깥으로 넘쳐 흐를 것이다.
“오늘도 새 친구를 소개해 주는 느낌인데.”
이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제 잔에도 비슷하게 술을 채웠다.
“술을 친구라고 부르면서 좋아할 정도였나?”
“물론 시몬 힐라드만큼 좋아하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아니야.”
이안이 술잔을 내밀었다.
“축하해, 내 친구.”
시몬은 이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에게서는 빛이 흐른다. 이렇게 어둠이 가득한 시간에도.
시몬은 그것을 부러워했고, 솔직히 질투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빛이 타고난 것이 아니었음을 안다. 모든 것은 그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시몬이 어둠에 자신을 묻기 위해 대단한 노력에 필요했던 것처럼, 이안도 자신에게 빛을 달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으리라.
이렇게 또 두 사람이 닮아버리고 말았다.
아마 둘은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서로를 닮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관계를 무척 좋은 친구라고 부른다.
“고맙다.”
이제 시몬도 잔을 들어 올렸다. 작은 잔이 조심스레 닿고 떨어졌다.
“내 친구.”
둘은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이안은 다시 시몬의 잔을 채웠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한 선까지 말이다.
“황실에는 대대로 깨어지지 않는 속설이 있지.”
“속설?”
이번에는 시몬이 이안의 잔을 채웠다.
“같은 대의 사람들끼리 비교해 보면, 먼저 태어난 쪽이 술이 더 세다고 하더군.”
“우리 아버지께서는 폐하께 술로 져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던데.”
“공작님이 그리 말씀하셨다고? 이상한데 그거.”
이안은 두 번째 잔을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께서도 공작님께 술로 져 본 적이 없다고 하셨거든. 황실에 전해지는 속설에 충실히 따라서 말이야.”
“속설이 정설이 되지 못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시몬은 두 번째 잔도 가볍게 삼켜냈다. 마치 이안의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야, 그런 괴이한 소릴 황가의 정의로 세워 둘 수는 없으니까.”
“틀린 말이기 때문이라는 소리는 안 하는군.”
그리 말할 때는 세 번째로 채워진 술잔이 짜악 하고 부딪혔다.
“옳음에 의심이 존재할 리 없지.”
“그름에 확신이 존재하는 걸 경계해.”
나란히 비슷한 말을 뱉은 뒤에는 술잔이 또 비워졌다.
묘한 경쟁심이 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제 폐하이며, 나의 하나뿐인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시몬 힐라드가 취해서 쓰러지는 꼴을 봐야겠는데.”
“고작 한 병으로?”
시몬은 병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소릴 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목넘김이 뜨거운 만큼 무척 강한 술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유리병은 일반적인 파티나 저택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마탑에 납품되는 용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안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비밀스레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이 땅에 내가 구하지 못할 것이 있던가?”
“그건 고마운 대답이군.”
또르르하며 술잔이 채워졌다. 이제는 이 소리가 반가울 지경이다.
차가운 술은 부드러이 입안을 감싸고, 넘어갈 때는 숨겨놓은 열기를 흩뿌리며 사그라든다.
그 열에는 향기가 담겨 있어서, 호흡을 달콤하게 물들였다.
이리도 사람의 감각을 골고루 자극하니, 잔이 채워지는 소리에 기쁨이 들지 않을 리 없었다.
둘은 몇 잔을 더 마셨다. 시몬이 첫술을 맛있게 마셔주어서 이안은 조금 기뻤다.
“그대가 좋아할 줄 알았어.”
시몬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실은 조금 전부터 라벨을 유심히 보고 있었을 정도니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술이거든.”
항상 두 사람의 취향은 ‘진심’이라는 말이 붙는 곳에서는 언제나 같았다.
“그렇군.”
“그래서 가끔은 죄책감이 들어. 그대에게 내가…….”
술잔이 비었고, 이안은 그 바닥에 끝끝내 남은 미련한 방울을 바라보았다.
“몹쓸 짓을 한 것 같아서.”
“했지.”
바로 돌아오는 말에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둘은 또 잔을 비우고, 따랐다. 몇 번 반복한 후에 시몬이 작은 불만을 뱉었다.
“첫사랑은 혼자 해야지. 친구까지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누가 그래? 루이스 스위니가 나의 첫 번째 마음이라고.”
“틀렸나?”
“뭐.”
이안은 시선을 조금 돌리기는 했어도, 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약속하지 않았나. 거짓을 말하지 않기로.
“……사실이지만.”
그래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난 그냥, 그대의 주변에 즐거움을 채워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래서 지금은 몇 번이나 술잔을 채워주고 있고.
“실제로 우리는 꽤 즐거웠지.”
“그랬지.”
시몬은 어린 시절의 세 사람을 떠올렸다. 기억의 단편은 언제나 풀과 햇살을 세 사람과 함께 두었다.
싱그럽다는 말에 장면적 정의를 세워둔다면 마침 그 단편이 거기에 부합할 것이다. 시몬까지 포함하여.
“그러니까, 이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아.”
“…….”
“나는 너희들이 채워준 즐거움을 성실하게 학습했고, 이제야 내 손으로 즐거움을 쥘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시몬은 제가 딛고 선 하얀 선을 느꼈다. 그의 의지로 밟은 출발점 말이다.
“우리들의 기억은, 평생 나에게 커다란 원동력이 될 거다.”
술잔이 다시 부딪쳤다. 이제 몇 잔째인지 세는 것도 잊었다.
“살기 위한.”
단순히 호흡을 반복하는 덩어리가 아니라. 진짜 시몬 힐라드로서 말이다.
“생일에 나누기에 마침 좋은 말인데.”
이안이 기쁘게 웃었다. 혀끝에 닿는 술이 달았다. 너무 달아서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아, 수석을 하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는 마. 내가 책임질테니까.”
“책임? 내 유학을?”
“음, 1년 정도는 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협상 결렬이군. 선황비께서는 2년을 약조해 주셨다.”
“……2년이라고?”
“그래.”
“2년이나 내 친구를 못 보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걱정하지 마. 첫 일 년은 세 사람 모두 공평하게 혼자 보낼 테니까.”
루이스는 아카데미에 홀로 남고, 두 사람은 떨어져 지낼 테니 말이다.
“역시 아쉬운데.”
이안은 무릎에 팔을 기댄 채, 잠시 턱을 괴었다.
아카데미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은 늘 했었는데, 그 끝에서 이런 이별이 있을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조금 더, 뭐?
이안은 생각을 멈추고 옅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더’라는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루하루 충실했으니까.
그런데도 아쉽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가 시몬을, 루이스를 그리고 이 아카데미가 주는 특별한 환경 전부를 사랑하기 때문일 거다.
“남은 기간은 시몬 힐라드와 진득하게 보내야겠는데.”
시몬이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진득하게 보낼 사람이 없어서 이 징그러운 사내놈이랑 놀까 싶어서 말이다.
“그야 2년 뒤의 시몬이 어떤 사람으로 변해서 돌아올지 모르니.”
“변할 리가.”
“변할걸. 지금도 이렇게 무서운데 그때는 분명히 더욱 무섭게 굴겠지.”
“나는 네게 무섭게 굴지 않아.”
물론 조건적으로 무서울 수는 있다.
“네가 루이스 스위니를 속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2년 뒤에도?”
이안의 물음에 시몬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선언했다.
“20년 뒤에도.”
물론 진심이었다.
“루이스가 내 소중한 첫 번째 고집이었음은 바뀌지 않아. 아마 어떤 감정이 새로이 생긴다고 해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겠지.”
어떤 감정이 새로이 생긴다……는 말에 그는 무척 회의적이었다. 아마 너무 오랫동안 한 사람을 사랑한 부작용 같은 것이리라.
“미안, 정정해야겠군.”
시몬은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들었다.
“200년 뒤에도.”
“은근슬쩍 기간이 급진적으로 늘은 것 같은데.”
말은 그렇게 해도 이안은 200년을 약속하는 술을 함께 마셨다.
이제 병은 반 정도가 비워졌다. 이안은 처음으로 술을 마셔보았을 시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은 건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물론 그렇게 보이기는 했다.
“정말로 나랑 겨룰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황실의 속설을 존중해야지.”
“지금이라도 사관을 불러서 역사를 새로 쓰면 어떨까 싶은데.”
“그건 곤란해. 우리가 아카데미의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이 100년 뒤의 후손에게 알려지잖아. 게다가.”
이안은 고개를 돌려 여전히 같은 자세로 자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이스 스위니는 어느 자세로도 잘 수 있다는 건 우리만의 비밀이잖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물론 휴이트 교수님은 알고 계시겠지만 말이다. 루이스는 용감하게도 그분의 수업에서 깊이 잠이 들었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하긴.”
시몬이 쿡쿡 웃었다.
“좀 그런 면이 있지, 루이스는.”
그렇게 몇 번이나 서로 술잔을 채우고 마시는 것이 반복했고, 어느새 술병은 텅 비어버렸다.
“왠지 아쉬운데.”
이안이 빈 병을 탈탈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술도 모자랐고, 차가운 것도 먹고 싶었다. 셔벗 같은 것 말이다.
“그래도 그만 마시는 편이 좋을걸. 슬슬 루이스도 깨워서 돌려보내야 하고.”
“그렇지,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그녀를 흔들어 깨우려던 두 사람의 손이 동시에 멈추었다.
“너무 잘 자는데…….”
“음, 뭐. 어디서든 잘 자니까.”
왠지 깨우기가 미안해져서 두 사람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루이스가 아무리 자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몇 시간이나 더 잘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마실 술도, 먹을 케이크도 떨어진 두 사람은 습관처럼 루이스의 양쪽에 앉아서 편안하게 몸을 늘어뜨렸다.
카펫이 포근하여 참 좋다.
어쩌면 카펫 때문이 아니라 세 사람이 함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시몬.”
“음?”
“루이스도 술을 좋아해 줄까?”
“글쎄……. 스위니 씨를 닮았다면 아주 좋아하지 않을까.”
“셋이 마시면 아주 볼만하겠는데.”
둘은 잠시 웃었다. 셋이 힘을 합치면 궁의 술 저장고를 텅텅 비우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2년 뒤 루이스의 생일에는 셋이서 술 저장고를 털어볼까?”
“루이스가 싫다고 하지 않는다면.”
“그래, 싫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로 둘은 허공을 짚는 것 같은 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할 것이 분명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워서, 둘은 몇 번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나저나, 정말 안 일어나네.”
이안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하얀 베개 위로 흐드러진 금발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시몬은 살짝 엉킨 루이스의 머리끝을 조심스레 정돈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양쪽으로 머리를 묶어보려고 했었는데. 아쉬웠다.
그것도 2년 뒤의 생일로 미루어야 할까.
편안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로질렀다. 그 숨소리는 하나에서 둘로, 그리고 곧 셋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