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포기하지 않는 시간
“시몬 힐라드에게 간절한 것…….”
루이스는 짧게 되뇌었다. 그러나 선황비께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대답해 주지 않으셨다.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루이스는 오랜만에 원작을 떠올렸다.
시몬 힐라드는 스텔라 라피스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비운의 서브남주다.
마지막까지 그 사랑을 간직하는…….
원작이 깨어져 상황이 바뀔지언정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까지 바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시몬 힐라드의 간절함이란…….’
루이스는 제 구두 끝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선황비께서 웃으며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
시종들이 과녁이나 여분의 화살을 치우는 동안, 이안과 시몬은 각각 루이스의 양쪽에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스위니 양을 잡아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오라.”
이안은 장갑을 벗어 두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습관입니다. 일종의.”
“습관?”
“늘 이런 순서대로 앉는 습관 말입니다. 지금 보니, 마음이 넓은 순서대로 앉았군.”
이안이 제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스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시몬부터 시작해서 점점 좁아진다는 말씀이시죠?”
루이스의 언행이 또 시종들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근육 하나 없는 루이스의 등에 따가운 시선이 내리꽂혔다.
물론 이안과 시몬이 더욱 무서운 얼굴로 그 눈빛 공격을 물리쳐 주었다.
“어쨌든 루이스 스위니의 말은 틀렸어. 당연히 마음이 제일 넓은 사람은 나야.”
이안이 뽐내면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두 사람 앞에도 따듯한 차가 놓였다.
시린 아침의 홍차에서는 새하얀 김이 소록소록 새어 나왔다.
“그보다.”
이안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시몬과 이야기해 봤는데, 저희가 광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니었던가?”
선황비께서는 꽤 실망한 투였다.
“예. 안타깝게도.”
“좋지 않은데. 두 사람이 나의 광대가 아니라면, 앞으로는 누가 내 앞에서 활을 쏘지?”
둘의 대화를 바라보며 루이스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분, 너무 닮았어!’
말투는 물론이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까지 말이다.
그리고 아마, 시몬 힐라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점도 닮았을 거다.
“그러고 보니, 간단한 문제로군.”
선황비께서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루이스 스위니를 내 광대로 두면 되겠어.”
“저, 저요?”
물론 농담이시겠지만. 루이스는 만약을 대비하여 얼른 제 부족함을 토로했다.
“제 근육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해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게다가 꽤 매력적인 일이지요. 일 년에 네 번. 내 앞에서 근육을 선보이며 활을 쏘세요.”
그 일의 어디에 매력이 있는 걸까?
잠시 생각하던 루이스는 ‘아!’ 소리를 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아주 훌륭한 제안이다.
일 년에 네 번이나 선황비를 따로 알현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멋대로 의미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귀족들은 스위니 가문에 황가의 연줄이 생겼다며 수군대기 시작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질을 치는 귀족은 확실히 줄어들겠지.
루이스는 선황비의 광대가 되고 싶은 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근육이야 운동으로 키우면 그만이고, 활은 배우면 된다. 이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저는 반드시 훌륭한 등을 가진 광대가……!”
루이스가 여기까지 소리 질렀을 때, 이안이 손바닥이 루이스의 입을 막았다.
이안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시몬까지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손을 뻗어왔다.
두 사람 모두 선황비를 향해 몹시 불경한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이안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루이스 스위니의 모든 관절과 근육은 전부 제게 속합니다. 새로운 노동 계약은 맺을 수 없으니, 부디 광대는 다른 곳에서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광대 자리, 제 자리라고요!
“하지만, 그대의 일꾼은 광대 자리를 바라는 얼굴인데?”
그 지적에 이안이 시커먼 눈빛을 하고서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그건 선황비의 광대가 되면 다양한 지옥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루이스는 도르르 눈을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안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체 지금까지 어떤 취급을 받아 왔던 걸까.
“알았다, 알았어. 스위니 양의 채용은 잠시 보류해 두지.”
이제야 루이스의 입을 막아두었던 두 개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양쪽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도 들렸다.
“오늘은 내 광대를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으니.”
선황비의 시선이 시몬을 향했다.
“시몬 힐라드.”
“……예.”
그는 불안 속에서 대답했다. 언제나 속을 알 수 없는 선황비의 뜻에 시몬이 속해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흥미로운 서신을 적었더구나. 공작에게.”
“읽으……셨습니까.”
“네 아비를 탓하지 말아라. 서신이 도착한 자리에 우연히 내가 있었을 뿐이니. 이 할미가 고집을 부려서 빼앗아 읽었지.”
“…….”
루이스는 조용히 이안에게 눈짓했다. ‘편지’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뜻이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리되게 하겠다. 그러니 그렇게 될 것이다.”
선황비는 엄숙하게 결론부터 말해 주었다. 시몬이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고.
“받아들이겠느냐?”
시몬은 놀란 얼굴을 한 채, 마주 앉은 선황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의심이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달콤함에는 독이 섞였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침으로 여기며 살아왔으니까.
“시몬 힐라드.”
그러자 다시 엄격한 부름이 돌아왔다.
시몬은 이제야 선황비의 눈빛과 표정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알겠다. 그녀는 지금 시몬을 시험대에 올려두고 있다는 것 말이다.
“저는…….”
그의 본능이 멋대로 입을 움직여 말을 뱉었다.
부정해야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시몬에게서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없도록 말이다.
“비가 오던 날과 같구나. 그 얼굴.”
선황비의 지적에 시몬은 저도 모르게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비가 오던 날이란 아마, 그가 루이스에게 차마 관계를 청하지 못하던 그 날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의 마음을 당당하게 밝힐 기회를 얻고도 그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것은 루이스를 위한 상냥함이었을까? 아니라면…….
그저 도망치는 것뿐이었을까.
“할머님.”
이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설명을 바라는 뜻이었으나, 선황비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내가 공작가로 편지를 드렸다.”
대신 시몬이 낮은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차게 식어가는 홍차에 시선을 둔 채로.
“조금 더……배움을 청하고 싶다고.”
그건 졸업 이후를 말하는 것일 터다. 이안과 시몬은 이번 겨울로 아카데미 생활을 끝내게 되니까.
“그건 학술원의 진학을 말하는 건가? 그대 정도라면 어려움 없이 진학할 수 있을 텐데?”
시몬은 이안을 돌아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높은 수준의 교육이 아니었다.
“문화와 종교 그리고 언어까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청했지.”
“그건, 유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루이스가 끼어들었고,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그대는 지금까지 그런 말을 단 한 번도……!”
“그야, 당연히 가지 못할 테니.”
마음속으로 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행동을 주의하라는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편지에 답장을 쓰는 순간에 조금 울컥하여 따지듯 그리 답장을 쓰고 말았지만.
“나는 유사시에 이안 오드모니얼을 대체하여 사용될 수 있도록 언제나 얌전하게 공작가에 존재해야 하지.”
“시몬!”
그러니 시몬은 현 황태자의 위엄을 넘어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덜떨어진 인간으로 보여서도 안 되었다.
그의 삶 전체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이 나라에 어떤 존재인가로 채워질 뿐이었다.
그러니 탈출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영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잠시라도.
숨이 막혀서 그의 모든 것이 죽어버리기 전에. 시몬 힐라드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잠시나마 포기하지 않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뿐이었어.”
게다가 루이스 덕분에 그가 생각 외로 꽤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이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시몬의 유학이 내키지 않지만, 차마 그리 말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야 이안은 시몬을 좋아하니까. 그가 없는 생활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걸 테다.
“그대의 선택을 존중해.”
그리 말하는 얼굴에는 이미 가지 말라고 적혀 있었지만 말이다.
“어떤 것을 택하던 그대에게 어떤 해도 닿지 않도록 지킬 거고. 할머님과는 별개로 말이야.”
“누가……될 겁니다.”
시몬은 주저했다.
“할머님과 이안에게, 누를 끼치면서까지…….”
“그렇군.”
선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걸음 물러설 생각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괜한 걸음을 했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을 이루던 시종들이 서둘러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시몬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팔걸이를 쥔 손에 습기가 배어들기 시작했고, 심장이 아프도록 뛰었다.
아직 아무것도 계산해 내지 못했다.
선황비의 의도가 무엇일까.
정말 순수한 선의인가, 아니면 시몬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달콤한 유혹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불안한 것이며,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선 후에, 그에게 ‘다음’이 존재하는가?
기회에 다음이라는 성질이 붙어있다면, 기회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롯하기에 ‘기회’인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기에 ‘기회’인 것이다.
시몬은 저도 모르게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절제를 잊은 손이 하얀 뺨을 멋대로 쥐었다.
이 부드러운 여자아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혹은 내려놓게 되는 것도 시몬의 선택이다.
선황비의 제안은 이러한 것을 늘려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설령 그 너머에 시몬이 바라지 않는 어떤 지옥이 있더라도.
“고맙다.”
시몬은 그리 중얼거리고는 그녀에게 닿은 손을 스르륵 떼어냈다. 그리고 주먹을 쥐어 아직 손안에 남은 감각을 가두었다.
그는 이제야 처음으로 새하얀 선을 짓밟고 섰음을 알았다.
이제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할머님.”
시몬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당당함이 섞여 있었다.
몇 걸음 멀어졌던 선황비가 흘긋 돌아보며 웃었다.
시몬이 결심을 굳혔다는 것은 그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수년 동안 지켜봐 온 아이다. 사랑하는 손주였으니.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한심한 아이를 밖으로 내 돌릴 수는 없는 법이지.”
선황비는 시몬의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팔을 뻗자, 시몬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몬 힐라드. 내 마지막 힘을 원한다면.”
주름이 깊이 팬 단단한 손바닥이 시몬의 어깨를 짚었다.
“네 우수함을 내게 보여라.”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카데미의 마지막 시험에서, 네 위로 그 누구의 이름도 허락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건 간단히 말하면 수석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늘 이안이 차지해 왔던 자리 말이다.
“네 이름 위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고서야, 나 역시 널 멀리 보내는 명분이 서지 않겠느냐?”
시몬은 자신이 그런 말에는 대답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를 옭아매는 다양한 것들이 그의 입을 완벽하게 매어 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의 진심이 그걸 바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선을 넘고 만 마음은 모든 제어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자신도 모를 만큼 솔직하게.
“그리하겠습니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렇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인지, 그 자신도 이상하게 생각될 만큼.
“그 누구도……제 위에 설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 누구라는 말에 속하는 것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선황비는 그 한 사람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빼앗기지 말아라.”
이안의 어깨가 잠시 움찔거렸다. 제 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이안 오드모니얼, 기억해라. 하나를 빼앗는 것에 성공한 이는……그 하나로 만족할 리 없는 법이니.”
다른 것을 빼앗으려 들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몬에게 간절함이 붙어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안은 시몬 힐라드가 미치도록 탐내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저와……시몬 사이에는 오랜 맹세가 있습니다. 할머님.”
이안은 제 심장 근처로 팔을 올리며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그 누구도 시몬 힐라드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도록 하겠다고.”
평생을 건 약속은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굳건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몬 힐라드는 제 겁니다. 할머님께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흥. 시몬이 그걸 바랄 것 같으냐?”
“게다가 시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자면, 시몬은 제 거니까요.”
“이안, 네 못돼먹은 성정은 정말이지.”
“할머님께 배웠습니다.”
선황비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야 그렇긴 했다만.
“제게 가장 소중한 걸 가르쳐 주신 겁니다. 갖고 싶은 것에 절절하게 매달리라고. 신분도 명예도 그 무엇을 버리게 되더라도.”
이안은 고개를 들어, 선황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아 두라고.”
“시몬, 저 악독한 사촌 형제에게서 빨리 벗어나는 편이 좋겠구나.”
선황비의 충고에 시몬이 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기에, 이안은 곧바로 시몬의 멱살을 쥐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두 사람 모두 그냥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놓아 줄 마음이 없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모양이다.
* * *
선황비는 오래 머물지 않고 그대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세 사람 모두 배웅을 하고 싶었지만, 허락을 받은 것은 루이스뿐이었다.
“스위니 양. 내 아이들과 잘 놀아주어서 늘 감사히 생각합니다.”
선황비는 마차에서 막대사탕을 몇 개 꺼내어 루이스의 손에 쥐여 주셨다.
“두 분이 저와 놀아주시는 걸요.”
루이스는 두 손으로 사탕을 꼭 쥐었다. 나중에 셋이 나누어 먹을 생각으로.
“늘 궁금했습니다.”
“네?”
“스위니 양이 택할 사람이 누구일지……. 이거, 참으로 큰일입니다.”
선황비는 곤란한 얼굴로 잠시 팔짱을 끼웠다.
“큰일이라뇨?”
루이스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여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이 늙은이는 시몬 쪽에 걸었는데 이걸 참…….”
“걸다니, 누구와 무엇을요?”
루이스가 자세한 내용을 물었지만, 선황비께서는 그저 빙긋 웃고 마셨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느 쪽이든 그대는 내 아이이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줄곧.”
점점 더 모를 소리만 하셨지만, 소중하다는 말씀은 참 듣기 좋아서 루이스는 그냥 웃고 말았다.
“많이 웃고, 먹고, 놀아야 합니다. 어른이나 다름없는 나이이나, 여전히 그것이 가장 필요한 나이입니다.”
진심 어린 충고를 마친 선황비는 다시 몸을 돌려 마차를 향했다.
“생일 선물이었나요?”
루이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종들의 무서운 시선이 또 루이스의 등에 닿았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오늘이…….”
마차에 오른 선황비께서는 루이스를 내려다보시며 빙긋 웃으셨다.
“루이스 스위니의 생일이었던가?”
“아, 아뇨 방금 주신 사탕 이야기가 아니라, 저는…….”
“잘 지내세요.”
그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마차의 문이 닫혔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아카데미를 빠져나갔고, 루이스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 * *
선황비께서 돌아가신 후, 세 사람은 추운 기숙사 옥상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그 원인은 이안이었다. 누군가가 이안이 술을 기숙사로 밀반입했다고 신고 한 것이다.
생일 파티의 참가자인 세 사람의 방은 현재 아카데미 직원들의 철저한 검수를 받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일단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입에 물었다.
“……참 신나는 생일 파티로군.”
시몬이 중얼거렸고, 마침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