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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66화 (66/92)

?66. 단 하나도 빠짐없이

루이스는 기다란 빗자루에 몸을 기대며 잠시 일을 멈추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갈퀴를 든 시몬이 있었다. 그는 아주 능숙하게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그러모았다.

햇살과 바람에 바짝 마른 낙엽이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낡은 포대 안으로 술술 들어갔다.

두 사람은 웨인 힐 교수님의 의뢰를 받고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말이다.

사실 의뢰라고 하기보다는 두 사람이 도와드리기로 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아니라, 이리저리 흩뿌리고 계셨지.’

낙엽 먼지를 뒤집어쓴 교수님을 발견한 루이스는 곧바로 빗자루를 들고 달려왔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시몬도 낙엽 쓸기에 합류해 주었다.

물론 그는 스위니 온실이 인정한 훌륭한 노동자이니 언제나 이런 일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높이 쌓인 낙엽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얼굴을 했다.

“예전에 이안이 루이스의 머리 위에 낙엽을 뿌리면서 놀다가 결국에는 울렸었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운 게 아니에요. 가루가 눈에 들어갔던 것뿐이라고요. 게다가 훌륭히 복수도 했고, 제가 이겼어요.”

“스위니 씨가 모아둔 낙엽을 전부 흩뿌리면서 말이지.”

물론 그 결과로 이안과 루이스는 다시 낙엽을 쓸어 정리하게 되었다. 상냥한 시몬은 언제나 둘을 도와주었고.

“오늘도 시몬이 저를 도와주네요.”

“정확히는 웨인 힐 교수님을 돕는 것뿐이지.”

“갑자기 왜 낙엽을 치우고 계셨을까요?”

“아마. 토론회 때문일걸.”

“토론회요?”

“황궁의 학자들과 주기적으로 갖는 교류 모임……이라고나 할까. 이런 작은 행사를 주관하는 것도 아카데미 교수의 일이니까.”

“그건, 재미있겠네요.”

웨인 힐 교수는 소심한 성격과 달리 업적만큼은 여전히 대단했다. 비록 그의 수업은 여전히 인기가 없지만 말이다.

“교수님 같은 분께서 아카데미에서 오래오래 학생들을 가르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휴이트 교수님처럼 말이지?”

“으……그렇게 무서워지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지만요.”

짧은 휴식을 마친 루이스는 다시 빗자루로 바닥을 쓸었다.

가을 먼지가 올라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엣취.”

커다란 재채기가 나온 후에는 얼른 시몬을 돌아보았다. 그가 대단한 오해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콧물 안 나왔어요!”

그는 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루이스는 울상을 지었다. 그에게 웃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시몬의 미소는 귀한 것이니까.

게다가 루이스는 그가 웃는 것이 좋았다. 비록 그것이 그녀의 콧물을 떠올리며 쿡쿡거리는 것이라도 말이다.

“알아. 소리가 다르니까. 예전에는…….”

그는 신중한 투로 루이스의 콧물 재채기를 묘사할 말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묘사하지 마세요! 비참해지니까요.”

“그나저나 루이스. 감기에 걸린 건 아닌가?”

웃음을 멈춘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아니에요. 바짝 마른 먼지가 코에 닿아서 간질간질한 것뿐이에요.”

“그래도 유행이라고 하니, 조심하는 게 좋아.”

유행인 것은 지독한 감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도 아프지 말아요.”

루이스는 그리 말한 뒤 조심스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괜찮다면, 레몬 청을 드리고 싶어요. 시몬이 감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언젠가 이안과 이야기했던 대로, 그는 단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는 관리 부인이 나누어 주는 레몬티도 거의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푸딩은 물론이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스는 밝게 웃으며 학생회가 만든 레몬 청을 자랑했다.

“정말로 맛있어요. 레몬을 열심히 닦은 다음에 하나하나 썰었거든요! 씨를 제거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이안이 썰었겠지.”

잘난척하면서 빠른 칼질을 선보이는 뒷모습이 안 봐도 뻔했다.

실제로 잘나긴 했으니, 딱히 나쁘게 보이지 않았을 거란 점도.

“저는 유리병을 소독했고요.”

“아…….”

시몬이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루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손을 달라는 걸까. 그 의중은 알 수 없지만, 시몬이 부탁하는 일이니 그녀는 순순히 손을 내어 주었다.

그는 루이스의 손을 꼼꼼하게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손톱의 끝부터 손등과 손목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는 그곳에 아무런 흉터나, 상처가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손을 놓아주었다.

“다행이네.”

“뭐가요?”

“내가 루이스에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되어서.”

“……시몬이 제게 화낼 일이 있었어요?!”

“이안이 그렇게 하라던데.”

그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다시 갈퀴를 쥐었다.

“루이스가 뜨거운 물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으니, 한마디 해달라고.”

“그걸 벌써 시몬에게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우리는 거의 매일 루이스에 관해 대화하는 전통이 있거든.”

“제 주변에 점점 악습이 많아지네요…….”

“너무 나쁘게 볼 건 아냐. 이안은 네게 쓴소리를 못 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지. 친구로서.”

“회장님이 쓴소리를 못 한다고요?!”

루이스가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고, 시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이안이 달콤한 소리를 제대로 할지도 걱정이다만.”

물론 이안은 무엇이든 잘하니까, 달콤한 소리도 멋지게 해낼 것이다.

“자, 잘 해주세요. 그……. 쓴 것도 단 것도 전부 다요.”

시몬이 ‘걱정이다.’라고 말을 했기 때문일까. 루이스는 새빨개진 얼굴로 그의 근심을 덜기 위한 말을 건넸다.

“쓴 말이 너무 많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리 말하는 시몬은 루이스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작은 먼지를 떼어주었다.

루이스는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건네는 상냥함이나 눈빛은 여전히 다정하다. 아주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루이스는 어딘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문득 시몬이 그렇게 속삭였다.

“마음이란 어쩌면 물건과 같아서, 사용하지 않으면 닳지도 않을 테니.”

“제게는 시몬이……행복한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 그래요.”

“알고 있어.”

그가 다시 웃었다. 애써서 웃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처럼 자연스레 웃어 주었다.

“그건 유일하게 내게 권리가 부여된, 루이스의 소원이니.”

물론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둘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 빗자루를 쓸던 루이스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참. 시몬.”

“음?”

“회장님께서 시몬의 생일에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봐 달라고 하셨어요.”

“생일이라.”

그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시몬도 성년이 되는 생일이잖아요. 대단한 축하를 해야죠.”

“케이크를 골라야 하나?”

“네. 퍽퍽한 케이크가 좋겠죠?”

“이안이 불만을 털어놓을 것 같은데.”

“어차피 우리 셋이 모두 만족하는 케이크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잖아요.”

루이스는 언젠 가의 밤을 떠올렸다. 셋이 창틀에 몸을 끼워 앉아서 크림이나 시트를 먹었던 날 말이다.

정말로 즐거웠다. 시험 기간이라는 사실을 전부 잊고 계속 웃기만 할 정도로.

“일단 생각은 해보지.”

“정해지면 말씀해 주세요. 시몬이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 할 테니까요. 행복한 것으로요.”

“무엇이든?”

“그럼요, 무엇이든지요!”

루이스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낙엽 청소를 완벽하게 끝냈다.

힐 교수님은 답례로 커다란 고구마를 열 개나 주셨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루이스는 행복해서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아카데미는 참 좋은 곳이다. 일하면 늘 먹을 것으로 보답을 주니 말이다.

시몬은 고구마가 든 종이봉투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대지의 흙이 묻은 생고구마였다.

아무래도 고구마는 이안에게 보내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고구마를 기가 막히게 익혀 먹는 생존 기술을 지니고 익혀뒀을 테니.

루이스와 시몬은 그 외에도 고구마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다른 교수실에서 나오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고 말았다.

저 두 사람, 스텔라를 괴롭혔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나온 교수실의 문패에는 ‘줄리아나 라센’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 그들의 처분을 줄리아나 라센 교수님을 주축으로 하여 결정하려는 모양이다.

어떻게 될까. 루이스는 언젠가 학생회와 함께 살폈던 여러 학칙을 떠올렸다.

고의로 누군가를 괴롭히고, 그 몸을 상하게 하는 경우. 정도에 따라서는 퇴학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루이스는 진술서에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전부 적었다. 아마 가볍게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루이스?”

문득 시몬이 부르는 소리에, 루이스는 얼른 정신이 들었다.

“아…….”

루이스는 다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짧게 시선이 마주쳤고, 그쪽이 먼저 황급하게 몸을 피했다.

“아무래도.”

루이스는 씁쓸한 얼굴을 하고는 시몬을 바라보았다.

“좋지 못한 처분을 받으려나 봐요.”

“당연한 일이지.”

“그렇긴 하지만요. 하지만 제 진술서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건 어쩐지 씁쓸해요.”

“그건 네 진술서보다도 스텔라 라피스의 진술서가 더욱 큰 영향을 주었을 거다.”

“그런가요?”

“보통은 피해자의 진술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으니.”

뭐, 어쨌든 지난 일이다. 루이스가 뭔가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럼, 저는 이제 사무실로 가볼게요. 제가 확인할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진술서에 대해서?”

“맞아요. 아마 제가 뭔가 누락시킨 게 아닌가 싶어요.”

분명히 이안이 꼼꼼하게 점검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그를 만나서 ‘서류에 빠진 것이 있었대요.’라고 말하면, 몹시 부끄러워할 것이 틀림없었다.

진술서를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잘난 척까지 해 놓고, 정작 기본이 되는 양식을 틀리다니!

그가 당황할 것을 생각하자 즐거워졌다.

어서 끝내고, 이안을 찾아서 서류 이야기도 하고, 고구마도 맛있게 구워달라고 해 봐야지.

물론 공부하자고도 권해 봐야겠다. 두 사람이 나란히 수석을 놓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 * *

“루이스 스위니?”

“네, 저에요.”

루이스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젊은 직원 하나가 곧바로 아는 척을 해왔다.

직원은 잠시 루이스를 위아래로 주욱 훑어보았다. 그 눈길이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에, 루이스도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아…….”

그리고 이제야 제 옷에 낙엽에서 떨어진 시커먼 흙먼지 따위가 달라붙었음을 깨달았다.

“그, 저기 낙엽을 좀 치웠거든요. 웨인 힐 교수님의 토론회를 돕느라…….”

루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웨인 힐 교수님이 보호 교수님인가요?”

직원이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고,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허먼 휴이트 교수님이세요. 혹시 보호 교수님이 필요한 일인가요?”

“어쩌면요. 자세한 건 사무실 안에서 듣게 될 거에요.”

직원은 내부에 따로 마련된 개인 사무실을 노크했다. 대답이 들려오자 문이 열렸다.

내부는 평범했다. 책상과 의자가 있고, 손님을 대비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자, 사무장이 자리를 권해 주었다.

“잠시 기다려요. 금방 오실테니까요.”

금방 온다고? 누가?

루이스는 어색하게 소파 끝에 앉아서, 옷에 달라붙은 먼지를 떼어냈다.

곧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루이스는 뒤를 돌아보았고,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줄리아나 라센 교수였다.

“……교수님.”

“오랜만이군요. 루이스 스위니. 그대가 배움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았으나, 어른에게 마땅한 인사를 올리는 것도 잊을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줄리아나 라센 교수님.”

루이스는 이제야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여기는 사무장의 공간이고, 잠시 자리를 빌린 것뿐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루이스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섰다.

“오늘 중으로 스텔라 라피스가 최종 진술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출하지 않은 것을 보면 꽤 몸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스텔라 라피스의 보호 교수로서, 진술서의 내용을 미리 들은 바 있고 이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저도 진술서를 제출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라센 교수가 미소를 그리기에 루이스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녀가 루이스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 수 있는지는 지난 시간이 증명했다.

그녀는 루이스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 들었다.

이 아카데미에서는 물론이고, 그녀의 가족이 하는 사업까지도 손을 뻗어 왔다.

“그리고 루이스 스위니 외의 학생들도 진술서를 제출했습니다.”

“다른……학생이요?”

루이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회가 이미 다른 목격자를 찾기 위해 노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목격자를 찾으셨나요?”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간단한 문제죠. 루이스 스위니, 그대가 지목한 학생들을 만나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들은 목격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든 것을 자백했다는 뜻일까?

“오늘 중 두 학생의 진술서에 피해자인 스텔라 라피스의 서류가 더해질 겁니다. 그리되면 모든 일이 명명백백해지겠죠.”

교수님은 사무장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사무장은 미리 준비해 놓은 종이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루이스 스위니.”

그리고 교수님은 그 종이를 루이스에게 내밀었다.

편지였다. 아카데미의 도장까지 찍힌.

루이스는 재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형식적인 인사가 끝난 후에는 루이스의 부모님을 아카데미로 모시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게다가 그 사유로는.

“……제가 그랬다고요?”

루이스는 편지를 쥔 채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 차원에서 학부모를 모실 때는 학생에게 사전에 통보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제가 그랬다고요? 스텔라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이번에는 사무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건에 대해 루이스 스위니의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 스텔라의 보호 교수이신 줄리아나 라센 교수님의 결정입니다만……. 교수님. 학장님께 허가를 받고 진행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받을 겁니다. 하지만 빠른 일 처리를 위해 보호자를 모시는 편지를 먼저 보내두려는 것뿐입니다. 오늘 학장님은 토론회에 오실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무척 바쁘실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통보 절차가 끝났으니, 가장 빠른 우편으로 보내도록 하죠.”

사무장이 루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편지를 돌려달라는 뜻이었다.

편지를 쥔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차마 이것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물론 그녀의 부모님은 루이스가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신다.

하지만 걱정을 끼치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무척 아파하실 거다. 루이스를 사랑하는 만큼이다.

“이리 주세요.”

라센 교수가 루이스의 손등을 찰싹 때리며 기어코 종이를 빼앗아 갔다.

“교수님!”

루이스가 반발했지만, 편지는 무사히 사무장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사무장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루이스는 사무장을 따라 걸음을 옮겼으나, 곧 라센 교수에게 어깨를 붙들리고 말았다.

“늘 이야기하지만,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학습하길 빕니다.”

“부끄러움이라고요?”

루이스는 기가 차서 되물었으나, 교수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고압적인 시선으로 루이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대는 보호자가 아카데미로 불려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겁니다.”

물론이다. 질리도록 알고 있다.

루이스는 아카데미의 학생회에 속해있고, 이곳의 규칙을 세세하게 읽고 연구하기까지 했다.

그건 루이스를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이 아카데미에서 그녀를 내쫓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좋지 못한 선입견까지 남겨두겠다는 의미이다.

“교수님께서는……이 나라의 백작님이시죠.”

루이스는 가능한 한 분노를 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이리도 집착하실 이유가 없어요. 이렇게……!”

라센 백작가와 스위니 가문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하다못해 작은 원한이라도 있었다면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루이스 스위니.”

“저는 그저 저답게 살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건 교수님께 어떤 이득도 해악도 되지 않는 문제라고요!”

“물론 그대의 탓이 아닙니다. 루이스 스위니.”

교수님의 목소리는 언뜻 다정하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다만.”

“…….”

“세상의 어떤 훌륭하고 고결한 뜻에도 더러움은 존재합니다.”

루이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루이스를 배제하고, 가문의 사업을 방해하는 것이 ‘고결한 뜻’의 일부라는 뜻인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일입니다.”

“우리……들?”

교수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한 혈통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고귀함은, 사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마땅히 바른길을 선택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여 내린 ‘귀족’이라는 생명의 정체성이었다.

“우리에게는 도덕을 초월하는 옳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제 목을 곧게 세웠다.

“이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것.”

나라란 곧 군주의 위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황가에 이 이상 잡종의 피가 흐르는 것 역시 옳은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한 번으로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그녀의 말은 언젠가 들었던 사관의 것과 몹시 닮아 있었다. 조금 더 직접적이고, 불온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수님은 저를 지우실 수 없으실 거에요.”

“루이스 스위니.”

교수님의 손이 루이스의 어깨를 아프도록 꽉 쥐었다.

“조금 더 응용력을 발휘했으면 좋겠군요. 수석답게 말입니다. 당신을 배제하는 일이 그 어떤 도덕보다도 앞선다는 말.”

루이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교수님의 생각을 가늠해 보았다.

알았다, 이 사람은.

루이스를 완벽하게 배제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마다치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루이스의 목숨을 끊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루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

당황한 시선이 교수에게 돌아왔다. 가족을 언급한 것은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라센 교수는 승리를 확신했다.

“알겠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긴장으로 말라 터진 입술이 벌어지고 다물어질 뿐.

“대답하세요!”

교수는 다시 날카로운 말로 그녀를 밀어붙였다.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교수가 대답하자 문이 열렸고, 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에서는 붉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다.

라센 교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스텔라 라피스. 드디어 진술서 작성을 완료했군요. 그렇죠?”

“네.”

“훌륭합니다. 논의된 방향대로 작성했겠지요?”

스텔라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논의한 말을 빠짐없이 작성했습니다. 교수님,”

“진술서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무실에 제출했나요?”

교수는 당장 그것을 확인해 두려는 듯,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교수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텔라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학장님께 제출했어요. 교수님.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스텔라는 이제야 루이스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에게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는 듯이.

“거기에 교수님과 제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적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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