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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64화 (64/92)

?64. 믿어야 하는 것

식량 창고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얼마나 갑작스레 열렸는지, 몸을 숨길 틈도 없었다.

루이스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활짝 열린 문틈 사이로 불빛을 든 관리부인께서 서 계셨다.

맙소사. 진술서 적어야 할 내용이 늘어나게 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식량 창고 도둑이라는 누명이라도 쓰는 건 아니겠지.

‘아니, 누명은 아니지. 실제로 식량 창고의 음식을 먹었으니까. 도둑이 맞아.’

루이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동안 관리부인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먹어 봤니? 어떤 것 같아?”

그리곤 자연스레 의견을 물어오셨다.

“훌륭합니다. 내일 오후에 운반하는 걸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안은 자연스럽게 대답하기에 루이스는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관리부인은 이안의 입에서 찬사가 나오자 아주 안심한 얼굴을 했다.

아. 알았다. 이건 도둑질이 아니었다. 관리부인의 의뢰를 받고 푸딩의 맛을 보러 온 것뿐이다.

“딱 알맞게 달콤했어요! 질감도 훌륭하고요.”

루이스는 얼른 제 의견을 보탰다. 마치 제대로 맛을 보러 온 사람인 척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관리부인이 눈에 띄게 기뻐하시기에, 루이스는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미리 알았다면, 한입에 꿀떡꿀떡 삼킬 것이 아니라, 천천히 입속에 굴리며 먹어 봤을 거다.

관리부인은 답례로 푸딩을 몇 개 더 챙겨 주셨다.

그 와중에 이안이 “가을 사과가 맛있던데요.”라는 너스레를 떨어서 결국 붉은 사과도 세 개나 얻었다.

정말이지, 은근히 생활력이 좋은 남자다.

창고에서 나와서 관리 부인과 헤어진 후, 두 사람은 조금 어두운 길을 함께 걸었다. 각자 한 손에는 바구니를 하나씩 든 채로 말이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어요?”

“허락을 받고 맛을 보는 것뿐이라고?”

“네. 정말 놀랐잖아요. 새로운 진술서를 적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설마.”

그는 웃었다. 곱게 흘리는 눈꼬리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혹여 이 일이 허가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루이스가 새로 진술서를 적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관리부인의 의뢰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대는 잔뜩 긴장하면서 먹을 것 같았단 말이지.”

“그야……!”

“그랬다면 기분이 나아지는 일도 없었을 거고.”

“그래도 거짓말을 한 것 같아서 싫단 말이에요.”

“조금 전에 관리부인이 맛을 물어보셨을 때, ‘먹고 나서 기분이 나아졌어요.’라고 사실대로 대답하지 그랬어. 아마 맛있다는 말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그건 전혀 객관적이지 못하잖아요.”

“나라면 그런 말이 훨씬 더 기쁠걸. 미식이란 단순히 혀의 자극만을 뜻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아카데미의 주방에 도착했다. 조금 전에 두 사람이 비운 유리 푸딩 그릇을 씻어두기 위해서였다.

“저기에 앉아서 사과라도 먹으면서 기다려. 금방 끝낼 테니까.”

등불을 여러 개 밝힌 이안이 스툴을 가리키며 그리 말했다. 루이스는 딱히 사과를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라서, 멀뚱히 앉아있었다.

달그락하며 물에 그릇이 닿았고, 곧 뽀각뽀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동화 같은 소리를 좋아하는 거 말이야.”

“네?”

“동화 속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인가? 그곳이……그리워서?”

아, 어쩌지.

화면이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화책에 나오는 마법 구슬’이라는 말을 썼더니, 그는 루이스가 ‘동화세계’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게 된 모양이다.

“동화세계는 아니었어요. 저, 그리고.”

루이스는 어렴풋한 회색의 단편들을 떠올리다가, 애써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그립지는 않아요.”

“나는 조금 그리운데 말이야.”

“뭐가요?”

“그대 말이야. 평범함을 동경했다던 그대.”

그는 마른 천을 꺼내어 유리 그릇에 남은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만나고 싶은 거야.”

“네?”

“음…….”

그는 투명한 유리의 표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았다. 꼼꼼하게 닦였는지 확인하는 것이리라.

“나도 평범함을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는 탄생과 동시에 수많은 특별함을 얻었다. 거기에 담긴 혜택과 의무만으로도 그의 삶은 이미 무거웠다.

물론 많은 이는 그가 타고난 것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제 손으로 그러 모으지 않은 삶의 무게란 그저 폭력일 뿐이다.

자칫하면 그것에 짓눌려 그 자신조차 사라지게 되는, 무시무시 한.

“그런 내게 그대가 있었으니.”

그는 투명해진 유리를 높은 찬장 위로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평범함을 바라는 그대에게도……. 내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는 손에 남은 물기를 제거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등불이 쏟아내는 빛이 그의 은발 위로 흐드러졌다. 루이스는 그가 짓는 어색한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계셨어요”

“음?”

“그때에도 제게 계셨다고요.”

“구슬 너머에?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물건인가?”

“그건…….”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이야기란 글자의 나열일뿐이다.

읽는 사람의 기분도 알아주지 않은 채, 차근차근 제 이야기를 전하는 수다쟁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글자들과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멋대로 슬프게 하고, 마음대로 위로하는 점은 역시 얄밉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는 좋아했어요. 구슬 속에서 보이는 이야기들을……정말로요.”

어느새 다가온 그가 루이스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묘하게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렇게 좋았나?”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손으로 루이스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조금 전까지 물을 만졌기 때문인지 손끝이 무척 차가웠다.

“대체 어느 놈을 그렇게…….”

그가 어렴풋이 중얼거리는 말은 모호하게 흐려졌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않나? 그대는 내 약혼녀야. 그대가 마음에 들어 한 다른 남성이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회장님. 혹시.”

루이스는 그의 차가운 손을 감싸주며 물었다.

“……질투하세요?”

“안 하는데.”

근엄한 대답에는 도무지 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알아 두려는 것뿐이야. 그대의 취향이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야.”

게다가 변명도 줄줄 이어졌다.

회장님. 완결까지 실시간으로 달린 독자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이건 질투하시는 거잖아요.

루이스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제가 구슬 너머로 본 것과 지금은 아주 다른걸요.”

“아주 다르다고?”

“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그대는 그걸 아주 신경 쓰는 눈치던데.”

이안은 몇 번인가 보았던 그녀의 기묘한 반응이나, 행동들을 떠올렸다.

“그야.”

“가끔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것보다, 그걸 더 믿는 것 같기도 하고.”

“…….”

루이스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에는 반발할 여지가 없었다.

“봐, 루이스 스위니. 그대는 지금 여기에 있어.”

그는 두 사람의 손이 이어진 것을 지긋이 내려보았다.

“그대가 믿어야 하는 것을 쥐고서.”

“믿어야 하는 것?”

루이스가 되물었지만, 이번에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휴이트 교수님께서 ‘스스로 생각해 봐라.’라고 하실 때처럼 말이다.

루이스는 그의 시선을 따라 제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루이스는 조금 더 그대로 머물렀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두 손의 온도가 같아졌다.

“제가…….”

루이스는 잠시 말을 삼켰다.

“……변화시킨 거죠?”

“그래. 그대가 변화시켰어.”

그저 손을 쥐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온도는 변한다.

하물며 함께 지내게 되는 것은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제야 알았다. 그가 말하는 ‘믿어야 하는 것’의 정체.

“제가 영향을 끼친 것. 그리고 영향을 받은 것들…….”

“그래. 그 상호작용의 끝에서 그대가 누구인지 결정되는 법이지.”

그래서였다. 그런 이유로, 오늘 계단에서도 아무도 루이스를 의심하지 않았던 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루이스는 아카데미의 생활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아주 좋아했다.

항상 즐거운 일들 사이에서 웃으며 보냈다. 그것이 그녀가 쌓아온 관계였다.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원작의 루이스와 지금의 그녀는 완전히 달랐다.

두 사람이 이 세계에 끼친 영향도, 받은 영향도 아주 많이 달랐다.

관계, 경험 그리고 성격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실로 완벽한 타인이었다.

“왜…….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할 수 없었던 거죠?”

조금 더 빨리 둘을 분리했다면. 그랬다면, 그녀는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이안을 상처 입히게 되는 일도 없었을 거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밤을 새우는 일도 없었을 거다.

이렇게나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이었는데.

“지금의 생각을 과거에 해내지 못하는 건 당연해. 그건 어린아이에게 어른의 키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지.”

다정한 대답을 듣는데, 어쩐지 시야가 흐려졌다.

곧 같은 온도를 가진 손이 루이스의 뺨을 쓸어주었다.

“하지만 그대가 분하게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 나도 그러니까.”

몇 번인가 더 눈물을 닦아주던 그가 결국에는 그 슬픔을 통째로 안아주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그는 제게 닿은 여린 어깨를 꾸욱 누르며 그리 속삭였다.

“그대가 홀로 힘들어하던 시간에. 내가……알았어야 했는데.”

그 말에는 후회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이 어지러이 얽혀있었다.

“그래도 회장님이…….”

아직 훌쩍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그의 품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알아주셨는걸요.”

“음, 이건 사실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루이스는 그에게 몸을 기댄 채 가만히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헤셰라고 생각해.”

“헤셰 경이요?”

“그래.”

그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손끝에 닿은 등을 느릿하게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예전에 그러더군. ‘온실의 루이스는 이상하다.’고.”

“제가 이상하다고요?”

“그래. 꼭 주변 사람들의 애정이 당장 내일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군다고.”

“제가 그렇게 굴었나요?”

“물론 그때는 나도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헤셰의 말은 옳았다.

그의 약혼녀는 늘 그렇게 행동했다. 제게 주어진 애정이 소중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꼭 그것이 떠날 때를 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지. 오늘 그대의 말을 듣고 나서는 확신했고.”

“그야 그렇긴 하지만요. 헤셰 경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혹시 헤셰였나?”

이안은 무언가가 떠올린 것처럼 물었다.

“네? 뭐가요?”

“구슬 속에서 그대가 좋아한 사람 말이야.”

루이스는 이안에게서 몸을 떼어내고는 얼른 소매로 제 얼굴을 닦았다.

“제가 해낸 상호작용의 결과를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조금 전에요.”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그대의 반응을 보니까 정말 헤셰 같은데.”

“정말이지, 왜 그런 걸 신경 쓰시는데요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알고 싶은 것뿐이야.”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알고 싶은 표정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떤 표정인데?”

당장 헤셰의 목을 수도 성벽에 걸어 둘 것 같다.

“무섭단 말이에요.”

“무섭기는. 내가 설마 마법 구슬 속에서 그대가 헤셰를 좋아했다고 해서…….”

잠시 말을 멈춘 이안은 루이스의 양쪽 어깨를 짚으며 간절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인 모양이다.

“설마 진짜 헤셰인가?”

루이스는 대답해 주는 대신 그냥 웃고 말았다.

“아니지? 그렇지?”

그가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웃는 것을 보면, 루이스도 그의 영향을 받아서 훌륭한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 * *

스텔라 라피스는 의료실 침대에서 꼬박 하루를 채우고 겨우 눈을 떴다.

사방을 둘러싼 두꺼운 커튼 너머에서 강한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낮인 모양이다.

어떻게 되었더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누군가가 따라붙었고 순식간에 옷이 당겨져 균형을 잃었다.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순간에 루이스 스위니를 본 것은 기억했다. 아주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스텔라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조금 찌뿌둥한 것을 제외하면 딱히 아픈 곳은 없었다.

치료를 받은 모양이다. 마법 치료라니. 정말 호화롭기 짝이 없는 대접이다.

곁을 돌아보자 좁은 선반 위로 다양한 것이 놓여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꽃이었다. 새빨간 잎을 가진 것으로 무척 아름다웠으나, 스텔라는 그 꽃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 아래로 가지런히 정리된 그녀의 제복이 보였다. 아마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 준 뒤에 세탁까지 맡겨준 모양이다.

그 옆에는 교수님들의 확인서가 있었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출석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가장 끝에는 푸딩이 두 개 있었다.

먹으라고 가져다 둔 걸까? 그러고 보니 조금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스텔라는 두툼한 푸딩 병을 들고 가까스로 뚜껑을 열었다. 단 향기가 훅 끼쳐 들었다.

어느새 성급해진 손놀림으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 부드럽고 달콤했다.

“맛있다.”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얼른 한 번 더 먹었다.

두 병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단 걸 잘 먹는 편도 아니었는데, 왠지 아쉬워졌다.

곧 커튼 너머에서 누군가가 치료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사 선생님일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걸까? 스텔라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커튼이 열렸다.

커튼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교, 교수님.”

줄리아나 라센 교수였다.

“스텔라 라피스, 일어났군요.”

“네, 교수님.”

“다행입니다. 꼬박 잠들어 있기에, 신전에 연락을 넣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습니다.”

그녀가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기에, 스텔라는 조금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는군요. 식사하고 나면 아마 더 나아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진술서도 작성할 수 있겠군요.”

“진술서요?”

스텔라가 놀라며 물었고, 교수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퇴학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그대의 진술서는 그 근거로 제출될 겁니다.”

아카데미에서 퇴학 처분을 받는 일은 굉장히 명예롭지 못한 일이었다.

스스로 단체 교육을 그만두는 것과는 달리, ‘쫓겨났다’는 인식이 달라붙게 되니 말이다.

애초에 그런 처분이 내려지는 일도 거의 없었고.

“작성이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대가 당한 일을 그대로 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스텔라는 자신을 괴롭혔던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의 명예를 바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은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라피스 가문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가문과 척을 졌다. 이 이상 적대시하는 가문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스텔라는 조심스레 제 생각을 밝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텔라 가문에 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교수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어딘가 스텔라를 타박하는 것 같은 투였다.

“그야…….”

“해가 될 것은 없습니다. 득이 될 것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스위니 양이 그대를 계단에서 밀어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네?”

“루이스 스위니 말입니다. 설마,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까?”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교수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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