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나는 그대를 편애하거든
루이스는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녀는 어둠을 홀로 비추는 작은 촛불을 바라보았다. 붉은빛이 하얀 초를 조금씩 삼키고 있었다.
“있죠.”
첫 마디를 떼었고, 그는 대답이 없었다.
“저 말이에요, 사실은.”
그녀는 제 몸을 감싼 커다란 옷을 만지작거렸다.
“아, 알고 있었어요.”
루이스는 이제야 촛불에서 시선을 떼고, 이안을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회장님을요. 우리가 만나기 전부터…….”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당연하지 않냐는 얼굴을 했다.
“그야 그렇겠지. 수도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내 얼굴을 다 알더군.”
“아니, 그러니까!”
루이스는 말을 고쳐야 했다. 모처럼 용기를 내서 한 말인데, 방향성이 한참 잘못되고 말았다.
“지금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어요. 어린 황태자 전하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으로요.”
이제야 그는 몹시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가 말을 조심하는 사람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마녀가 아니냐고 물었을 거다.
“이런 모습이 되실 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어떤 모습이지?”
“그야.”
루이스는 다시 촛불로 시선을 돌렸다.
“……완벽하시죠.”
책에서 읽었던 대로 말이다.
“근사하시고, 아닌 척하시지만 상냥하시고 또 머리도 좋으시잖아요.”
“즉, 나는 그대의 예상대로 성장한 거군. 그대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는데 말이야.”
“예상이 아니에요!”
다소 격렬한 대답 때문이었을까. 루이스의 둥근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그의 옷이 조금 흘러 내렸다.
이안은 별다른 말 없이 옷을 다시 여며주었다. 그 손길이 따스하고 다정했다. 마치 언제라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미래를.”
루이스는 가까스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어떻게?”
그가 덤덤하게 물어왔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봤어요.”
“누가 그대에게 예언서를 건넨 건가?”
“예언서가 아니라…….”
루이스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만요.”
“그리 생각하지 않아. 그대가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것만 아니라면 괜찮아. 뭐든지.”
뭐든지라는 말에 루이스는 용기를 냈다.
“저.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약지를 붙잡았다.
“어느……. 어느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차마 촛불이 닿지 못하는 새카만 어둠 너머로, 오랫동안 봉인해 둔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이름까지도.
“평범함을 꿈으로 두어야 했던……그 아이는.”
현실, 이라는 말을 두려워 했었다.
“가끔 도피하지 않으면,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워했어요.”
그러니 심장이 뻐근하도록 아픈 날에는 책을 읽었다. 무엇이든 좋았다.
주인공이 사랑받고, 이야기가 따듯하고 그 결론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책장을 넘기는 순간에는 현실이나 사실이라는 무서운 글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야기는 책으로 보는 것도 있었지만, 그……. 화면으로 보는 것도 있는데.”
“……화면?”
PC나 모바일 화면인데, 저는 PC버전으로 봤어요. 은혜로운 삽화를 커다랗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삽화작가님 사랑해요!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대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동화책에 나오는 마법 구슬 같은 거예요. 다른 세계를 비춰주는…….”
“아아.”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회장님을 봤어요.”
“그렇군.”
“제게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고,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지만, 아주 좋아했어요. 정말로요.”
“그래서, 먼 세계의 루이스 스위니는 어떻게 내 곁으로 오게 된 거지?”
“루이스 스위니도 원래부터 이곳에 존재했어요. 그, 저기.”
루이스는 겨우 말아 쥔 그의 손가락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어느 날.”
그리고 어느 한순간을 생각했다. 지금 떠올려도 말이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눈을 떴는데, 제가 여기에 있었어요.”
그가 작게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긴 그걸 어떻게 이해시킨단 말인가. 누구도 답을 모르는 일인데.
“그러니까, 눈을 떠 보니 여기에 있었어요. 루이스 스위니의 몸을 하고서요.”
“그게 언제지?”
“전하를 만나기 훨씬 전이에요. 아주 어릴 때부터…….”
“…….”
“죄송해요.”
어쩐지 그를 속여왔다는 기분이 들어서, 루이스는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
아니, 사실은 속여온 것이 맞았다.
그녀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퍼부어준 모든 사람에게 말이다.
괜한 마음에 루이스는 그의 손가락을 슬그머니 내려 놓았다.
“그게 어째서 죄송한 일이지?”
하지만 그의 손이 그녀를 따라왔다. 허탈하게 물러가던 손끝이 곧 그에게 붙잡혔다.
그리고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전부 얽히고, 그에게 속하게 되었다.
손에 닿는 촉감이 생생하다.
그가 펜을 쥐는 곳에 박힌 굳은살, 서로의 살갗이 스치는 감각, 그리고 온기.
그는 진짜다. 진짜 이안 오드모니얼이다.
“……제가 가짜라서요.”
그 사실은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혀왔다.
그녀가 누리는 행복의 크기만큼 그림자는 짙어지고 길어졌다.
“루이스 스위니.”
“…….”
소녀는 차마 그가 부르는 이름에 대답하지 못했다. 깊이 숙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
그러자 그는 기꺼이 호칭을 바꾸어 다시 그녀를 찾았다.
“성실한 일꾼.”
물론 그에게 루이스는 여러 가지 의미로 남아 있었다.
“소중한 약혼녀.”
“…….”
“나의 특별한 감정.”
“흐으…….”
“그대가 가짜라면, 나 역시 가짜야. 예전에 그대가 말한 대로 우리는 서로를 영향권에 두고 있으니까.”
루이스는 이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루이스가 사관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때 이안은 곁에 있지 않았다.
“드. 들으셨어요?!”
“미안, 들었어.”
그는 차마 ‘역사에도 남았지.’라는 설명은 곁들이지 못했다.
“그런 걸 들으시면 어떻게 해요. 그건 그냥!”
“이제야 그 불경한 얼굴이 날 바라보는군.”
그는 루이스의 미간에 잡힌 미약한 주름을 살살 눌러주었다.
“윽…….”
“이 형편없는 남자를 차버리는 게 아니라면 얼른 대답해 봐, 나의 특별한 감정 씨?”
“…….”
“얼른.”
“……네.”
“좋아, 그럼 내 약혼녀 씨?”
루이스는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어서 대답하라’는 엄격한 표정만 지었다.
“네에.”
“훌륭한 노동력을 가진 나의 일꾼도 여기에 있나?”
“이, 있어요.”
“나와 시몬에게 우정의 맹세를 한 친구는?”
“……네.”
“루이스 스위니.”
그리고 그는 다시 그 이름을 꺼냈다. 소녀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가 왜 앨리스와 루이스를 그렇게까지 분리하는지 모르겠군.”
루이스는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 앨리스라니.
“제 인형이요?”
“그래. 예전부터 그대가 밝히지 않는 어떤 마음에, 내 멋대로 이름을 붙인 것뿐이지만.”
그가 만날 수 없는 비밀의 루이스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신성 종교에서는 몸과 영혼은 단 하나의 짝으로, 그 시작과 끝을 언제나 함께한다고 하지.”
그건 루이스도 배우기는 했다.
이 나라는 하나의 신성 종교를 믿고 있고, 왕권과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이안은 어린 시절에 ‘내 약혼녀인 루이스는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며 신성 종교의 교리를 엄격히 가르쳤다.
“루이스 스위니의 영혼이 사라졌다면, 당연히 그 짝이 되는 육체도 허물어졌을 터.”
“그, 그건요.”
“하지만 그대의 육체는 굳건하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그대에게 다른 몸의 기억이 있다면.”
루이스는 긴장한 얼굴로 남은 말을 기다렸다.
“그 영혼에 새겨진 기억이 눈을 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게다가 앨리스와 루이스가 아예 다른 존재일 수는 없어. 그랬다면 분명히 스위니 부부께서 가장 먼저 알아차리셨을걸.”
언제나 딸에게 깊이 신경을 쓰는 부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스위니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내 딸이 달라졌다.’는 고민을 털어놓으신 적은 없었지.”
“그건 제가……!”
“그대가?”
‘루이스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려던 그녀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루이스 스위니를 잘 모른다.
악역의 어린 시절 따위가 구구절절 적혀있지는 않았으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그대가 루이스 스위니야. 처음부터 그랬지. 그 영혼에 다소 재미있는 앨리스의 기억을 타고 난 모양이지만.”
그는 그녀의 오랜 고민을 꽤 간단하게 결론지었다.
“너무 제게 유리한 대로 결론을 내린 것 같아요. 그건.”
“누구나 그렇게 살지.”
“틀릴지도 모르잖아요.”
“바로 잡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잖나.”
“그야 그렇지만요.”
루이스는 울상을 지었다.
예전에는 어쩌면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아온 이후로는 그런 생각은 거의 접어 둔 상태였다.
“그대의 마음이 편하길 바라면서 지어낸 소리는 아니야.”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신의 논리를 지키는 첫 번째 문지기니까.”
그건 황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는 순리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수많은 진실이 있고, 모두가 거기에 종속되지. 모두가.”
그는 굳이 ‘모두’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대는 훌륭하게도 그 ‘모두’에 포함되어 있고.”
“제가……신의 논리에 속하지 않은 존재라면요? 만약에 그렇다면…….”
“그대는 조금 더 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정하게 웃었다.
“그 논리를 지키는 문지기가 바로 나야. 아마 나는 그대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그 문을 활짝 열어버릴걸.”
“무, 무슨 문지기가 그렇게 경각심이 없어요! 불량하기 짝이 없잖아요!”
“괜찮아, 그대에게만 불량한 문지기니까.”
“……신께서 불행해 하시겠어요.”
“신께서는 자신을 불행하게 할 리 없으니, 그대를 무사히 문 안쪽에 놓아두셨을 거야. 그분은 벽처럼 견고한 문지기를 원하시거든.”
“또 제게 유리한 결론을 내리셨어요.”
“나는 그대를 편애하거든.”
“…….”
“진심으로. 편애해.”
“이상해요. 그런 말은…….”
“하지만 그대는 이런 말을 좋아할 거야. 미소를 참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지.”
그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나만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니.
너무 신기하고, 분에 넘치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요.”
하지만 역시 이상한 일이긴 하다. 어째서 이 세계의 남자 주인공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 표정을 보니 분명히 또 뭔가 의구심이 든 모양이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대체 우리가 몇 년을 같이 놀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뭔데?”
그는 잠시 루이스의 손을 놓고 다시 식량 창고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놓인 상자에서 그가 꺼낸 것은 사과였다.
그는 하얀 셔츠 위로 사과를 몇 번 문지르더니, 가뿐하게 두 쪽으로 갈라서 루이스에게 한쪽을 내밀었다.
멀뚱히 사과를 내려다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랑 있으면 어디서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라는 엉뚱한 생각 말이다.
이 나라의 황태자께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고마워요.”
루이스는 두 손으로 사과를 받아 들었다.
“다음에는 파이로 만들어 줄까?”
“생존용이죠?”
“구애용이지.”
그는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그리 대답했다.
“몇 가지 구애용 레시피를 독학했지. 찐득찐득한 초콜릿 케이크나, 가을의 사과 파이나. 겨울의…….”
그가 루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인지 맞추어 보라는 것이리라.
루이스가 겨울에 환장하면서 먹는 간식이라면 역시 그거다.
“시나몬 롤이요?”
“그래. 찐득찐득하게 녹아내리는 그거. 눈이 오는 날이면, 그대는 꼭 그걸 먹어야 하지.”
“역시 신기해요.”
“그러니까, 뭐가?”
“회장님께서 제게 이렇게 다정하게…….”
루이스는 잠시 고개를 젓고는 고쳐 말했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이 신기하다고요.”
“그야 그렇겠지. 친구 기간이 너무 길었으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이 기분을 설명하려면…….”
루이스는 제 손에 들린 사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아삭, 예쁜 소리가 났다.
“음. 숲 속에 아름다운 공주님과 볼품없는 난쟁이가 있는데. 왕자님께서 찾아와서는 난쟁이에게 구애하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 난쟁이가 왕자에게는 평생 그려온 이상형이었던 모양이지. 초면에 난데없이 구애할 정도면 보통 반한 게 아닌 모양인데.”
루이스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뭔가 비유가 틀린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다시 할게요. 그러니까…….”
루이스는 마땅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착한 주인공과 못된 새언니가 있었는데요. 어느 날 왕자님이 찾아와서 새언니한테 구애하는 거죠! 그 언니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인데도 말이에요!”
“그 왕자도 악랄한 인간인가 보네.”
“그럴 리 없잖아요! 남자 주인공이라고요! 세상에 어느 동화의 남자 주인공이 악랄하겠어요!”
“장르가 동화가 아닌 거 아닌가?”
……어? 아니긴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다.
그녀가 할 말을 잃은 얼굴이 되었기에, 그는 조금 웃었다. 그녀의 말로 인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야 알았군.”
“……뭐를요?”
“이따금 그대가,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는 이유.”
이안에게는 마땅한 다른 상대가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대가 보았다던 마법 구슬 속에서 다른 미래를 보았겠지. 그대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니, 언제나 그걸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루이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사과를 먹어치운 이안은 팔짱을 끼운 채,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의 마땅한 상대가 궁금한 걸지도 모른다.
“……누군지, 알고 싶으세요?”
“굉장히 신경 쓰이는군.”
그야 그렇겠죠. 누구라도 제게 정해진 상대가 있다면, 그게 누구인지 알고 싶을 것이 분명…….
“미치겠군. 내게 그대가 없다면, 대체 그대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지? 그 망할 마법 구슬 속에서 말이야.”
“네? 저요?”
“그래. 신경이 쓰여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왠지 대답을 들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불만스럽게 몇 마디 말을 더 중얼거렸다.
“혹시 모르니 들어 두는 게 나은 건가……. 분명히 가만두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야.”
“제가 누굴 좋아했는지가 중요해요?”
루이스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물었다.
하지만 그는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제 심장 근처를 꾹 누르며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잠깐, 아직 말하지 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어.”
그는 깊이 심호흡을 하고는 신중하게 질문을 꺼냈다.
“한 가지만 묻지. 그대가 좋아한 사람이 혹시 귀족 이상의 지위를 가졌나?”
그야, 이안은 황태자 전하니까 귀족 이상이기는 하다.
루이스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사악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나는 단 한마디의 말로, 그 인물을 사형시킬 수 있다는 뜻이군.”
“그, 그건 진짜 악랄하잖아요오……!”
물론 이안이 이안을 사형시킬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사형을 생각하다니. 도무지 건전한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가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말했잖아.”
허리를 숙인 그는 루이스의 입술을 쓸어내며 속삭였다.
“동화가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원작도 그다지 건전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