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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60화 (60/92)

?60. 꽤 아플 텐데

누군가를 향한 악의와 미움은 어째서 그렇게나 간단하게 옮는 걸까?

칭찬하는 말 보다, 험담하는 말이 더 쉬이 동조를 얻고 멀리 공유된다.

험담이 무서운 것은 그때부터다.

부피가 늘어난 험담은 때때로 정의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정말로 가만히 있을 거야? 움직여야지.

어서 움직여. 상처를 주고 괴롭혀.

모두가 찬동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루이스 스위니가 악질이라는 거지.’

루이스는 뜨거운 물에 삶아낸 유리병에 재차 뜨거운 김을 쐬어주며,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기는 무사히 시작했다. 물론, 스텔라도 돌아왔다. 아직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 한 가지는 정정해야겠다.

학기가 ‘무사히’ 시작되었다는 말.

아카데미는 무사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헤셰가 걱정했던 대로, 감기의 지배에 들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수업에 가도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이나, 교수를 가릴 것도 없었다.

단체 생활이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여, 아카데미의 교직원과 학생회는 합심하여 이 악랄한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루이스가 지금 유리병을 삶고, 김을 쬐는 단순노동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

루이스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이안과 클레어가 맹렬한 기세로 레몬을 썰고 있었다. 학생회의 업무인 ‘레몬티 대량 생산’ 중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그 옆으로는 딘 크리시스가 설탕을 손끝으로 찍어 먹다가 걸려서, 관리 부인께 호되게 등짝을 얻어맞고 있었다.

‘스텔라는 괜찮을까.’

루이스는 문득 그녀를 걱정했다. 물론 그녀가 감기에 걸릴까 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방학 동안 라피스 가문의 불명예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들은 나라의 돈을 사행성 유희에 사용하고, 그 사실을 숨겨왔다.

원작에서는 이 일을 빌미로 하여, 아카데미 전체가 스텔라를 본격적으로 괴롭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루이스 스위니의 악역적 재능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지.’

그도 그럴 것이 괴롭힘의 시작은 루이스가 꺼낸 악의의 말이었으니.

‘물론 악의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도 누구보다 앞장섰지.’

참 부지런한 악역이다. 생각해보면, 거의 학업을 포기하고 괴롭힘에만 매달린 꼴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던 거지?

‘노트가 엉망이 되었잖아?! 조심해야지. 스텔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어머, 미안. 네가 넘어질 줄은 몰랐네…….’

‘지금 네가 말한 이안이, 여름 내내 라피스 가문에 피곤하게 시달렸던 그 이안 오드모니얼을 말하는 거지?’

‘악의는 없어.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하긴,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라피스 백작가에는 없을 테니까. 그렇지?’

소설 속에서 루이스가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니까 괜히 부끄러웠다.

물론 지금은 그녀가 원작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때로는 그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원작을 따르지 않은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만약 그대로 행동했다가는 저 낯부끄러운 말을 루이스가 재현해야 한다는 뜻이 될 테니까.

‘게다가 회장님의 팔을 붙잡고 웃으면서 이름을 부르는 일도 해야 해.’

그런 그녀를 감흥 없이 내려다보는 이안의 표정도 감당해야 하고.

으……역시 원작은 좀 별로다.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삽화에서 보았던 그의 싸늘한 얼굴을 떠올리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새 유리병을 집게로 집어 든 순간이었다.

철퍽!

두꺼운 유리병이 물이 펄펄 끓는 거대한 냄비 속으로 떨어졌다. 뜨거운 물이 루이스의 손과 팔로 튀어 올랐다.

“윽.”

루이스는 집게를 내려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루이스!”

곧바로 칼을 놓고 달려온 이안이 그녀의 손바닥을 쥐었다. 그의 얼굴에 당혹과 걱정이 한꺼번에 들어있었다.

루이스는 손이 화끈거리는 것도 잊고,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안심했다.

원작에서 보았던 차가운 얼굴이 아니라서 말이다.

물론 루이스의 웃는 표정 때문에 그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긴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악의나 미움도 없었다.

그러니, 루이스는 여전히 그의 표정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 바보 같지만 말이다.

“이리 와.”

그는 무어라고 잔소리를 하는 대신, 루이스의 손을 끌어서 차가운 물 속에 집어넣었다.

“고마워요. 클레어.”

“왜 내가 아니라 클레어에게 감사하는 거지?”

이안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해 왔다.

“그야 차가운 물을 준비해 준 사람이 클레어니까요. 물론, 회장님에게도 ‘고마워요’라고 말하려던 참이에요. 정말로요.”

차마 부끄러워서 먼저 말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조금 감격하기도 했고.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묘한 기분이 드는 건 다 원작 때문이다.

“대체 뜨거운 물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이안은 잠시 전체 휴식을 선언하고, 루이스에게 작은 스툴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스툴에 올라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생각 안 했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아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스텔라에 대해, 그리고 이안에 대해서.

루이스는 제 생각의 주인공이었던 이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몇 가지를 추가로 지시하고 있었다.

딘이 설탕을 찍어 먹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던가. 칼질로 고생한 클레어에게도 스툴을 가져다주라던가. 의료실에서 약을 받아 오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지시를 마친 그는 커다란 손으로 루이스의 이마를 짚었다.

아마 아픈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감기에는 걸리지 않았어요. 밤과 새벽에 따듯하게 입고 있었거든요. 이불도 잘 덮었고요.”

“아프지도 않고, 다른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유리병을 놓쳤다는 건.”

“제 주의력이 부족해진 모양이죠.”

평소라면, 좀 제대로 집중하라며 이마를 톡톡 때릴법한데 이안은 그리하지 않았다.

“새 학기의 수업이 힘든가?”

“아, 맞다. 수업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회장님.”

“그 얼굴을 보니, 또 내게 뭔가 반발할 것이 생겼군. 말해 봐.”

그는 이제야 슬그머니 웃었다. 아무래도 루이스가 이렇게 반발하는 것이 꽤 좋은 모양이다.

정말 변태라니까. 이 남자는.

“‘교양 미술’이 어째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아니라고 조언해 주지 않으셨어요?”

“말해야 했나? 그대가 ‘이 수업이 어떤가요?’라고 묻기에, 나는 솔직하게 ‘괜찮다.’고 말한 것뿐인데.”

“말씀해 주셨어야죠. 다른 예술 교양수업과는 다르잖아요.”

루이스의 말에 그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 ‘교양 음악’은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지.”

“맞아요.”

“‘교양 댄스’도 직접 춤을 추고 말이야.”

“바로 그거죠! ‘교양 문학’도 자작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요.”

“하지만 ‘교양 미술’은 미술사를 가볍게 훑는 수업시간이지.”

루이스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화상을 입었을 때보다 더 슬픈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어지간히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네.”

“그게 아니에요.”

루이스는 가볍게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행동을 하면, 이안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하나라도 암기할 것이 적은 과목을 듣고 싶었던 것뿐이라고요.”

‘교양 미술’은 암기의 바다와도 같은 미술사 수업이었다.

“그렇다면 수업을 포기하고, 다른 수업으로 옮기지그래? 아직 조정이 가능할 텐데.”

“물론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냥 듣기로 했어요.”

“저런.”

“어차피 알아야 하는 것들이잖아요. 언젠가는.”

“알아두는 편이 좋지, 게다가 꽤 재미있게 수업이 진행되니까 막상 들으면 좋을 거야.”

“재미있게요?”

루이스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차가운 물에 담겨 있던 루이스의 손을 잠시 꺼내어 주의 깊게 관찰했다.

하얀 피부 위로 붉은 자국이 생겼다. 이건 아마 꽤 오래 갈 것 같은데.

“꽤 아플 텐데 이거…….”

이안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그렇긴 해요. 뜨겁기도 하고요. 그보다 어서 교양 미술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루이스는 찬물 속으로 제 손을 풍덩 집어넣으며 이안을 재촉했다.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진행되는 수업이라는 뜻이었어. 역사 수업과도 제법 연관성이 있으니 암기는 어렵지 않을 테고. 다만 좀 예술가들의 사고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더군.”

이안은 다소 빠른 말로 설명을 마쳤다. 마침 루이스의 손에 바를 약이 도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리 손 내봐.”

이안이 루이스에게 손을 내밀 때, 두 사람 곁에 서 있던 남학생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불안한 기색을 하고서 말이다.

“저, 회장.”

“음?”

“저기……. 이 약을 바르고 나면 1시간은 물에 닿으면 안 되는 거, 알지?”

“물론,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여기 병에 적혀 있으니까.”

이안은 ‘바른 후엔 1시간 동안 땀, 물 하여튼 모든 액체에 닿지 않도록 해라.’라고 적힌 병을 흔들어 보였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네. 난 또 회장이 바로 루이스에게 일을 시킬 줄 알았지 뭐야.”

남학생은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은 후, 또 설탕을 찍어 먹는 딘 크리시스의 등을 때리기 위해 달려갔다.

“아무래도.”

이안은 약병을 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직도 내가 그대를 악독하게 부려먹는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야.”

루이스는 딱히 반발하지 않았다. 악독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부려먹기는 했으니까.

물론 학생회의 누구라도 그렇게 그의 손과 발이 되었다.

“이렇게 붙어 있어도 아무도 우리 사이를 의심하지도 않고.”

아. 아무래도 그게 싫었던 모양이다.

루이스는 누군가 듣지 않을까 걱정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

“의심받지 않는 게 좋은 것 아니었어요?”

루이스 개인은 물론, 스위니 가문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야 그렇지.”

“게다가 우리는 굳건한 우정을 너무 오래 자랑했어요.”

“그러니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긴 한데, 진짜, 너무. 너어무 굳건하다고 자랑했나 봐요.”

그는 구름같이 부드러운 솜 위로 병을 기울여 충분히 약을 흡수시켰다.

“우리의 우정은 지금도 굳건하지. 물론 시몬 힐라드를 포함해서.”

그는 오랜만에 우정의 맹세를 속삭이며 그녀의 피부 위로 무거운 솜을 올려 두었다.

초록색이 되어버린 솜이 상처 위로 착 달라붙었다.

“읏…….”

몹시 따가운 느낌에 루이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빼려 했다. 본능이었다.

“미안하다.”

그가 작게 사과하며 루이스의 손목을 약간 강하게 쥐었다. 덕분에 그녀는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사과, 하실 일은……흐…….”

“많이 아픈가?”

그가 힘을 풀어내며 물었고, 루이스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는 다시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그래도 멈출 수는 없으니, 계속하겠다고.

어째서 그가 사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거 시몬에게 한마디 듣겠는걸.”

“시몬이요?”

“그래. 녀석은 예전부터 그대를 유리 구슬 대하듯 했으니.”

그리고 그의 마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이안은 알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시몬을 지켜봐 왔으니까.

“저……시몬에게 혼나는 건가요.”

“잔뜩 혼나고 반성하도록 해.”

“이상한 일이네요.”

루이스는 아픔을 참는 얼굴로 웃었다.

“혼을 내는 것은 회장님의 일이었는데.”

“알아, 그리고 위로는 시몬 힐라드의 일이었지.”

그건 오랫동안 깨어지지 않은 관계였다.

“……바뀐 건가요.”

“바뀌지 않았어. 조금도.”

이안은 이제야 그녀를 혼내는 것 같은 투로 말했다.

“그대를 걱정하는 거야. 나도 시몬도 똑같은 마음으로 말이지. 그대들이 똑같은 마음으로 날 걱정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똑같은 마음으로 시몬을 걱정하는 것처럼요?”

“그래.”

이안은 솜의 위치를 옮겼다.

한참이나 솜이 머물렀던 곳에 초록빛 약이 방울져 있었고, 곧 하얀 손목으로 도르르 떨어져 그녀의 소매에 물들었다.

“그러니까 시몬에게 ‘평소의 루이스’로 대해줘.”

“시몬이 그걸 바랄까요?”

루이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최근에는 루이스보다는 이안이 시몬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네가 시몬을 좋아하는 만큼은 바라고 있던데.”

“그건 아주……, 굉장히 많이 바란다는 뜻이네요.”

“그래. 그런 생각을 가끔은 솔직하게 전해 줘. 시몬도 네 우정의 맹세가 굳건한지 궁금해하니까.”

“회장님도 그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했어요? 시몬에게?”

루이스는 이제 제법 통증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물었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한 것을 굳이 감출 이유가 있을까. 나는 시몬 힐라드를 깊이 생각해.”

세 사람 사이에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아마. ‘감정의 형태를 말로 정하여 분명하게 전한다.’ 아닐까.

그러니 시몬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냈다는 이안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 스위니에 대해서는……. 간절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간절하다는 말은 조금 옅게 들렸다. 그건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말이, 그 단어가.

과연 그의 마음을 제대로 번역하여 옮겼을지 섬세하게 헤아리며 속삭이는 것으로 보였다.

루이스는 그런 고민을 하는 그도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달콤해……졌네요.”

원작의 이안이 루이스에게 보여 주었던 말이나 행동과 비교하면 말이다.

“우리가 달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가 웃으며 되묻기에, 루이스는 놀라며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런 뜻이…….”

물론 이안과 루이스의 기억에 달콤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지금 딘이 또 찍어 먹는 설탕 가루와 같은 추억뿐이니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한쪽 손의 치료가 끝났다.

이안은 마른 수건으로 얼음물에 젖은 다른 손을 꼼꼼하게 닦아 주며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그대 요즘…….”

그는 그리 말하고는 기습적으로 붉게 부어오른 피부 위로 솜을 올려 두었다.

“윽!”

“어딘가 다른 것에 푹 빠진 것처럼 보여서 말이지.”

그리 말하는 눈길은 다소 날카로웠다.

물론 사실이긴 했다. 최근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원작 생각이 많이 났다.

“그, 그렇지 않아요.”

루이스는 시선을 피하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한눈에 거짓임이 보였을 거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이상 그녀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는 금방 치료를 마무리했고, 다시 레몬티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멍하니 스툴에 앉아서 맹렬하게 칼을 놀리는 이안의 등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얇은 셔츠 너머로 은근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운 잔 근육의 굴곡을 감상했다.

하아, 정말. 이 남자 주인공은 최고 시다.

물론 루이스는 변태가 아니다.

그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미술사를 공부할 사람이 아름다운 것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은 중요하니까.

칼과 도마가 흘려보내는 경쾌한 소리가 한창 진행되었을 때 즈음.

루이스는 손에 묻은 설탕을 핥아 먹는 딘의 종아리를 발끝으로 툭 걷어찼다.

* * *

원작에서 스텔라 라피스는 끔찍한 가을을 보냈다.

루이스 스위니가 악독한 소문을 퍼트리고, 실제로 괴롭히기까지 했으니까.

‘어머, 미안해 스텔라. 책이 너무 무거워서 놓쳤나 봐.’

책을 반납하는 루이스는 스텔라의 손 위로 무거운 책을 툭 떨어뜨리며 그리 말하기도 했었다.

정말 나쁜 계집애다.

‘뭐 어쨌든, 지금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평화로운 가을을 보내겠지.’

루이스는 도서 반납 줄 뒤에 서서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북적이는 학생들 너머에서 스텔라의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잘 지내는 모양이다.

하긴 루이스가 아니라면 누가 스텔라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니겠는가.

누가 그녀의 손등에 책을 찍어 누르고, 옷을 찢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며 알뜰하게 괴롭히겠나.

스텔라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작가 공인 악녀 루이스 스위니뿐이다.

곧 루이스의 차례가 되었다.

루이스는 다른 날보다도 훨씬 더 조심스레 책을 내려놓았다. 실수로라도 스텔라의 손을 찍어 누르고 싶지는 않았다.

“반납되었어.”

스텔라가 무뚝뚝한 말투로 책을 가져갔고, 루이스는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이 정도가 딱 좋다. 서로 알아서 갈 길을 가는 사이 말이다.

……나중에 혹시, 혹시라도 이안과 스텔라의 감정이 원작을 따라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그런 건 가능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안에 대한 실례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쩐지 때때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 나약한 성격.

혼자 상상하고 불안해하는 이 몹쓸 성격.

……정말 싫다.

어디 따로 떼어 놓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렸을 때, 뒤에서 책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툭.

“윽…….”

스텔라가 아픈 소리를 냈고, 루이스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라는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물론 루이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스텔라의 앞에는 다른 여학생이 서 있었는데.

그녀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 미안해 스텔라. 책이 너무 무거워서 놓쳤나 봐.”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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