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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58화 (58/92)

?58. 모든 필력을 동원하여 이 광경을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순간이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루이스는 사관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 그리 생각했다.

놀란 얼굴을 한 그는 곧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한쪽 검지를 제 입가로 가져갔다.

마치 ‘조용히.’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이안을 가리켰다.

‘회장님께 말하지 말라는 뜻인가?’

그게 아니면.

‘비밀로 해주겠다는 뜻일지도.’

물론 희망적인 생각만 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냐. 조용히 지나가서 적을 테니 하던 거 마저 하세요. 라는 뜻일 수도 있어.’

그건 최악이다.

사람의 인상이란 등장에서 정해지기 마련인데, 루이스의 기념비적인 역사서 첫 등장이.

키스라니.

게다가 저 젊은 사관은 제가 가진 모든 필력을 동원하여 이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했을 거다.

“……대체.”

루이스가 한참 사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입술이 닿은 곳에서부터 기운 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뭐가 부족한 걸까.”

그는 기운이 빠진 몸을 늘어뜨려 루이스의 어깨 위로 이마를 기대었다.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같았던 손도 힘없이 풀려나갔다.

“……네?”

루이스가 되묻자 그는 크게 한숨을 뱉었다.

“그야, 물론 나는 겸손함을 배운 남자고, 처음부터 무엇이든 잘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지.”

“후, 훌륭한 마음가짐이네요.”

“그렇지?”

“네. 모두의 관심을 받는 황태자 전하 다워요.”

“모두의 관심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난 그냥.”

곧 그의 말보다도 숨이 더 짙어졌다. 뭔가 허탈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그대의 관심을 잃지 않을 정도의 키스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제 관심……이요?”

“그래. 그야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대를 기쁘게 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는 양쪽 팔로 루이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내 형편없는 키스로는 그대의 관심조차 끌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방금.”

형편없었다고?

아니, 저기요. 그게 어떻게 형편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남자주인공은 원래 뭐든 처음 해도 잘하는 거고, 실제로 그런 분이세요!

“그야 물론, 나는 그대가 처음이니까, 다소 의욕만 앞선 경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아, 아뇨. 회장님 형편없지는…….”

아주, 아주 잘하고 계세요. 닿아있으면 어깨부터 다리까지 전부 솜사탕이 되어서 사르르 녹아 흘러내릴 것처럼요!

“괜찮아. 위로할 것 없어. 내게는 개선 의지가 있으니까.”

“여기에서 더 개선되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할 것 같…….”

루이스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고 되물었다.

“음?”

“아니에요!”

“어쨌든, 그대가 내 부족함을 느끼거든 언제든지 이야기해 주길 바라. 그대 외에 지적해 줄 사람은 없을 테니.”

“조, 조금도 부족하지 않아요. 아주 잘하고 계시니까요.”

루이스는 제 허리를 감싼 그의 팔을 붙잡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키스를, 그것도 제게 한 키스를 칭찬하는 건 몹시 어색한 일이니까.

“잘하고 있다고?”

루이스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의 이마가 맞닿게 했다.

“그대가 그리도 열렬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 그건!”

루이스는 황급히 눈을 돌리며 변명을 생각했다.

일단 사관에게 들켰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사관은 이 일을 조용히 넘기려는 걸지도 모르니까.

“……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혹시, 그건 불편하다는 뜻인가?”

그가 조심스레 묻기에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그러니까,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좋아서 다른 생각을 할 정도라니, 정말이지 이쪽이야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가 진심으로 곤란해 하는 것 같아서, 루이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키스에 집중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더 비참해지는데.”

“하지만 다음에는 저도 잘할게요! 그러니까, 회장님께서도 제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여기에서 더 개선하겠다고?”

그는 맞닿았던 이마를 떨어뜨리며, 살살 고개를 저었다. 뭔가 무서운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건, 찬성할 수 없군.”

“어째서요? 좋지 않으세요?”

“좋으니까 문제라는 거지. 물론 나에게는 견고한 인내심이 있지만. 그대도 알다시피, 내 인내심이라는 게…….”

“가끔 작동하지 않죠.”

“그렇지. 연인이 아니었던 그대의 이마에 키스할 정도로.”

“제 등을 보고 침을 삼키신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네요.”

“그건 견고한 인내심이 발휘된 경우고.”

“……!”

대체, 이 남자가! 그게 인내심이 발휘된 거라면, 발휘되지 않았을 땐 뭘 했다는 거야!

루이스가 부르르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에, 이안은 잠시 소리를 내어 웃었다.

“어쨌든.”

그는 다소 차분해진 투로 화제를 전환했다.

“힘껏 노력할 테니까.”

그런 노력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지만. 왠지 그 노력을 막고 싶지 않았다.

‘나도 회장님처럼 훌륭한 변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이제 변태가 변태에게 세금을 내게 생겼다. 이 부끄러운 망국적 사태를 어쩌면 좋담.

“그대…….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군.”

“아, 아니에요!”

루이스가 얼른 부정했지만, 이안은 믿어 주지 않았다.

“대체 이 발랄한 머릿속은 어떻게 해야 날 봐주는 거지? 몸을 묶는 것처럼, 생각을 묶어 두는 방도는 없는 건가?”

“그, 그게 무슨 변태 같은 말씀이세요!”

“괜찮아. 그대 외의 사람에게는 그렇게…….”

“당연히 안 되죠! 아니, 저도 안 돼요!”

“……안 되나?”

“애, 애초에 사람의 생각은 묶어 둘 수 없어요.”

“그래? 그것참.”

그는 몹시 실망한 얼굴을 하며, 루이스의 이마 위로 입술을 겹쳐두었다.

“……안타까운 일이군.”

그리 중얼거릴 때는 못된 악마의 주술로 생각이 둘둘 묶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말이다.

* * *

이안에게는 몹시 미안한 일이지만, 그의 악마적 주술은 실패했다.

물론 루이스는 한동안 연애의 달콤함에 녹아들기는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지금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훨씬 더 많았다.

일단 사관을 만나야 했다. 가능하면 단둘이.

하지만 무슨 수로? 루이스에게는 그를 만날 구실도 없고, 그는 언제나 이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게다가 방학 동안 정비를 마친 기숙사 옥상을 학생들에게 내어주기 위한 절차도 밟아야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절차란, 옥상 사용의 주의사항을 정리하여 허가를 받는 일이다.

물론 이런 일은 아카데미의 현재 학칙을 전부 숙지하고 있는 괴물 같은 두 사람이 담당했다. 이안과 클레어 말이다.

두 사람은 이 어려운 사안을 단번에 통과시켰고, 옥상은 무사히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물론 루이스가 이 잡일을 무사히 마친다면 말이다.

쾅! 쾅!

루이스는 못을 입술 사이에 문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몇 번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못은 금방 깔끔하게 박혀 들어갔다.

클레어는 발판용 의자를 잡아주며

“꺄악, 루이스 너무 멋있어!”

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 밑으로 딘 크리시스가 좌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망치질을 맡겨 놨더니, 못을 다섯 개나 못 쓰게 만들어 버리며 제 쓸모없음을 증명해냈다.

루이스는 조금 우쭐해졌다.

이 나약한 귀족가의 도련님 같으니! 망치질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클레어를 노리고 있다고?!

루이스는 다른 모서리에도 못질을 마치고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이 정도면 될까요?”

“완벽해! 너무 믿음직스러워!”

클레어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고, 딘은 더욱 볼품없이 구겨진 채 옥상 어딘가에 처박혔다.

루이스가 벽에 달아 놓은 것은 ‘옥상 이용 시 주의사항’으로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배포된다.

옥상 입구 근처에 이렇게 나무판으로 단단하게 고정했으니, 이제부터 교내 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을 부착해 둘 차례다.

물론 안전과 관계된 일이니, 게시판은 물론 각 강의실에 이르기까지 모두 붙여 두어야 한다.

클레어는 역할 분담표에 따라서, 루이스가 가야 할 곳을 지정해 주었다.

“도서관인데, 아마 회장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을 거야. 도서관을 마치면 강의동 1층만 도와줘. 거기가 제일 힘들 테니까.”

“회장님이랑 같이 해야 하나요?”

“응. 하지만 걱정하지 마. 사관들이 있으니까, 회장님도 널 마음껏 부려먹지는 못할 거야.”

사관이라는 말에 루이스는 눈이 번뜩 뜨였다.

회장님 옆에 있다 보면, 그 사관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말이다.

루이스는 신이 나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클레어가 말한 대로 이안은 성실한 학생회장 흉내를 내면서 게시물을 부착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어서 와, 루이스 스위니. 기다리고 있었지.”

루이스는 그가 든 안내용지의 절반을 나누어 들었다.

“어디까지 붙이셨어요?”

“거의 다 했어. 내부 게시판에만 붙이면 끝이야.”

“내부는 제가 붙이고 나올게요. 클레어가 여기를 다하면, 강의동 1층도 해야 한대요.”

“알고 있어. 뛰지 말고 천천히 다녀와. 어차피 오늘 중에만 다 하면 되는 거니까.”

루이스는 이안을 스쳐 지나가며, 두 명의 사관들과도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잠시 루이스에게 시선을 두었지만, 특별히 인사 같은 것을 건네지는 않았다.

“저, 안녕……하세요?”

루이스가 먼저 말을 걸었지만, 그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안이 사관들을 대신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기록 중인 사관은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관례라서 말이야.”

하지만 어제는 그 ‘없는 사람’이 루이스에게 수신호를 보냈었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없는 사람이라니, 그럼 전하도 평소에는 사관 분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으시나요?”

“처음에 학생회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후로는 그다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사실을 모두 글자로 옮겨 보존하는 것이니까.”

“정말로 일어난 사실을 모두……적으시는 건가요?”

루이스는 그리 물으며 젊은 사관 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에게서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대와 내가 일은 하지 않고 이렇게 사관들의 직업을 탐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남으면 곤란해.”

이안이 루이스의 등을 통통 두드리며 어서 일하라 재촉했다.

이후로 루이스는 몇 시간이나 사관들과 함께 있었지만, 기대했던 시간은 오지 않았다.

애초에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니 더욱 불안했다.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제라도 솔직하게 이안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 같은 것을 이용하면 비밀리에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일 사관이 비밀로 해 주고 있다면…….’

그런 경우, 이안에게 알리는 건 엄청난 행운과도 같은 호의를 걷어차는 꼴이 된다.

‘아 정말 어떻게 해!’

조금만 더 있으면 사관들도 궁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 전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텐데.

어떤 방법이 옳은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루이스는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루이스?”

겨우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뻑뻑한 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니, 남성용 제복이 보였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어, 음. 미안해요. 온실의 루이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다정한 목소리에 루이스는 얼른 몸을 벌떡 일으켰다.

“헤셰 경?!”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방이었다.

“어, 어떻게 들어왔어요?”

루이스는 황급히 이불을 끌어안으며 물었고, 그는 헤실 웃으며 창문을 가리켰다.

“위험하잖아요.”

“괜찮아요. 늘 이렇게 다니니까요. 그보다 제게 화내지 않아요?”

헤셰는 루이스에게 바구니를 내밀며 물었다. 바구니에서는 색소 사탕의 단내가 났다.

“놀라긴 했지만, 헤셰 경에게 화를 내지는 않아요. 회장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헤셰 경이 움직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요.”

“헤에, 황태자비가 다 되신 것 같네요.”

“그,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하지만 사실인걸요. 전하는 루이스를 목숨 바쳐 사랑하고, 그런 사람과는 결혼하죠. 그리고 세상은 전하의 짝을 황태자비라고 부르고요.”

“으,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어라? 온실의 루이스. 설마 전하를 죽이고 싶어졌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하게 되겠네요. 결혼.”

정말이지, 헤셰의 초월 논리는 아무도 이길 수가 없다.

그리고 가끔 보면, 결론적으로는 그의 말이 옳을 때도 있는 것 같고.

통찰력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허술하고. 참 이상한 사람이다.

“사탕……고마워요.”

“먹고 나서 이 닦는 거 잊지 말아요?”

“윽, 어린애가 아니니까 그 정도는 알아요.”

“나한테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 걸요. 늘 물가에 내놓은 소중한 아가씨 같단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헤셰는 이런 식으로 몇 번인가 스위니 저택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양한 사정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오늘 루이스와 전하가 함께 계시는 걸 봤어요.”

“그야……그러셨겠죠.”

“전하가 몇 번이나 움찔거렸는지 알아요?”

“움찔거려요?”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루이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움찔거렸다고요.”

“그런 기색은 없었는데…….”

“없기는요. 루이스와 사관들의 눈은 속여도 저는 못 속여요. 루이스의 얼굴에 정신을 놓고 있다가 무심코 키스할 뻔한 게 적어도 열 번은 넘어요.”

그는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며 밝게 웃었다.

“움찔움찔하는 전하가 너무 귀여워서 불쌍할 정도였다니까요. 사관들이 돌아가면 루이스가 전하를 많이 예뻐해 주어야 해요.”

루이스는 부끄러움과 당황이 반쯤 섞인 얼굴로 헤셰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말을 하려고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온 걸까 싶어서 말이다.

어쨌든 헤셰가 이안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루이스도 엄청 움찔거리던데요?”

“저, 저는 키스하려고 한 적 없어요! 정말로요!”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저어서 부정했다.

“물론 알아요. 그러니 전하께서 더 속이 타들어 가는 거죠.”

헤셰는 조금 흘러내린 다홍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 순간에 그의 시선이 변했다. 다정함이나 상냥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무척 진지하고 무거운 것으로.

“온실의 루이스, 사관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그게 본론이었구나.

“물어볼……것이 있어서요.”

“물어볼 것?”

그가 바로 추궁해 왔고, 루이스는 곤란해졌다.

“저, 전하께 폐가 되는 일은 아니에요. 아니, 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목숨과는 관계가 없으니까 헤셰 경이…….”

“루이스.”

“……네.”

“사관들은 항상 둘이 함께 다니지만, 유일하게 그들이 교대로 일하는 시간이 있어요.”

교대로 일하는 시간?

“그리고 루이스는 이미 그 시간을 알고 있죠.”

“제가……요?”

루이스는 학생회실에서 들었던 사관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럼 회장님이 잘 때는 어떻게 해?」

「교대로 곁을 지킵니다.」

맙소사, 딘 크리시스가 정말 끝내주는 질문을 했었어!

이걸로 알았다.

헤셰가 이 시간에 루이스를 찾아온 이유 말이다.

바로 지금이 그들의 교대 시간이며, 루이스가 젊은 사관을 독대할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알아차린 모양이네요.”

그는 히죽 웃고는 가뿐하게 몸을 움직여 넓은 창틀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깜빡했다는 듯 얼른 잔소리를 덧붙였다.

“제가 여기에 왔다고 전하께 말하지 마세요.”

“왜요? 헤셰 경의 도움을 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은 걸요.”

“그야 물론 저도 루이스의 자랑이 되고 싶지만……. 황태자비가 되려면 비밀리에 사람을 쓰는 법도 배우셔야 할 테니까요. 거슬리는 사람을 처리할 때 편리할 거에요.”

황태자비. 그 어색한 말을 또 듣고 나니까, 조금 기분이 묘했다.

게다가 사람을 ‘처리’한다는 부분에서는, 어쩐지 지난날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원한다면 해치워줄까요? 내일 아침이면 감쪽같이 호흡을 멎게 할 방법을 몇 개나 알아요.」

어쨌든 그에게는 깊이 신세를 졌으니, 루이스는 창가로 다가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헤에. 이런 나에게 고마워해 줘서, 나도 고마워요.”

헤셰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루이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너무 오래 돌아다니지 말아요. 그리고 새벽에는 추우니까, 아무리 다급해도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요. 이 시기에는 감기 환자가 급증하니까요.”

“헤셰도 위험하게 다니지 말아요.”

“그건 전하의 허가를 받아보죠!”

거기까지 이야기한 헤셰는 뒤로 훌쩍 뛰어내렸다.

깜짝 놀란 루이스가 내려다보니, 벽에 붙은 구조물을 이용해서 재주 좋게 1층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는 1층에서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방방 뛰고는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루이스가 이안의 방 근처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방문이 열렸다.

젊은 사관이 나오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문을 닫는 동안 루이스는 복도에 잠시 멈추어 섰다.

긴장으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마침내 몸을 돌린 사관도 루이스를 발견했다.

혹시 그가 도망가거나, 루이스를 무시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그는 루이스와 시선을 마주한 채, 빙긋 웃었다.

꽤 친절해 보이는 얼굴로 말이다.

“……여쭤볼 말이 있어요.”

루이스는 그에게 다가가며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런 모양이네요.”

다행히 그는 대화에 바로 응했다.

“짐작도 갑니다. 신경이 쓰이셨던 거죠? 제가 그 날의 일을 기록하지 않았을까……하고요. 그런 거라면, 일단 사과드리죠.”

그는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사과를 보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알 길이 없어서, 루이스는 그의 사과를 받을 수 없었다.

“충분히 의사 전달을 해 드리지 못해서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이건.”

그는 그때와 같이 검지를 입가로 가져갔다.

“비밀로 해 드릴 테니, 걱정하시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하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고요. 일이 커지면, 저희도 적을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뜻밖에 친절한 대답에 루이스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생각보다 꽤 걱정이 깊었던 건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학생도 적히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똑똑하군요.”

“아, 아뇨. 그야 부끄럽기도 하고…….”

“예.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역사의 어느 한 시점이라고는 해도, 전하와.”

그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재차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나란히 적히는 것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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