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더욱 타오릅니다
루이스는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클레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게 날이 선 그녀는 처음 보았다.
예전에 루이스가 새 학기의 파티에 가지 못했을 때도, 그녀는 다소 분노어린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클레어에게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루이스가 걱정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그 말에 동의 안 했어.”
딘 크리시스였다. 특유의 삐딱한 목소리를 들어보면 확실했다.
‘클레어와 딘이었어요?!’
루이스가 놀란 얼굴을 하며 헤셰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이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람. 친구들의 비밀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되어버리지 않았나.
루이스는 급한 대로 제 귀를 틀어막았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일단 그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손등에는 방음이라는 기능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오고 말았다.
“지금 당장 내 말에 동의해.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너무 잘 들린다. 루이스는 조금 좌절했다.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다고요오!’
그녀는 제 양쪽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물론 여전히 소용 없었다.
“동의 안 할 거고, 네 약혼자가 그런 짓을 안 하면 나도 안 해.”
게다가 그 순간에.
눈치라고는 조금도 없는 루이스의 몹쓸 호기심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대체 클레어의 약혼자가 무슨 짓을 했……. 아니, 아니, 안 들려요. 안 들린다고요!’
최후의 방법으로, 루이스는 귀에 손바닥을 붙이고 떼는 일을 반복했다.
다행히 이 행위는 효과가 있었다. 곧 귓속이 웽웽거리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제대로 들리지 않게 되었다.
팔은 몹시 아프지만 두 사람과의 우정을 생각하면 이게 옳은 것 같았다.
“오……. 재미있는 방법이네요.”
같은 행동을 몇 번 따라 하던 헤셰는 루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루이스는 그의 의도를 바로 이해했다.
이 효과적인 방음 행위 덕분에 루이스의 팔이 떨어질 듯 아프니, 그녀를 대신해서 헤셰가 귀를 막아 주겠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조심스레 제 귀에서 손을 떼었다.
“너랑 상관없잖아!”
잠시 클레어가 화내는 소리가 들렸지만 짧았다.
헤셰가 완벽하게 루이스의 귀를 막아 준 덕분이다.
물론 그의 손은 루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귀에 닿고 떨어지기를 일을 반복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빠르고 큰지, 두 사람의 대화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역시 헤셰 경……. 대단하다니까.’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할 때.
헤셰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곧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헤셰……?”
루이스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귀를 막아 주던 손을 스르르 떨어뜨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루이스는 그리 생각하며, 헤셰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나한테 키스한 건 잘못한 일이야!”
귓가를 스치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루이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일단 헤셰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결정적인 말 앞에서 손을 뗀 거예요…….”
소곤거리는 말로 항의해 보았지만, 그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어쨌든 다시 귀를 막는 것도 우스워졌다. 가장 중심이 되는 말을 들어버렸으니 말이다.
* * *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나한테 키스한 건 잘못한 일이야!”
클레어는 엄격한 얼굴을 하고는 딘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때 넌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뭐?”
“내가 너한테 키스하지 않았으면, 그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할 거였냐고?”
“그건.”
클레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 날은 가까운 가문에서 파티가 있었다. 물론 클레어는 약혼자와 함께 참석했다.
사실 클레어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거의 없는 어른들의 자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을 앞둔 만큼,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라고 하여 따라간 것뿐이었다.
그곳에 부모님을 대신해서 왔다던 딘이 없었다면, 아마 아무와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클레어는 사람들이 유흥에 깊이 빠지게 될 시간을 기다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약혼자에게 양해를 구하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적당히 복도까지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
「조심해서 돌아가.」
그는 의례적인 느낌으로 클레어의 뺨에 가벼이 키스하고는 금방 다시 돌아가 버렸다.
다소 다급하게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클레어는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내일은 저 사람과 누구의 염문설을 듣게 되려나.’
누구든 좋지만, 제발 상대가 유부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수습이 귀찮아지니 말이다.
어쨌든 그녀의 약혼자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클레어도 잘 알고 있었다.
딱히 사랑하여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가문의 오라버니들이 정한 일이니 군말 없이 따르는 것뿐이다.
게다가 남편 될 사람은 저 모양이라도, 그의 부모님은 꽤 괜찮은 분들이었다.
이리스 가문에 원조도 약속했고, 장차 클레어에게 가문의 사업을 잇게 해 주겠다고 계약서를 써 줄 정도였으니까.
하긴 저런 아들을 하나 팔아 치우려면, 그 정도의 조건은 당연히 있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딱히 나쁜 결혼은 아니다.
클레어로서는 제 능력을 활용할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셈이고, 그런 기회를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돌아가려고?」
마침 비슷하게 나선 딘 크리시스가 다가와 묻기에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서 자려고. 조금 피곤하네.」
「그러게 술 좀 적당히 마셔.」
「아직 술도 못 마시는 소년에게 그런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데?」
「너……!」
딘은 무언가를 따지려는 듯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일 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요즘 따라 더욱 크게 느껴진 탓이다.
클레어는 쿡쿡 웃으면서 작은 부채를 펼쳤다.
「화났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 사실이니까.’라며 작게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밖으로 나오니, 거동이 불편한 몇 명의 노부인이 느릿느릿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행동만 느리신 게 아니라, 오랜 친구와 이별을 고하는 시간도 제법 걸리는 모양이다.
두 분은 느린 말로 서로의 안부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특히 아프지 말라는 말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집사가 클레어와 딘에게 다가와 마차 준비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괜찮아요.」
클레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노부인들의 다정한 이별에 방해되고 싶지는 않았다.
「산책이라도 하고 올 테니까요.」
그녀는 환하게 불이 밝혀진 길을 따라 조금 걷기 시작했다.
곧 딘이 말없이 따라와 나란히 걸었다.
「귀여우시지?」
클레어가 문득 그리 물었다. 딘은 그녀의 말이 노부인들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글쎄.」
「있잖아, 나와 루이스도 나중에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
서로의 아픈 관절을 걱정해 주는 친구 말이다.
「아마도.」
「물론, 너와도 그렇게 되겠지만.」
이 말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삐졌나?’
클레어는 제 곁을 돌아보았다.
언제나 그녀보다 작았던 소년은 어느새 이렇게 자랐다. 조금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보지 않으면, 그 표정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을 느낀 걸까.
어딘가 삐딱한 시선이 클레어에게 돌아온다. 묘하게 불만이 섞여있었다.
어릴 때는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아이가 어쩌다가 이런 눈빛을 갖게 된 거람.
「귀여웠는데. 너도.」
클레어는 어린 시절의 딘을 떠올리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시끄러워.」
「귀엽지 않은 대답이네.」
「아 진짜!」
「귀엽지 않은 표정이고.」
「클리어 이리스!」
딘은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클레어의 언행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었다.
「누나라는 귀여운 호칭은 대체 어디에다가 버리고 온 거야?」
그녀에게 그는 귀여운 남동생이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말이다.
「너도 알지만, 나는 동생이 없으니까. 네가 그렇게 불러주면 정말 좋았는데.」
「……개인적인 욕구를 나로 채우지 마.」
「왜? 너도 좋았잖아.」
「좋기는 뭐가!」
「그야…….」
클레어는 눈을 흘기면서 웃었다. 딘을 놀릴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네가 누나라는 마법의 말을 쓰면, 내가 네 부탁과 억지를 전부 다 들어 줬잖아?」
「…….」
그건 그랬다. 딘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그걸 이용해서 클레어의 간식을 그의 몫으로 가져온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대체 넌 몇 년 전 일을 아직도……!」
질렸다는 얼굴로 불만을 토로하던 그는 한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클레어 너머의 어딘가로 고정되었다.
「딘?」
클레어가 그리 물으며,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는 서둘러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사, 산책이나 해.」
「왜 그래?」
「아 그냥 걸으라고! 좀! 시끄럽게 말 좀 그만하고!」
그가 팔을 당기는 순간에, 클레어는 기어이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 조금만이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볼 걸 그랬다.
그랬다면 굳이 돌아보지 않았어도 딘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그곳에는 테라스가 있었고.
한참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연인이 보였다.
정원의 빛이 담을 타고 올라가 둘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클레어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그녀의 약혼자였다.
어쩜 저렇게 그녀의 예상에서 단 한 번이라도 벗어나는 법이 없을까.
단순해서 고맙기도 하지만, 이쯤 되면 질릴 지경이다.
그녀가 시선을 거두려고 하는 찰나. 불쾌하게도 약혼자 역시 클레어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
아, 그냥 걸어가라던 딘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클레어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의 충고를 무시한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클레어는 가까스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가자.」
한숨 섞인 말을 중얼거리며, 딘을 바라보니 그는 아직도 테라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잔뜩 열 받은 얼굴로.
「딘 크리시스.」
클레어가 그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자, 그녀의 팔을 쥔 그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윽……!」
순간적인 고통에 입을 벌리자, 그 사이로 타인의 호흡이 침범했다.
클레어는 입술과 그 안까지 전부 뜨거워지고 난 이후에야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건…….
키스하고 있는 거다. 그녀의 약혼자가 빤히 보는 앞에서, 딘 크리시스와.
그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클레어는 황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가까스로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도 여전히 거리가 가까워서 가쁜듯한 숨이 서로의 얼굴에 닿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늘 멍했던 그의 시선이 지금은 날카롭기 짝이 없다.
「계속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물론 클레어는 그런 제안 따위에 응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누나.」
하지만 그리 부를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깊은 키스가 이어졌다. 꽤 오랫동안.
그녀가 다시 테라스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클레어는 제 입술을 깨문 채,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여전히 딘이 서 있었다. 그날 밤과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정말이지…….
착한 아이다. 아마 클레어가 약혼자에게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하지만 약혼자를 무시하는 것은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그를 인간으로서 존중하지도 않으니까.
그러니, 결국 그와 클레어는 잘 맞는 한 짝이 될 수 있는 거다. 그 관계가 다소 더럽다고는 해도 말이다.
아마 상냥하기만 한 딘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네가 키스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일을 내게 유리하게 사용했을 거야.”
클레어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정해 둔 말을 차분히 꺼냈다.
“결혼 계약서에 조항 하나라도 더 넣을 구실로 사용할 수 있었을걸.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이 키스한 상대가…….”
“클레어!”
“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클레어는 빙긋 웃으며 두 손을 맞잡았다.
“나도 이용할 것은 철저하게 이용해야지.”
딘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우물거리더니, 결국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네가 테라스에서 시선을 떼었을 때. 그 사람, 아니 그 개새끼는!”
“딘!”
“기분 나쁘게 쳐 웃고 있었다고!”
그가 머리를 털어 내며 윽박질렀고, 클레어는 그제야 한 가지를 이해했다. 딘이 어째서 계속 테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게 사람 새끼야? 네게 이용될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냐고!”
사람 새끼가 아닌 것 같다는 점에는 확실히 동의하고 있어서,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용가치는 확실했다.
그거 하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응. 덕분에 이용하기 좋잖아?”
머릿속에 도박과 여자밖에 없는 멍청한 남자니까 말이다.
“너…….”
딘이 질렸다는 얼굴로 바라보기에 클레어는 비로소 안심했다.
그도 슬슬 ‘진짜 클레어’의 모습을 알 때가 되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제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건 흉이나 악이 아니다. 되려 당연한 어른의 미덕이다. 상냥하거나 착하다는 것에 훈장이 수여되는 것은 어린 시절까지니까.
“그러니까, 딘.”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던 차였다.
그가 그녀의 말에 황급히 끼어들었다.
“나는.”
그리고 그의 호흡이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다.
“……안 돼?”
그녀가 대답이 없자, 딘이 물음을 바꾸었다.
“이용할 것은 철저하게 이용……한다며?”
이건 원초적인 제안이었다.
그를 이용해서, 그녀의 약혼자에게 어떤 경각심을 주자는, 그런.
갸륵하고 고맙긴 한데,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미안해, 딘.”
클레어는 한 걸음 그에게서 멀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다지 내게 필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아.”
그가 다시 다가오며 간격을 좁히기에, 클레어는 얼른 더 멀어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대로 가까워지면, 두 번째 키스가 이어질 거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는 실수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소중한 변명을 잃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 다시는.”
그녀는 남동생을 다그치는 것 같은 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지독한 시선이 그녀의 등에 오싹하도록 달라붙는다.
아마 남동생의 것이 아닐, 그런 시선 말이다.
* * *
루이스가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게 된 것도 하루가 지났다.
‘나, 진짜 악역이네…….’
타인의 비밀을 엿들은것도, 그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도 모두 어엿한 악역의 조건에 해당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두 사람에게 당장 달려가서 싹싹 빌고 싶었다.
하지만 헤셰가 그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었다.
「아마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이니까요. 온실의 루이스가 알게 되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일단 입을 싹 다문 채 살고는 있는데.
클레어와 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학생회실에 있는 게 불편해졌다.
게다가 오늘은 딘과 함께 도서관의 일을 돕게 되었다.
정말 신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면, 자비라고는 하나도 없는 냉혈한이 틀림없다.
딘과 루이스를 한 장소에 밀어 넣다니.
“루이스 스위니!”
딘이 부르는 소리에 루이스는 얼른 제 옆에 앉은 딘을 돌아보았다.
“……네?”
반납 도서 목록을 정리하던 그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몇 번을 불러야 대답할래?”
“미, 미안해요.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요.”
“어쨌든 이거. 누가 도서 카드에 기재도 하지 않고, 반납 카트에 던져두고 간 모양이니까 누구인지 찾아봐.”
루이스는 딘이 건네는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익숙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몹시 두근두근! 그이에게 당장 고백하고 싶은 당신에게 전하는 별자리 사랑 점.’
단단했던 책 모서리가 한 학기가 지나는 동안 꽤 닳아 있었다.
아마 아카데미의 수많은 비밀 연애를 돕느라 이리된 거겠지.
‘그러고 보니…….’
루이스는 책을 받아 들고는 빙긋 웃으며, 책을 펼쳤다.
“있죠, 딘. 별자리가 뭐에요?”
“그건 알아서 뭐하게?”
“이 책, 엄청 정확하거든요!”
딘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루이스와 책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 책이 정확한지 네가 어떻게 알아?’ 라는 표정으로.
“어쨌든, 연애 문제에 관한 한 이 책을 따라잡을 도서는 없단 말이에요! 말해 봐요. 무슨 별자리인데요?”
루이스가 채근했지만, 그는 비웃는 소리만 뱉고는 다시 반납 도서 목록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 사자자리.”
아니, 비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루이스는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어느새 딘도 슬그머니 책을 바라보기에, 루이스는 기꺼이 이 멋진 책을 두 사람의 가운데로 밀어 두었다.
“사자자리는요. 그러니까, 딘은 말이에요.”
둘은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책에 집중했다.
“누구보다도 과시욕이 있는 당신은 사랑의 방해자가 있을수록 더욱 타오릅니다.”
루이스가 ‘방해자’라고 말할 때, 딘의 눈썹이 짧게 꿈틀거렸다.
……딘, 정말로 타올랐었군요.
루이스는 말을 삼키며, 심장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이 열렬한 짝사랑이 귀여워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두 사람은 질투쟁이 사자자리를 위한 여러 조언을 정독했다.
책을 함께 다 읽은 후에는 딘도 한결 후련한 마음이 되었는지, 루이스에게 꽤 유하게 대해주었다.
루이스는 제 능숙한 대처가 몹시 만족스러웠다.
……멀리 서가 사이에서 독기를 담은 시선으로 딘을 바라보는 이안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득 떠오르는 이안의 말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와 딘 크리시스는 너무 가까워.」
아마 그의 뒤에 나란히 선 사관들만 없었다면, 그는 루이스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그 말을 또 꺼냈을지도 모르겠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회장님도 사자자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