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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54화 (54/92)

?54. 빈 강의실에서 다급하게

문이 잠긴 후에는 깊이 안도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후우우,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가 루이스를 놓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 저기.”

“음?”

“사무장님과 긴밀이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안은 뭔가 앓는 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 결국엔 작은 소리로 긍정했다.

“그랬지.”

“제가 이번 학기부터 사무장님이 된 건 아니죠?”

“그거 매력적인 제안인데.”

“윽,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 그게 중요한가?!”

“지금 그게 중요하죠!”

“진짜, 이 분위기 없는 아가씨 좀 누가…….”

그는 툴툴거리며 결국에는 루이스를 놓아주었다. 물론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단한 건 아니야. 그저 이 강의실 위에 사무장님의 개인 사무실이 있었던 것뿐이지.”

루이스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이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방법에는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계단을 이용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설마, 창문 바깥을 외벽 타고 내려오셨어요?!”

“굉장하지?”

그가 으스대며 말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둘째치고, 위험하지 않은가.

혹시라도 손이나 발을 잘못 디뎌서 바닥에 떨어지는 참사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다칠지도 모르잖아요. 게다가 그 위험한 짓이 역사에 들어갈지도 모르고요!”

“안 다쳤어. 역사에도 안 들어갔고.”

“그야, 결론적으로는 그렇지만요! 그래도요! 대체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하신 거예요?”

“그야…….”

그는 대답을 고민하며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런 식으로 머리를 만지는 것이 아주 오랜만이었다.

방학 내내 거의 만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나도 가끔은 숨을 쉬어주어야 하거든.”

“저는 사무장이 아니라 호흡기였네요.”

“그래. 내 고귀한 호흡기지. 그러니까 내게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호흡기를 잃어버린 인간은 죽거든.”

으. 진짜 말이나 못 하면.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머리를 슥슥 쓰다듬던 손이 이제는 한쪽 뺨을 쥐었다.

“만나고 싶었던 것뿐이야.”

“……저를요?”

“그래, 루이스 스위니를.”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얼른 제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노파심에 말해 두자면, 단순하게 얼굴을 마주하는 걸 ‘만난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야.”

즉 아카데미 사무실 앞에서 마주친 것은 그다지 ‘만남’으로 느껴지지 않았단 뜻이다.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루이스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수도 어린이를 위한 예법 대백과’를 옮긴 것 같은 대화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으니까.

“대체 뭐에요. 그 훌륭한 우등생 흉내는.”

“난 실제로 훌륭한 우등생이니까.”

“학년 수석에, 학생회장을 역임한다고 해서 훌륭한 우등생이라는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럼 누가 누리는데? 내 여동생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내는 빌어먹을 나의 이웃이 누리게 되는 건가?”

“어쨌든……좀, 이상했단 말이에요.”

“저런.”

“솔직히 말하면, 조금 전에 회장님이 ‘불경한 시선’이라고 말씀해 주실 때, 이상할 정도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역시 저……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이안은 잠시 킥킥대며 웃더니, 손끝에 닿은 루이스의 뺨을 가볍게 만지작거렸다.

“그래, 뭔가 좀 이상하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나도 그런걸.”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루이스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나도 그런걸’이라는 부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분명했다.

“가령, 나는 그대가 불경한 시선으로 날 바라볼 때, 뭔가 오싹오싹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네?”

“게다가 날 신용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 여기 미간 즈음에 주름이 질 때가 있는데. 그게 또 굉장히……뭐라고 해야 하나. 더욱더 괴롭히고 싶어진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불행해지네요.”

“변태에게 세금을 내는 것 같아서?”

그가 환히 웃으며 루이스의 의중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하긴 그렇게 몇 번이나 말했으니, 이제는 자연스레 알아들을 때도 되었다.

“게다가 제가 그 몹쓸 성향을 학습하게 된 것 같아서요.”

“그건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군. 사과하지.”

그는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얼굴로 사과했다. 아니 도리어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보면, 역시 회장님은 그냥 절 괴롭히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들었다가 놓는 일을 미친 듯이 반복할 리 없다.

“그럴 리가. 전에도 말했지만, 꽤 진지하게 구애하고 있어.”

“으, 대체 무슨 구애가 이래요!”

“다만 그대가 자꾸 분위기를 깨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 문제지.”

“제가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도 그대를 열렬하게 찾는 남자에게 ‘사무장 면담 관련 진상규명’을 요구했지.”

“……그건.”

“그대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면, 서로의 변태성을 고백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그럼 뭘 하고 있었을까요?”

“……알고싶어?”

그가 진지하게 묻기에,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열렬히 고개를 젓고 말았다.

“저, 전혀요!”

“봐. 또 분위기를 와장창.”

으……. 그게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결단코.

“너무 오랫동안 알아와서 뭔가 진지한 게 어색하단 말이에요.”

“알아. 그게 소꿉친구의 불리한 점이지. 게다가 그대는 내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그래. 그게 문제다. 뭔가 반발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럼 잠시 이렇게 할까.”

“어떻게요?”

“물론 나는 그대의 발랄한 언변을 사랑하지만, 잠시만. 아주 잠시만 말이야.”

“잠시만?”

“신체를 이용해서 간단히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모, 모, 몸으로요?! 회장님 미쳤어요?!”

이안은 기절할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루이스를 쳐다보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라는 소리였는데……. 대체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가능하면 아주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데.”

“그, 그런 거라면 그냥 평범하게 고개를 끄덕이라고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난 그저 다양한 의사 표현을 존중해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손을 젓거나, 몸을 돌리는 여러 가지 방식이 존재하니까.”

“으…….”

“어쨌든.”

그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게 간단히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끄덕끄덕.

“옳지. 잘하네.”

칭찬하며 뺨을 쓰다듬는 것이 어째 강아지 취급 같다.

‘사람으로 취급해 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루이스는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뭔가 반발하고 싶었나?”

루이스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았어. 이 불경한 표정을 보면 알지.”

그는 루이스가 앙다문 입술 근처를 손끝으로 쓸었다.

“너무 꽉 깨물지 마. 아플 것 같으니까.”

아프지는 않았으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정도만 했으면 좋겠는데, 꼭 내가 괴롭히는 것 같잖아.”

루이스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석하면 그건, ‘괴롭히는 거 맞아요! 완전히 괴롭히고 계시다니까요?’ 라는 뜻이었다.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정말로.”

루이스는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짓눌려 하얗게 되었던 입술이 천천히 제 색을 찾아가는 동안, 이안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꽤……. 불안했었거든.”

루이스의 고개가 가볍게 기울어졌다.

“왜냐니, 어떻게 그대가 그걸 모른다고 할 수 있지?”

“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는 얼른 손바닥으로 제 입을 막았다.

그러고 보니 말로 대답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어쨌든 그가 무엇 때문에 불안했던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대는 시몬을 너무 좋아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봐, 이렇게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물론 나도 시몬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의 대답에 루이스가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게다가 시몬은 내게 없는 장점이 많이 있지.”

다정하다던가, 손재주가 좋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와 함께 있는 루이스는 아주 편안해 보여서, 만나기만 하면 땍땍거리는 이안과는 몹시 비교되었다.

“그러니 실례되지만, 멋대로 상상하기도 했어. 혹시, 그대가.”

그는 조금 몸을 낮추어 시선을 가까이했다.

“빈틈없이 내리는 빽빽한 비를 보면서, 내 생각을 해 준다면 좋을 텐데……. 하고 말이지.”

물론 그가 생각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랐지. 그대가 가끔은……. 내가 남겨둔 말을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기를. 그땐 장난처럼 말했지만, 아마 그대는 알 거야.”

그는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쥔 채로, 다정히 속삭였다.

“정말로 내게는 하나밖에 없는 말이라는 걸.”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얼굴에 닿은 손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루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몸짓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소중히 했어요.”

이따금 자기 전에 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떠올릴 정도로 말이다.

“그래.”

시몬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루이스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을 거다.

이안은 그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이 그저 악하게만 느껴졌다.

“사실은 그대에 대해 그렇게 아름다운 생각만 한 것은 아니었어. 그대도 알지만 난……이런 성격이니까.”

그는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루이스는 그것이 억지로 비틀어 낸 것임을 금방 알았다.

“혹여 시몬의 상냥함에 그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놓지 못하리라 생각했었지.”

그는 결국 제 비겁한 생각을 고백하고 말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그대를, 그대의 마음을……. 내게로 붙잡아 두려 했을 거야.”

그녀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의 더러운 인간성에 대해서.

“정말……. 추악하게도 말이지.”

이안은 이런 제가 혐오스러웠다.

시몬의 삶을 방해한 죄를 안고도, 그가 간절히 바라는 단 한 가지마저도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 그대가 택하려는 남자가 이 정도로 불량품이라는 사실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루이스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또 나를 위로 할 생각이로군. 그렇지? 봐. 나는 그대의 동정을 이리도 영악하게 살 수 있어. 애초에 그대는 너무 상냥해. 이런 나에게도 이렇게나 달콤하게 굴어주니, 당연히 그대를…….”

그의 목소리가 잠시 흐릿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시선은 더욱 분명해졌다.

뺨을 쥐었던 손이 어느새 머리카락 사이로 침범하여, 가볍게 결을 만들며 쓸어내렸고 간격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종국에는 서로의 이마가 가볍게 닿았다.

“……루이스 스위니를.”

그는 ‘그대’라는 말을 그녀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조금 더 분명해지도록.

“나의 진심으로 두고 싶어졌지.”

그러니까, 그건…….

루이스가 그 의미를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깊이 사랑한다고, 루이스 스위니를.”

그 목소리의 여운이 전부 흘러간 이후, 그는 허락을 구하듯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그는 앞서 이야기했던 제 단점들을 떠올렸다.

추악하고, 이기적이며 집착까지 하는 인간이 과연 이런 마음을 가져도 되는 걸까.

“괜찮아요.”

너그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저를 하나밖에 없는 진심으로 두세요.”

그것도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다정함까지 간직한 채로 말이다.

“이미 제가 그리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물론 나도 그리된 지 오래되었지.”

그는 루이스의 입술 끝에 가볍게 키스한 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음, 어쩐지 결국 동화책의 왕자들에게 패배한 느낌인데. 이거.”

“아직도 그걸 신경 쓰고 계셨어요?!”

“별수 없잖아. 나도 그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고. 어쩌다가 이런 빈 강의실에서 다급하게…….”

“다급하셨어요?”

말 허리를 자르며 확 찔러오는 물음에 이안은 살짝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래 확실히, 좀 다급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내 삶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그대가 모자란 적은 없었어.”

“작년에도 거의 만나지 못했잖아요.”

“그때는 그대가 똑똑하고 귀여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말랑말랑하고 부들부들하고 달콤하기까지 한 완벽한 생명체인 줄 몰랐다.

“어쨌든. 모처럼 다시 만나는가 했더니, 예정에도 없는 방해꾼이 궁에서 두 명이나 파견되고.”

“그건 좀 불편하긴 하죠.”

“그래. 게다가 그대는 못 본 사이에 더 깜찍해져서 돌아왔는데, 나는 그대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만질 수가 없어!”

“만지고 싶으셨어요?”

“그대만 허락하면 늘 만지고 싶지. 당연한 거 아닌가.”

“……당당하시네요.”

겨우 머리카락을 만진다는 말이 이렇게 부끄럽게 들릴 줄은 몰랐다.

“아! 그래도 저는 좋았어요.”

루이스는 제 심장 근처로 손을 모아 잡으며 헤실 웃었다.

“다급하셨다는 말이요.”

“……그게?”

“회장님은 늘 여유로우시니까요. 좀 특별하게 느껴져서요.”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였고, 이안은 양쪽 팔을 가벼이 내밀었다.

“그럼 실제로 특별한 일을 좀 할까.”

“특별한 일이요?”

루이스가 묻기에 그는 제가 내민 손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잡으라고요?”

“설마. 지금 사교댄스 수업을 할 리가 없잖아. 그대만 괜찮다면, 부디 가까이 와 달라는 뜻이지.”

물론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루이스는 기꺼이 그의 팔 안쪽으로 훌쩍 걸어 들어갔다.

“이렇게요?”

“그래. 이제 안아도 되나?”

“그야 물론 괜찮지만……. 그런데 정말 뭘 하시려는 거예요?”

“뭘 하는 건 내가 아니고, 그대야.”

“저요?”

그리 물을 때는 루이스의 몸이 번쩍 들어 올려진 뒤였다.

“회장님?!”

루이스는 그의 어깨를 짚으며 가까스로 중심을 찾았다.

“노, 놀랐잖아요.”

이제 눈높이가 바뀌어서 루이스가 그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특별하긴 하네요.”

이런 식으로 그를 내려다본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대에게 청하고 싶은 것이 있어.”

하지만 그가 찾는 특별함은 아마 새로운 시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말씀하세요.”

“들어줄 텐가?”

“내용에 따라서는요.”

“꼭 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그대밖에 하지 못하는 일이거든.”

그리 중얼거리는 말에는 미약하게나마 쓸쓸함이 묻어났다.

“괜찮다면, 그대가 나를.”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축복해 주었으면 해.”

루이스는 그가 말한 ‘특별함’을 이제야 이해했다.

축복이란 상대의 행복을 바라며, 그 이마에 입을 맞추는 행위를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가까운 이들과 그런 다정한 키스를 나누며 지낸다.

그건 거리의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예외였다.

그는 너무나도 고귀하여 감히 누구도 그를 축복할 수는 없었다.

공식적으로 그것이 허락되는 이는 최고위의 사제와 부모 그리고 연인뿐.

“어릴 때야 사제님과 부모님의 축복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걸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거든.”

사실은 평범하게 축복을 나누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서로의 이마에 키스를 남기거나, 다정하게 바라보는 것들을 말이다.

그는 가질 수 없었으니.

“물론 그대가 싫지 않다면 말이야.”

“……싫을 리가 없잖아요.”

루이스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냈다.

“언제라도, 제게 축복을 바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루이스는 고개를 숙여 조금 드러난 이마 위로 입을 맞추었다.

“이안 오드모니얼이 향하는 끝에 행복이 있다는 걸 믿고요.”

“그건, 내게 그대가 있다는 뜻인가?”

루이스는 장난스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조금 달라요. 사관들이 회장님께서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는 뜻이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 너머에서 이안을 찾는 사관들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안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창문을 통해서 기어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된 거다.

부디 역사에 적히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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