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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53화 (53/92)

?53. 연애할 수 없다니!

“빨리빨리 좀 다녀라.”

빼꼼히 문을 열자, 곧바로 딘 크리시스의 날카로운 지적이 들렸다.

“……딘?”

실내를 돌아보니, 딘이나 회장님은 물론이고, 학생회에 속한 모든 이가 나란히 앉아 루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이스는 얼른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근엄한 회장님의 얼굴을 한 채, 상석에 앉아있었다.

루이스는 제 자리로 찾아가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기대를 한 거람.

아니지. 이건 기대를 조금 할 만했다.

애초에 학생회 모임을 공지하면서, 입술을 지분거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루이스는 자리에 앉아 이안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그가 자주 ‘불경한 표정이구나.’라고 지적하는 그 얼굴로 말이다.

“방학 동안.”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회의를 시작해 버렸다.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낸 것 같아서 기쁘군.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문제’란 개인사가 포함되지 않으니, 제발 그 무서운 얼굴 좀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클레어 이리스!”

이안의 지적에 루이스가 클레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방긋 웃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루이스는 그녀의 무서운 얼굴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일단 오늘 비상소집을 한 건, 두 가지 좋지 않은 소식이 있어서인데.”

이안은 얇은 종이 하나를 팔랑이며 꺼내 들었다. 언뜻 보아 시간표처럼 보였다.

“신문에서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라피스 가문 쪽에 명예롭지 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스텔라 라피스가 일주일가량 늦게 도착하게 될 거야.”

“……아, 도서관.”

누군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도서관에서 스텔라 라피스의 자리를 대신 할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웬만하면 내가 가서 하려고 했는데…….”

이안은 삐딱하게 턱을 괴며 한껏 싫은 얼굴을 했다.

“이쪽도 사정이 있는지라, 혹시 자원할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군.”

“일단 회장님의 사정부터 들어봐도 괜찮아?”

클레어가 이안보다는 그의 뒤에 줄곧 서 있던 두 남자를 신경 쓰며 물었다.

실은 루이스도 그들에게 계속 관심이 갔다.

지금까지 이안의 수발을 드는 많은 시종을 봐 왔지만, 저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한 명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제 막 성인을 지난 젊은이였다.

하얀 로브를 입은 두 명의 남자는 양손에 각각 종이와 펜을 들고 쉼 없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바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두 번째 안 좋은 소식인데.”

이안이 잠시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제 뒤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에 대해 말하는 것도 적을 건가?”

이안이 묻기에 두 사람 중 노인 쪽이 기꺼이 허리 숙여 대답했다.

“저희는 위대한 분의 모든 존엄함을 기록하여 대대손손 남기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물론 그 대화의 끝에서 노인의 펜촉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거다.”

이안은 최대한 말을 아끼려는 듯 짧은 말을 하며, 양쪽의 남자를 가리켰다.

물론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므로,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사관일 것이다.

그리고 황태자 전하의 갸륵하고 성스러운 아카데미 생활을 기록하여 대대손손 남기려는 것이다.

루이스는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혹시 거기에 제가 가장 늦게 왔다는 기록도 들어갔나요?”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고, 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대대손손 회의에 늦게 온 사람으로 남게 생겼다!

클레어를 돌아보니, 그녀 역시 좌절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서운 표정의 클레어 이리스’가 역사의 한 편으로 자리 잡고 말았으니까.

“뭐, 나의 사실적인 아카데미 생활을 기록하는 거라고는 해도……. 형편없는 인간으로 남고 싶지는 않으니, 앞으로 일주일 동안 다들 잘 부탁해.”

“그냥 회장님이 일주일 동안 기숙사에 처박혀 있으면 안 돼?”

책상에 엎드려 있던 딘이 삐딱하게 물었고, 물론 그 발칙함도 결국 역사에 들어가고 말았다.

“될 것 같나.”

물론 이안은 딘의 제안을 가볍게 무시했다.

“하지만 수업 때 노트 필기를 대신 해주실 수 있다는 점은 좋네. 수업도 같이 듣는 거지?”

한 남학생이 애써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하긴 저렇게 빠른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다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문장을 모두 적어 넣을 수 있을 거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해서 확인해 봤는데. 이들은 검열에 대항할 의무가 있어서, 노트 필기를 보여줄 수는 없는 듯하더군.”

“그럼 회장님이 잘 때는 어떻게 해?”

딘의 질문에 이안도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젊은 사관이 입을 열었다.

“교대로 곁을 지킵니다.”

이안이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사관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모양이다.

“……설마 잠꼬대도 역사에 들어가는 건가.”

“빠짐없이요.”

“쓸데없는 기록으로 종이를 낭비하는 건 아닌가, 그거.”

“쓸데없는 기록이란 없답니다.”

젊은 사관이 자랑스러워 하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도무지 신용이 가지 않았다.

“……회장님이 이상한 꿈을 꾸지 않기를 기도할게.”

클레어가 가만히 손을 모아 기도했다.

“고맙다. 사관들에 대한 질문이 없다면 이제…….”

제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이안과는 달리, 학생들은 아직 사관들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모양이다.

오늘 저녁은 회의보다는 ‘극한 직업, 사관.’에 대한 이야기가 더 길어졌다.

정작 중요한 도서관 일은 모두가 하루씩 돌아가며 공평하게 하는 것으로 대충 정해 놓고서 말이다.

* * *

회의가 끝나고 루이스는 한 가지를 깨달았는데,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제게 ‘아무런 연애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부터 이안은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간다.

아무리 뻔뻔한 황태자 전하라고 하시더라도 사관들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에 무언가를 하실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니, 애초에 해서도 안 된다.

저기에 적힌 글은 최고위 마법사의 마력과 든든한 세금의 이름을 걸고 영원히 남게 된다.

거기에 루이스의 사적인 연애사가 들어가게 되고, 훗날 어느 역사가가 그 부분을 읽게 된다면.

부끄러워서 죽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땐 이미 죽었겠지만. 어쨌든!

그러니 루이스는 잠시 이안에 대한 것은 잊고, 제 친구인 클레어를 신경 쓰기로 했다.

“클레어.”

루이스는 클레어에게 팔짱을 끼우며 친근하게 달라붙었다.

물론 상냥한 클레어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루이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루이스, 정말 오랜만이네. 수도에서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바빴어요?”

“음…….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

두 사람은 복도를 지나, 어두워진 교내를 함께 걸었다.

“이런저런 일?”

“조금 복잡해.”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고, 루이스는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당연히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클레어는 제 팔을 쥔 루이스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아…….”

그녀가 뭔가 혼란스러워하는 목소리라서, 루이스는 섣불리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보다 루이스.”

뭔가 떠올린 클레어는 꽤 밝은 얼굴이 되었다.

“방학 동안에는 쉴 수 있었겠네?”

“……저, 저요?”

“그야, 회장님이 라피스 영지로 가서까지 널 귀찮게 하지는 않았을 것 아냐.”

클레어는 ‘귀찮게’라는 말을 할 때는 다소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 사관들이 들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아.”

루이스는 작게 입을 벌린 채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걸까.

키스는 몇 번이나 했지만, 연인은 아닙니다.

……대체 뭐람. 이 끔찍한 사실관계는.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이스는 황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뭔가 확실하게 된 후에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클레어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루이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좀 마음에 걸렸고.

“물론 회장님은 뵙지 못했지만, 대신 온실이 바빴어요.”

“하긴, 비의 계절에는 늘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맞아요. 다들 데이트를 하러 오죠. 클레어도 나중에 꼭 데이트하러 와주세요. 직원용 출입구를 살짝 개방해 줄게요.”

루이스는 헤실 웃었다.

“그건 영광인데.”

“나중에 딘에게도 말해 주어야겠어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게는 최고의 체스 파트너고 클레어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니까요.”

물론 그 게으른 딘 크리시스가 온실까지 행차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클레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니, 뜻밖에 순순히 올지도 모를 일이다.

“뭐 확실히, 딘도 좋아……하겠지.”

어째 반응이 미묘하다. 루이스는 클레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맹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클레어도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양이다.

설마, 딘 크리시스가 방학 동안에 제 짝사랑을 봉인해제 한 것은 아니어야 할 텐데.

하지만 클레어의 반응을 보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인 것 같다.

설마. 두 사람도 ‘키스는 했지만, 연인은 아닙니다.’라는 무서운 사실관계에 봉착한 것은 아니겠지.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어는 약혼자가 있고, 이번 겨울에는 결혼까지 할 테니까!

“클레어.”

“응?”

“그, 저 혹시. 이야기할 곳이 필요하면 제가 그…….”

루이스는 괜히 제 뺨을 긁었다.

“무, 물론 그냥 말해 두는 거예요! 이제 학기는 시작되었고, 클레어도 저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가, 가끔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냥, 뭔가 엉망인 말 뿐이라도요.”

“엉망인 말이라도 괜찮아?”

“어순이 바뀐 말도 괜찮아요! 저도 당황하면 그렇게 되거든요!”

열렬한 대답에 클레어가 결국 쿡쿡 웃고 말았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루이스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고마워, 루이스.”

클레어는 루이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마……. 미래의 나는 네게 전부 다 말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

“클레어…….”

“그 전에 일단 혼자서 더 생각해 볼게.”

“저는 언제라도 괜찮아요. 정말로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루이스 스위니.”

클레어는 다정하게 웃으며 같은 말을 되돌려 주었다.

“나 역시 언제든 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엉망인 말이라도요?”

“숨소리뿐이라도 말이지.”

흐으…….

숨소리라도 들어준다니 너무너무 다정한 말이다.

감동한 루이스가 눈을 반짝이며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슬퍼졌어요. 이런 완벽한 클레어와 연애할 수 없다니!”

“어머, 언제부터 그런 관념에 사로잡힌 거야? 루이스는 이번 학기에는 다양한 문화와 사상에 대해 수강해야겠는걸.”

클레어는 몇 가지 수업을 추천해 주면서, 그 내용도 짚어 주었는데.

그녀가 전하는 내용 중 하나는 인간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루이스는 깊이 감동하며 클레어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루이스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인간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지만, 역사에 제 생애를 기록 중인 인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이지 오늘의 이안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구김 하나 없는 셔츠에, 깔끔하게 빗어 내린 머리를 하고서는 몹시 훌륭한 모범생 흉내를 냈다.

게다가 바른 자세로 걷고 앉으며, 식사는 소스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삐딱한 자세로 ‘달걀이 너무 익었는데.’라며 불평하던 지난날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는 다른 학생들이 시간표를 짜는 것을 도와주고, 일이 많아 곤란한 관리 부인을 돕기도 했다.

‘제발 평소에 좀 그렇게 훌륭히 사시란 말이에요!’

물론 루이스는 이런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불충한 루이스 스위니’로 역사에 남아버릴 테니까.

어쨌든 저 잘난척쟁이가 역사에 어떤 식으로 기록되고 싶은지 잘 알 것 같았다.

‘빈틈없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거겠지.’

“루이스 스위니.”

그리고 그 빈틈없는 황태자와 루이스는 아카데미 사무실 앞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만나서 반가워, 희망 시간표를 제출하러 온 건가?”

그는 녹아내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수도 어린이를 위한 예법 대백과’에 나올 것 같은 말을 걸어왔다.

완벽한 황태자의 모습을 열연하려는 모양이니, 루이스도 적당히 맞추어 주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맞아요. 시간표를 제출하러 왔어요. 회장님은요?”

“잠시 사무장님과 긴밀하게 면담할 내용이 있어서. 시간표는 잘 짰나?”

“네. 이제 학생회실로 돌아가려고요.”

평소라면 아마 어떻게 시간표를 짰는지, 무슨 수업이 어땠는지 신나게 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리되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의 망측한 수업 후기’를 역사에 넣고 싶지는 않으신 모양이니.

……뭔가 더 대화할 게 없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멍하게 서로 얼굴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루이스는 필사적으로 다른 말을 찾아냈다.

“아. 책 말인데요.”

“그대가 빌려주었던 책 말이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 그렇지 않아도 언제 돌려주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지. 답례라든가.”

평소라면 ‘쿠키 하나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읽었지. 대단하지 않나?’라는 말로 잘난 척을 했을 텐데.

“다, 답례라뇨. 그런 건 괜찮아요.”

“하긴, 나도 그대에게 빌려준 것이 있으니까.”

비, 빌려준 것……!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 제 입술을 만지작거릴 뻔했다.

물론 얼른 머리를 긁는 시늉을 하며 회피할 수 있었지만.

“아, 흐흐…….”

맙소사, 회장님.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실 수가 있어요?

“그 반응을 보니……. 설마 수도에 두고 온 건가? 그건 곤란한데.”

“아, 아니에요! 어떻게 제가 감히! 아니에요!”

“다행이군, 그럼.”

그는 자애롭게 웃는 군주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루이스를 지나쳐 사무실로 들어갔다.

물론 그의 뒤로 쉼 없이 펜을 놀리는 사관들이 따라 들어갔다.

아마 ‘전하께서 루이스 스위니에게 책을 빌리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었을 거다.

물론 루이스가 멍청하게 머리를 긁었다는 내용과 함께.

억울하기 짝이 없네. 진짜, 이게 뭐야.

루이스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서 긴 복도에 들어섰다.

강의실 주변은 아직 한가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는 것이 다음 주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말이다.

강의실을 지나서 학생회실에 가면 클레어가 있을 거다.

그녀를 만나면 이번에는 공강 시간이 몇 번이나 겹칠지 세어 볼 예정이었다.

클레어와 루이스는 서로를 좋아하는 사이니까 말이다.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루이스.”

그때, 강의실 근처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클레어와 시간을 보내는 달콤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루이스는 몹시 행복한 채 고개를 돌렸다.

강의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그 틈 사이로 살아계신 역사의 인물이 서 있었다.

“……회장님?”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제 손을 내밀었다.

루이스는 다소 의심스러운 시선을 하고는 그와 손을 위아래로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함정인가 싶어서 말이다.

“대체 뭐지? 그 불경하기 짝이 없는 시선은.”

평소의 말투다.

……이런 말을 내심 반가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런 삐딱한 성격이 역사에 들어가도 괜찮아요?”

루이스는 소심하게 제 손을 건넸다. 거의 손끝만 닿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말이다.

“알게 뭐야.”

그는 손을 고쳐 잡으며, 동시에 루이스를 제게로 당겨 왔다.

잠시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 루이스는 순식간에 그가 서 있던 강의실로 딸려 들어가게 되었다.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놀라움이 사그라들자, 비로소 그녀를 감싼 현실이 하나씩 느껴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좁은 틈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멀다는 듯, 혹은 부족하다는 듯 루이스를 제게로 당겨올 뿐이었다.

곧 호흡이 부족할 만큼 허리가 죄어졌다.

그녀가 겨우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을 뱉었을 때, 귓가에 달라붙은 낯선 호흡 소리를 깨닫게 되었다.

마치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이제야 겨우 꺼내어 보는 것 같은…….

“저어.”

한참 만에 루이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입술이 그의 옷에 닿아있어서 옅은 입김이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 괜찮아요……?”

그러니까 사관들 말이다.

다행히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대가 괜찮다면.”

나른한 대답 후에는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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