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마지막까지 그 감정을
선황비께서 함께하시는 자리에서, 시몬은 완벽한 힐라드 공자님이 되었다.
루이스는 지금까지 그를 ‘공자님’이라 불러왔지만, 사실 진짜 공자님의 모습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려낸 것 같은 미소를 걸치고, 준비한 것 같은 말을 유려하게 흘려보냈다.
조용하고, 말 한마디마다 느긋하게 생각하던 평소의 시몬이 아니었다.
“루이스.”
시몬이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루이스는 얼른 그를 붙잡았다.
시몬은 루이스를 당겨주었고, 이제 두 사람은 마주 서게 되었다.
루이스는 그를 놓으며, 제 옷자락을 쥐었다. 손끝에 밴 땀이 옷자락에 스며들었다.
“스위니 양.”
그리고 예고도 없이, 약속된 말이 시작되었다.
그는 마치 동화책의 왕자님이 그러하듯,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가 자세를 바로 했을 때, 루이스는 마주친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몬의 충고가 떠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서 시선을 떼지 마. 오랜 예절 중 하나니까.」
시선 끝의 그가 친구처럼 웃었다.
그 눈매에는 ‘잘했어.’라는 격려가 담긴 것 같았다.
그리고 루이스가 몇 번 눈을 깜빡이는 동안 시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바깥의 소리가 실내로 침범해 왔다.
끈질긴 빗줄기의 소리.
비의 계절에 원래 이렇게 비가 자주 왔던가?
시몬은 자연스레 몇 가지가 떠올랐다.
검은색 우산과 노란 마타리꽃 그리고 비에 차가워진 손가락 같은 것들.
“같은 비를……맞았었죠. 우리.”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가 해야 할 말과는 다른 것이나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그의 말에 루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세 번째 비가 오네요.”
“자연을 사랑하는 스위니 가문의 루이스께서는 아마 제 생각에 반대하시겠지만.”
그는 루이스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제게 날씨란. 사실 거기서 거기라서, 태양과 구름 그리고 비와 눈으로밖에 구별되지 않습니다.”
“반대……하고 싶긴 하네요. 말씀하신 대로요.”
그가 그렇지요? 라며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기에 루이스는 적지 않게 놀랐다.
약속했었으니까.
이야기하는 중에는 절대로 시선을 떼지 않겠다고.
“하지만 제게는 네 개뿐인 소중한 날씨입니다. 그리고.”
그리 대답한 말가 다시 루이스에게 시선을 두었다.
“당신에게 비를 바칩니다.”
이제 시몬은 그 날씨를 홀로 끌어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몇 번의 소중한 기억을 하나씩 곱씹었다.
“우리가 기념하게 된 것과.”
그 모든 기억에서 그 날의 반짝이는 빗물이 배어 나왔다.
“그대가 깨닫게 된 것 그리고……. 지워져 버린 것.”
어쩌면 그 순간마저 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의 기억은 손끝의 습기처럼 끝끝내 달라붙어 있을 겁니다. 아마 태양은 그것을 지워낼 수 있겠지만.”
‘태양’이라는 말에는 자연스레 두 사람 모두 같은 이를 떠올렸다.
시몬은 제 입술을 깨물었다.
“설령……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시몬은 조금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한 마디씩 천천히, 생각하고 생각하며. 평소의 그가 그리하듯.
“비는 다시 옵니다.”
몇 번의 계절을 돌아서라도, 비는 반드시 다시 오게 된다.
“이제부터 제가 가진 모든 비의 날은 당신에게 종속될 겁니다.”
그는 잠시 심호흡하고는 이어지는 말을 생각했다.
이미 정해진 말에서 너무나도 멀어졌다. 하지만 마지막만큼은 형식을 따라야 한다.
“그러니, 감히 바라건대.”
오랜 전통이 만든 문구를 앞두고 시몬은 고민했다.
그는 루이스를 안다.
그녀는 진실로 시몬 힐라드를 소중하게 여긴다.
‘눈을 떼지 말라.’는 시몬의 말을 지금까지 지켜줄 정도로.
아마 그가 억지를 부린다면, 그녀는 그의 마음을 가볍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를 괴롭히는 것은 이안의 역할이지, 시몬의 역할은 아니다.
그는 언제까지나 루이스의 편이었다. 루이스가 언제나 시몬의 편에 서는 것처럼.
“당신에게 관계를……청하지 못하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마저 약속된 말과 달랐다.
그는 루이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시몬이 거절을 당해야 한다고 했었다.
수도 공작가의 청혼을 거절한 경력은 그녀의 인생에서 꽤 괜찮은 이력이 될 수도 있다고도 했었다.
물론 루이스는 그런 이력에 조금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시몬의 상처를 그녀의 영광으로 삼는 것만 같아서.
아마 시몬은, 루이스의 그런 마음마저 헤아려서 기꺼이 말을 바꾸어 준 것이리라.
상냥하다니까, 정말.
이런 순간까지도…….
그렇다고 하여, 그가 상처 입지 않는 것도 아닐 텐데. 어쩌면 더 아플지도 모르는데.
“대답해 주세요. 루이스 스위니.”
멀리 앉은 선황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뭔가 아쉬워하시는 투긴 했지만 말이다.
루이스는 고민하며 몇 번인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마땅한 말을 찾지는 못했다.
“……아마 공자님도.”
더듬거리며 시작된 말은 목소리가 갈라져 흉하기만 했다.
“제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지만.”
작게 목을 가다듬은 루이스는 시몬을 바라보았다. 매끄러운 턱선이나, 새카만 머리카락 같은 것들을 말이다.
“역시 검은색은 모든 색을 너그럽게 끌어안았다고 생각해요.”
시몬은 얼굴을 찌푸렸다. 루이스가 애를 써서 웃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인 탓이다.
“무엇이든 받아주는 너그러움에 아프기도 하지만…….”
루이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문장의 끝에서는 선황비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가 되었다.
“……제게는 무엇보다 소중해요.”
루이스는 드레스 자락을 가볍게 들고 허리를 숙였다.
“약속된 만남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하신 말씀을 저 역시 받아들이며, 신의 축복이 항상 공자님과 함께하길 빌어요. 어떤 날씨 아래에서든.”
고개를 든 루이스가 사르르 웃었고, 시몬도 그리했다.
서로 최선을 다한 표정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게 전해졌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마웠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아마.
시몬은 영원히 내리지 않을 비를 기다리게 될 테니.
* * *
하루가 지나자,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마치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날을 축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격무에 시달리던 이안은 결국 라피스 영지에서 아카데미로 곧장 돌아오게 되었다.
수도에 들를 새도 없었다.
아카데미의 문턱에 들어서자, 그의 어깨에 올라와 있던 수많은 책임 따위가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그립기까지 했던 제 방에 들어서니.
손님이 와 있었다.
“아직 영업 전입니다만, 손님.”
이안은 농담을 건네며 창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공기가 비로소 움직이고, 순환했다.
이안은 창틀에 걸터앉으며 바람이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오랜만이다. 시몬.”
“……할 말이 있어서.”
물론 이안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루이스?”
“관계를 청하지 못했어.”
“음, 역시 그랬군.”
“별로 놀라지 않네.”
“그야. 내 사촌은 예전부터 루이스를 예쁜 유리 구슬을 다루듯 했으니까.”
“그랬던가?”
“그랬지. 신기할 정도로. 사실 그 녀석, 꽤 질긴 가죽 같은 구석이 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이안은 언제나 그 점을 높이 산다.
“어쨌든 할머님께서 루이스를 꽤 마음에 들어 하셨는지 아쉬워하셨어.”
“그야 마음에 드시겠지.”
“매혹적이니까?”
“아니, 고집쟁이라는 점이 할머님과 꽤 닮았잖아.”
아, 그건 닮았다.
그 고집으로 시몬과 이안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도.
“그리고 좋지 못한 소식도 있는데.”
시몬은 조금 머뭇거렸고, 이안은 그가 충분히 마음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루이스에게 들켰다.”
“내가 그럴 거라고 했었지.”
“네 충고를 들었어야 했는데.”
“루이스 스위니의 동물적인 감각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아무런 생각 없이 이 나라의 황태자를 간단히 농락할 정도니까.”
농락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이안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
사실 꽤 궁금하기는 했다. 시몬의 생각을 알아차린 루이스가 어떤 반응을 했을지.
아마 꽤 놀라지 않았을까.
“그래서라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변화나 반응이 있었는지 알아야, 나도 행동 방침을 정해야 할 거 아닌가.”
“아.”
비로소 뜻을 깨달은 시몬이 얼른 변화한 것을 말했다.
“구조물로 비를 피한 횟수를 추가하도록 해.”
“그런가? 그럼 아흔일곱……. 아니, 그런 거 말고!”
“루이스의 새 우산이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좋아. 안전한 색을 잘 골랐군. 잠깐, 시몬. 이런 것 말고 좀 제대로 된 건 없나?”
“키가 자랐지.”
“성장기의 막차에 무사히 탑승한 모양이지.”
“고기를 많이 먹었거든.”
“훌륭한 여름 방학이었겠군.”
시몬의 말투로 보아 결국 두 사람 사이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루이스를 유리 구슬 다루듯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어떤 것을.”
시몬이 남은 변화를 덧붙였다.
“……그만두지 못했지.”
그리고 쓰게 웃었다.
아마 지금의 시몬은 내리지도 않을 비를 기다리는 바보처럼 보일 테니까.
“지금까지 나는 무엇이든 그만둘 수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러니 충고했잖아. 루이스 스위니는 질긴 가죽 같은 구석이 있다고.”
“……그렇다고 해도.”
시몬은 옅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안은 시몬이 다른 말을 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급할 것은 없었다. 이번 학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모든 것에는 끝이 있지.”
시몬은 그리 중얼거리며, 괜스레 먼지가 쌓인 책상을 쓸었다. 여름에 쌓인 먼지가 손끝에 하얗게 달라붙었다.
“그 말이 내게는 구원이야. 아마 이 감정에도 그 평범한 진리가 적용되겠지.”
“공평하게 말이야.”
“그래. 공평하게.”
시몬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 감정은 지금까지 억지로 그만두어야 했던 다른 것과는 다르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감정을 붙들 것이며, 그 치열함의 끝에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그것을 놓게 되리라.
그리고 그것은 시몬에게 꽤 깊은 의미가 될 거다.
“나의 의지로 그만두는 되는 첫 번째 일이 될 테니까.”
그리 생각하면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소멸.
시몬은 그런 경험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사촌께서 허락하신다면.”
이안은 창틀에서 내려와 시몬의 바로 앞에 섰다. 닮은 눈동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담았다.
“내가 함께 기억해도 될까?”
“무엇을?”
“그대의 의지로 그만두는 첫 번째 일 말이야.”
“…….”
“소중한 감정을 홀로 떠올려야 하는 건 잔혹한 일이지.”
아마 이안은 홀로 어머니의 자상함을 그려야 했던 순간을 거울삼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상냥한 이안은 먼 미래의 시몬까지 빠짐없이 걱정하며 이렇게 제안해 주는 것이다.
“그래. 부탁할게.”
“소중히 기억해 둘 테니, 언제라도 그대가 바랄 때 날 이용하도록 해.”
이안이 삐딱하게 웃었고, 시몬은 저도 모르게 루이스와의 순간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웃었다.
이안의 저 미소를 따라 하면서 한참이나 깔깔 웃었던 것 말이다.
루이스는 이안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밝아졌고, 그건 사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비의 데이트를 떠올리자 그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안. 나는 무슨 색이지?”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언젠가 그랬잖아. 보라색은 루이스의 색이라고.”
“……사내자식에게 내어 줄 색이 있을 것 같냐.”
“그럴 줄 알았지.”
“뭐, 검은색 정도는 그대에게 내어줄까.”
이안은 시몬의 결 좋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선심을 쓰듯 말했다.
“검은색은 좋은 색이지. 모든 색을 다 끌어안고 태어난 너그러운 색이니. 재주 많은 그대에게 어울리기도 하고.”
이안의 대답에 시몬이 놀란 얼굴을 했다.
“왜 그래?”
“검은색에 대한 평가가 너무 후한 것 같아서.”
루이스도 그렇고, 이안까지 그렇게 너그럽게 말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쯤 되니 시몬 자신이 검은색에 대해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후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이안은 시몬의 머리를 꾹 누르며 간단한 답을 들려주었다.
“내 소중한 친구의 색인데.”
* * *
기숙사로 돌아온 학생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불을 너는 일이었다.
비의 계절 동안 습기를 먹은 눅눅한 이불 말이다.
일찍 도착한 학생들부터 이불을 들고 세탁실 근처로 달려갔다.
물론 루이스도 그랬다.
루이스는 펄럭이는 이불들 사이에서 빈자리를 찾아 이불을 걸쳐두었다.
이제 이불이 구겨지거나 뭉쳐진 곳이 없도록 쭈욱 펼쳐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하얀 이불은 자연스레 빨랫줄을 따라 넓게 펼쳐졌다.
“……빨랫줄에 마법이라도 걸린 줄 알았잖아요!”
“우리 아카데미가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을 것 같나? 황실에도 그런 건 없어.”
한쪽에서 이안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야 그렇겠죠. 그만큼 놀랐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요.”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시몬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미안, 놀라게 할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시몬과 이안은 눈을 마주치고 히죽 웃는다.
그랬지. 이 몹쓸 소꿉친구 삼인조는 한 사람을 놀리기 위해서라면, 두 사람이 어떤 것이라도 협조하는 못된 단체였다.
“두 분도 이불을 말리러 나오셨나요?”
둘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의 근처에 진작부터 이불을 널어두었다며.
“부지런하시네요.”
“그러고 보니, 루이스.”
이불에 남은 잔주름을 꼼꼼하게 당기던 시몬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네.”
루이스는 다소 조심스러운 투였다.
“그건 언제 돌려줄 거지?”
루이스는 어렵지 않게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손수건이었다.
루이스가 코를 팽팽 풀도록 도와주었던 구원의 손수건 말이다.
“무, 물론 언제라도 드릴 수 있지만.”
루이스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꺼내어 우물거렸다.
“정말 이런 걸 돌려받으실 거에요?”
“설마.”
시몬은 루이스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아직도 안 빨았나?”
“빨았죠! 박박 빨고, 두 번 빨고, 주름도 펴고 향기도 입히긴 했어요. 그렇긴 한데!”
시몬이 손을 내밀었다. 잔말 말고 어서 내놓으라는 뜻이다.
“흐으…….”
루이스는 별수 없이 제 부끄럼을 끌어안은 손수건을 그의 손바닥 위로 올려두었다.
“고마웠어요.”
시몬은 손수건을 다시 품에 넣은 후, 루이스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안이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대체 손수건에 뭐가 묻었길래. 두 번이나 빨고 향기까지 입혔던 거지?”
“비, 비밀이에요.”
루이스가 곧바로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 버리기에, 이안은 시몬을 바라보았다.
대체 뭔데? 라는 얼굴로.
시몬은 잠시 루이스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어.”
다행이다. 의리의 시몬은 비밀을 지켜주려는 모양이다.
“아니지, 소리는 꽤 대단…….”
“시모온!”
루이스는 얼른 시몬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저 악마가 루이스의 콧물 소동을 알게 되는 날에는 최소한 10년은 코흘리개라고 부를 것이 틀림없었다.
“말씀하시지 마세요. 진짜요! 제발요!”
이안은 히죽 웃으며 시몬의 어깨를 붙잡아 제게로 당겼다.
“걱정하지 말고 말해봐. 황태자의 명령이니까.”
“아카데미에서 신분으로 협박하는 건 안 돼요!”
시몬을 가운데에 둔 싸움은 꽤 길어졌고, 이 작은 소동이 끝날 때 즈음에는 세 사람 모두 배가 아프도록 웃은 뒤였다.
어쨌든 루이스가 코흘리개 타이틀을 획득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 * *
“루이스, 저녁에 학생회실로……와 줄 수 있나? 할 말이 있는데.”
루이스가 하얀 이불을 걷으려고 할 때, 몰래 다가온 이안이 조용하게 말을 걸어왔다.
어쩐지 이불에 제 몸을 숨기는 것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렇게까지 긴장하시는 건 시몬을 신경 써서 그러는 걸까.
루이스는 가능한 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그가 편히 웃었다.
“그럼, 나중에…….”
그는 그리 말하며, 손끝으로 루이스의 입술 근처를 스치듯 쓰다듬었다.
무언가를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이다.
아, 그러니까 이건.
루이스에게 맡겨 놓았던 말을 찾아가겠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입술에 맡겨 둔 말을 돌려줄 때는 입술로 돌려주어야 하는 거지?’
매우 바람직한 생각을 떠올린 루이스는 저녁 식사 후에 구석구석 양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두운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루이스는 긴 복도를 지나 불이 켜진 학생회실 앞에 도착했다.
잠시 고민 끝에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