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짐승 같은 권리
“너무 오랫동안 아카데미에서만 봐서 그런가.”
그래서 제복이 아닌 루이스가 어색해진 거다.
그래, 그거다.
그냥 그런 거라고 해 두자.
“……왜요?”
루이스가 눈을 뜨며 물었고, 이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것 아냐.”
“뭐가요?”
“이런 일은. 시몬의 전문 분야인데 말이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약간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물론 지금 시몬이 있었다고 해도, 이 일을 양보하지는 않았을 거다.
시몬이 루이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은……. 아무리 이안이라도 두려운 일이니까.
“시몬 공자님은 상냥하시죠.”
“……좋은 놈이지.”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리고는 잠시 손수건을 떼어냈다. 마침 할 이야기가 있었다.
“얼마 전에 시몬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그……. 신전에서.”
루이스는 이안이 장례식을 차마 장례식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오늘도 그의 마음은 어딘가 멍이 든 상태인 모양이다.
본인도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깊은 곳에.
그러니 루이스는 가능한 한 가벼운 투로 대답했다. 괜찮고 싶어 하는 그의 노력에 응하듯.
“네. 곤란할 때 도와주셨어요. 어디에서 들으셨어요?”
“가족 만찬이 있었지.”
“그 귀한 자리에서 제가 언급되었다고요?!”
“꽤 자주 언급되는 편이야. 다들 그대를 좋아하거든.”
“대체 왜요?!”
“그대가 나와 시몬의 친구니까.”
“새삼 제가 대단한 분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막상 함께 있으면 그 대단한 지위가 생각나지 않지만 말이다.
“혹시 다음 만찬이 있다면, 제가 죄송해하더라고 전해주세요. 신전에서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어요.”
“그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선황비께서도 아시지. 그분이 시몬을 칭찬하셨는걸.”
“감사한 일이네요…….”
루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기에, 이안은 웃었다.
그녀는 이안과 시몬을 알뜰살뜰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다.
그걸 빤히 아는 황가의 어른들이 그녀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싫어했다면 두 사람이 온실에 뻔질나게 드나들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나저나 대체 그 계집아이는 네게 왜 그리 치근대는 거지?”
그가 잔뜩 인상을 쓰며 ‘그 계집아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몹시 놀라웠다.
원작대로 일이 흐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는 지금도 말이다.
“……왜 그러지?”
“아, 음. 아니에요. 어쨌든 ‘그 계집아이’도 사정이 있긴 할거에요.”
가령, 요정 대모님의 엄격함과 협박에 짓눌려 있다거나.
쓰러지는 가문에 대한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어떤 사정이 있든지 간에.”
이안은 조금 흘러내린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대가 타인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그런 말.
외조부의 경고 말이다.
평민 아이가 대단한 자리에 앉아 봤자, 모두가 불행해 질 뿐이라는 것.
“언젠가 말했지만, 나는.”
그는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바라는 아가씨께서 고개를 끄덕여 주신다면,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아.”
“……폐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요?”
“그래. 아버지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루이스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금 용기를 내어서 질문했다.
“하지만……. 외조부님을 소중히 생각하시잖아요.”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이안은 바로 대답했다.
“나는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는 이에 대한 대답을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분께서 내게 유일하게 남겼던 말씀을……사실에서 도망칠 핑계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외조부의 말씀이 이유가 되어, 모든 것을 그만둔다면.
먼 훗날 그는 제 외조부를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를 싫어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영원히 지키고 싶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나를 싫어하시겠지.”
그는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언젠가 여쭤봐요.”
“으음, 내가 죽은 다음에 말인가……. 답을 듣는 건 무서운데.”
“제가 같이 있어 줄게요.”
“그건 든든하군. 내 외조부가 날 걷어차 버리면, 그대가 그 날처럼 위로해 줬으면 해.”
“그 날처럼 위로해 드리는 건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내가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데, 그깟 위로 좀 시원하게 해 줄 순 없는 건가? ”
불만 어린 목소리에 루이스가 쿡쿡 웃었고, 이안은 다시 손수건을 들었다.
“어쨌든 이리 와. 아직 턱에 시커먼 게 남았어.”
“아직도 안 닦였어요?”
그야, 잠시 농락당하느라,
아니, 혼자 좀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닦아주지 못했다.
어쨌든 그 어떤 말도 변명으로 적당하지 않아서, 다른 말로 얼버무렸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어쨌든 앞으로 익숙해질 테니, 제발 좀 가까이 좀 와.”
손수건은 이제 루이스의 턱 근처를 스쳤다.
루이스는 슬슬 제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건지 걱정되었다.
이렇게 오래 얼굴을 닦을 정도로 엉망이었다니.
“저, 굉장한 꼴을 하고 있었나 봐요.”
“걱정하지 마, 시커먼 먼지가 얼굴에 붙은 사람 중에서는 제일 미인이니까.”
“그것참, 대단히 위로가 되는 말씀이네요.”
그즈음부터였을까. 멀리 무대에서 시작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가 한참 사랑스럽게 진행되는 모양이다. 다정함을 그리는 음률이 흘렀다.
“좋은 노래네요.”
루이스가 속삭였다.
“음……슬픈 노래지.”
“이렇게 아름다운데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데 문제는 없잖아.”
그는 루이스가 무어라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 공연하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된 고전이야. 다른 존재를 사랑하게 된 인간 남자의 이야기지.”
“다른 존재요?”
“그래. 시대에 따라 번역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보통은 신의 대리자나 천사 혹은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마지막에는 사랑이 이루어지나요?”
“……성급하기는.”
이안은 타박하는 목소리였고, 그 와중에도 달콤한 노래는 계속되었다.
몇 겹이나 되는 벽을 통과하느라 정확한 가사는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정은.
배우가 담은 감정은 아주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간절하도록 울려왔다.
“이야기의 결론이 궁금한 것도 당연하지만, 조금 더 지금에 집중해 줄 수는 없는 건가?”
그는 이제 눈가에 달라붙은 반짝이 가루 따위를 손끝으로 조심스레 쓸어 냈다.
“……지금이요?”
“주인공이 고백하는 장면이거든.”
“……다른 존재에게?”
“아니. 허공에.”
그래서야 고백이 되지 않을 거다.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독백이 아닌가.
“그래도 진심이네요.”
“그래.”
“닿지 않을 텐데도.”
“닿지 않으나, 진실 되지.”
루이스는 천천히 눈을 감고 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생각했다.
“……역시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죠?”
“그대는 여전히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는군. 조금 더 이 아련한 고백에 집중해 줄 수는 없나?”
“하지만 가사가 들리지 않는걸요.”
“진실된 고백의 말에 들어갈 가사야 하나밖에 없지.”
루이스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렇게 긴 노래가 단 하나의 말로 이루어진 건 아니잖아요.”
“그런 건 상관없어.”
눈가에 머물던 그의 손가락이 이제는 루이스의 얼굴선을 쓸었다.
자연스레 들린 얼굴이 그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어차피 단 하나의 말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함축적으로 쓰인 예쁜 말도.
기교가 들어간 노랫소리도 말이다.
루이스는 그의 사고방식을 따라서 상상해 보았다.
하나씩, 하나씩. 껍질 같은 말을 벗겨냈다.
그 안에 자리한 가장 단단한 한 마디를 깨닫게 될 때까지.
“엄청……창피한 말이네요.”
“그런가? 그대가 꽤 좋아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그야 누구라도 좋아하겠죠!”
“그래서 고민하고 있어.”
그는 루이스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 놓고는 조금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그대가 이토록 좋아하는 그 말을 대체 어떤 식으로 건네야 흡족하게 받아들이실까……. 하고 말이야.”
“제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시죠?”
루이스는 괜스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야 거절할 수도 있겠지. 내가 지난번처럼 머리를 긁으면서, 파트너를 청했던 때를 돌이켜 보면.”
“그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했어요! 절대로 머리 긁으면서 말하지 마세요!”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꼭 머리를 긁고 싶은 욕망이 드는 건 왜지?”
“회장님은 성격이 나쁘니까요.”
“성격이 나쁜 건 그대야. 머리 좀 긁는다고 그리 타박을 할 건 뭐야. 나는 그대의 먼지 묻은 얼굴에도 착실하게 반해서 키스할 뻔했는데.”
루이스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황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봐, 성격이 나쁜 건 누구지?”
이안이 넓게 벌어진 두 사람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섭섭한 듯 물었고, 루이스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두 사람이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게 되는 일은 없었다.
* * *
“시몬.”
이안은 화살을 꺼내며, 제 뒤에 선 소중한 사촌의 이름을 불렀다.
“할머님께 우리가 광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면 어떨까?”
푹!
탄력 있게 날아간 화살은 먼 과녁에 정확하게 박혔다.
중앙에 가까우나 닿지는 못했다.
누군가가 아까워하며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광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계실 거다.”
둘의 어깨가 스치듯 지날 때, 시몬이 늦은 대답을 전했다.
“이 더운 날에 유흥 거리를 제공해 드리는데도 말이지?”
이안은 따가운 햇볕을 올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숨이 막히도록 더운 오늘 같은 날에, 이안과 시몬은 ‘기량을 보자!’라는 선황비의 말씀에 따라서 이렇게 활쏘기를 하게 되었다.
“그건 그렇군. 광대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어.”
이제 시몬이 시위를 당겼다. 이안은 그가 섬세하게 조준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푹!
시몬의 화살은 이안의 것보다 조금 더 중심에서 멀었다.
‘거길 노렸군.’
이안은 시몬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정면으로 비교될 것이 있다면, 언제나 이안의 밑을 자처했다.
물론 그것이 시몬의 목숨을 견고하게 지켜주겠지만…….
‘아쉽단 말이지.’
동갑의 사촌.
평범한 집이라면, 아니 하다못해 그저 그런 귀족 가문에 속하기만 했어도.
둘은 서로를 목표로 삼으며 경쟁할 수도 있었을 거다.
“가끔은 네가.”
다시 이안의 차례가 되었기에, 그는 한 걸음 나서며 아쉬운 소리를 뱉었다.
“내게 진심이었으면 좋겠어.”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이안은 조금 미안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갇힌 그를 괴롭히고 만 것 같아서.
“미안.”
그러니 곧바로 사과했다.
사과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어린 날의 루이스가 가르쳐 주었다.
“상관없어.”
물론 상냥한 시몬은 언제나 너그럽게 그의 사과를 받아준다.
덧붙이는 다른 말도 없이.
“나도 네가 진심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아니, 오늘은 어쩐 일로 다른 말이 달라붙었다.
“내가 소중한 사촌께 진심을 바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이안이 시위를 당기며 가볍게 물었고, 시몬은 그가 집중할 동안은 침묵을 지켰다.
푹!
그의 화살은 여전히 중심 곁을 맴돌았다.
마지막까지 과녁에 고정되었던 이안의 시선이 떨어지자, 시몬은 비로소 남은 이야기를 건넸다.
“네가 진심을 바칠 상대는 따로 있다는 뜻이지.”
“루이스 스위니의 이야기였군.”
“괜찮은 건가?”
시몬은 제 차례가 되었음에도 활을 당기지 않고, 물러선 이안을 바라보았다.
선황비를 위한 광대 노릇보다도 루이스의 이야기가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솔직히 말하면 괜찮지만은 않아.”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끝으로 과녁을 가리켰다.
시몬이 그제야 시위를 당겼다.
자세도 호흡도 흠잡을 곳이 없었으나, 평소보다 조금 서두르는 기색이 있었다.
시몬은 오늘도 이안과의 승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리라.
화살이 적당히 날아가 박힌 후, 다시 시몬의 질문이 돌아왔다.
“루이스와 괜찮지 않을 이유라도?”
“음.”
오늘따라 내 사촌께선 꽤 집요하시군. 왜 그러실까.
이안은 시몬의 생각을 넘겨짚으며, 최근 제 마음을 누르는 한 가지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날 무서워해.”
이안은 때때로 루이스의 얼굴에 스치는 공포를 떠올렸다.
평범한 대화 중에도 이따금 그녀의 얼굴에는 새파란 공포가 떠오르고 만다.
그녀 자신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너무 괴롭히지 마.”
“그건 노력해보지.”
다시 이안의 차례가 되었기에 그가 활을 당겼다.
“이안.”
이제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이 광대 노릇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말해.”
그리고 화살이 날아갔다. 이안은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서워하는 건, 루이스뿐인가?”
“시몬. 설마 내가 무서워할까 봐 그래?”
장난스러운 대답에 시몬은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깊은 눈동자로 이안을 응시하고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말투와 목소리였다.
“전하께서는.”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충성을 바치는 것 처럼.
“저를 완벽하게 짓밟아 주시겠노라 약조하셨습니다.”
“…….”
“그 누구도 제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도록.”
그건 아주 오래된 약속이다.
두 사람 사이에 루이스 스위니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그 대가로 전 전하께 제 우정을 드렸습니다.”
“시몬…….”
“전하.”
시몬이 허리를 바로 세웠고, 이안은 저와 닮은 그의 푸른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힐라드.”
“예. 저는 힐라드입니다. 짐승 같은 권리를 가진.”
그는 이안을 살해하고도 법률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니, 도리어 이안이 가진 모든 영광을 그의 어깨 위로 올려놓을 수 있게 된다.
시몬은 그것을 천박한 권리라 부르며 천시했지만 말이다.
“물론 전하는 이 짐승을 완벽하게 길들이셨으나.”
시몬은 잠시 말을 쉬고, 숨을 뱉었다.
그 호흡은 오랫동안 눌러온 어떤 감정이나 본능 따위가 깃들어 지독히 뜨거웠다.
“짐승은 짐승인지라.”
자조적인 말의 끝에서, 시몬은 그제야 이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잔인하도록 짓밟아 주지 않으시면, 주제도 모르고 감히 주인의 것을 바라고 맙니다.”
이제 다시 시몬이 활을 쏠 차례였다.
허리를 든 그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안은 곧게 선 그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위가 당겨졌다. 아슬아슬하도록.
시몬은 평소와는 달리 시간을 끌었다. 이안은 그의 활 끝이 향하는 곳을 상상했다.
정 중앙일까, 아니면 의미 없는 어딘가를 맴돌고 말까.
이안은 시몬의 화살촉이 향할 곳을 예상해 보았다.
그리고 이안은 어느 곳에 박히길 진정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정말로 시몬이 진심이길 바라고 있기는 한 걸까.
그가 진심이 아니라서 안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마침내 활이 쏘아졌다.
화살은 호선을 그리며 맹렬히 날아갔다.
콰직!
화살이 과녁에 닿는 순간.
멀리서 두 사람의 승부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놀라움에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서도 시몬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눈앞의 광경을 제 눈에 새겨두려는 것처럼.
그의 화살은 먼저 쏜 이안의 것을 완벽하게 가르며 박혀 들어갔다.
이안이 쏜 화살이 비틀어지고, 결국에는 부러져 힘없이 흔들린다.
“……이안.”
시몬은 돌아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누구도 내게서 희망을 찾으면 안 돼.”
이안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라는 말에 가장 먼저 속하게 될 사람은 아마.
시몬 힐라드.
그 자신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