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그대에게 구애하는 남자
“헤셰 프레야가 온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만.”
측근이 전하는 보고에 이안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가문의 여식과 혼담이 있다며, 휴가까지 받아간 헤셰가 어째서 루이스와 접촉하고 있는가 해서 말이다.
“혼담 쪽은?”
“뭘 물으십니까. 당연히.”
“차였겠군.”
애초에 헤셰가 늘 그런 식으로 유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안은 늙은 프레야 백작의 얼굴을 생각하며 잠시 한숨을 쉬었다.
대군을 호령하고, 국경의 수호자라고 불린 늙은 백작도 제 망나니 아들만큼은 이기지 못했다.
오늘도 아마 그의 얼굴에 주름이 하나 정도는 더 늘어날 거다.
“그래서, 접촉 장소는?”
“예술원입니다.”
“홀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지 쉽게 상상이 되는군.”
또 소중한 약속이나 비밀 따위를 신나게 나누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헤셰는 루이스를 어린 시절부터 참 예뻐했다.
이러다가 여동생으로 삼겠다며, 헤셰 스위니로 이름을 갈아치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프레야 백작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시겠지만.
“죄송하지만, 전하.”
이안이 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측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접촉 장소는 홀이 아닙니다.”
“음?”
“그게……. 2층입니다.”
그리 보고하는 남자의 얼굴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언뜻 들으면 박스석에 단둘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그거.”
“지켜볼까요?”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지켜보고 싶은 것은 두 사람의 관계 따위가 아니었다.
“일단, 상황부터.”
헤셰는 말도 행동도 가볍지만, 의미 없이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다.
목숨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휴일에 루이스와 함께인 것도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안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마 좋지 않은 측면으로.
그의 충직한 면은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으니 말이다.
* * *
사절단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4분.
계약서를 쓰는 중에, 서둘러 기존 장식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남은 일은 많았다.
일단 청소와 의자 교체는 예술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스위니 가문의 일은 난간과 벽면을 따라서 조화 장식을 완성하는 것.
“죄송해요. 션 우드 선생님.”
루이스는 그가 만든 꽃을 조심스레 운반하며, 사과부터 했다.
“선생님께서 상상하셨던 대로 완성할 시간은 없을 것 같아요.”
그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빛이 되어 줄 꽃을 상상하며, 이 하얀 꽃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상상을 반영하기는커녕, 단순하게 난간과 벽을 채워 꾸미기도 벅찰 뿐이다.
“모처럼 예쁘게 만들어 주셨는데.”
“괜찮아요. 어린 사장님 덕분에 이 꽃도 제가 필 동굴에 도달한 모양이니까.”
그는 일을 도울 의무가 없음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스위니 가문에서 온 여러 전문가가 벽면과 난간 위로 간단한 구조를 짜는 동안, 루이스는 쉼 없이 필요한 도구들을 가져다주었다.
가능하면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동시에 여러 명이 작업을 하는 만큼 요청하는 말은 여기저기에서 쏟아졌다.
“고정끈 좀 주세요!”
“난간 쪽 구조는 다 짰어요. 여긴 잎줄기부터 건네주세요.”
“저기, 여러분! 여기 도구 좀 치워 주세요! 테이블을 교체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예술원 직원들까지 한데 섞여서, 좁은 박스석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루이스는 일단 작은 테이블을 뺄 수 있도록 한쪽 벽면에 얼른 붙어 섰다.
“아가씨, 빨리요!”
물론 재촉하는 말이 금방 따라붙었다.
“자, 잠깐만요!”
루이스는 서둘러서 난간 쪽에 잎줄기를 건네고, 얼른 고정끈이 든 상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이안이 그녀의 손을 대신하여, 고정끈을 건넨 후였다.
“고, 고마워요.”
루이스는 갑작스레 박스석에 나타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괜찮으신가요?”
짧은 물음의 의미는 간단했다. ‘중요한 공연인데 여기에 이렇게 계셔도 괜찮은가요?’라는 뜻이었다.
“여기가 괜찮아지면 그렇게 되겠지.”
그는 루이스가 가져온 꽃 중에서, 모양이 일그러진 것을 골라내며 대답했다.
망가진 꽃은 션 우드의 손으로 전달되었고, 꽃은 금방 그가 의도하는 모양을 되찾았다.
“전하.”
그때, 밖에서 돌아온 헤셰가 몹시 다급한 목소리로 이안을 찾았다.
“사절단의 무거운 엉덩이가 처음으로 가벼워졌답니다.”
“……그게 왜 하필 지금이지?”
“그야, 제 나라의 작품을 상영해 준다니, 없던 기운도 솟아나는 거겠죠. 존중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요.”
“젠장.”
이안은 시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보다 17분이나 이르지 않은가.
루이스는 얼른 계획을 수정했다.
“해결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벽면을 포기하면, 작업 시간을 당길 수 있어요.”
“그럴 순 없지, 내 피보호자는 그것까지 완성하고 싶어 할 테니까.”
루이스는 그야 그렇지만요. 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작업 시간을 더 줄일 수는 없어. 내가 사절단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유흥 거리를 제공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지.”
이안은 들고 있던 꽃을 션 우드에게 모두 건네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할 일은 간단했다.
애국심으로 신이 난 사절단의 엉덩이를 예술원의 홀에 잡아 두어야 했다. 지금 당장.
루이스를 포함한 스위니 가문의 사람들이 그를 믿고 최선을 다하는 한 말이다.
박스석을 나서며 이안은 루이스를 흘긋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저 모습은 아마 부모님의 부재를 가능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어찌 보면 그녀가 따낸 첫 계약이니, 제대로 해내고 싶겠지.
그리고 루이스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그에게도 몹시 중요했다.
사절단에게 그 어떤 빌미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소한 빌미는 때로 엄청난 요구로 돌아오는 법이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목표가 이토록 완벽하게 결합 된 적이 있었던가?
이안은 루이스의 곁을 스칠 때, 제 한쪽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의 의도를 이해한 루이스도 얼른 손을 들었고, 곧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마주했다.
그리고 스치듯 잡혔다.
서로 손가락을 붙잡아 가두어 온기를 나눌 틈도 없이.
하지만 어느 때보다 강한 유대와 신뢰를 공유했다.
서로 닿는 형태나 시간 따위로는 제한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 그 이후로 루이스는 이안을, 이안은 루이스를 걱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그리는 결론이 같은 곳을 향하는 한, 그것은 현실이 될 것이 분명했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빨리요!”
물론 그런 상념은 거의 찰나였고, 루이스는 곧바로 일에 집중했다.
* * *
루이스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렸다.
「내 우수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에서, 네가 많은 것을 배웠으면 좋겠구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오랫동안 예술원의 의뢰를 처리해온 그들의 빠르고 효율적인 움직임은 가히 신의 경지였다.
루이스는 그들의 오랜 경력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시간이 빚어낸 그 능숙함은, 아마 루이스로서는 영원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장식을 마친 후에는 예술원의 직원들과 함께 완벽을 기해 청소했다.
마지막으로 소파에 덮어 두었던 천을 걷어내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 순간에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는 준비된 박스석을 제대로 돌아볼 새도 없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물론 이렇게 일을 마친 후에도 조금 바쁘기는 했다.
일단 그녀의 말도 안 되는 계약 때문에 고생한 아버지의 직원들과 션 우드 선생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물론 그들을 보내주신 것은 스위니 부인이었다.
하지만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어디까지나 루이스니까.
“걱정하지 마요. 어린 사장님. 어떤 식으로든 계약에 연속성이 더해지는 건 손해가 아니죠.”
물론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루이스를 아껴 주었으니, 다소 지친 기색임에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러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사장님도 더하면 더했지, 아마 아가씨와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요.”
“사장님이 있었으면, 벽과 난간 장식으로는 끝나지 않았을걸요.”
그들을 마차에 태워 돌려보낸 후에는 다시 예술원 건물로 돌아왔다.
공연이 시작된 터라, 건물은 몹시 조용했고 때때로 공연소리가 들려왔다.
별 소동이 없는 것을 보면, 무사히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루이스는 인적이 드문 복도에 앉았다.
어느곳에나 아름다운 예술품과 편안한 의자가 있다는 것은 예술원의 큰 장점이다.
비로소 큰 한숨이 빠져나왔다.
하지만 마냥 느긋하게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급하게 작성했던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물론 아무리 급해도 계약서는 신중하게 확인 했다.
루이스와 이안이 번갈아 가면서 검토했으니, 아마 확실할 거다.
하지만 시간에게 등을 밀린 건 예술원장뿐만 아니라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여유를 잃고 실수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루이스는 서류의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레 읽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 장에 이르니, 익숙한 사인이 두 개 보였다.
하나는 루이스의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호자 자격을 가진 이안의 것이었다.
황가의 사인이 루이스의 이름 밑에 적히게 되다니, 이건 꽤 영광된 일이다.
“성인이 되어서 좋은 일이 하나쯤은 생겼군. 내가 그대의 법적 보호자 노릇을 다 해보고 말이야.”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루이스는 고개를 들었다.
“회장님?”
아, 또 호칭 틀렸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어느 쪽도 관계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니까.
“언제 오셨어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루이스가 서류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방금.”
그는 차가운 물을 내밀었고, 루이스는 얼른 받아 들었다.
손끝이 시원해지자, 긴장 때문에 잊고 있었던 더위가 느껴졌다.
“마셔. 그대가 좋아하는 과일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루이스는 잠시 아카데미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렇게 시원한 것을 건네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사절단은 어땠어요?”
루이스의 질문에 그는 잠시 난처한 얼굴을 했다.
“……뭔가 잘못되었어요?”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는 오늘 나를 구해주었지. 정확히는 황가의 체면을 세워주었어.”
“그것보다는 사절단 재상님의 호흡기를 구한 거죠.”
루이스는 얼른 그의 말을 정정했다.
“그래, 황가의 체면과 재상의 호흡기를 모두 구해냈어. 그대가 나서지 않았으면, 모두가 참혹해졌을 거야. 그러니.”
그는 한쪽 손을 가슴께로 올린 후에, 깊이 허리를 숙였다.
완벽하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에 루이스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중이지.”
“그런 거라면, 말 한마디로 충분하단 말이에요오.”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 일을 그대가 했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아버지의 훌륭한 직원분께서 한 일이죠. 그리고 전하께서 제게 허리를 숙이시면 어떻게 해요. 시종 할아버지들께서 보신다면 절 죽이려고 하실 걸요?”
“무슨 소린가.”
자세를 바로 한 이안은 다시 거만하기 짝이 없는 황태자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숙이면 그들도 함께 그대 앞에 숙여야지.”
“……그리고 내일 아침 제 목이 성벽에 걸리는 건 아니죠?”
“걱정하지 마. 목이 걸리는 건 헤셰니까.”
“헤셰 경을 죽이지 마세요!”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보지.”
이안은 루이스의 손을 끌어 다시 자리에 앉게 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바쁘게 뛰어다녔으니, 그 말랑말랑한 발이 참혹하게 아플 것은 분명했으니까.
잠시 서류를 만지작거리던 루이스는 몸을 돌려 이안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물어봐.”
“어떻게 어머니의 서류를 받아오셨어요? 딱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셔서 깜짝 놀랐어요.”
‘딱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할 때, 루이스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되었고, 이안은 조금 웃었다.
“보고가 있었지.”
“보고요?”
“헤셰가 감히 내가 소중하게 아껴두는 아가씨와 밀회를 하더라는 불경한 보고 말이야.”
“들켰네요.”
루이스가 장난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히 들키지. 어쨌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정도면 뭔가 일이 있겠다 싶었고.”
그다음부터는 간단했다.
예술원의 비합리적인 계약 파기 행태와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깨닫는 것도.
“내가 아는 그대는 반드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일 테니.”
“회장님도 행동해 주신 거군요.”
“당연한 일이지.”
루이스는 작게 손뼉을 치며, 즐거운 듯 웃었다.
“우리, 오늘 뭔가 척척 잘 맞은 것 같지 않아요?!”
“그래, 아주 척척이었지.”
이안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귀한 아가씨께서 얼굴과 머리카락에 먼지가 달라붙도록 애써 주셨으니 말이야.”
“먼지요?”
루이스가 놀라며 제 손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얼굴에 붙은 먼지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도리어 손에 남아있던 반짝이는 가루 따위가 얼굴에 옮겨 붙고 말았다.
이안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와. 닦아 줄 테니까.”
“제가 할게요. 저쪽엔 거울도 있고…….”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대에게 구애하는 남자에게 그 정도는 허락해.”
“으…….”
루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피식 웃고는 하얀 손수건을 조심스레 그녀의 얼굴로 가져갔다.
얼룩덜룩한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니 어째 웃음이 났다.
“청소는 그대 얼굴로 한 거야? 예술원에는 청소 도구도 없는 건가?”
“……구애가 아니라, 그냥 놀리고 싶으셨던 거죠?”
“걱정하지 마, 확실하게 구애도 하고 있으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런 구애가 어디에 있어요! 조금도 설레지 않잖아요.”
“그건 곤란하지. 진지하게 할게, 진지하게. 그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여전히 가벼운 투였지만, 얼굴에 닿는 손길은 몹시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아주 조금은 간질간질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묘하게 가까운 거리가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루이스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안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굉장한 오해를 할 뻔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오해를 넘어서 조금 위험하기는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기울어진 얼굴이 입술에 거의 닿기 직전이었으니까.
다행히 루이스가 간지러움을 참는 얼굴로 입술을 깨물어준 덕분에 그는 제 생각을, 아니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또 농락당했다.
복수는커녕 이렇게 또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물론 루이스가 의식해서 벌인 일이 아니니 원망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그는 다시 루이스의 얼굴에 시커멓게 달라붙은 먼지에 집중했다.
오늘 이안은 루이스에게 신세를 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렇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물론 순수한 마음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러려고 했다.
정말로.
하지만 오늘의 루이스는 어딘가, 꽤 매혹적인 느낌이 흐른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드레스가 예뻐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의 감각 전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자극되고 마는 것을 보면.
손끝에 닿는 피부는 완전히 착 감겨오는 것 같다. 떨어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에 심장이 흔들리고, 호흡에 따라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어깨로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이안은 쓰게 웃었다.
평정심이라는 게, 이렇게나 잃기 쉬운 것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