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계속 다정하게 굴어줘요
루이스는 허리를 곧게 폈다.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은 지금, 이 저택을 대표할 사람은 루이스다.
그러니 황궁에서 온 손님을 맞이할 자격은 그녀에게만 있었다.
루이스가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어느새 따라붙은 사용인들이 옷자락에 남은 구김을 펴고, 먼지를 털어 주었다.
분주한 손길에서 그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느껴졌다.
하긴, 어른이 없는 집에 귀한 분이 오셨으니 비상이 걸릴 법도 했다.
“부모님께 연락은?”
루이스는 계단을 내려가며 물었다.
“아가씨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집사의 대답에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치 않아요. 내 의견을 기다려주어서 고마워요.”
“아가씨도 어른이시니까요. 이제는.”
음, 그런가?
법적으로는 조금 더 생일이 지나야 어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 큰 사람으로 취급해 주는 것이 싫지 않아서, 루이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1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현관 밖에 보이는 마차를 확인했다.
‘저건, 회장님……아니, 전하께서 사용하시는…….’
혹시 몰라 한 번 더 확인했는데, 문에 달린 장식이나 휘어진 형태를 보면 확실했다.
‘이런 시간에 여길 오시다니…….’
루이스는 문득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스위니 부인은 내게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니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가까운 어른의 조언과 걱정이 필요해진 걸까.
어쩐담.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실망하실 텐데.
게다가 루이스의 앞에서 그가 솔직하게 제 힘든 일을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제 완벽함에 심취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있고. 열 받을 정도로 말이다.
루이스는 응접실 앞에 멈추어선 채 조금 고민했다.
“몇 가지 부탁드려도 되나요?”
그녀는 돌아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어겨서는 안 되는 일을 말씀하실 예정이라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늙은이는 걱정이 많으니까요.”
명령이라니.
그런 오만한 일을 루이스가 해도 좋은 걸까.
잠시 고민했지만, 곧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명령할게요.”
“네, 아가씨.”
“일단 응접실의 문은 완전히 닫아둘 거에요.”
집사 할아버지는 움찔하기는 해도, 무어라 대답하지 않으셨다.
“물론, 누구도 대동하지 않을 거고요.”
그녀는 지금까지 남성손님을 맞이할 때, 문을 열어 두거나 사용인을 대동해왔다.
“이후,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대답은 필요치 않았다. 그녀의 말이 명령이 된 이상, 이 저택 안에서는 법이 된다.
“지금은 특수 조약에 따른 응급상황이거든요.”
제 뜻을 전한 루이스는 문고리를 쥐었다.
“……알겠습니다.”
군말 없는 대답이 돌아왔고, 루이스는 응접실에 홀로 들어섰다.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란 1인용 소파가 그녀를 등지고 있었다.
그곳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들리는 찻잔 소리 덕에 알 수 있었다.
“차……말고,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까요?”
루이스는 소파로 다가가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안이 제대로 식사하지 못한 채 온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
소파 너머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일단 사과드릴게요. 부모님께서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러 가셨어요. 제가 위로에 재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정말 절 위로해 줄 거에요?! 온실의 루이스가요?!”
소파 위로 커다란 쿠키를 입에 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루이스는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헤, 헤셰 경?!”
그는 소파에서 폴짝 일어나며 루이스에게 다가왔다.
평소와 같은 편안한 활동복이 아니라, 황궁 기사단의 정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은 모습으로 말이다.
“있죠, 저 정말 힘들었거든요. 들어볼래요?”
그는 새삼스러울 정도로 기사다운 멋진 차림을 하고도, 마치 어린아이 같이 울먹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 그…….”
“그 날 이후로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 정말로요! 호위 일이 끝나면 기사단에 불려가고, 그다음에는 가문에 불려가고 그러다가 다시 전하께 가야 했다고요.”
“그, 그건 힘드셨겠네요.”
“그렇죠?! 역시 루이스는 알아줄 거로 생각했어요. 다정하니까요.”
“식사나 잠은요?”
루이스는 모처럼이니, 그에게도 중요한 두 가지를 걱정했다.
“엉망이죠. 내 주인이 엉망이니까요.”
“아…….”
“그래서 여기로 피신 왔어요.”
“손님 방을 좀 내어드릴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두 손을 모아 마치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얼굴을 했다.
“대신 내게 루이스의 어깨를 빌려줘요. 10초 만이라도 괜찮으니까.”
“제……어깨요?”
“훈련 중에 힘들 때 기사들끼리는 서로 어깨를 내어주죠. 지치는 일을 함께 겪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꽤 기운이 나거든요.”
그런 거라면 이안의 호위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하면 될 텐데.
“더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요. 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어렴풋이 비치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아마 지금의 그에게는 루이스에게 짓는 미소마저 피곤한 것이리라.
그러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요. 12초를 허락할게요.”
“정말……다정하게 굴어주네요.”
희미하게 웃은 헤셰는 곧바로 루이스의 어깨에 제 이마를 기댔다.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온실의 루이스.”
힘을 뺀 목소리가 어깨 근처에서 너울거렸다.
“네.”
“온실 경비대장 자리 아직 남아있나요?”
“영원히 헤셰 경의 보직이에요. 그 자리는.”
“진짜……기쁘네요. 전하가 루이스를 달콤한 사탕 바구니에 넣어놓고 싶어 하는 심정이 이해돼요.”
“저, 저를 어디에 넣는다고요?”
“달콤한 사탕 바구니요. 우울할 때만 하나씩 몰래 꺼내먹는 보물 바구니 말이죠.”
“저는 우울하지 않은 전하와 헤셰도 만나고 싶은데요.”
“으……너무 귀엽게 굴지 말아요. 제가 전하한테 혼난다고요.”
“특별히 귀엽게 군건 아니에요.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까요.”
조금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는 거짓 없는 즐거움이 섞여 있어서, 루이스는 조금 안심했다.
“시간 종료네요.”
그리 중얼거린 그는 가뿐하게 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어딘가 개운해진 표정이었다.
“저는 온실의 루이스가 좋아요.”
헤셰는 빙긋 웃으며 조금 허리를 숙였다.
루이스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듯 말이다.
“정확히는 루이스와 함께 있는 전하가 좋은 거지만.”
“그 악마를요?”
“네, 저는 그 악마 같은 전하를 좋아하고 있죠.”
그건 이안이 루이스를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니.
하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루이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기에, 헤셰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전하를 악마로 만들어 주어야 해요?”
“제가 악마로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온실의 루이스는 훌륭한 악마 유도술을 쓰고 있는 걸요.”
“……신전에서 절 잡아가겠네요.”
“그때는 내가 지켜줄게요.”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헤셰가 본능적으로 제 검을 건드린 것이리라.
“저는 전하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진심과 거짓 사이에 선 어려운 미소 말이다.
“그럼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으니까, 이만 돌아갈게요.”
“시간이 되었다니, 또 일하러 가시나요?”
“비슷해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몸을 빙글 돌렸다.
헤셰가 응접실의 문을 열자,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이 모두 허리를 숙였다.
그는 곧바로 마차가 대기 중인 현관까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헤셰.”
그 뒤를 따라가던 루이스는 걱정스레 그를 불렀다.
“정말로 괜찮은 거죠?”
지금까지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루이스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의 피곤함을 토로하기 위해서 온 적도 없었고.
“……그냥.”
마차 앞에 멈춘 그가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악마 유도술이 필요해졌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헤셰.”
농담 같은 대답에 루이스가 다그치듯 그를 불렀다.
“진짜예요.”
비로소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긴 머리가 가볍게 휘날렸다.
“그러니까, 계속 다정하게 굴어줘요. 알았죠?”
“……알았어요.”
“기쁘네요. 안심했어요.”
헤셰는 가볍게 마차에 올랐고, 곧 출발했다. 정말로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루이스는 고개를 숙여 그를 배웅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따라 헤셰를 배웅한 사용인들의 표정이 모두 미묘했다.
그러니까…….
음, 모두 오해하는 모양이다.
루이스가 헤셰 경이 있는 응접실에 아무도 들이지 않고, 단둘이 있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이걸 어쩐담.
루이스는 일단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모두 음흉한 미소를 돌려준다.
“오해에요!”
루이스는 참지 못하고 한껏 소리치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아가씨. 헤셰 경께서는 충심이 뛰어난 기사이며, 미래에는 훌륭한 백작님이 되실 분이죠.”
“그, 그거야 그렇지만 헤셰 경과 저는.”
무슨 사이지?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관계에 루이스는 잠시 고민했다.
“……동지에요.”
“동지끼리 비밀을 나누신 거군요.”
사실 그렇게까지 비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긴, 다른 사용인이 있었다면 그에게 어깨를 내어 줄 수도 없었을 거다.
그러니까……. 비밀일까.
“맞아요. 비밀 이야기를 했어요.”
“알겠습니다. 헤셰 경은 명예를 아는 기사이니, 이 이상 아가씨를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함구해주세요.”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특히 아버지는 루이스의 남자관계에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입니다.”
루이스는 저택에 상주하는 사용인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제 방으로 향했다.
「엉망이죠. 내 주인이 엉망이니까요.」
헤셰의 입에서 엉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지.
시몬도 헤셰도 이안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만 들려주었으니, 깊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다.
‘오늘 밤에는 원하는 만큼 울고, 먹고, 잘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권리를 얻지 못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그가 그 사실에 충분히 타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가씨. 응접실을 정리하고 나서, 잠옷으로 갈아입는 걸 도와드리러 가도 괜찮을까요?”
방에 들어가려는 데, 늘 루이스를 도와주는 사용인이 양해를 구했다.
물론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서두를게요.”
“바로 잠들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리고 촛불이 꺼진 방 안으로 돌아왔다.
아마 루이스가 응접실로 내려갈 때, 누군가가 꺼 둔 모양이다.
아니면 변덕스러운 여름의 바람이 꺼트렸을까.
하지만, 그 어떤 어둠도 창가에 머문 우울한 누군가의 그림자를 가리지는 못했다.
놀라기는 했지만, 잠시였다.
루이스는 느린 걸음으로 흘러내릴 듯한 지친 인영에 다가갔다.
“……헤셰와 너무 오래 있었던 거 아닌가.”
그리고 기운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루이스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그와 남은 거리를 좁힐 뿐이었다.
창틀에 머리를 기댄 그는 시선만을 흘긋 돌려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장례식장에서 입었던 새카만 정장을 아직도 걸친 채.
“계속 기다렸는데 말이야.”
그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마침내 다가선 루이스는 그의 지친 눈가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피부가 메마르다.
“안 울었네요.”
“안 울었어.”
그는 살짝 눈을 감았다.
루이스는 그의 긴 속눈썹과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쓸어주었다.
“왜요…….”
“어색해서 그런가. 그 날 이후로는 울지 않았으니.”
그 날이란 아마, 그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을 말하는 것이리라.
“오해하지 마. 억지로 눌러 참은 게 아니야. 딱히 울 만한 일이 없었던 것뿐이야.”
푸른 눈동자가 다시 드러나 루이스를 바라본다.
잔뜩 힘을 준 황태자 전하의 시선이다.
루이스는 이제야 헤셰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했다.
악마 유도술이 필요해졌다는 말.
계속 다정하게 굴어달라는 말.
루이스는 가느다란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언젠가 그가 루이스에게 그리했듯이 말이다.
“창틀에 앉는 건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아.”
“식사는 했어요?”
“그래.”
“생존용이었나요?”
“그랬지.”
“제가 안아드려도 될까요?”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루이스는 말을 바꾸었다.
“……제가 안을게요.”
이상한 일이다. 꽤 부끄러운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아마, 그에게 이런 것이 진정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루이스는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다정히 끌어왔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루이스의 가슴께로 무게를 맡겨왔다.
그의 표정이나 시선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루이스는 손끝에 닿는 짧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눈이 반쯤 감기고, 조금씩 깊은 호흡 소리가 들렸다.
졸린 걸까. 하긴 헤셰도 꽤 오랫동안 잠들 수 없었다고 했다.
이안이라고 달랐을 리 없었다.
“피곤하죠……?”
조심스레 묻는 말에는 한숨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난 그냥.”
그리고 그것은 루이스의 물음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답변이었다.
“한 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그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시선은 먼 곳을 향했다.
그러니 루이스는 그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제 외조부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화가 나셨군요.”
“그래. 아버지께서 스위니 부부를 부를 때 나에게도 소식을 주셨다면 당장 달려갔을 거야.”
“좋아하셨죠. 그분을.”
“내겐 어머니의 아버지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지.”
비록 많은 기억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백작도 나를 사랑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루이스는 조금 고민하다가, 결국 오래전에 했던 지적을 반복했다.
“……백작님이 아니에요.”
“…….”
그는 루이스가 이야기하는 바를 금방 깨달았다.
“그래.”
그는 어색한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자연스레 입술이 움직이고, 소리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차마 뱉어지지 않는 말이 입술 끝에 처연하게 매달렸다.
나올 듯 차마 토해지지 못한 말은 한 참이나 우물거린 끝에서야 겨우, 소리가 되었다.
“……할아버지께선.”
그는 두 눈을 감았다.
어색한 말이 가져다주는 깊은 감정이 그의 뺨 위로 흘러내렸다.
“나를, 사랑하셨을까…….”
그의 아버지는 외조부 앞에서 언제나 죄인이었다.
황제이면서도 장인 앞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으니, 자연스레 둘의 거리는 멀어졌다.
덕분에 어머니가 몇 번이나 들려주셨던 외조부의 다정한 모습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가 기억하는 외조부는 언제나 악을 품은 노인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러했다.
어머니의 초상을 끌어안은 그 마지막 표정에는 그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실인 이안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끝끝내 미워하는 것만 같아서.
괴로웠다.
다시 또 흐르는 눈물이 그의 턱선을 지나 목덜미에 닿았다.
“……이젠, 여쭐 수도 없으니.”
그는 눈을 감았다.
지금 흐르는 눈물은 아마, 일그러진 그의 유년시절이 남겨둔 것일 터다.
어른들의 비틀린 관계 속에서.
어떻게든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의젓하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괜찮다는 말에 기대어, 솔직한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그 소년 말이다.
루이스는 그의 머리에 제 이마를 기대며 조금 더 깊이 끌어안았다.
눈물은 금방 옮아 붙어서, 그녀가 함께 울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