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원작을 거스르는
헤셰의 목소리는 낯설 만큼 차분했다.
“워렌 백작님께서 타계하셨습니다.”
짧은 보고가 끝났음에도, 이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워렌 백작.
그는 현 황실의 유일한 외척이며, 돌아가신 황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안에게는 하나뿐인 외조부였다.
언젠가 루이스와 함께 찾아갔던 그 시골의 농부 할아버지 말이다.
「내가 비록 이러하나, 일단은 높은 분의 할애비요. 하나뿐인 손주에게 그저 이거 하나만은 약속받고 싶소. 유언이라고 해도 좋소.」
루이스는 그분의 말씀을 떠올렸다.
「거스르지 마시오.」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울리는 순간.
루이스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잔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말씀은 루이스와 이안을 향한 경고였다.
평민 신분의 여자아이가 황족과 얽히는 것은, 그저 불행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닌.
루이스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달콤한 액체는 낡은 나무 바닥 틈새로 스며들어, 시커먼 먼지를 머금었다.
* * *
이안은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 서둘러 수도로 떠났다.
루이스는 한동안 제 방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적막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루이스가 읽은 원작에서, 워렌 백작은 마지막까지 사망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스텔라를 통해서 마음을 치유 받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까, 이건.
명백하게 원작을 거스르는 사건이다.
어째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거지?
그에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거스르지 마시오.」
단 하나.
이안이 조부가 유언이라며 남겼던 충고를 명백하게 어기려던 것을 제외하면.
루이스와 가까운 사이가 되는 형태로 말이다.
이 세계는 어디까지나 이안과 스텔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세워졌다.
그러니 그 망할 원작이 조부의 경고를 이안에게 되새기기 위해서……. 그의 죽음을 도구로 사용한 것이라면.
루이스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하다.
애초에 죽음으로 이야기를 바로 세우려고 한다면, 그냥 루이스를 죽이는 게 간단할 테니까.
루이스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도 할 일은 많았다. 그녀 역시 수도로 돌아가는 날이었으니까.
* * *
루이스가 수도로 돌아가고 나서 며칠 뒤.
가장 커다란 중앙 신전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루이스는 다소 안심했다.
솔직히 말하면, 귀족들의 반대로 형편없는 곳에서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다행이에요.”
루이스는 신전으로 가는 마차에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황비 전하의 장례식과 같은 장소라는 점이 백작님께……, 위로가 될까요?”
“……모르겠구나.”
맞은편에 앉은 루이스의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새카만 베일 아래로 퉁퉁 부어버린 두 눈이 보였다.
“그분께서 그 장소를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감히 짐작도 못 하겠어.”
어머니는 제 드레스 자락을 꾹 쥐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곁에 앉은 아버지께서 얼른 어머니의 젖은 손수건을 새것으로 바꾸어주었다.
“내가 잘못 했어. 날씨가 이렇게 더워졌으면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겨우…….”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서른 번 째 반복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재차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래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출발하셨는걸요.”
루이스의 방학 귀가와 사업 계획도 모두 접어 둔 채 말이다.
“저택을 비우셨다고만 들어서, 두 분이 백작님과 계셨다고 들었을 때는 저도 정말 놀랐어요.”
“그야……. 내 친구의 아버지고.”
친구라는 말을 꺼낼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내 친구의 아들인 전하께서 날 어머니처럼 대해주는 걸……. 그러니까, 나는 꼭 그분이 나의…….”
남은 말은 삼켜 졌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말씀을 능히 짐작했다.
아버지처럼 생각하셨던 것이리라.
그러니 그분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켰던 거고. 제 가장 친한 친구를 대신해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약하신 분인데, 날씨도 갑작스레 너무 더워지고…….”
늙은 몸은 때때로 사소한 계절의 변화에도 쉬이 쓰러지고 만다.
삶에 대한 의지가 깊지 않은 워렌 백작은 더욱 간단히 앓아누웠으리라.
어머니께서 마차의 창문에 머리를 기대시기에, 루이스도 이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햇살이 아프도록 쏟아지는 날인데. 좁은 마차 안은 눈물이 가득해서 꼭 장마철이 벌써 찾아온 것 같았다.
루이스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흔들리는 마차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이안이 걱정이었다.
제대로 슬퍼할 시간을 가지고 있는 걸까.
혹여 오늘도 괜찮은 척 홀로 입술을 깨무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루이스는 그가 보물처럼 아끼는 손수건을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께서 직접 수를 놓아서 그에게 선물 했던 것 말이다.
아마 이번에도 그것이 위로가 되어 주지 않을까.
잠시 마차가 덜컹 흔들렸다.
조금 놀라며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신전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지붕이 보였고, 그 앞으로 몇 명의 사제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이 있는 날이면, 넓은 신전의 마당은 마차로 빼곡하게 들어차곤 했는데.
오늘은 그저 썰렁하기만 했다.
루이스는 마차에서 내리면서 제가 한 가지를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신전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이런 곳에서 장례를 치르면, 실제로 백작님과 가까이 지낸 시골의 노인들은 참석할 수 없을 거다.
하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할 다른 귀족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슬픔을 나눌 이는 적어지고 말았다.
나누지 못한 슬픔은 그대로 부피를 키웠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사제의 미사와 축성이 끝난 후에는, 소년들로 이루어진 성가대가 천국에 닿는 노래를 불러 주었다.
텅 빈 신전의 소리는 평소보다 더 절절하게 소리를 울려 보냈다.
한 사람씩 헌화할 차례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루이스는 백작님을 뵐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무척 야위어 있었다.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욱.
작고 마른 그의 몸 위로는 그가 평생을 소중하게 여겼던 딸의 초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부탁하셨거든.”
루이스의 뒤에 선 어머니께서 작게 속삭이셨다.
백작님은 평생 어쩌지도 못했던 딸의 초상을 결국 마지막까지 끌어안기로 하신 모양이다.
소중하게.
루이스는 그의 얼굴 근처로 하얀 꽃을 내려놓았다.
‘죄송해요.’
어쩔 수 없이 사죄하는 마음이 흘러나왔다.
혹시 그의 죽음이 당겨진 것이 루이스가 원작을 멋대로 휘저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서.
괜한 죄책감에.
‘조금 더, 남은 행복이 있으셨을지도 모르는데.’
원작에서 그가 지었던 희미한 미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랬다면, 어쩌면…….’
한 번쯤은 그가 아껴둔 초상을 제대로 벽에 걸어보지 않았을까.
미소가 주는 용기에 기대어서 말이다.
“루이스.”
뒤에서 아버지께서 가볍게 등을 밀어주셨다. 슬슬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리라.
루이스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조금 흐려진 시야 너머로 이안이 보였다.
그는 루이스의 부모님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아마 외조부의 마지막을 지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리라.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입술을 깨문 자국조차 없이.
‘더 능숙해지셨네.’
슬픔을 참는 것에 말이다.
루이스는 그가 감정을 짓누르는 노력을 한다는 점이 아팠다.
그도 그럴게, 제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이안은 내심 백작님에 대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몰래 그분을 만나 뵈러 가고 싶어 했을 정도로.
‘참 불합리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루이스는 아직도 울고 있는 어머니를 따라서 자리로 돌아왔다.
참석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장례식은 비교적 일찍 끝났다.
루이스는 부모님을 먼저 돌려보내고, 신전에 조금 더 남기로 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전하나 공자님과 한 마디 정도는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저, 괜찮으냐는 하잘것없는 말이라도 말이다.
뭐라도 좋으니 따스한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부모님은 루이스의 고집을 기꺼이 허락해 주셨다.
두 분이 먼저 떠나시는 마차를 배웅하고, 루이스는 다시 신전을 향해 느릿하게 걸었다.
몇 명 되지 않는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신전을 나오고 있었다.
“루이스 스위니.”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하얗고 작은 아름다운 얼굴에 매혹적인 붉은 머리카락.
그녀는 루이스의 앞에 도도하게 멈추어 섰다. 살짝 고개를 추어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루이스는 잠시 고민했지만, 기꺼이 그녀 앞에 허리를 깊이 숙였다.
여기는 아카데미가 아니다.
응당 루이스는 그녀보다 낮은 신분으로서 행동함이 옳았다.
“라피스의 아가씨.”
스텔라는 완벽하게 몸을 숙인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유치하지만 묘한 승리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굴하게 숙인 저 자세는 약자가 강자 앞에서 보이는 것이니까.
“여기에서 뭘 하고 있지?”
“백작님과 제 부모는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스텔라가 고개를 들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으니, 루이스는 여전히 바닥을 바라본 채였다.
“하지만 스위니 부부께선 떠난 모양인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굳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말하지 않았다.
약속된 것도 아니고, 그저 멋대로 남은 것이니까.
하지만 스텔라는 루이스가 누구를 위해 기다리는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멍청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정말로.”
스텔라의 목소리에는 작게나마 분노가 섞여 있었다.
“백작님의 경고를 보고도. 감히.”
경고.
그것은 아마 백작의 시신이 소중히 끌어안은 황비 전하의 초상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시는 이런 불행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제 죽음을 통해서 재차 강조했다.
루이스는 스텔라의 말에 어떤 식으로 대답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라피스의 아가씨.”
루이스는 제 옷자락을 가볍게 쥐었다.
“분명히, 그분은 경고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허락도 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도 모르게 날카로워진 시선 끝에 스텔라의 도도한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남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남긴 진심 어린 조언이었죠. 누군가의 속을 은근한 말로 긁어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작은 평생을 괴로워하고도,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그 고결한 마음.
그런 말씀이 유치한 신경전에 사용되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이야기한들. 네가 한 행동은 명백히 백작님의 뜻과 어긋났어!”
다소 높여진 소리에, 주변을 지나가던 사제들이 흘긋흘긋 이쪽을 바라보았다.
루이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깊이 숙였다.
“네게 그분께 조금이라도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
흥분이 섞인 그녀의 말은 조금 빨라졌다. 그러나 길어질 수는 없었다.
“스텔라 라피스.”
조용히 다가온 누군가가 그녀에게 경고를 보내온 것이다.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지만, 충분했다.
스텔라는 얼른 몸을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고, 루이스는 조금 더 깊이 몸을 숙였다.
“시, 시몬 힐라드.”
당황한 스텔라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카데미던가? 여기.”
그는 팔짱을 끼운 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몹시 놀라운 일이다.
“소, 송구합니다. 힐라드 공자님.”
스텔라가 다급하게 몸을 숙였고. 시몬은 쓰게 웃었다.
“그대가 언제부터 백작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전하를 위해 남아준 친구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그분께서 좋게 보시진 않을 거다.”
“공자님. 무례가 아니라, 그건.”
“라피스의 어린 딸.”
시몬은 스텔라에 대한 호칭을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분 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말이다.
시몬은 황가에 속한 자다. 일반적인 귀족들은 그를 윗사람으로 공경함이 옳았다.
물론 평소의 시몬은 그런 것을 몹시 불편하게 여겼지만 말이다.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나의 일이지. 라피스 가문의 하잘것없는 따님께서 하실 일이 아니라.”
스텔라는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스텔라가 루이스에게 그러했듯, 그 역시 신분으로서 그녀를 짓누르겠다는 뜻이리라.
“어쨌든 황가의 일에 걸음 해주어서 고맙다.”
“아, 아닙니다. 마땅한 도리로…….”
“고맙다.”
스텔라의 대답이 길어지려는 찰나, 시몬은 굳이 같은 말로 그녀의 말 허리를 잘랐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스텔라는 다시 인사를 한 후, 다급하게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루이스는 깊이 숙인 자세를 그대로 두었다.
여기는 신전의 마당이고, 보는 눈이 많은 곳이다.
루이스가 시몬에게 편히 대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 점은 시몬도 이해했는지, 딱히 그녀의 거창한 예법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쪽으로.’라고 속삭이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따라갔다.
시몬은 신전으로 들어갔다.
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제들 몇 명이 초를 끄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신전을 정돈하고 있었다.
“……루이스”
그는 구석진 자리에 앉으며 얼핏 인상을 구겼다.
“그런 소릴 왜 들어주고 있었던 거지?”
그의 목소리가 드문 분노가 섞였다.
“그쪽은 라피스의 아가씨고 저는 스위니니까요.”
“그건…….”
시몬은 차마 반발하지 못했다.
루이스가 이안과 시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린다면, 그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터다.
물론 루이스는 그런 걸 바라지 않겠지만.
“나서주셔서 고마워요. 시몬.”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편한 호칭에 루이스는 얼른 제 입을 막으며 정정했다.
“……공자님.”
“어느 쪽이든 관계없어. 루이스는.”
“제가 곤란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그건 그렇겠다만.”
“그보다.”
루이스는 시몬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전하는요?”
“솔직히 말하면 좋은 상황이 아니야.”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폐하와 좀 다툼이 있기도 했지. 서로 날이 선 모양이다.”
“……좋지 않네요.”
“몹시 나쁜 상태지.”
“공자님은요?”
루이스의 물음에 시몬은 조금 놀란 듯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식사 같은 것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잠은요?”
“……보다시피.”
“눈이 빨갛단 말이에요. 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것 잊지 않고 있죠?”
시몬은 옅게 웃으며, 깔끔하게 묶어서 틀어 올린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슥슥 문질렀다.
“조금 잠을 설쳤을 뿐이야. 그보다 머리, 예쁘게 묶었네.”
“사용인분이 해주셨어요.”
“이런 모양도 잘 어울리네……. 흠, 나중에 배워둘까.”
“제 머리 같은 건 어찌 되어도 괜찮아요! 그것보다, 공자님도 틈이 날 때마다 꼭 잠을 자 둬요. 걱정되니까요.”
루이스는 시몬과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이안과도 이야기를 섞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뭔가 전해줄까?”
시몬이 전령을 자처하기에,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따로 전하지 않아도 공자님께서 잘 해주실 테니까요.”
“아쉬워할 텐데…….”
“그럼 공자님께 헸던 말과 같은 걱정을 전할게요. 식사와 잠을 잘 챙겼으면 좋겠다고요.”
“반드시 전해주지.”
그리고 이번에는 시몬이 루이스를 걱정해 주었다.
내용은 지난번과 같았다.
날씨가 더워도 이불을 잘 덮고 자고, 차가운 것을 너무 먹지 말라는 내용 말이다.
사제들이 신전의 정리를 모두 끝낼 때 즈음에는 루이스도 어쩔 수 없이 스위니가로 돌아와야 했다.
* * *
돌아온 저택은 조용했다.
일단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내의 사무실로 출근하셨다.
가능하면 루이스와 함께 있고 싶어 하셨지만,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일이 쌓여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저녁이 되자 상주하는 몇 명의 사용인을 제외하고 모두 퇴근했다.
저택은 더욱더 고요해졌다.
루이스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녀도 가만히 방에 틀어박혀 있고 싶은 기분이니까.
어차피 지금은 방학이다.
그건 먹고 싶을 때 먹고, 늘어지고 싶을 때 늘어지고.
걱정하고 싶을 때 걱정할 수 있는 기간이란 뜻이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상황이 아니야.」
「폐하와 좀 다툼이 있기도 했지. 서로 날이 선 모양이다.」
시몬이 ‘좋지 않다’고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게 틀림없었다.
대체 무슨 일로 다툰 걸까.
멍하니 침대에 엎드려 있으니, 방문이 열렸다.
오랫동안 집안의 일을 도와준 집사 할아버지였다.
“아가씨.”
루이스는 얼른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조금 얼굴을 붉혔다. 여전히 장례식에서 입고 있던 검은 드레스 차림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말이다.
“다행이군요. 아직 드레스를 입고 있으셔서.”
“예?”
생각과는 다른 말에 루이스는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런 시간에요?”
루이스는 구름이 낀 까만색 하늘을 흘긋 돌아보며 물었다.
집사 할아버지는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예. 황궁에서, 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