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그대의 취향대로
“반갑지 못한 소식이 있다.”
이안은 루이스에게 전했던 것과 같은 소식을 학생회에도 전달했다.
시험이 끝나고 한껏 풀어졌던 학생회실의 분위기는 단번에 바짝 얼어붙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상반기에 우리 학생회는 주어진 예산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했지.”
아카데미에서 내준 예산을 그대로 남기고도, 돈을 더 벌 수 있었던 건 모두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대들의 노고에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 학장님도 만족해하시더군.”
꽃을 팔고 잉크를 팔고 종이를 팔아서 피같이 벌어들였던 돈.
모두의 얼굴에 잠시 자랑스러움이 피어났다.
하지만 이런 것이 반갑지 못한 소식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슬슬 본론인데, 오답 리포트 제출 기간에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었지.”
학생회의 넉넉한 예산으로 어떤 것을 하면 좋을지 의견을 받았다.
물론 루이스도 한가득 쌓인 설문지를 들고 강의실을 전전했었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수석이고 오답 리포트를 낼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순간, 이안을 향해 ‘와 재수 없네요. 회장님.’이라는 시선이 쏟아졌다.
“혼자서 설문 조사지를 취합하고 정리했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
그는 근처에 있던 파일 하나를 펼쳤다. 아마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해 둔 것이리라.
“가장 많은 의견이 있었던 것은 상점가로 몰래 나갈 수 있는 수단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학장님께서 허가해 주실 리 없으니 일단 기각.”
“담벼락에 사다리 정도는 몰래 놓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지만, 이안은 코웃음 쳤다.
“담을 넘을 의지도 없는 게으른 녀석은 상점가에 갈 자격도 없다.”
이안의 근처에 앉은 다른 남학생이 엄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설득력이 있는 답변인 모양이니, 루이스는 딱히 반발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많았던 의견은 기숙사 옥상에 안전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일을 벌일 수 있는 예산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술자를 쓰는 일은 꽤 단가가 높죠.”
클레어가 손을 들고 문제를 제기하자, 이안은 씩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것 없어. 내 입에서 ‘안전’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나온 덕분에 아카데미 측에서 추가 예산까지 지급해 주기로 했거든.”
“황태자 전하께서 산책하실 때마다 안전을 친구로 대동하신다는 점을 깜빡했네요.”
클레어가 제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빙긋 웃었다.
“그걸 깜빡하는 건 곤란해. 그걸 빌미로 뽑아낼 수 있는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테니. 말이란 만들면 그만이거든.”
그러자 딘이 턱을 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황태자 전하의 정신적 ‘안전’을 위해서 시험부터 없앴으면 좋겠는데요.”
“그건 안돼. 내가 수석을 차지할 수 없게 되니까. 나는 남들 위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루이스 스위니와 회장님이 같은 해에 입학했어야 했는데.”
딘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수석에 집착하는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위험한 발언이야 그건. 루이스 스위니와 내가 엉덩이가 편편해질 때까지 공부하고 나가떨어지는 사이에, 클레어 이리스가 수석을 차지할 테니까.”
이안은 클레어를 향해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은 제법 말이 통하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석을 둔 경쟁자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늘 이안의 승리였다.
하지만 클레어가 공부에 그다지 열을 올리지 않고도 차석을 차지한다는 점 때문에, 이안은 늘 그녀를 경계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학장님께서 연결해주신 믿을만한 업자를 통해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지.”
훈훈한 결론에 몇몇 학생이 작게 손뼉을 쳤다.
이제 학생들은 마음 놓고 옥상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안전하게.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이안이 음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여름 방학에 말이야.”
순간 실내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 뒤로 이어질 불길한 말을 상상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의뢰 주체인 학생회가 현장에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자, 잠깐만요. 회장님. 저는 방학 동안에 가문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얼른 곤란함을 토로했다.
“알아, 알아. 이 많은 인원이 굳이 다 남을 필요는 없어.”
그제야 몇 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나는 대표로서 남을 테고.”
이안은 시선을 돌려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아주 깊은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말이다.
루이스는 어제 그가 토마토 조각을 건네주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그대가 있어 준다면 좋겠는데.」
「저요?!」
「그래.」
「왜……왜요?」
「그야, 가장 친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게다가 스위니 부인께서 보내주신 편지에 의하면, 스위니 부부께서는 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정도는 잠시 저택을 비우고 어디에 다녀오신다더군.」
「제겐 그런 말씀이 없으셨는데……. 아니 그보다 회장님이 왜 우리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거죠?」
「왜냐니, 스위니 부인은 내게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니까. 늘 걱정하고 안부를 여쭙는 건 자식 된 도리지.」
「제 남동생이 이렇게 예의가 바른 줄은 몰랐네요.」
「우리 누이께서 수석이 눈이 뒤집혀 가정에 무심하신 만큼 내가 잘해야지. 어쨌든 사용인밖에 없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조금 더 지내다 가는 편이 좋을 거야. 부인께서도 찬성하셨고.」
「찬성하셨다고요?!」
「물론, 그대가 허락한다면 좋다고 하셨을 뿐이야. 그대는 거취를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가 있지.」
「흐으,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데…….」
정확히는 부모님을 만나고 싶었던 거지만 말이다.
「알아. 그래서 그대에게 반갑지 못한 소식이라고 했던 거고.」
곧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탓인지 어째 더 섭섭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도대체 루이스가 돌아올 이 시기에 어딜 가시는 걸까.
일이 많은 온실을 두고 두 분이 모두 이동하실 정도면 꽤 큰일일 것 같은 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루이스는 잠시 걱정했다.
늘 행복하고 여유로운 부모님이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 꽤 힘들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쪽 가문 사람들에게 신체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택한 탓에 가문에서 파문당했고.
덕분에 루이스는 어머니 쪽의 친척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마 그들도 루이스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어머니 쪽의 복잡한 사정이 다시 두 분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루이스의 앞에서 가볍게 키스를 나누실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예쁜 부부니까.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아닐 거야.」
그는 문득 루이스의 생각을 넘겨짚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나도 걱정돼서 알아봤는데, 그쪽은 아무 일 없거든.」
「……고마워요.」
루이스가 의기소침하게 대답했기 때문일까.
그는 제 접시에 놓인 커다란 토마토 조각을 집어서 루이스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졸업하면 황태자 같은 건 그만두고 정보상을 할까 봐. 재능있는 것 같지 않아?」
재미있는 너스레에 루이스는 조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룻밤 동안 고민했다.
사용인만 남은 저택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일주일 정도 더 아카데미에 남을지.
며칠은 고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제 대답을 내놓아야 할 모양이다.
루이스는 가볍게 손을 들어 대답했다.
“저도 남을 수 있어요.”
이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고맙다는 뜻일 거다.
“좋아, 몇 사람 더 있나?”
“루이스가 남는다면, 나도.”
클레어가 손을 들었지만, 이안은 잠시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보았다.
“클레어 이리스, 정말 괜찮은가?”
“나는 안 돼?”
“안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적인 질문은 회의 후에 따로 하지. 또 있나?”
이번에는 딘이 삐죽 손을 들었다. 아주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본가에 돌아가 봤자 귀찮은 잔소리만 들으니까 남지, 뭐.”
루이스는 잠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딘은 미묘하게 클레어가 가는 곳에 전부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다지 의욕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학생회에 들어온 것은 클레어의 권유 때문이라고 했었지?
게다가 함께 듣는 수업도 꽤 많은 것 같고.
가만히 보면 식사도 늘 함께한다.
게다가 루이스가 새 학기 파티에 가지 못했을 때도, ‘클레어가 슬퍼하니까.’라는 이유로 루이스를 데리러 오기도 했다.
지금도 별말 없이 앉아있다가, 클레어가 남는다고 말하고 나니 손을 들었고.
맙소사.
이건, 이건!
‘누가 봐도 좋아하는 거잖아!’
어째서 이제야 깨달은 거지?
그야 두 사람이 소꿉친구라고 했으니, 같이 있는 모습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소꿉친구란 관계도 가끔은 이상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 루이스만 해도 말이다.
소꿉친구랑 첫 키스를 해버렸다.
물론, 그것이 과연 키스인지. 위로의 뽀뽀인지 조금 고민해 볼 필요는 있지만 말이다.
가능하면 위로의 뽀뽀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 날의 분위기를 되새겨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거다.
딘 크리시스가 소꿉친구인 클레어 이리스를 이성으로 좋아한다는 거.
루이스가 음흉한 얼굴로 키득키득 웃으니, 맞은 편에 앉은 딘이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 * *
시간은 차곡차곡 흘렀다.
아카데미는 무사히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고, 루이스는 본가로 돌아가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시몬 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루이스가 아카데미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스위니 저택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차가운 걸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루이스.」
그리고 여름의 시작마다 건네는 같은 걱정을 해 주었다.
「주의할게요.」
「늘어져서 낮잠을 잘 때도 담요를 덮는 걸 잊으면 안 되고.」
「그것도 주의할게요.」
물론 루이스는 찬 것도 잔뜩 먹을 거고, 담요 따위는 훌륭한 발차기로 날려버릴 거다.
어쩔 수 없다. 여름은 지옥처럼 더우니까.
지금만 해도 그렇다.
루이스는 땀으로 범벅이 된 불쾌한 기분 속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얇은 잠옷이 몸에 달라붙은 이 느낌. 정말 싫다.
의료동 선생님의 일기 예보는 이번에도 멋지게 적중한 모양이다.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어째서 한여름처럼 더운 거죠…….”
루이스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간헐적인 바람이 그나마 땀을 식혀 주었지만, 끔찍한 더위가 가시는 일은 없었다.
의욕이 사라진다.
매번 여름마다 늘 그랬지만 말이다.
루이스는 침대에서 잠시 뒹굴뒹굴했다.
기숙사는 조용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남은 학생이라고는 네 명뿐이니까.
게다가 교수님 대부분이 휴가나 학회로 자리를 비우셨다.
관리 부인도 본가에 다녀온다며 아카데미를 떠났고.
그동안 텃밭을 돌보는 건 힐 교수님의 일이 될 거라고 했다.
이렇게까지 더워지기 전에는 루이스도 그 일을 돕겠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지금으로써는 밭일은커녕 식사하러 가는 것도 귀찮았다.
입맛도 없고.
차가운 얼음 조각 같은 거나 입에 물고, 온종일 침대에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방학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몸이 게으름을 피우니까, 머릿속이 부지런해진다.
모처럼 찾아온 여유로운 아침에, 그녀의 머릿속은 다양한 고민거리를 가져와 루이스의 앞에 진열했다.
‘미쳐가는 원작.’
이건 진짜 큰 문제다. 이제는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루이스의 꽃길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는 안심했다.
루이스의 제1원칙은 원작 커플의 성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무사히 성공하는 거다.
‘라센 교수님과 스텔라의 관계.’
물론 루이스는 스텔라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싫었다.
하지만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뺨을 생각하면, 좀 속상해진다.
물론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루이스라는 점도 유감스러웠고.
‘그리고, 회장님.’
그녀는 여전히 원작의 이안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서 이런 대사를 뱉는 이안 말이다.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대와 나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이대로 루이스의 마음이 기울어 버리면, 언젠가 저런 말을 듣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 모습을 이미 봐버린 거나 다름없는데.
그러니 루이스는 그날의 입맞춤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냥, 친구로서 위로였는지.
아니면 다른 마음이 있었던 건지.
게다가, 루이스에게도 완벽한 이상형이라는 것이 있다.
원작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안전한 남자’.
그 사람의 다른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다.
생일에 선물을 주고받거나.
습관이나 버릇 혹은 기질을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가끔은 직접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말이다.
‘역시 안전이 최고지.’
안전제일주의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는 순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마 클레어일 것이다.
이 기숙사에 여학생이라고는 그녀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클레어?”
그리 말하자, 곧장 문이 열렸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한데.”
좁은 틈 사이로, 이안의 은색 머리카락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말끔한 얼굴이 보였다.
“……회장님.”
“그대가 늘어진 걸 보니 여름이라는 계절감이 느껴지는군.”
“이런 데서 계절감을 찾지 마세요. 저는 정말로 힘드니까요.”
루이스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알아, 알고 있어. 루이스는 더위에 아주 약하니까.”
“회장님께서 이렇게 멀쩡하신 걸 보니까, 아침은 훨씬 지난 모양이네요.”
루이스는 아침에 약한 이안의 상태를 떠올렸다.
“그대야말로 내 상태를 통해서 시간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군. 나도 아침마다 정말 힘들거든.”
그는 루이스의 허락도 없이 그녀의 방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잠옷밖에 안 입은 아가씨의 방에 멋대로 들어오셔도 괜찮은 거예요?”
“내가 사준 잠옷을 내가 보겠다는데. 문제 있나?”
“그야…….”
그렇게 말하니까 또 그러네.
이 잠옷은 작년 생일에 이안이 ‘직접 축하해 주지 못해서 미안.’이라는 쪽지와 함께 보내준 것이다.
시원함을 유지해주는 아주 비싼 원단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면서.
“그렇긴 하지만요.”
“꽤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다지 시원해 보이지 않는군.”
그는 땀에 전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얼굴을 찌푸렸다.
“마, 만지지 마세요. 더럽잖아요!”
“손 씻었어.”
“제가 더럽다고요! 땀에 절었단 말이에요.”
“상관없어. 내 손가락에 그대의 땀이 배면 드디어 여름이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지지.”
“늘 말하지만, 변태에게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지니까, 제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나도 늘 말하지만, 그대 이외의 사람에게 이런 짓은 안 해.”
또 꼬시는 대사를 하고 있어!
이 남자가 진짜!
“정말이지, 회장님은……!”
루이스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들고 있던 차가운 유리잔을 루이스의 뜨끈뜨끈한 얼굴에 대 주었다.
“흐으…….”
루이스는 하려던 말도 잊고, 유리가 전해 주는 차가운 감각에 빠져들었다.
“시원하지?”
한참 더위를 식힌 루이스는 곧 그가 건네는 유리잔을 받았다.
투명한 잔 위로 레몬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귀한 얼음도 있었고.
“저한테 주려고 가져오신 거였어요?”
“그럼 이 방에 그대 말고 누가 있는데?”
“회장님께서 드시는 건 줄 알았죠.”
“실은 조금 먹긴 했어. 여기로 오는 길에 더워서. 그보다 빨리 마셔봐. 그대의 취향일지 궁금하거든.
루이스는 입술 위로 유리잔을 기울였다. 일단 시원한 걸 먹으니까 살 것 같았다. 게다가 맛있었다.
화가 날 정도로 새콤함과 달콤함의 비율이 완벽했다.
으, 대체 이 남자는 못하는 게 뭐야.
“맛……있어요.”
“그럴 줄 알았지, 그럼 이제 식사할 기력이 생겼나?”
“식사요? 관리 부인이 안 계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방학에도 남아준 내 일꾼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루이스는 조금 의심스러운 얼굴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설마 요리도 하셨어요?”
“말했잖아. 나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익혀야 했다고. 당연히 요리도 그에 포함되지.”
루이스는 이안을 먼저 내보낸 뒤에 재빠르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안이 만들어 준 음료를 생명수 삼아 식당까지 걸어가니, 클레어와 딘은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빵도 구웠어요?”
“생존에 필요하니까.”
“샐러드는요?”
“생존에 필수지.”
“그럼, 이 아름다운 형태의 오믈렛은요?”
“생존용.”
“치즈, 넣었어요?”
“물론. 그대의 취향대로.”
……이 완벽한 인간 같으니.
그가 만든 오믈렛은 아주 맛있었고, 그 속에 숨은 치즈는 기분 좋게 주욱 늘어났다.
순식간에 오믈렛을 해치운 루이스는 잠시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분하도록 맛있었다.
역시 저 남자. 너무 위험해. 위험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