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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31화 (31/92)

?31. 그대가 옳아

생각해 보면, 이안은 그다지 다정하지는 않았다.

다정한 사람은 시몬이었다. 언제나.

우울한 날의 루이스를 기운차게 하는 것도, 복잡한 문제에 적절한 조언을 주는 것도.

전부 시몬이었다.

시몬의 응원으로 루이스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면, 이안은 어김없이 다가와 루이스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제 소중한 사촌인 시몬을 귀찮게 하지 말라며.

물론 루이스는 그런 이안이 얄미워서 박박 소리 지르며 반발하곤 했다.

‘시몬 공자님께서는 전하와는 달리 아주, 아주! 다정하시단 말이에요.’

‘그야 그렇겠지. 시몬의 인내심은 아주, 아주 깊거든.’

별것 아닌 대립에도 루이스는 절대로 지지 않을 각오로 대들곤 했다.

아마 그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 때문이었을 거다.

어쨌든 사소한 대립은 언제나 간식의 등장으로 끝나곤 했다.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평범하게 말이다.

* * *

루이스는 손끝에 닿은 옷자락을 조금 더 꾸욱 쥐었다.

어느새 그녀를 감싸고 있던 이안의 팔이 루이스의 머리를 조금 더 깊이 눌러왔다.

서로가 완벽하게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루이스는 눈을 감고 제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느꼈다.

신뢰에 형태가 있다면, 아마.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

그녀의 몸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랗고 굳건한.

안도의 숨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그 숨의 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모르겠다.

그렇게 바라던 신뢰가 여기에 있는데, 어째서 웃을 수가 없는지.

도리어 이렇게…….

루이스는 멋대로 흐르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멀리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다는 말이냐?”

어느 노인의 목소리였다.

‘전하’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아마 궁의 사람이 급하게 허가를 받아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온 듯했다.

“모르죠. 저야 전하께서 아카데미로 들어가시고 나면, 따라붙을 수 없다는 규칙이 있잖아요?”

헤셰의 목소리였다.

“어쨌든 당장 전하를 다시 찾아 모셔야 하네. 알겠지?!”

“……예이, 뭐. 최선을 다하기는 하겠지만요.”

귀찮아 죽겠다는 말로 보건대, 헤셰가 최선을 다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계단을 따라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돌아가셔야 하지 않아요?’

루이스가 그렇게 물어보려는 찰나.

루이스를 안은 이안의 팔에 조금 힘이 들어갔고, 그녀의 몸은 간단하게 공중으로 달랑 들렸다.

“……!?”

깜짝 놀란 루이스가 뭐라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그는 몸을 빙글 돌려 루이스의 방 안으로 들어와, 등으로 문을 밀어 닫았다.

모두가 잠든 밤이기 때문일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이안과 루이스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헤셰가 계속 툴툴거렸다.

“아아, 연회가 있는 날에 정찰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고요오…….”

“그렇게 하지 말고 좀 샅샅이 좀 찾아보게! 자네는 전하의 기사가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백작인 제가 여학생 방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 그야 그렇다만.”

“게다가 전하께서 여학생 방에 들어가실 리도 없고요.”

“그것도 그렇군.”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층에서 분명히 인기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에, 그렇다면 그거군요.”

헤셰는 히죽 웃으며 조금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거의 이안에게 들으라는 식이었을 거다.

“전하께서는 성인이 된 기념 탄신 파티에서 술 한잔을 걸치신 후에, 신이 난 나머지 좋아하는 여학생 방에 쳐들어갔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럴 리가 있나! 올곧으신 전하께서 그런 망측한!”

“거 봐요. 아니잖아요.”

헤셰가 기분 나쁠 정도로 히죽히죽 웃는 소리를 덧붙였다.

이 시점에서 이안은 확신했다.

저건 전부 알고 웃는 소리가 틀림없다고.

정말이지, 모른척해 주는 충심에 감동해야 할지.

저리 잔뜩 놀리는 장난기에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여학생 기숙사 복도를 거닐어 보다니, 전하의 호위도 해볼 만하네요, 이거.”

“무, 무슨 부끄러운 소리를 하는 건가! 당장 나가게, 당장! 다른 곳을 수색할 테니까!”

“아, 왜요? 어디서 몰래 연애하는 향긋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그건 또 무슨 괴상한 냄새란 말인가!”

“아, 밀지 마요! 진짜라니까요! 연애 한 번 안 해 보셨어요?”

다행히도 헤셰가 불평하는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치지 말라거나, 밀지 말라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거의 끌려나가는 것 같지만 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적막만이 남았다.

“후…….”

이안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다소 긴장이 풀린 탓에, 문가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스르르 내려앉았다.

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품에 있던 루이스는 자연스레 그의 한쪽 다리 위에 앉는 모양이 되었다.

이런 날에 달이라도 환히 떴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안은 진득진득한 어둠뿐인 방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도무지 보이지 않았으니까.

루이스의 표정이.

그러니 이안은 시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루이스의 감정을 헤아려야 했다.

가령, 천천히 몰아 쉬는 호흡 소리 라거나.

부스럭거리며 몇 번이나 제 옷자락을 말아 쥐는 소리 같은 것들.

‘싸우고 있구나.’

온종일 타인과 다투고도, 지금은 또 자신의 감정과 싸우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둠에 조금 익숙해진 시야에 비로소 그녀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작고, 여린.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열망이 있다.

올곧은 열망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거센 바람이 부는 날에는 무언가에 부딪혀서 멍이 들고 마는 것이리라.

아마 루이스는 이번에도 절대 제 뜻을 굽히지 않을 거다.

그녀의 열망에 새파랗게 멍이 들고, 결국에는 깊은 자상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제가 정한 길을 바꾸지도, 바람을 막아줄 방패를 찾지도 않을 거다.

온전하게.

제 몫의 상처를 받아들일 거다.

이안은 그러한 루이스의 방식을 존중했다.

그러니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냥.

……그냥, 이렇게 있어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쓸모없게도 말이다.

그는 루이스의 어깨를 당겨 가만히 제게 기대도록 했다.

어깨 위로 얼굴이 닿은 이후로는 동그란 정수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대로 조금 시간이 흐르자, 그의 품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 안 울어요…….”

그러니까 머리를 쓰다듬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이안은 피식 웃었다.

“알아. 그랬다면 시몬을 불렀겠지. 그대를 위로하는 건 그 녀석의 특기니까.”

“…….”

농담같이 덧붙인 말에는 대답이 없었다.

괜한 말을 했나.

이안은 조금 후회했다. 이렇게 말하면, 뭐라고 반발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미안해.”

그는 작게 사과하며 루이스를 양팔로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 사과에는 아마 여러 가지 뜻이 들어갔을 거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덧붙인 것은 물론이고, 이런 루이스의 앞에 뒤늦게 나타났던 것까지.

토닥토닥.

그는 손끝에 닿는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어린아이 취급한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루이스는 도리어 그에게 온전하게 무게를 기대오기 시작했다.

더 느리게. 하지만 그녀의 감정에 충분히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그 등을 쓸어내렸다.

“……흐으.”

한순간.

삼키고 삼키던 감정의 방울이 툭 하고, 그녀의 눈가 사이로 흐르고 말았다.

그것이 가까스로 루이스가 붙잡고 있었던 모든 균형을 흔들었다.

“흐, 흐흑…….”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어도 소용이 없었다.

허락하지 않은 눈물은 어느새 얼굴을 따라 목선을 적시고, 그의 옷을 뜨겁게 물들여갔다.

……옷?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들어 손등으로 제 얼굴을 훔쳤다.

“저, 전하 옷이…….”

어째서 전하라는 호칭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바깥의 옷을 입고 있는 탓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습관이 자연스레 따라 나온 걸지도 모른다.

“상관없어.”

하지만 그는 다시 루이스의 머리를 품으로 당겨왔다.

상관없다는 건, 그의 옷이 엉망이 되어도 괜찮다는 의미일 거다.

“정말로……상관없으니까.”

그는 루이스의 이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려는 듯.

굳이 같은 말을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잔뜩 온기가 묻은 목소리로.

루이스의 눈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커다란 눈물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흘러내렸다.

아주 오랫동안.

대화는 없었다. 억지스러운 위로의 말이나, 상황을 탓하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단 한마디의 말도 필요치 않았다.

그러다가 괜히.

정말로 괜히, 루이스는 이안이 얄미워졌다.

차라리 평소처럼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화를 내었어도 좋았을 거다.

어째서 의심받을 행동을 했느냐고.

조금 더 당당하게 제 논리를 주장할 수는 없었느냐고.

그렇게 말해주는 그의 시선에 분명한 신뢰가 있을 테니까.

루이스는 분명 그것만으로도 많은 힘을 얻을 거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치사할 정도로 다정해서,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녹아내리고 만다.

항상 반칙 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해요. 진짜.”

겨우 뱉은 말끝에, 훌쩍. 하고 울음소리가 달라붙었다.

“뭐, 라센 교수의 관점에서야 네가 너무 하겠지. 똑똑하지, 시험 잘 보지, 예쁘지, 평판 좋지, 올바르지 게다가…….”

아무래도 이안은 루이스의 ‘너무하다’는 상대를 라센 교수로 착각한 모양이다.

크게 상관은 없었으니, 루이스는 굳이 그의 착각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나열한 칭찬에 대해서는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제게 그렇게……, 흑. 대단한 수식어가 붙어요?”

“그러게.”

그는 루이스의 머리를 장난스레 꾸욱 누르며 낮게 웃었다.

“점점 대단해져서 큰일이네.”

뭐가 큰일이라는 걸까.

어쨌든 그와 다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끊임없이 흐르던 눈물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겨우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따라잡아요?”

“그대 말이야. 어릴 때는 아주 어른스러웠거든. 얄미울 정도로 누나 같았지.”

그야 어린 루이스의 몸속에는 10대 소녀가 들어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하는 짓은 깜찍한 말썽꾸러기였지. 사랑받고 싶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같은.”

“윽.”

그는 얄밉게도 루이스의 아픈 곳을 쿡 찔러온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주변 사람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걸, 받아보고 싶었으니까.

받으니까 너무 좋기도 했고.

루이스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시선 길을 따라서 마주쳤다.

이안은 옷 소매 끝으로 루이스의 얼굴을 살살 닦아 주었다.

“그, 그 옷. 비싸지 않나요?”

“글쎄, 선물 받은 거라 모르겠는걸.”

“선물 받은 옷이 이렇게 되어서 어쩌죠?”

루이스가 잔뜩 울상을 지으며 묻기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상관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다시 가셔야 하잖아요.”

이번에는 이안이 대답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시는 날이고, 또 새벽까지 즐거운 연회가 있을 거라고 하셨고요.”

“음……. 그랬지.”

그는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한 투였다.

“그러니까, 전하의 연회라고요.”

“뭐, 어때.”

“나중에 혼나실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요.”

황가의 어른들과 그를 보필하는 무서운 시종 할아버지들이 돌아가면서 화를 내면, 그는 한 달 동안 잔소리만 들어야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좀 무서운데.”

“그렇죠?”

“그대와 있었다고 자백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완전히 오해받는다고요!”

게다가 루이스는 이제 오해라면 지긋지긋한 사람이고.

“하지만 모두 루이스를 좋아하니까, 용서해 줄지도 모르지.”

“……시종 할아버지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요.”

“그대 모르게 꽤 좋아하고 있어. 아닌 척하는 것뿐이지.”

루이스는 ‘그럴 리가 없잖아요,’라며 쿡쿡 웃었다.

“그냥……, 오늘은 이렇게 있고 싶은데. 생일이니까.”

“그러고 보니.”

루이스는 뭔가를 떠올리는 듯한 얼굴을 했다.

“생일 밤에 찾아오신 적이 있었죠……? 아주 예전에.”

“그대가 그 날을 기억할 줄은 몰랐는걸.”

“기억해요. 당연히 기억해요.”

이안은 조금 기뻤다.

사실은 그 역시 그 날을 조금은 특별하게 기억하고…….

“그 날, 창가로 절 데리러 온 헤셰 경하고 특별한 약속을 했었거든요.”

“…….”

“헤셰 경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요.”

“대체 왜, 내 생일에 헤셰와 그대가 특별한 약속을 나누는 거지?”

“안되나요?”

“안돼.”

이안은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어디선가에서 엿들을지도 모를 헤셰에게 경고하듯 말이다.

하지만 루이스를 깊이 끌어안은 후에는 그 귓가에 자그마한 소리로 속삭였다.

“농담이야. 그대는 자유롭게 누구와도 교류할 권한이 있지.”

“……왜 작은 소리로 말씀하세요?”

루이스도 그를 따라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보안 문제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대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루이스를 안은 팔에 꾸욱 힘이 들어간다. 그만큼 걱정했다는 뜻 같았다.

“……고마워요.”

“뭔가……, 할 말 있나?”

“저요?”

“그래. 그대가.”

루이스는 그에게 안긴 채 고민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요.”

이안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응어리져서 뭔가 아무 말이라도 툭툭 뱉을 것이 있으면 하라는 뜻이었는데.

그의 생일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축하부터 하고 있단 말인가.

“고마워. 하지만 그런 거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타고 남은 재 같은 말 있잖아.”

“…….”

“어느 나라의 어순으로 말해도 지적하지 않을 테니까. 편하게 나오는 대로 말하라는 뜻이었어.”

이안은 제 한심한 언변에 한숨만 나왔다.

“없다면…….”

그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루이스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쩐지 부끄러움이 녹아든 목소리로.

“이, 이런 거.”

“음?”

“이런 것을 여쭤보는 거……. 그, 저기 엄청 실례라는 거 알고 있는데요.”

“괜찮아, 물어봐.”

부드러운 대답이 루이스의 등을 밀어주었다.

“전하께서 제 상황을……전해 들으셨을 때요.”

“응.”

“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실은, 알고 있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빤히 아는 것을 시험하듯 묻는 것은 실례되는 행동이다.

그러니 루이스는 차마 그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가 들려줄 것이 분명한 그 말을 듣고 싶었다.

간절히도.

고개를 푹 숙인 루이스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기다렸다.

“…….”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죄, 죄송해요. 전하를 시험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전 그냥.”

“루이스 스위니.”

“그게, 있잖아요. 사실은 한 사람도 저를 믿어 주지도 않았거든요.”

“루이스.”

“……제 평소 행실이 나빴을까요. 하지만 저, 정말로 안 했단 말이에요. 정말로! 하늘에 맹세코 그런 일은 안 해요!”

다소 큰 소리를 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조금 말이 빨라졌기 때문일까.

겨우 진정했던 심장이 다시 쿵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으니까.”

다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래서……. 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요.”

듣고 싶었다.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분명하게.

깊숙하게 숙인 루이스의 머리 위로 이안의 나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말은 적어도. 서로 마주 보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으…….”

그야 그렇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계속 눈물이 흘러서 도무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개 들어.”

그는 다소 무뚝뚝한 투로 말했다.

루이스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안은 그 눈물을 닦아 주는 대신, 손끝으로 루이스의 턱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빳빳하게 고개 들어. 당당히 들을 자격 있잖아.”

그의 말에 커다란 눈동자에서 눈물이 또 떨어진다.

그는 엉망이 된 작은 얼굴을 여전히 쥔 채, 서로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시선을 맞추었다.

이안은 조금 기다렸다.

서로의 시야에 상대 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순간이 되기를.

그리고 마침내 대답했다.

“그대가 옳아.”

“…….”

“그러니, 나 이안 오드모니얼은 항상 그대를 믿고 있어.”

그의 말은 엄숙하여 마치 어떤 맹세를 하는 것과 같이 들렸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루이스를 믿어 주겠다고.

어떻게 하지, 이래서야 정말로 이 사람이 루이스에게 특별해질 텐데.

그의 양쪽 손이 턱에서 뺨으로 그리고 눈가로 올라와 눈물을 훑고, 지워냈다.

흐릿했던 시야가 그의 손에 점점 맑아졌다.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두 사람의 거리가.

마주한 간격이.

무척이나 가깝다는 사실이다.

숨결이 닿아서 간지러울 만큼.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흘려버린 눈물에 그 생각들까지 전부 쏟아 냈던 걸까.

루이스는 사르르 눈을 감았고, 이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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