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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27화 (27/92)

?27. 새벽까지 함께

더운 계절이 되면 루이스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에어컨과 선풍기.

물론 이 세계에는 그런 물건이 없었다.

마법을 이용하여 비슷한 효과를 주는 건 있다지만, 그런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 신분 이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니 루이스는 언제나 더위에 패배하곤 했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늘 방구석에 반쯤 늘어져 있었다.

그나마 해가 떨어진 밤이 되고 나면 겨우 산책할 마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온실의 루이스.」

언제더라, 루이스가 열 살을 조금 넘겼을 때였나.

여름밤에 이제 막 수습 기사 딱지를 뗀 헤셰가 찾아와 창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헤……셰?」

루이스는 조르르 달려가 얼른 창문을 열어 주었다.

「여기, 2층인데요?」

「네. 제 발이 허공에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으니, 살짝 밀어보시려면 바로 지금입니다.」

「……무서운 말씀 하시면 싫어할 거에요.」

「그건 곤란하죠. 저는 온실의 루이스를 좋아하고 있거든요.」

「저도 헤셰가 좋아요. 온실의 경비대장으로 고용하고 싶을 만큼이요.」

「그건 아주 기쁜 제안인데요. 전하께 버림받으면 루이스의 것이 될게요. 자 그럼 이리 와요.」

그는 키득키득 웃으며 팔을 뻗었다. 그를 붙잡으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 있나요?」

루이스는 순순히 그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런 건 이 악당의 팔을 잡기 전에 물어보셨어야죠!」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루이스를 번쩍 안아 들었다.

툭.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때는 이미 저택 밖으로 끌려 나온 뒤였다.

「하지만, 헤셰가 절 나쁜 곳으로 데려갈 이유가 없잖아요.」

「온실의 루이스는 점점 전하와 말투가 닮아가네요.」

루이스는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그렇게 오만한 말투를 쓴단 말이에요?」

그럴 리가 없다.

루이스는 언제나 악역다운 말을 쓰지 않기 위해 말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물론 오만하지 않아요.」

헤셰는 루이스를 가볍게 고쳐 안으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스위니 가의 정원 그늘로 숨어들었다.

「순진할 정도로 절 믿어주는 말을 하니까, 제가 못되게 굴 수가 없다는 뜻이었어요.」

「못되게 굴고 싶으세요?」

「그야,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겠죠.」

「싫은데요.」

「그럼 안 그럴게요. 기사의 명예로 맹세할까요?」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를 받다니,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일이네.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헤셰의 어깨로 머리를 기댔다.

걷지 않아도 이렇게 들어서 옮겨주는 건 정말 편리하고 좋은 일인 것 같다.

특히 이렇게 기운이 없는 여름에는.

「그 맹세는 네 주인에게 먼저 바치는 게 도리 아닌가?」

그때 어둠 너머에서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이었다.

「전하?」

루이스는 반짝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로 그의 푸른 시선이 보였다.

「피곤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나온 것도 모자라서, 루이스 스위니에게 까지 폐를 끼칠 건 없잖아.」

루이스는 헤셰와 이안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는데, 오늘은 두 사람 모두 아주 멋진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헤셰는 황실 기사단의 제복을 갖추어 입었고, 이안 역시 평소보다도 훨씬 밝고 장식이 많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꼭 무도회라도 가는 왕자님처럼 말이다.

「두 분, 어디 가시나요?」

루이스는 제 조촐한 잠옷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물었다.

「이미 다녀왔죠.」

「어디를요?」

「사람만 한 케이크 괴물이 사는 던전에요.」

그건 또 무슨 장난 같은 이야기람. 어쨌든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헤셰는 이안의 바로 앞에서 도착했다.

루이스는 잠시 두 다리를 버둥거렸다.

헤셰가 바닥으로 내려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루이스를 바닥에 내려주지 않았다.

「안 돼요. 내 예비 주인을 맨발로 걷게 할 수는 없잖아요.」

「괜찮아요.」

「그보다 헤셰, 대체 야밤에 뭘 하려는 건지 먼저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안이 헤셰를 바라보며 묻기에, 루이스도 이안을 따라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여름밤에 이렇게 셋이 모이게 된 것은 헤셰의 생각인 듯하니까.

「딱히 뭘 하려는 건 아니에요. 이대로도 좋지 않으세요?」

루이스와 이안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황태자를 궁에서 빼돌리고, 루이스를 저택에서 빼돌린 신임 기사가 할 말이란 말인가.

「……어이가 없군. 돌아간다. 루이스 스위니, 사과는 내일 정식으로 하겠어.」

이안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아뇨.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그러고 보니, 한 가지가 떠올랐다.

조금 전에 헤셰가 말하길, ‘사람만 한 케이크’라고 했다.

이 세계에는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지만, ‘생일 케이크’는 있었다.

그것도 신분에 따라 크기가 점점 커지는 케이크가.

그렇구나.

한 가지를 깨달은 루이스는 얼른 이안을 불렀다.

「전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생일……축하해요.」

그리고 소박한 축하를 건넸다.

생각해 보니, 이안과 이렇게 사소하게 만나게 된 것도 꽤 된 것 같은데.

단 한 번도 서로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었다.

「축하해요.」

그러니 루이스는 이미 지났을 예전의 생일까지 포함하여 한 번 더 축하했다.

뭔가 줄 것이 있겠다면 좋겠지만. 루이스는 가진 것은 고사하고 신발마저 없어서 아직도 헤셰에 몸을 맡긴 채였다.

「……고맙다.」

이안은 그리 대답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루이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루이스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헤셰가 어째서 그를 억지로 끌고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오늘의 이안은 황비 전하의 장례식이 있던 그 날과 무척 닮아 있었다.

어린 소년이 생일에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그는 어머니를 잃은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다.

그가 가진 깊은 그리움과.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아서.

루이스는 겉과 속이 모순된 하루를 보내야 했을 그가 걱정스러웠다.

많이 아프지 않았을까.

「내려주세요.」

루이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헤셰에게 부탁했다.

그는 군말 없이 루이스를 내려주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에 포근한 풀과 따듯한 흙이 닿았다.

「헤셰!」

하지만 이안은 헤셰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다. 단숨에 루이스 앞으로 돌아왔다.

당장 그가 신은 신발이라도 내어주려는지 다급하게 구두를 벗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늘 이렇게 상냥하시면 좋을 텐데.

「저는 괜찮아요.」

루이스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손사래를 쳤다.

「스위니 가문과 흙은 아주 친하거든요.」

「그대가 대지를 친구로 두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모르셨나요? 땅문서라는 이름으로 영원한 친구의 계약을 맺기도 했답니다.」

「세속적인 친구 관계로군.」

「그야 제가 돈을 좋아하니까요.」

루이스가 샐쭉 웃었다.

그제야 잔뜩 굳었던 이안의 얼굴에도 어색한 웃음이 걸렸다.

「어쨌든, 내 약혼녀께서 맨발로 다니시는 건 반대야.」

루이스는 발끝에 닿는 따듯한 흙에 제 발을 가볍게 문질렀다.

「하지만 기분 좋은걸요. 전하도 벗으실래요?」

기가 막힌다는 시선이 돌아온다. 그러더니 그는 곧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일단 그대 말대로 하지. 아무래도 헤셰가 그걸 바라는 모양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루이스는 아무도 없는 제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헤셰가 사라졌다.

「늘 그런 식이니까 신경 쓸 것 없어. 어디선가에서 몰래 지켜보면서 킬킬거리고 있겠지. 음흉한 사람이니까.」

따악.

조금 먼 곳에서 자그마한 돌멩이 같은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헤셰일 것이다. ‘음흉하지 않습니다. 전하!’라는 의미일까.

그리고 이안은 정말로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로 땅을 밟았다.

그는 조금 신기한 듯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온기가 있었다.

「따뜻하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루이스는 그 순진한 반응이 좋았다.

귀하신 전하께서는 아마 밖에서 신발을 벗으실 자유도 없으셨던 모양이다.

「저도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루이스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온기 없는 밤에도 흙이 이렇게 따듯한 건, 여기에 태양이 따뜻함을 남겨두어서 그렇대요.」

그녀가 신기하죠? 라며 웃었지만,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뭐가 그리 신기하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그냥, 낮 동안에 태양이 너무 뜨거웠단 소리 아닌가……?」

「그야, 그렇지만요.」

루이스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제 우리에게 남은 단서는 이 흙뿐이잖아요.」

「그게 뭐를 위한 단서지?」

「세상을 비추었던 태양이 얼마나 따듯했는지 알려주는 단서죠.」

「…….」

「하늘에 어떤 태양이 떠 있었는지. 이렇게 남은 잔재로 깨달아야 할 때가 있어요. 가끔은……. 그 태양 아래 있었던 사람조차도요.」

루이스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묵묵하게 발끝에 닿는 흙을 헤집던 그가 피식 웃었다.

「……그야 당연히.」

그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루이스는 얼른 그의 말을 빼앗아버렸다.

「따뜻하죠.」

이안은 고개를 들어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전하의 태양은 무엇보다 따뜻했을 거예요.」

그 온기를 받았던 이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태양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남은 온기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까.

「고맙다. 루이스 스위니.」

비로소 그가 밝게 웃기에 루이스는 작게 손뼉을 한 번 쳤다.

「그럼, 제가 다시 말하게 해주세요.」

「뭔지는 몰라도 발언을 허락하지.」

루이스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진심을 담아서 말해 주었다.

「생일 축하해요. 정말로요!」

* * *

이안은 침대 위에 앉은 채 벌써 몇 번이나 마른세수했다.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심각한 모양이다. 오래전의 일을 꿈으로 볼 정도면.

“어릴 땐 참 똑똑하고 귀여웠는데 말이야…….”

물론 루이스 스위니는 지금도 똑똑하고 귀엽기는 하다.

그런데 그 귀여움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자꾸 손이 나가고 만다. 게다가 입술까지 나가는 통에 곤욕을 치렀고.

생각해 보면, 변한 건 루이스가 아니라 이안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맞는 것 같다.

그는 긴 한숨 끝에, 어제 적당히 바닥에 던져둔 카드를 집어 들었다.

황금빛 테두리에 정중한 글씨가 적힌 것으로 어제 궁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아마 이것 때문에 그런 꿈을 꾼 모양이다.

“나이가 몇 살인데……. 생일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건지.”

물론 황태자의 생일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국가적인 기념일이 맞다.

비록 휴일로 선포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는 생일에 ‘파티할 테니 집으로 올 것.’이라는 카드를 받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시험 기간이고.”

그는 시험을 핑계로 파티에 불참할까 하는 발칙한 계획을 잠시 떠올렸다.

하지만 이리저리 시험 날짜를 따져보니, 파티 전에는 아슬아슬하게 전부 끝날 모양이다.

“딱히……구실도 없고.”

가야 할 모양이다.

이런 일이라면 외출도 기꺼이 허가해 줄 테고.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히 나갈 준비를 마친 이안은 곧바로 카드를 들고 기숙사를 나섰다.

내키지는 않지만, 학장님께 보고는 해 주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 * *

“그래서 제가 선발되었다고요?”

학생회실.

루이스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대는 훌륭한 수석 입학생이니, 학생 대표의 자격은 충분하지.”

“그 학생 대표가 왜 회장님의 생일 연회에 가는 건데요?”

“그러니까 말했잖아. 학생회장인 내가 학장님을 보필할 수 없으니, 임시 대표인 그대가 학장님을 보필하는 거지.”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데.

루이스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 아카데미에 널린 것이 연회에 익숙한 귀족 가의 학생들이다.

그런데 굳이 평민인 루이스를 대표로 뽑아서 이안의 생일 연회에 딸려 보낸단 말인가.

“어쨌든 곤란해요. 연회 날에는 시험이 있단 말이에요.”

“걱정하지 마, 연회는 밤이니까. 그리고 더위에 약한 그대가 시원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는 방까지 준비해 놓지.”

“제가 외박한다고요?!”

“그야, 이 나라의 자랑인 황태자 전하의 생일 연회는 새벽이나 되어야 겨우 끝날 테니까.”

루이스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이 나라에는 방탕한 황태자 전하가 계신가 보네요.”

“걱정하지 마. 그대가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냥 와서 즐겁게 보내기만 하면 돼.”

“하지만 저, 연회 같은 곳은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고요.”

루이스가 학생 대표로서 뭔가 실수라도 한다면, 아카데미의 명성에 먹칠하게 될 거다.

“걱정하지 마. 그대의 춤 선생이 말하길, 모든 몸가짐을 완벽하게 가르쳤다고 하더군.”

“제 춤 선생님은 회장님이잖아요.”

“그러니 더욱 신용할 수 있지. 안 그래?”

루이스가 여전히 고민하는 얼굴을 하자, 이안은 가볍게 루이스의 손을 쥐었다.

그들의 협정에 따르면, 손은 이안이 허가받은 영역이다.

그는 루이스의 손을 제게로 잡아끌며 섭섭한 듯 말했다.

“내 연회에……. 정말 안 올 거야?”

“……으.”

대체 저 사슴 같은 깜찍한 표정은 어디서 배워오신 거람.

“친구의 생일인데 말이지. 시몬도 오지 않는다고 하고. 나만 혼자로군.”

시몬은 귀족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가볍게 친분을 쌓았다가는 황좌를 노리며, 지지기반을 만든다는 오해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그야, 저도 물론 친구를 축하하고 싶죠.”

“곁에서?”

“네, 곁에서요.”

“훌륭한 대답이야. 그럼 생일 케이크는 그대가 좋아하는 거로 할까? 조금 씁쓸한 초콜릿에 찐득찐득한 식감을 가진 거.”

“그렇게 새카만 게 황태자 전하의 생일 케이크로 어울릴 것 같지는 않은걸요.”

“알게 뭐야. 어차피 다들 먹지도 않을 텐데.”

그는 늘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소년 시절에나 지었던 샐쭉한 미소를 오랜만에 내보였다.

“그대가 온다면 즐거울 거야. 새벽까지 함께 춤을 출 수도 있고. 케이크도 먹는 거야.”

“정확히는 씁쓸하고 찐득찐득한 초콜릿 케이크를 같이 먹는 거죠.”

“그래 입가에 시커먼 게 잔뜩 달라붙을 정도로 찐득찐득한 거.”

시험의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꽤 흥미롭기는 하다.

게다가 사실 귀족들의 연회에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고.

“헤셰 경도 오나요?”

“헤셰? 물론 오겠지. 왜?”

“그야. 헤셰 경이 함께 있어 주면 안심이 될 것 같아서요.”

“…….”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렇죠?”

이안은 잠시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야. 헤셰도 오긴 하는데.”

“그런데요?”

“어……음……. 그러니까, 그날의 경호계획에 따르면, 헤셰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조용히 은신하며 호위하는 거로 알고 있어. 누군가와 함부로 만나서도, 대화해서도 안 되는 보직이지.”

“어쩜…….”

“모든 위험에서 날 지키는 것이 그의 의무이자 기쁨이거든.”

“그럼, 헤셰 경과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겠네요. 경호계획이 어쩌다가 그렇게 세워졌을까요?”

이안은 제 심장 근처를 가볍게 쥐며,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게, 대체 누가 그렇게 경호계획을 세웠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헤셰는 나와 가장 가까운 기사인데 말이야.”

따악.

멀리서 자그마한 돌멩이 같은 것이 날아와 창문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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