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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26화 (26/92)

?26. 그가 지녔던 진짜 시선

루이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티 룸’이란, 이안과 사건이 일었던 그곳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맙소사.

이제 겨우 그 장소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복병이 숨어있었다.

“그…….”

루이스는 말끝을 흐리며 교수님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는 특별히 엄격한 얼굴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잉크와 종이를 사러 갔다가, 더워서 시원한 걸 마시러 갔었어요.”

그러니 루이스는 진실을 말했다.

“스위니 양이 독단으로 결심한 일은 아니었죠?”

“최종적으로는 제가 결심한 일이었어요.”

“함께 있던 마법사는 누구죠?”

“그건…….”

루이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단순히 이안을 감싸주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여기에서 그가 언급되었다가는 학생회 전체가 연결될 거다.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테고.

결국, 루이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힐 교수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루이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루이스 스위니 양.”

“……네.”

“저도 아카데미를 졸업했습니다. 사실 몇 년 되지도 않았고요. 무, 물론 7년이란 시간은 아직 어린 스위니 양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지겠지만요.”

그는 머쓱한 듯 가볍게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학생회에 속한 스위니 양이 ‘잉크와 종이’를 사러 갔다는 것이 무얼 말하는지 정도는 압니다.”

“잘못했어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교수님이 시선을 맞춰오며 물었기에, 루이스는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거짓말이에요.”

“그럴 줄 알았죠.”

두꺼운 안경 너머로 교수님이 히죽 웃는 것이 보였다.

그 미소에는 아직 소년 같은 순수함이 남아 있어서, 루이스는 새삼 그가 말한 것을 실감했다.

그러니까,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저도 잉크를 사러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요?”

“예.”

“하, 하지만. 교수님은 아카데미의 천재였고 또…….”

“늘 수석 학생이었죠.”

루이스는 ‘수석 학생은 학생회에 봉사하는 전통’을 떠올렸다.

지금도 이어지는 악습이 그때라고 없었을까.

“하지만 교수님께서 담을 넘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아요.”

“몹시 고생했습니다. 제가 제비 운이 좋지 않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저도 마침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말해 주세요. 함께 있던 마법사는 누구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교수님은 묘하게 집요한 구석이 있으신 모양이다.

“그 로브는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만 지급되는 것입니다.”

“그게요.”

루이스는 조금 머뭇거렸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였다.

만약 여기에서 ‘같이 있던 사람은 이안이었다.’라고 밝히는 것이 죽을 만큼 창피했다.

그렇게 열렬하게 끌어안고 있었으니까.

“다른 뜻은 없습니다. 마탑의 마법사가 아카데미의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마법사와 접촉하면……안되나요?”

“예.”

교수님은 드물게도 무척 단호했다.

“안 됩니다. 스위니 양. 더구나 훌륭한 두뇌를 가진 당신이라면, 더더욱.”

그의 얼굴에 진심 어린 근심이 묻어나기에,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가 아니었어요.”

“정말로요?”

교수님이 진지하게 다시 물어 왔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상대가 누구이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네. 정말로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걱정하셨나요?”

“예. 그래서 티 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스위니 양을 놓치고 말았죠.”

그렇게나 걱정해 주실 줄은 몰랐다.

마법사를 경계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루이스는 손가락 끝으로 입술을 꾹 누르며, 눈동자를 잠시 굴렸다.

“교수님, 찻잔을 떨어뜨리셨죠?”

“네, 또 떨어뜨리고 말았죠.”

“또 제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탓이었고요?”

“무척 갑작스러웠죠.”

그가 머쓱하게 안경을 만지작거렸고, 루이스는 배시시 웃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아, 아뇨. 이건 그러니까. 교, 교수로서 당연히 학생을 걱정하는 거죠. 게다가 스위니 양은 온실의 후계자이고, 스위니 온실에는 저도 몇 번이나 신세를…….”

감사하다는 한마디에 횡설수설한 대답이 잔뜩 돌아왔다.

루이스를 멋지게 추궁할 때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스위니 양.”

“네.”

“다른 교수님들께는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아요.”

“……네.”

“특히, 줄리아나 라센 교수님께는.”

“윽.”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아, 아니에요.”

루이스가 살짝 시선을 내리며 부정했다.

교수님의 눈동자는 무척 순수하고 맑아서, 똑바로 바라보면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지.’

신분을 이유로 파티에 가지 못했던 이야기는 왠지 하고 싶지 않은데.

내리깐 루이스의 시선에 작은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구원의 딸기잼!

딸기잼이 있었다. 줄리아나 라센 교수님과 비교하면 훨씬 달콤하고 아름다운 딸기잼 말이다.

씁쓸하기만 한 라센 교수님의 이야기를 멀리 치워버리기에 이만한 것은 없을 거다.

“교수님!”

루이스는 두 손으로 잼 병을 불쑥 내밀었다.

“이, 이거. 지난번에 딴 딸기로 만든 거래요. 그러니까, 관리 부인께서요.”

“잼인가요?”

“네. 그래서 온실에 두고 다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가져왔어요.”

“그건……. 즐거운 말씀이네요.”

뚜껑을 열어 본 교수님은 무척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죽은 딸기잼이 산 라센 교수를 이겼어!

“연구하다 보면 단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죠. 잠을 깰 때도 좋고요.”

“하지만 졸리실 때는 푹 주무시는 편이 좋아요.”

“푹 자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세 시간 정도.”

……네?

루이스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내비쳤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무, 무엇이요?”

“교수님께서 물건을 떨어뜨리시는 게 제 탓은 아니었다는 거요. 그렇게 수면이 부족하면 저라도 물건을 툭툭 떨어뜨릴걸요!”

“그런가요?”

“당연하죠!”

루이스의 열렬한 주장에도 그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다.

꽤 진심으로 걱정한 건데.

“그럼 이렇게 실험해 보죠. 오늘은 마침 제가 일정이 비었으니, 이대로 돌아가서 숙면하겠습니다.”

루이스는 잠시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7시.

여름에 가까운 탓에 이제야 노을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른 잠을 청하기에는 괜찮은 시간이다.

“그리고 내일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점검해보죠.”

“좋아요.”

실험 개요를 정리한 두 사람은 온실을 나섰다.

마침 붉어진 하늘 아래로, 소란스럽게 뛰어가는 학생들의 무리가 보였다.

“스위니 양은 기숙사로 돌아가나요?”

“아뇨, 학생회실에 갈 생각이에요. 공부가 조금 부족해서요.”

“저, 그럼.”

힐 교수는 하얀 연구 가운 위로 제 손을 문지르고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앞까지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바래다주신다는 말씀이세요?”

“아, 아뇨! 제, 제가 감히……그런 건 아니지만. 저기, 드릴 말씀도 있고…….”

“그렇게까지 강렬하게 아니라고 하시면, 제가 창피해지잖아요.”

“……창피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학생을 편애하는 건 금지 되어 있고……그, 저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해서…….”

“알아요. 하지만 교수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하시잖아요?”

루이스는 한 걸음 먼저 나아가며 즐겁게 대답했다.

“누,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는…….”

곧 힐 교수가 그 뒤를 졸졸 따라 걸었다.

“수업시간에도 늘 모든 학생이 이해했는지 신경 써 주시잖아요. 필기가 느린 학생을 기다려 주시기도 하고요.”

그는 교수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 말하는 얼굴은 빨갛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그 정도만 하세요. 스위니 양. 저, 저 칭찬 같은 건 익숙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으시다고요?!”

루이스는 놀란 얼굴로 빙글 몸을 돌렸다.

“전 교수님의 논문을 찬양해요! 제 아버지는 교수님의 연구를 사랑하고, 제 어머니는 교수님을 경배하죠!”

“……어째서 스위니 가문은 그렇게 너그러운 거죠?”

“스위니 가문이 너그러운 게 아니라 그만큼 교수님께서 멋진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도요.”

루이스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아 쥐며 밝게 웃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교수님은 곤란한 듯 웃더니, 결국 어색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못 됩니다.”

그 한마디는 겸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무척 깊은 진심이었다.

“무엇이든 잘 해내는 천재도 아니고요.”

문학이나 예술계통에서는 도리어 멍청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거짓말쟁이입니다. 교수로서는 최악이죠.”

루이스는 의아한 얼굴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힐 교수님과 거짓말이라니.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조합도 있을까.

그의 눈동자는 언제나 진실만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스위니 양. 딸기잼으로 훌륭하게 말을 돌리셨지만, 다시 라센 교수님의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정면으로 부탁하는 말을 거절할 도리가 없어서,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센 백작 가문은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조금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혹여 누군가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을 후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 더할 나위 없이.”

그는 조금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백작 가문의 후원 학생은 언제나 수석을 차지하기 마련이니, 보통은 졸업 후에도 꽤 훌륭한 자리에서 활약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과 영광에는 언제나 후원 가문인 라센가의 이름이 따라다녔다.

“그것이 라센 가문을 더욱 견고하게 하죠. 먼 미래까지요.”

“그건, 후원 학생과 백작 가문에 모두 좋은 일이죠?”

“한편으로는요.”

힐 교수가 짧게 머뭇거리기에, 루이스는 직감했다.

그가 어떤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것임을.

“루이스 스위니 양.”

그의 두꺼운 안경으로 기울어지는 노을빛이 들었다.

그는 조금 눈이 부셨는지, 안경을 벗고 제 미간을 손끝으로 꾹 눌렀다.

잠시 후 힐 교수는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의 초록빛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 눈빛은 유리알 너머로 늘 보아오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그가 지녔던 진짜 시선은 그 두꺼운 안경에 전부 굴절되어 사라졌던 게 아닐까.

그는 무척 연구자 다운, 그리고 학자 다운 예리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든 단번에 그 본질을 꿰뚫어 볼 것만 같은.

“오늘은 스위니 양의 교수가 아닌, 먼저 졸업한 선배로서 할 말이 있습니다.”

루이스는 그의 입에서 매끄럽게 쏟아지는 말에 놀랐다.

조금 전에 그녀는 ‘대범한 힐 교수님’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언제나 말끝을 흐렸고, 모든 행동에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교수님은 달랐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안고 루이스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었다.

“경계하세요. 스위니 양.”

날카로운 말에 루이스의 어깨가 가볍게 움찔거렸다.

아마 그가 경계하라고 말하는 대상은 라센 교수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에게 있어서 루이스란 하찮기 짝이 없는 평민 여학생에 불과할 뿐인데.

“그들의 후원 취지는 점점 기괴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힐 교수는 잠시 말을 쉬었다.

근처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주변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후원 학생이 수석의 명예를 누리도록……만들죠.”

그는 굳이 ‘만든다’는 표현을 택했다.

루이스 스위니는 나쁘지 않은 머리를 가졌으니 그 의미를 파악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제가 거짓말쟁이라고 고백했던 것은…….”

“교수님께서 바로 그, ‘만들어진 수석’이셨군요.”

“정답입니다.”

그는 아프게 웃은 후 솔직하게 덧붙였다.

“저는 모든 예술계통에서 최악의 학생이었거든요.”

그리고 예술 수업은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않아도 교수님은 생물학 분야에서 일찍부터 두각을…….”

“그런 건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만이 아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세상 누구라도 쉽게 알만한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는 거다.

수석, 최우수 학생의 명예. 단순하고 확고한 것 말이다.

그리고 그건 루이스가 몹시 갈망하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그 명예를 위해서 원작에 휘말릴 위험을 무릅쓰고 입학했던 거니까.

“어쩐지…….”

루이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물론 그녀는 올해의 후원 학생이 누구인지 안다.

이 세계의 여자 주인공, 스텔라 라피스.

“라센 교수님께서 제게 그다지 상냥하지 않으셨던 이유를 알겠네요.”

스텔라의 것이 되어야 할 수석 입학을 루이스가 빼앗아 버린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 거다.

“그리고 교수님께 시험 문제 난이도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도요.”

간단한 문제다.

스텔라는 힐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하지 않고, 루이스는 수강한다.

어떤 수업이든 그 시험 결과의 총점으로 수석이 정해지는 법이다.

루이스의 시험이 어려울수록 스텔라가 수석을 차지할 확률을 높아진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고민……이요?”

“예. 저는 누구든 정정당당한 수석 학생이 되길 바라거든요.”

거짓말은 사람의 자신감을 평생 잡아먹으니까요.

그는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루이스는 그의 소심한 태도가 과거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미 제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점에서 정정당당하지는 않네요.”

루이스가 가벼운 투로 이야기하기에, 힐 교수도 슬쩍 따라 웃었다.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있잖아요, 교수님.”

그리고 루이스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저는 공평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는 입학하기 전부터 교수님의 책을 읽었죠. 다른 학생들과는 출발점이 달라요. 이미 불공평하죠.”

루이스는 그 외에도 다양한 불공평함을 떠올렸다.

“아니면 시험 날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요. 제가 싫어하는 날씨일 수도 있어요.”

“스위니 양. 그러니까, 이건.”

“교수님이 원하는 문제를 내세요. 얼마든지 절 시험하셔도 괜찮아요.”

루이스는 손끝에 닿은 제 스커트 자락을 꾹 쥐었다.

“그리고 전 제가 이해한 모든 것을 적을게요. 시험이란 그런 거잖아요?”

“저도 이상론은 좋아합니다. 다만……. 못된 계획에 스위니 양이 희생되지 않기를…….”

“교수님.”

루이스는 힐 교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도 수석을 쉽게 내어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에요.”

악역 루이스 스위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더러운 성질머리는 물론이고, 이안에 대한 집착과 같은 것들.

루이스가 이렇게 물러남으로써, 스텔라는 무엇이든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대신, 루이스는 한 가지 만큼은 스텔라에게서 철저하게 빼앗아 올 생각이었다.

수석의 자리.

나아가서는 최우수 학생이라는 명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 겨우 가진 한 가지를 돌려줄 만큼 멍청하지도 않고요.”

루이스는 몸을 빙글 돌렸다.

얇은 스커트 자랑이 허공에서 경쾌하게 팔랑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공부하러 갈래요.”

힐 교수는 잠시 들고 있던 안경을 다시 착용했다.

맑아진 시야 너머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루이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세상의 그 어떤 불공평함도 그녀의 정직한 걸음을 앞지르지는 못하리라.

물론 그건 그가 좋아하는 이상론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힐 교수도 루이스도 이상론을 좋아하니까 이런 결론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스위니 양.”

그는 닿지 못할 작은 인사를 전했다.

그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이스를 학생회실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면, 바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할 생각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일의 그가 루이스의 앞에서 물건을 떨어뜨릴지, 아니면 굳건히 들고 있을지.

* * *

줄리아나 라센 교수는 교수실의 커튼을 붙잡았다. 엄격한 시선은 창밖을 향한 채였다.

주름진 교수의 입가로 한숨이 맺혔다.

“이렇게 바라보면 시간이란 것이, 또 흘렀다는 것을 느낍니다.”

조용히 읊조리는 말에 작은 대답이 들려왔다.

“라센 교수님.”

줄리아나 라센은 몸을 돌렸다. 그곳엔 아득히도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학생이 서 있었다.

스텔라 라피스.

명맥만이 남은 라피스 백작가의 마지막 희망이 될 아이였다.

“나는 현 황제께서 황태자셨던 시절에도 이곳에 서 있었습니다.”

“성실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네. 그러했죠.”

라센 교수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제 안경을 고쳐 썼다.

“그래서 당시의 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 그런. 상스러운…….”

그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는 하나 입에 담고 싶지도 않았다.

황제는 아카데미에서 평민의 여식과 사랑에 빠졌고, 그 감정을 졸업 후에도 그대로 간직했다.

물론 두 사람은 혼인했다.

동화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잠시 모두가 홀려있었다.

그것이 지옥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스승의 도리로 제가 어렸던 전하께 마땅히 경고를 드렸어야 했습니다. 모든 자리에는 마땅한 주인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흘러간 일.

라센 교수는 끔찍했던 과거에서 눈을 돌렸다.

“당신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텔라 라피스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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