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사랑하면 안 돼
루이스는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곤 했다.
계산된 일의 결과로 마땅한 결론가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아마 그건, 그녀가 경쟁이 극대화된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일 거다.
그곳은.
모두가 목적을 향해 달렸다.
그 목적이란.
언뜻 듣기엔 평범한 것이었지만, 사실 만족스러운 것을 손에 넣는 이는 극소수였다.
조금 더 뛰어난 성적.
조금 더 유명한 학교.
조금 더 탄탄한 직장.
숨이 막힐 것 같았던 경쟁의 끝에서, 루이스는 다른 세계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루이스는 예전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그건 교육으로 몸에 밴 습관이나,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오기였다. 시험해 보고 싶었다.
루이스 스위니라는 완벽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노력이 어디까지 통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증명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그건 아마.
* * *
“루이스 스위니.”
조교 선생님께서 부르는 소리에 루이스는 반짝 고개를 들었다.
“네?”
휴이트 교수님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락된 면담 시간은 12분입니다.”
이안과 함께 상점가에 다녀온 다음 날이 되어서야, 루이스는 휴이트 교수님과 개인 면담을 할 수 있었다.
“12분이요?”
“네. 방금 질문으로 11분 47초가 되었지만.”
루이스는 서둘러 교수실을 노크했다. 짧은 대답이 들렸다.
문을 열자, 교수님은 놀랍게도 소파에 앉아계셨다.
분명히 책상에서 무언가를 연구하고 계시리라 생각했는데.
“앉지.”
교수님이 권하시기에 루이스는 얼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째깍. 유난히 소리가 큰 시계가 루이스의 마음을 떠밀었다.
그녀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저, 교수님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수업시간에 멋대로 수면을 취한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루이스는 무릎 위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제 가죽구두를 바라보며 교수님의 반응을 상상했다.
화를 내실까.
아니면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성적을 내려 주실까.
“아카데미의 규칙에 따르면 모든 학생은 최선을 다하여 수업에 임할 의무가 있다고 하지.”
“……네.”
“그 어디에도 수업시간에 수면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있지는 않네.”
그야, 그렇지만…….
“도의적인 측면으로도 그렇다. 자네는 관리부인의 곤란한 일을 도왔던 것뿐이지.”
“알고 계셨어요?”
“물론.”
“실은, 수업에 지장이 가지 않을 줄 알았어요.”
“체력이 부족했던 거군.”
“부끄럽지만 그러했어요.”
“잠을 자더라도 최소한 출석이라도 하는 것이, 그날의 네게는 최선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
“……그렇게 되네요.”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벌할 이유도 없을 테지.”
루이스는 고개를 반짝 들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렇게 간단하게 용서해 주신다고?
천하의 휴이트 교수님께서?!
“대신 수업시간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한 책임은 자네가 홀로 짊어져야 하네. 시험에서 말이야.”
루이스는 기쁜 마음을 접어두고 잠시 입술을 우물거렸다.
사실은 아직 그 날 배운 부분의 노트 필기를 빌리지 못했다.
“여,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러니 뻔한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기대하지.”
째깍.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교수실의 문이 열렸다.
약속된 시간이 마침 종료된 모양이다.
루이스는 시간을 초 단위로 분절하는 사용하는 휴이트 교수님을 존중하기 위해,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지금 그녀의 삶에 떨어진 문제는 꽤 여러 가지다.
하지만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노트를 빌려야 하는데…….”
“노트를 빌린다고 했습니까?”
책장을 정리하던 조교 선생님이 바로 되물어 왔다.
“네.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했거든요.”
“행운을 빌어주죠. 물론 소용없겠지만.”
“그게……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휴이트 교수님의 강의 노트를 빌려주는 학생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어째서요!?”
“당연합니다.”
조교 선생님은 팔짱을 끼우며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그 어려운 강의에서, 한 명이라도 더 경쟁자를 떨어뜨릴 수 있을 테니.”
“아.”
“게다가 루이스 스위니는 학년 수석의 경력이 있죠. 머리가 좋아 보이는 학생은 경계의 대상입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닌데요.”
“예. 강의 시간에 잠을 청하는 걸 보면 압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죠.”
과연 그럴까.
루이스는 조교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나오며, ‘노트를 빌려주는 학생은 없을 겁니다.’라는 말씀을 곱씹어 보았다.
그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시도는 해 봐야 할 일이다.
루이스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학생회실로 돌아가야 했다.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잉크와 종이 판매 당번을 잠시 딘에게 부탁해 두었으니까.
아마 지금쯤 툴툴거리며 루이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 * *
‘툴툴거리며’ 기다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틀렸다.
“늦었잖아!”
딘은 이미 분노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느슨하게 입은 제복마저도 불편하다는 듯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말이다.
“느, 늦었나요? 딘, 수업이 있었어요?”
“아니. 네가 약속한 시각에서 1분이나 늦었다고!”
“겨우 1분이잖아요.”
“하, 겨우 1분? 난 내 인생의 1초도 루이스 스위니를 위해 할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이미 할애해 버리셨네요.”
“그래! 게다가 몇 초가 더 할애되었지. 너랑 이런 빌어먹을 대화를 하는 도중에!”
“그리고 2분이 지났네요.”
루이스의 지적에 딘은 말없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듯.
루이스는 괜히 씩씩거리는 딘이 재미있어서 조금 웃었다.
늘 툴툴거리긴 해도 딘은 루이스의 부탁을 잘 들어준다.
아니, 정확히는 클레어의 부탁이었다.
「루이스가 곤란하다고 하는데, 네가 도와주면 어때?」
그녀가 이렇게 말하면, 딘은 루이스의 부탁을 격렬하게 거절하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고마웠어요. 딘.”
“고마우면, 앞으로는 클레어 앞에서 내게 뭔가 부탁하지 마.”
그게 가능할까?
루이스는 자리에 앉으며, 변명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클레어와 저는 공강 시간도 비슷하고, 서로 대화도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
딘은 바로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루이스를 바라보다가, 테이블을 짚고 깊이 허리를 숙여 루이스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너 진짜 짜증 난다.”
“그런가요?”
“완전.”
“그럼 저도 딘을 ‘짜증 나는 인간’으로 분류해 둘까요?”
“제발 그래 줄래?”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던 찰나. 학생회실의 문이 열렸다.
아마 클레어일 것이다.
루이스와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자주 마주치니까 말이다.
루이스는 잔뜩 반가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곧 굳어버렸다.
학생회실 앞에 선 사람은 이안이었다.
이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이 나라의 황태자이며.
어제 루이스의 눈가에 멋대로 키스했던 바로 그 남자 말이다.
루이스는 애써 몇 겹으로 봉인해 둔 어제의 기억에 사로잡혔다.
「……별말씀을.」
다정한 대답은 곧 다른 형태로 그녀의 몸에 새겨지고 말았다.
그 순간. 루이스의 머릿속은 한 번에 텅 비워졌다.
느껴지는 것은 온도뿐이었다.
무척 뜨거웠다.
언젠가 온실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다시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는 새하얗게 웃었다.
치사하게도 말이다.
그렇게 웃으면 이 세상의 그 누구라도 심장이 아프도록 흔들릴 거다.
누구라도…….
“회장님 왔어? 그럼, 난 간다.”
딘이 제 머리를 툭툭 털어내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딘의 팔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조금만 더……같이 있어 주시면 안 되나요?”
딘이 귀찮은 듯 루이스를 돌아보았고, 루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싫은데.”
물론 단칼에 거절하는 말이 돌아왔다.
“……왜, 왜요?”
루이스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더듬거리며 묻자, 딘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클레어가 그랬지.
「곤란해진 루이스는 꼭 도와주어야 해. 늘 말썽에 휘말리는 것 같아서 걱정되니까 말이야.」
루이스의 저 멍청한 얼굴을 보니, 또 뭔가에 휘말린 게 틀림없었다.
정말이지 귀찮고 짜증 나는 녀석이다.
“피곤하니까 잘 거야.”
그렇게 선언한 딘은 루이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곧바로 엎드렸다.
루이스는 다시 조심스레 이안이 서 있는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고, 루이스는 얼른 고개를 꾸벅였다.
“아, 안녕하세요. 회장님.”
자연스러움이 조금도 없는 말로 인사하자, 그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덤덤한 얼굴로.
그리고 그대로 문이 닫혔다.
그는 학생회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루이스의 반응 때문이었을 거다.
“……어떻게 해.”
루이스도 딘을 따라서 테이블에 엎드렸다.
힘겹게 정리한 머릿속이 엉망이다. 심장 때문이다.
평소와 다른 박자로 뛰는 것도 얄미운데, 굳이 그 쿵쿵거리는 소리를 고막까지 성실하게 들려준다.
그렇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굉장한 위기가 닥쳤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루이스 스위니.
이안을 사랑하여, 여자주인공을 악랄하게 괴롭히는 악역.
결국에는 이안에게 버림받고, 가문의 사업마저 타격을 입고 무너지는 최악의 결론에 다다른다.
이 끔찍한 결론을 막을 방법은 단 하나다.
‘회장님을 사랑하면 안 돼.’
스텔라에게 심술을 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사랑받고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멋진 사람이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어떤 기회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어느 시절의 자신에게.
루이스는 꼭 감은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새하얀 미소가 여전히 미련스레 떠오르고 만다.
그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루이스는 그런 캐릭터니까. 신체의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삶에 열망을 둔 심지 굳은 소녀다.
그러니까.
지금은 잠시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거다.
기다리면, 조금 더 기다리면.
‘괜찮을 거야.’
두근대는 심장이 다시 고막을 통통 두드려온다.
루이스의 생각을 부정하듯이.
참 얄궂은 일이다.
* * *
‘노트를 빌릴 수 없을 거야.’라는 조교 선생님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루이스는 이안을 제외한 다른 세 명의 학생들을 차례로 찾아갔다.
어려운 수업을 함께 듣는다는 의리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세 명 모두 비슷했다. 약속이라도 미리 한 것처럼 말이다.
“어, 저기……. 미안. 나도 아직 다 못 봐서…….”
어쩐담.
결국, 노트를 구하는 일에는 실패했다.
그 대신 루이스는 빈자리 없이 붐비는 도서관에서 열렬히 공부했다.
필사적으로 펜을 놀리고, 암기하고 생각했다.
도피성 공부는 생각 외로 순조로워서, 루이스는 평소보다 많은 페이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새 도서관의 긴 테이블에 등이 밝혀졌다.
그 이후로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루이스는 조금 더 오래 남아있었다. 피곤할 때까지 공부할 생각이었다.
돌아가면 바로 잠이 들 수 있도록.
시간은 더 흘렀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남은 학생이 많지 않았다.
자연스레 하품이 새어 나왔다. 눈이 뻑뻑하고, 펜을 꽉 쥐었던 손가락도 아려왔다.
루이스는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도서관을 나섰다.
어두운 밤이다.
아마 달이 구름에 머문 탓일 거다.
이런 날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루이스는 조용한 기숙사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캄캄한 계단을 홀로 걷는 것은 조금 무서웠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복도에 들어섰을 때.
어둠이 주는 약간의 공포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
시몬, 이라며 그를 부르려다가 루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선 채, 잠시 시몬을 바라보았다.
밤공기의 여린 빛이 그의 콧날과 근사한 턱선에 머물렀다.
루이스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시몬을 바라보며 어둠을 떠올린 것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그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건네주는 직관적인 감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사방이 어두울 때면, 그는 유일하게 빛을 머금은 사람이 되니까.
하늘의 달처럼.
“……루이스?”
인기척을 느낀 시몬이 몸을 돌렸고, 루이스는 그에게 다가갔다.
공교롭게도 그는 루이스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찾아와 준 걸까.
그 사실에 루이스는 진심으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오늘 중 처음으로 말이다.
“시몬.”
루이스는 그 앞에서 멈추어 섰고, 시몬은 곧바로 루이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괜찮은 건가?”
이렇게 걱정하는 말과 함께.
루이스는 잠시 고민했다. 그가 말하는 ‘괜찮음’이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어두워서 무서웠는데, 시몬을 발견한 이후로는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일단 가장 가까운 사실부터 말했다.
“루이스는 어둠을 무서워하지.”
“누구라도 어둠은 무서워하는 걸요.”
“그런가…….”
그는 잠시 말을 쉬었다.
대신 시선은 바빠 보였다.
루이스의 얼굴에서 여러 가지를 발견하느라 말이다.
“눈이 빨간데.”
“그런가요?”
“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걸 잊으면 안 돼.”
그의 조언에 루이스는 두 번 정도 눈을 깜빡였다. 깜빡. 깜빡.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어려운 책을 읽었거든요.”
“그래서 피곤해 보이는 거군.”
시몬은 긴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엉킨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풀어 주었다.
“꼭 그것만은 아니지만요.”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교수님과 면담을 했고, 노트는 못 빌렸고, 회장님과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엇나갔고 또…….
“아주 엉망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요.”
루이스는 애써 웃었다.
“엉망인 날이 있지.”
시몬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루이스가 엉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눈이 이렇게 빨간데도요?”
“이젠 의식적으로 잘 깜빡일 테지.”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요.”
“그랬었지.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졌어.”
그리 대답하며, 시몬은 루이스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어냈다.
루이스가 제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정말로 단정해져 있었다.
“고마워요.”
“내 즐거움이지.”
시몬의 대답에 루이스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불쑥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전해드릴 것이 있었어요. 잠시만 기다려 줄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루이스는 서둘러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은 후에는 어제 적당히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쿠키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시몬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매해 놓고도, 완전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루이스는 서둘러서 방에서 나왔다. 시몬은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드리려고 했어요. 리본을 선물 받은 답례로요.”
“쿠키?”
“네, 뻑뻑하대요.”
“내가 선호하는 질감이지.”
“그래서 샀어요. 글쎄, 회장님이 자꾸 뒤에서 뻑뻑한 건 싫다고 하셔서 얼마나…….”
무심결에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루이스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부들부들한 것을 좋아하니까. 루이스처럼.”
시몬이 쿠키를 받아들며 자연스레 이어 말했고, 루이스는 얼른 반발했다.
“저, 저, 부들부들하지 않아요!”
“……루이스가 부들부들한 쿠키를 좋아한다는 뜻이었어.”
하윽. 미쳤어!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물론 루이스의 머리카락도 부들부들하지.”
시몬이 위로하듯 덧붙였지만, 도리어 더 부끄러워졌을 뿐이다.
“자, 그럼.”
그는 창틀에 올려 둔 무언가를 종이 뭉치를 루이스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줄곧 루이스를 기다린 모양이다.
“이걸 전해주려고 기다리신 거예요?”
루이스는 종이뭉치를 건네받으며, 조금 울상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너무 늦었죠…….”
“상관없어.”
“그래도,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요.”
“괜찮아. 나는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하거든.”
“친구…….”
루이스는 그가 언급한 둘의 관계를 소중하게 입에 담았다.
고마웠다.
굳이 그렇게 말해 준 것은, 아마 언제라도 루이스의 편이 되어 줄 것이라는 뜻일 테니까.
루이스가 시몬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듯이.
“그렇네요. 우리는 친구죠. 가장……가까운.”
“그리고 오랜 시간을 공유한.”
“맞아요.”
루이스가 다시 웃었다. 오늘의 두 번째 미소였다.
그 표정을 확인한 시몬은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며 인사했다.
“그럼 잘 자. 루이스.”
“시몬도……편안하게 주무세요.”
루이스는 종이 뭉치를 꼭 끌어안으며,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그럴게.”
루이스와 헤어진 시몬은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랐다.
한 층을 더 올라왔을 때, 계단 끝에 걸터앉은 제 사촌 형제가 보였다.
“……이상한 부탁 해서, 미안.”
“내가 먼저 자처한 일이니까.”
시몬은 이안의 옆에 털썩 앉았다.
고요함의 끝에서 시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척 드물게도 말이다.
“언젠가, 루이스에게도 말했지만.”
시몬은 조금 턱을 들어 올리며, 기숙사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갈라진 좁은 틈 사이로 끼어드는 비겁한 그림자가 있었다.
시몬을 닮은 것이다.
“난 너희의 사이가 무척 견고하길 바라. 감히, 그 누구도.”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끼어들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비겁한 소리가 흩어져 갈라진 천장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달이 완연히 구름에서 벗어났다.
어둠을 쫓아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