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19화 (19/92)

?19. 그에게 곁을 내어주지 마

루이스의 얼굴을 쥔 그 손에 대단한 힘이 실린 것은 아니었다.

아마 루이스가 조금만 고개를 돌린다면, 혹은 그의 손을 밀어낸다면.

기꺼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무척 간단하게.

하지만 루이스는 그리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분노로 물들었던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슬픔이 함께 묻어났기 때문일 거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이렇게 솔직하게 제 속을 내비치는 모습에서.

누가 시선을 뗄 수 있을까.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는 입술 끝에 그의 손가락이 닿아있었다.

“정말로요.”

입술을 가볍게 누르는 손가락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루이스는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다.

“회장님께서 제게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해요.”

“……왜지?”

루이스의 대답에 이안이 정말로 의아한 듯 물어왔다.

어째 루이스의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야, 본인에게 묻지도 않은 일을 사실인 양 생각하는 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잖아요.”

이때 즈음, 루이스의 얼굴을 쥐었던 그의 손이 천천히 멀어졌다.

그러나, 루이스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더구나 믿음을 나눈 친구 사이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더욱 서운하겠죠.”

“그런 거였군.”

이안이 감탄하듯 대답했다.

어째 ‘이제야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 알겠다.’라고 말하는 듯해서, 루이스는 조금 의아했다.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네. 그런 거죠.”

“그대는 특별하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기쁘고요.”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나는 진실로 그대를 꽤 귀하게 여겨.”

“네, 소꿉친구로서 말이죠?”

“그래. 그리고 또.”

이안은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조금 쓰다듬었다.

“가족 같은 사람이지.”

“그렇다면 누나에게 조금 더 상냥한 남동생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째서 내 쪽이 동생이 되는 거지? 실제로도 내가 연상인데.”

“듬직한 남동생을 갖고 싶었거든요.”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군. 루이스 스위니의 이상형이 연하의 남성이었다니.”

이안은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오래 붙잡아 뒀군. 사과하지.”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매끄러운 신사의 사과를 건넸다.

조금 전까지 잡아먹을 것 같은 시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온도 변화다.

“아니에요.”

루이스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들어가서 쉬도록 해.”

그는 루이스가 등지고 선 문을 향해 눈짓했다.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갈 테니, 어서 들어가라는 뜻이리라.

루이스는 조금 염치없기는 하지만, 얼른 제 방문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빠르게 방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다가는 무슨 쓸데없는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그러니 루이스는 이안을 향해 웃어 주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달칵.

그리고 마침내 방에 홀로 남았다.

문에 등을 기댄 루이스는 그대로 바닥까지 쓰러지듯 내려앉았다.

이제야 ‘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의 입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안의 발언을 다시 떠올렸다.

「스텔라 라피스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소리야.」

「거기에 내 감정은 조금도 섞이지 않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남자 주인공이 되어서, 여자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다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과 열리는 과일. 그리고 매일의 날씨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둘의 사랑이 없다면, 이 세계의 존재 의의도 사라지게 될 거다.

그리고 그 후에 남는 것은.

……어쩌면.

“모르겠어.”

루이스는 제 무릎을 끌어안았다.

무언가가 잘 못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루이스는 울 것 같은 눈으로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클레어는 거짓말쟁이예요…….”

“음, 거짓말은 아니었어.”

클레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루이스는 학생회실의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시험 기간에는 학생회 활동이 없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시험은 아직 3주나 남은걸. 엄밀히 말하면 아직 시험 기간이 아니야.”

루이스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남은 기간은 2주 하고도 사흘이란 말이에요.”

“시험공부는 전날에 간단히 훑는 것 정도만 해도 괜찮잖아. 제대로 집중한다면 말이야.”

“……!”

“왜 그렇게 놀란 눈으로 쳐다봐?”

“어, 어떻게 그렇게 공부하시고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거죠?”

“음, 그거. 학년 수석을 차지했던 학생이 할 만한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

클레어가 긴 머리카락을 넘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효율의 문제니까요! 저는 입학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했단 말이에요. 엉덩이가 편편해질 때까지요!”

그렇게 수석을 따낸 루이스는

‘다시는 한국의 공부법을 무시하지 마라.’

라며 내심 자랑스러워 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클레어는 시험 전날에 배운 것을 간단히 훑는 것으로도 차석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건 불공평한 일이다.

루이스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문인지, 클레어는 평소에 늘 생각해 오던 자신만의 공부법을 공유해 주었다.

“별거 아냐. 수업시간과 과제에 충실하고, 궁금한 건 바로바로 해결하며 흥미를 유지 시켜 두는 것 정도야.”

와…….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책 속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건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학생회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루이스가 대답하자, 여학생 두 명이 들어왔다.

책을 여러 권 든 것을 보니 공부하러 가는 모양이다.

“종이 묶음 2개와 잉크 2개 살 수 있어?”

그들이 루이스에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회실의 한편을 가리켰다.

간이 테이블 위에는 새 잉크와 종이가 보기 좋게 쌓여 있었다.

‘돈은 이쪽에 넣어 주세요.’라고 적힌 상자와 함께.

여학생들은 각자 필요한 것을 챙기고 정해진 금액을 상자에 넣어 주었다.

“학생회에서 잉크를 팔아줘서 살았지 뭐야.”

한 여학생이 두꺼운 책을 고쳐 안으며 히죽 웃었고, 클레어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잉크가 떨어지면 주말까지 기다려서 외출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무척 번거롭지. 그리고 학생들의 번거로움을 줄이는 것은 우리의 일이고.”

“어쨌든 정말로 고마워.”

하나씩 잉크를 한 여학생 둘은 조금 서두르며 학생회실을 나섰다.

“대체 학생회에서 잉크와 종이를 파는 건 누구의 생각이에요?”

“전통이야.”

클레어는 딱 잘라서 대답했다.

물론 루이스는 그런 괴이한 전통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생각해 보면 원작에서 학생회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안과 스텔라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서로만을 바라보는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잉크를 팔아서, 남은 이윤으로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걸 사는 거지.”

“예를 들어서요?”

“우리가 세탁실에서 사용하는 바구니 같은 것들 말이야.”

그리고 무척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루이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고, 두꺼운 안경을 쓴 남학생이 잉크와 종이를 샀다.

남학생은 ‘덕분에 살았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몇 번이나 인사했다.

으음. 나쁘지 않은 기분이네. 이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말이다.

조금 기분이 좋아진 루이스는 지난번 파티 공지용으로 사용했던 종이를 꺼냈다.

두꺼운 데다가 색까지 입힌 비싼 종이라, 언젠가 뒷면을 쓰려고 아껴 두었다.

루이스는 그 위로.

「종이와 잉크, 학생회실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시험 기간 한정. 이 홍보지는 관리 부인의 허가 후 게시되었습니다.」

이렇게 적었다.

이런 것을 도서관이나 강의동에 몇 개 붙여 두면, 더 많은 학생이 이런 편리함을 누릴 수 있을 거다.

루이스는 곧바로 제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 * *

광고의 효과는 세 가지로 나타났다.

일단 1주 치의 잉크를 사흘 만에 팔아 치웠다. 완판이었다.

물론 잉크의 친구인 종이 역시도 다음 날에 품절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 번째 효과는 개인적인 것이었는데.

“시험공부를 하나도 못했어…….”

사실 루이스는 수업 외의 시간에는 계속 자습할 생각이었다.

마침 학생회실은 공부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고.

하지만 5분 단위로 잉크와 종이를 사러 오는 학생들이 들이닥친 탓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효과는 바로 이거다.

“정말로 가는 건가요……. 회장님?”

건물 뒤편에 선 루이스는 몹시 우울한 얼굴로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까지 내키지 않아 할 줄은 몰랐는데.”

“그야, 평일 오후에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는 건 교칙 위반이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안은 몹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루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녀를 독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학생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학생회지. 그리고 여분 잉크가 없는 것만큼 불편한 일은 없는 법이야.”

“배달을 부탁해도 되잖아요.”

“배달료가 붙으면 판매 단가도 올라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분명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이 나올걸.”

“그럼, 주말에 나가도 되고요.”

“조금 전 회의에서도 설명했지만, 루이스 스위니.”

이안은 허리를 조금 낮추어 루이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주말까지는 사흘이나 더 있어야 해. 우리가 지금 잉크를 사러 가지 않으면, 오늘 잉크가 떨어진 어느 학생은 사흘간 제 피를 뽑아 붉은색 글씨를 쓸지도 모를 일이지.”

“끔찍한 비유는 그만두세요.”

“그래. 잘 알아들었군. 잉크의 재고가 없다는 건 그렇게나 끔찍한 일이야.”

그러고 보니 저 사람한테 말로 이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

루이스는 옅은 한숨을 뱉었다.

잉크와 종이의 재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잔혹한 운명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난주, 이안은 스텔라에게 관심이 없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루이스는 당분간 그와 엮기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꼭 이렇게 함께 있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만다.

정말이지 고약한 일이다.

“제가 제비 운이 이렇게나 없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학생회는 ‘잉크를 사러 다녀올 교칙 위반 2인조’를 선발하기 위해 무척 공평한 방법을 사용했다.

제비뽑기 말이다.

“공정한 운명의 결과이니 받아들여.”

“운명과 공정하다는 말은 나란히 놓일 수 없어요.”

“그건 또 어느 나라의 문법이지?”

“의미적으로요!”

각자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는 모두 다르니까, 결코 공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잘된 일이야.”

이안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루이스는 비척비척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이동하면, 헤셰가 자연스럽게 붙을 테니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지.”

“헤셰 경께서 여기에 계세요?”

루이스가 놀라며 물었다.

헤셰는 이안의 호위 기사로 아카데미 내부로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들었다.

“외부로 나갈 땐 어떻게 알고 꼭 따라오더군. 몇 번 따돌리려다 실패했지.”

이안은 그의 키 정도 되는 담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는 푹 파인 자국 위로 손과 발을 딛고 자연스럽게 담 위로 올라섰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데에 루이스는 제가 가진 현금을 전부 걸 수도 있었다.

높은 담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이안은 루이스를 향해 빙긋 웃었다.

“요령은 대충 알겠지?”

“그 요령에 품위가 없다는 것도요.”

“뭘 모르는군. 품위란 자연스레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

하지만 담을 타 넘는 황태자께 품위가 주어지는 일은 없을 거다. 절대로.

어쨌든 루이스도 그를 따라서 품위 없는 담 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죠.”

손과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던, 루이스는 남은 의문을 제기했다.

“회장님께서 나가시는 편이 좋다는 건 이해했어요. 그럼 저는요?”

루이스는 이안과는 달리 보호해 줄 기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음, 이건 말해주기 싫었는데.”

담 위에 쪼그려 앉은 이안은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은 헤셰가 그대를 보고 싶어 해.”

“네?”

“가끔 만날 때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야. 온실의 루이스는 언제 입학하냐고 늘 떠들어 댔거든.”

“왜요?”

“그야. 헤셰는 여자라면 전부 좋아하는 쓰레기 같은 남자니까. 그러니 절대로 그에게 곁을 내어주지 마.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이안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루이스의 뒤에서 장난기가 가득 묻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전하께서 그렇게 제 뒤통수를 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요.”

헤셰의 목소리였다.

루이스가 반갑게 웃으며 소리쳐 그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루이스가 그의 짧은 호칭을 입에 전부 담기도 전에, 헤셰는 고맙게도 루이스를 담 바깥으로 안아서 옮겨주었다.

“헤셰 경.”

루이스는 그의 팔에 들린 채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온실의 루이스.”

햇볕에 건강하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는, 오늘도 크고 작은 흉터들이 새겨져 있었다.

루이스는 그걸 볼 때마다 이안과 헤셰가 언제나 위험과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카데미에서는 안전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잘 지내셨나요?”

“온실의 루이스가 오기를 매일매일 기다렸죠.”

그리고 그는 하얀 이가 전부 보일 정도로 밝게 웃었다.

온실의 루이스. 오직 헤셰만이 사용하는 그녀의 별명이다.

「친한 기사들은 서로를 대표하는 단어를 이용하여 별명을 짓죠.」

헤셰는 이렇게 말하며 루이스에게 그런 별명을 지어주었다.

물론 루이스는 그렇게 불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헤셰.”

담 위에 서 있던 이안도 헤셰를 따라서 훌쩍 뛰어내렸다.

“담 근처라지만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오는 건 곤란해.”

“땅에 발을 디디진 않았는데요?”

“……남의 집 귀한 아가씨를 멋대로 계속 안고 있어도 곤란하고.”

“괜찮습니다. 전 여자라면 전부 좋아하는 쓰레기 같은 남자니까요.”

이안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고, 루이스는 손뼉을 치고 싶었다.

입담으로 루이스를 억누르는 저 회장님을 이기다니!

역시 입으로 오만 군대를 무찌른다는 헤셰 경이다.

“뭐, 알겠습니다. 전하의 기사가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곤란하죠.”

그는 루이스를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다시 인사드리죠. 루이스 스위니.”

헤셰는 루이스의 앞에서 기꺼이 허리를 숙였다.

루이스는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를 일으켰다.

“수, 숙이지 마세요! 미래의 백작님인 헤셰 경이 제게 정중하면 이상하잖아요.”

“무슨 소린가.”

이안은 헤셰를 말리는 루이스를 저지했다.

“그대에게도 이 정도의 권리는 있어.”

“물론입니다. 온실의 루이스께서는 경배받아 마땅한 업적을 이루셨으니까요.”

업적? 루이스는 제가 해낸 것 중에 가장 잘한 일을 떠올렸다.

설마 수석 입학을 말하는 건가?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전하를 시원하게 차 버리셨다면서요? 이야, 전하께서도 드디어 여자에게 차여 보시네요!”

헤셰는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양팔로 배를 붙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물론 루이스는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그의 뒤로 이안이 무시무시한 폭군의 얼굴을 한 채 섬뜩하게 서 있었으니까.

루이스는 이대로 황족 모욕죄로 헤셰의 목이 수도 성벽에 걸린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옆에는 루이스의 목이 걸려 있을 테지.

그나저나, 잉크와 종이.

오늘 중에 무사히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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