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18화 (18/92)

?18. 전 약혼자의 관점

시선이 마주치자 이안이 웃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그 미소에는, 그러니까 오직 루이스만을 향해서 지은 그 미소에는.

평소의 그가 보여 주었던 장난이나, 가벼움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진지하다는 수식어가 미소라는 단어를 꾸며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의 미소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무게와 진지함을 갖고 있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그의 입술이 담을 말은 무척 진중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지.

루이스는 애써 제 생각을 부정했다.

이 시점에서 진중한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다.

이안은 공평한 사람이다.

친구들 모두에게 딸기와 좋아한다는 말을 가볍게 건넸으니, 루이스에게도 똑같이 할 거다.

그 말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거움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건 오페라 가수가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모두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 사람만을 유난히 각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착각은 금물이다.

왜 자꾸 이런 착각에 빠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루이스.”

“네, 네?”

이제……좋아한다고 하겠지.

그리고 그건 그런 딸기니까, 말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할 테고.

그럼 뭐라고 대답하지?

‘어머, 회장님의 고백을 받다니 영광이에요.’

클레어처럼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겨야 하나. 그게 아니면 똑같이 되받아쳐야 하나.

‘네, 저도 좋아해요.’

라고 말이다.

“사과하지, 루이스.”

“네, 저도 좋아해요.”

“…….”

“……!”

루이스는 제 귀에 남은 울림을 되새겼다.

‘사과하지, 루이스.’

미쳤어! 진짜 미쳤어, 루이스 스위니!

사과한다는 말에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멍청이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이래서야 루이스가 좋아한다는 말을 무척 기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딸기를요.”

루이스는 꿈도 희망도 없는 새파래진 얼굴로 얼른 목적어를 삽입했다.

“문법이 괴상한데.”

이안이 곧바로 문법적인 측면을 지적해 왔다.

“그야, 그렇긴 하지만…….”

물론 루이스도 동의했다.

크론드어의 신성한 문법에 따르면 목적어는 동사 앞에 온다.

“아, 아젠틴어를 기준으로 둔다면, 평범한 문법이죠.”

루이스는 인사말 밖에 할 줄 모르는 먼 나라의 문법을 끌어왔다.

“대륙적 사고를 갖는 건 무척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대단한데.”

루이스의 결론에 이안이 감탄했다.

“딸기를 좋아한다는 문장이 대륙적 사고의 필요성까지 이어지다니.”

그는 마지막 딸기를 제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는 작은 목소리로 어떤 말을 중얼거렸다.

숨소리가 많이 섞인, 부드러운 발음으로 보아서 아마 아젠틴어일거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으로 따져보면 아마 ‘나는 좋아한다. 딸기를.’ 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오이와 딸기를 동일 선상에 두었던 나의 무지한 말에 대해 사과해.”

“그걸 아셨다면 저도 기뻐요.”

루이스는 괜히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사실은 여전히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기숙사로 돌아갈 건가?”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그 꼴을 하고 계속 아카데미 내부를 돌아다니면 감기에 걸릴 테지.”

시험을 앞둔 기간에 감기에 걸리는 좋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보답으로 데려다줄게, 따라와.”

이안은 먼저 걸음을 옮기며 루이스를 재촉했다.

“저, 저는 괜찮아요!”

루이스는 얼른 그를 만류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좋아해요.’라는 한심한 말실수가 여전히 머릿속에서 종소리처럼 울리는 것 같았으니까.

아마 앞으로 몇 년은 더 놀림을 당할 거다.

정말이지 이렇게 적에게 먹이를 자꾸 건네주어서 어떻게 한담.

“혼자 갈 수 있어요.”

“혼자 간다고?”

하지만 이안이 턱 끝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루이스는 잠시 잊고 있었던 오늘의 날씨 사정을 떠올렸다.

“우산도 없이 어떻게 가려고?”

“그야, 누군가의 우산을 얻어 쓰고 간다거나.”

“좋은 방법이야. 그리고 여기에 그 누군가가 있지.”

이안이 우산을 들어 보이며 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평소의 미소였다.

루이스의 앞에서 언제나 지었던 그 장난스러운 미소.

“그럼, 부탁드릴게요.”

익숙한 표정에 루이스는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란히 현관으로 가는 길에는 딸기를 잘 먹었다는 학생들의 인사를 받았다.

물론 이안은 누구에게도 반갑고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인기가 많으시네요.”

“인기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담담한 대답에 루이스는 조금 놀랐다.

그녀가 기억하는 원작 속의 이안이라면 아마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는 신분을 염두에 둔 타인의 관심을 몹시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타협을……하게 되셨네요.”

루이스가 작게 중얼거렸고, 이안은 우산을 펼쳤다.

“꽤 오래되었지.”

우산 아래 선 그가 루이스에게 팔을 내밀었다.

루이스는 두어 걸음 정도 떨어진 간격까지 다가갔다.

“하긴 타협이라고 할 것도 없었던 문제야.”

그는 느긋하게 대답하며 루이스의 어깨를 조금 더 당겨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툭, 하고.

차가워진 어깨로 온기가 닿았다.

루이스는 비스듬하게 고개를 들었다. 바로 얼굴이 마주쳤다.

“스위니의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그녀를 감싼 그의 팔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루이스는 자연스럽게 그가 이끄는 대로 걷게 되었다.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자, 두 사람의 주변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로 가득해졌다.

아니, 비와 우산이 만나서 서로를 울리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루이스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고서야 비로소 되물을 수 있었다.

“……스위니의 가르침이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한다는 것.”

그가 든 우산이 비를 끌어안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그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 같았지. 간단한 문장이지만,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야.”

“그렇죠. 아무래도 회장님은…….”

“아니, 루이스 스위니 말이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관없다는 듯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정하게 쥔 어깨를 칭찬하듯 가볍게 쓸어주며.

“스위니 가문의 상황이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아.”

“그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니까요.”

평범한 평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부자고, 귀족이라 하기엔 그 명분과 피과 부족했다.

자연스레 스위니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신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대는 불평하나 하지 않고, 제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지.”

“불평…….”

루이스는 그 단어를 읊조리며, 잠시 작은 소녀 한 명을 떠올렸다.

불평이 많았던 그 아이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아이. 그 소녀가 무언가를 갖기 위해 돈 대신 지불해야 했던 것은.

자존감이었다.

“저는 불평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걸요.”

루이스는 가능한 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눈꺼풀에 달라붙은 작은 소녀의 모습을 애써 넣어두며.

“그런가.”

그가 다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제 곁에는 좋은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후드득 하고 굵은 빗줄기가 조금 더 떨어졌다.

빗소리는 점점 양쪽 귀를 시끄럽게 울릴 만큼 커졌다.

바닥에 떨어진 물은 움푹 팬 어딘가를 찾아 끊임없이 흘렀다.

멀리 기숙사 건물이 보였다.

몇 명의 학생들이 서두르며 우산을 접으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비를 피하려는 모양이다.

“조금 더 빨리 걸을까.”

이안이 제안했고,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루이스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걱정이 묻어났다.

거센 비는 때때로 우산 안으로 튀어 들어와 루이스의 머리카락에 달라 붙었으니까.

이안은 작은 우산을 조금 더 기울여 주었다.

그러나 걸음에 따라 미묘하게 흔들리는 우산은 그녀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지 못했다.

조금 더 큰 우산을 가져올 것을 그랬나?

그는 잠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루이스가 제게 어깨를 내어 준 채 폴짝폴짝 달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오늘은 그냥 이 우산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기숙사 현관이 바로 눈앞이었다.

보폭을 맞추어 걷던 루이스는 작은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을 다른 학생들이 봐도 괜찮은 걸까.

이상한 오해라도 하면 곤란한데.

이안을 돌아보며 발랄하게 미소를 그린 루이스는 현관에서 한 발짝 정도를 남겨 놓고, 그의 우산에서 쏙 빠져나갔다.

거친 비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지만 잠시였다.

현관 지붕 아래로 잽싸게 들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루이스는 한쪽 발끝을 들어 올리며 빙글 몸을 돌렸다.

“고마워요. 역시 곤란한 학생을 돕는 건 회장님뿐……아?”

하지만 비로 젖은 현관은 무척 미끄러웠다. 균형 감각이 다소 형편없는 루이스가 멍청한 모습으로 자빠지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진짜, 이 멍청이가!”

귓가로 거친 말이 들렸다. 철퍽하고 우산을 집어 던지는 소리도 있었다.

정말이지, 못됐다니까.

이게 다 회장님을 쓸데없는 소문에서 구해주기 위한 거였는데.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천장이 보였다. 그 뒤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자빠지는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푹.

루이스의 이마에 따듯한 것이 닿았다.

익숙한 온도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어깨에 닿았던 것과 같았으니까.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이건 불평을 해야겠는데.”

그리고 불만 어린 목소리도.

고개를 들어보니, 루이스를 붙잡아 준 이안이 불만스럽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가벼운 발을 놀리기 전에 제발 생각이란 것을 좀 하는 편이 좋겠어.”

“미끄러울 줄 몰랐어요. 그리고 불평은 원래 잘하셨어요.”

“전부 그대의 공이지. 안 그런가?”

비웃는 말과는 달리, 이안은 루이스가 완벽하게 중심을 되찾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등을 감싸준 팔을 거두었다.

“발목은?”

이안은 바닥에 떨어뜨린 우산을 주워들었다.

물을 머금은 우산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괜찮아요.”

“계속 불평하자면, 도서관에서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주의하는 게 좋아.”

그건 불평이 아니라 조언과 걱정인 것 같은데.

하지만 루이스는 지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가 우산에 묻은 물과 진흙을 탈탈 털어내는 동안, 루이스는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사과할 필요는 없어. 재미있었으니까.”

재미?

이 상황에서 재미있을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균형을 잃고 당황한 얼굴이 재미있었어. 이건 또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겠군.”

“……또 먹이를 드렸네요.”

“먹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이스는 한숨을 쉬며 현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안도 우산을 돌돌 말아 정리하며 그 뒤를 따랐다.

몇 명의 학생들이 대단한 오해를 한 시선으로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여러분,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아름답고 달달한 장면이 아니에요.

그냥 정의로운 인명 구조에요. 그게 다라고요.

물론 애써 변명하는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었으니, 루이스는 입을 꾹 다문 채, 계단을 올랐다.

어쨌든 이런 사소한 일은 큰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할 거다.

이미 이안은 대단한 소문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파티에서 스텔라에게 파트너를 청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꽤 다정한 모습으로 춤을 추었다고 하고.

그거로 모든 것이 설명될 거다.

“그럼, 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계단을 전부 오른 루이스는 몸을 돌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문 앞까지 가 줄게.”

그는 크게 선심을 쓰는 듯한 얼굴이었다.

“제가 제 방도 못 찾아갈 것 같으세요?”

“설마, 그냥 답례를 제대로 하고 싶은 것뿐이야.”

루이스는 그제야 이 ‘바래다주기’가 그녀가 선물한 딸기에 대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 딸기는 보통 딸기가 아니었다.

루이스가 새벽부터 일어나 힘들게 딴 딸기이며, 수업 하나를 고스란히 날려 먹게 했던 바로 그 딸기다.

“그렇네요.”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그런 정성 어린 딸기를 받으면, 방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친절과 배려는 베풀고 싶을 것이다.

루이스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곧 이안이 발걸음을 나란히 해 왔다.

하지만 복도는 길지 않았다. 루이스의 방 앞까지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문 앞까지 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루이스는 조금 젖어버린 그의 머리와 옷을 바라보며 미안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회장님도 씻으셔야겠네요.”

“금방 마르지 않을까?”

“냄새나요.”

“뭐, 어때.”

“여자 사람 친구의 관점에서 조언하자면,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남자가 냄새를 풍기면서 다니면 생기던 마음도 전부 사그라들걸요.”

루이스는 그를 놀리듯 웃으면서 지적했지만, 이안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아니,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마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주의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불쾌한 조언이었을까.

하긴, 마음이 사그라든다는 거. 그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일 테니까.

굳은 채 서 있던 이안이 잠시 긴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숙였는데, 아마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고민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이 마주쳤을 때는, 상당히 진이 빠진 얼굴이었다.

루이스는 사과하려다가 일단 기다렸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전 약혼자의 관점에서 고백하자면.”

그리고 오랫동안 봉인하기로 약속했던 그들의 관계를 언급했다.

“스텔라 라피스에게 그 어떤 사적인 감정은 없어.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대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네?”

루이스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쐐기를 박는 듯한 분명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스텔라 라피스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소리야. 이성적으로든, 뭐든.”

웃기지 마세요!

라는 소리가 루이스의 입안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이안은 설명을 계속했다.

“그날, 춤을 청했던 건. 교수님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고, 거기에 내 감정은 조금도 섞이지 않았어.”

감정이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고?

이 나쁜 남자야……!

‘그 회차의 삽화가 얼마나 예뻤는데, 거기에 감정이 없었단 소리를 해……. 응?’

“소문 정도는 각오했었어. 사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 어떻게 그게 별것 아니…….”

루이스는 차마 제 말을 끝까지 맺지도 못했다.

실은 제가 뭘 말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게. 별것이더군.”

하지만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긍했다.

“설마하니, 내 여자 사람 친구이자, 전 약혼녀께서 그런 소문을 믿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어떻게 안 믿을 수 있을까.

루이스는 누구보다도 그걸 바라고 있었는데.

“하긴, 미끄러운 바닥도 깜빡하는 그대의 성정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긴 한데.”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절로 시선을 피하고 싶을 만큼.

루이스는 슬금슬금 시선을 돌렸다. 이런 위기 상황에 어째서 복도에는 개미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걸까.

“참으로 괴이하지.”

이안은 루이스의 턱을 쥐어 굳이 저를 보게 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얼굴로.

“전하…….”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그리 부르고 말았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표정이, 그리고 눈빛이 어쩌면 그쪽에 더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루이스의 그릇된 호칭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왜, 불쾌한 기분이 들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