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서로의 온도
아마 평소의 루이스라면, 호들갑을 떨면서 그를 밀어냈을 것이다.
‘그만 놀리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아무런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상냥하네.”
문득 이안이 속삭였다. 아마 루이스와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그를 밀어 내리라고.
“빚을……졌으니까요.”
“빚?”
루이스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학생 목록을 꼭 쥐었다.
종이가 부스럭거렸다.
그녀의 대답을 대신하듯이.
“아……. 그렇군.”
그가 낮게 웃었다.
“그대의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야. 언젠가 보답 받을 수 있다면 더 기쁘겠지만.”
“보답할게요.”
“뭐로?”
잠시 고민하던 루이스는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든지요.”
“내 소꿉친구는 아카데미에서 위험한 말씀을 배우셨군.”
“그런데 어째서 목록에 회장님의 이름이 적혀 있던 거예요?”
“그게 어때서.”
“혼자서도 잘하시잖아요.”
루이스는 눈짓으로 창가의 화병을 가리켰다.
“게다가 이제는 절 부려먹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셨잖아요. 정확히 어제부터요.”
“어려워졌지. 말로 하지 못하고, 이렇게 종이를 통해 부려먹을 정도로. 정확히 어제부터.”
그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다만 루이스의 허리를 안은 팔에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난 그냥……. 확인받고 싶었을 뿐이야. 다른 뜻은 없어.”
“그렇다면 잘하셨어요.”
“안심되는군. 계속 곁에 두고 싶었거든.”
“계속은 무리에요.”
루이스는 굳이 그의 단어 선택을 지적했다.
“알아.”
그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가능하면 오래라는 뜻이었어.”
“이제야 제대로 된 말씀을 하시네요.”
루이스는 웃으며 돌아보았다.
“잠은 좀 깨셨나요?”
“조금은.”
“여전히 아침에 약하신 모양이네요.”
“끔찍이도 약하지.”
그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루이스의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댔다.
“이렇게 있으니까, 어렸을 때가 생각나는걸.”
“어렸을 때요?”
“그래. 우리 셋의 첫 동침 말이야.”
우리 셋이란, 시몬 까지 포함하는 말이리라.
루이스는 세 사람이 함께 잠이 들었던 어느 가을의 한낮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렇게 푹신한 침대가 없었잖아요.”
셋이 잠이 들어 버린 곳은 정원이었다.
“대신 푹신한 풀이 있었지. 열을 머금은 땅과.”
“그때 어쩌다가 잠이 들었죠?”
루이스는 조금 애매해진 기억을 짚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 왜였더라.”
아마 이안도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대신 그는 조금 더 깊이 기대어왔다.
조금이라도 더 서로의 온도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건, 기억하는데.”
루이스는 왠지 그리워졌다.
그때만 해도, 이안과 시몬은 아주 작고 어렸다.
그들이 ‘원작’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될 정도로.
“네. 저도 기억해요. 하지만 그때는 분명히 옷을 입고 있으셨죠.”
루이스는 제 허리를 감싼 팔을 밀어내며 대답했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그녀를 옭아매던 팔은 생각 외로 쉬이 풀려나갔다.
둘은 다시 평소의 거리로 돌아갔다.
“나도 물론 옷을 입고 싶어. 교양있는 남자니까.”
그는 턱 끝으로 제 옷장을 가리켰다. 옷장은 침대에서 열 걸음은 걸어야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가 나가려고 했던 거잖아요.”
“파트너에게 아침 인사도 안 해주고?”
“그러니까, 파트너가 아니라고요.”
“미안, 깜빡했군. 그럼 다시 말을 바꾸지.”
그는 능청스레 웃었다.
“우리, 아침 인사 할까?”
“네. 안녕하세요.”
루이스는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뻔뻔한 얼굴로.
“…….”
“했잖아요. 인사.”
“그래, 했지.”
“대답은요?”
“눈 감아.”
“왜요?”
“슬슬 옷을 입지 않으면, 부끄러워질 것 같거든.”
그가 실제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에, 루이스는 얼른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렸다.
툭.
맨발과 바닥이 닿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루이스는 자연스럽게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입체적인 소리는 그의 행동을 상상케 했다.
걷는다.
작게 하품하며 옷장을 연다.
긴 손가락으로 옷을 넘긴다.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물론, 그가 어디까지 벗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사락사락.
얇은 천과 사람의 몸이 닿는 소리가 들린다.
뭐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옷을 입는 소리와 벗는 소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루이스 스위니.”
“……네?!”
루이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떠졌지만, 얼른 다시 감았다.
“봐 버렸군.”
“모, 못 봤어요! 갑자기 부르시니까 놀란 것뿐이라고요!”
“놀란 건 나야. 이대로 시각적 순결을 잃을 뻔했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겨우 셔츠 단추 풀려 있는 것 정도…….”
“봤군.”
그래요, 봤어요. 봐 버렸다고요!
하지만 그건 정말로 불가항력이었다.
누구라도 그런 훌륭한 복근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될 거다.
그건 인간의, 아니 생물의 본능이며 자연의 섭리다.
그리고 루이스는 모든 자연현상을 존중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긴 변명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기를 써야겠어. 루이스 스위니에게 내 시각적 순결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도, 돌려드릴게요!”
루이스는 질색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마치 무언가를 반납하는 듯한 자세로 말이다.
이안이 가볍게 말하는 ‘일기’란 황태자 전하의 공식적인 회고록으로, 길이길이 보존 된다.
즉, 대대손손 후손들이 연구하고 살피며 읽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경건한 문서에
‘루이스 스위니가 시각적 순결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와 같은 음란한 문장으로 등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로!
곧 이안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가 살짝 눈을 떠보니, 완벽하게 옷을 갖추어 입은 그가 눈앞에 서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내 소꿉친구.”
약속했던 아침 인사도 정중하게 건네며 말이다.
“그럼, 가자.”
“어디를요?”
“글쎄, 일단 네 엉망인 머리를 정리해 줄 수 있는 사람부터 만나러 갈까.”
그건 시몬을 뜻하는 말이리라.
물론 아침 일찍부터 시몬에게 들이닥치는 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떠올린 과거의 한편 때문일까.
지금 시몬을 만나고 싶었다. 몹시.
* * *
어른스러운 힐라드가의 공자님은 과연 기숙사 생활도 우아하게 하고 계셨다.
루이스와 이안은 차분하게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그의 아침 풍경에서 범접하지 못할 광채를 느꼈다.
게다가 그는 ‘머리를 정돈해 줘.’라며 찾아온 소란스러운 두 친구를 기꺼이 환영해 주는 마음씨도 지녔다.
“독서를 중단시켜서 미안해요.”
“별것 아냐.”
시몬이 의자를 내어주었고, 루이스는 그 위에 앉았다.
그의 커다란 손이 가볍게 머리카락을 훑어내렸다.
“오랜만이네.”
시몬이 잠시 중얼거렸다.
그는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참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꼼꼼한 손끝으로 머리를 묶어 준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물론 대단한 공작가의 아드님께서 그런 섬세한 특기가 있다는 것은, 세 사람만의 작은 비밀이지만 말이다.
“예전보다 많이 길었죠?”
“스위니 부인께선 네 머리카락을 사랑하시니.”
“그리고 시몬 힐라드도 그렇지.”
이안이 장난스레 끼어들며, 루이스에게 홍차를 내밀었다.
“다즐링입니다. 아가씨.”
꼭 집사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고마워요. 시몬 잘 마실게요.”
“왜 내가 아니라 시몬에게 인사하는 거지?”
“그야, 시몬이 내린 홍차를 회장님이 건네준 것뿐이니까요.”
“우리 가문의 아가씨가 이렇게 까다로울 줄은 몰랐는데.”
이안은 삐딱하게 웃으며 바로 옆에 있는 책상 위로 훌쩍 걸터앉았다.
루이스는 시몬이 내리고, 이안이 건네준 홍차를 마셨다.
입술 끝에 닿은 온기가, 곧 온몸으로 퍼진다.
거기에 사락거리며 차분하게 머리를 빗어 내리는 소리가 더해졌다.
“묶을까? 낮에는 꽤 더운 것 같으니”
문득 시몬이 질문을 건넸다.
루이스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안이 먼저 끼어들었다.
“그렇게 해. 루이스는 더위에 약하니까.”
어쩐 일로 시몬도 지지 않고 이야기를 덧붙여 왔다.
“하지만 루이스는 여름을 좋아하지.”
두 사람의 말은 진실이었으니, 루이스가 할 일이라고는 웃는 것뿐이었다.
역시 두 사람은 꽤 죽이 잘 맞는 사촌이다.
“제가 없을 때도 두 분이 종종 이렇게 만나셨나요?”
루이스는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물론 시몬을 바라볼 때, 머리카락이 조금 흩어져서 가만히 있으라며 주의를 들었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뭐하러 저런 놈이랑 같이 있어?’라는 표정을 지었다.
“소중히 해야죠. 두 분은 서로 하나뿐인 사촌이니까요.”
루이스의 충고에 시몬이 먼저 대답했다.
“이미 충분히 소중히 하고 있지.”
물론 이안이 바로 반박해 왔다.
“나는 네게 소중하게 취급받은 기억이 없는데?”
“그런 말은 빌려 간 고대어 노트를 반납한 뒤에 해 줬으면 좋겠군.”
“소중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어서 매우 고맙구나. 사랑하는 내 사촌이여.”
“……나가.”
시몬이 그런 과격한 농담을 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루이스는 깜짝 놀랐다.
그 역시 아카데미의 영향으로 조금은 변한 모양이다.
그건 아주 반가운 일이다.
루이스는 시몬이 조금 더 과격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으니까.
“이렇게 고정해 두면 될까.”
그는 리본 매듭을 마무리하며 물었다.
“이 방에 리본이 있었어요?”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제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루이스가 입학하면,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상하고 계셨네요.”
참고로 시몬은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올려 묶어주었다.
작게 땋은 모양이 잡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굉장한 재주를 부린 모양이다.
“고마워요.”
루이스는 머리카락 사이로 늘어지는 리본을 훑어내리며 해사하게 웃었다.
“뭔가……좋네요.”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이렇게 있는 지금이 참 좋았다.
그리고 지금을 이루는 모든 것을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었다.
방 안을 채운 향긋한 홍차의 향기.
창문으로 비치는 신선한 아침 햇살.
어릴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친구들.
“가끔은 이런 느낌으로, 셋이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요.”
물론 어렵겠지만 말이다.
“자주 있을 수 있을걸.”
이안이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마 루이스의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배려해 주는 걸 거다.
“이제는 루이스가 여기에 있으니.”
물론 시몬도 이안과 말을 맞추어 주었다.
“그럼 이제 내 머리도 해줘, 시몬.”
“리본을 달아도 된다면.”
“루이스와 같은 색이라면 기꺼이 달지.”
시몬이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이안의 머리에 그녀와 같은 색의 리본을 달아도 되는지.
물론 절대로 안 된다!
루이스가 열렬하게 고개를 저었기 때문에, 시몬은 이안의 머리를 평범하게 빗겨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웃는 시간은 조금 길어졌다.
편안하다.
역시 이렇게 셋이 함께 있으면 기쁘고 안심이 된다.
하지만 루이스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이안과 시몬은 곧 그들의 진심을 바칠 상대를 깨닫게 될 테니까.
루이스가 해야 하는 일이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절대로 스텔라를 질투하지 말 것.
어린 시절의 예쁜 추억이나마 그대로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 * *
“이렇게 와주어서 고마워, 루이스 스위니.”
루이스의 꽃 돌보기 방문 서비스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어갔다.
이제 이 방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 즐거운 의무에서 해방된다.
꽃을 핑계로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또 많은 답례 선물을 받았다.
물론 루이스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아무리 귀족 출신 학생들이 제 손으로 화병 한 번 갈아보지 못했다고는 해도 말이다.
이 방도 마찬가지의 참사가 일어나 있었다.
“어, 음……. 화병에 물을 안 넣었네요?”
“거기에 물을 넣어?”
반짝이는 눈동자로 되물어오면 참 할 말이 없다.
루이스는 ‘혹시 생물 관련 수업은 듣지 않나요?’ 라고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네, 물을 넣어야 해요.”
“아하, 그렇구나.”
“알려드릴 수 있어서 기쁘네요.”
아무래도 아카데미는 웨인 힐 교수님의 ‘식물과 곤충 그리고 흙’을 모두 의무 수강시켜야 할 것 같다.
학생들이 생물과 그 환경에 관심이 없다는 건 큰 문제다.
나중에는 이 세계의 오존도, 빙하도 그리고 귀여운 북극곰도 위험해질 테니까.
물론 여기에도 그런 것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쨌든 꽃을 낙찰받아 줘서 고마워요.”
루이스의 의례적인 인사에, 여학생은 얼른 팔을 휘저었다.
“응? 아니야. 내가 산 건 아니고.”
그리고 얼굴을 붉힌다.
루이스는 그녀의 사정을 쉽게 짐작했다.
어느 남학생이 꽃을 낙찰받아 바친 거겠지. 뭔가 멋들어진 말과 함께.
“그게, 갑자기 그렇게 고백을 받으니까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알았다고는 해 버렸는데.”
그리고 급진적인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루이스가 들은 ‘급진적 관계 개선’ 사례가 벌써 다섯 번째다.
이쯤 되면 새 학기의 파티가 아니라, 대 고백의 파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멋진 일이네요.”
“루이스도 왔다면 좋았을 텐데. 누가 알아? 루이스도 꽃을 받았을지.”
“제게 꽃을 줄 남학생은 없을걸요. 꽃을 가꾸라고 명령할 사람은 있어도요.”
“그거, 회장님?”
“맞아요.”
여학생이 잠시 키득키득 웃었다.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면서.
올해의 수석 학생이 학생 회장님께 꼼짝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 말이다.
“제가 들은 것 중에 가장 올바른 소문이네요.”
“그렇다면 마음껏 퍼트려 줄게.”
“네. 부탁드려요. 다른 학생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회장님도 조금은 절 불쌍하게 여겨주겠죠?”
“글쎄, 이렇게 소문이 났으니 마음껏 괴롭히시진 않을까?”
그것참 신빙성 있는 미래다.
“아 참.”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작게 손뼉을 쳤다.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그리 묻는 얼굴에는 묘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조금 불길하긴 했지만, 루이스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물어보세요.”
“혹시 들었어? 파티가 있던 날 밤에 말이야.”
그녀는 제 방이면서도 괜스레 목소리를 낮추었다.
“회장님이 춤을 추셨다는 거.”
“아.”
루이스는 잠시 어색한 얼굴을 했다.
회장님도 춤을 추기는 했다.
루이스와 온실에서.
혹시 누군가 바깥에서 본 걸까?
그의 은발은 멀리서 보아도 확실하게 눈에 띄는 편이니까.
누군가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그 순간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예전의 사교댄스 수업을 서로 되짚어 본 것뿐이다. 그게 전부다.
“들었구나! 그렇지?”
“아, 아뇨. 지금 처음 들어요. 소문에 달린 발이 제게 올 때는 느리거든요.”
루이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애써 모른 척했다.
“그래? 꽤 화제인데 모르다니……. 어쨌든 내가 궁금한 건 그거야.”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이스가 스텔라 라피스에게도 꽃 돌보는 법을 가르쳐 줬는지.”
스텔라?
회장님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째서 스텔라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어쨌든 스텔라는 목록에 없었다.
“갑자기 스텔라는 왜요?”
“사실은 파티에서, 회장님께서 스텔라 라피스에게 먼저 춤을 청하셨거든. 갑자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