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완벽한 세계가 여기에 있었네요.
루이스는 몸을 빙글 돌려 시몬과 마주 섰다.
어쩐지 그와의 눈높이가 더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가 더 자라셨어요.”
“미안.”
“딱히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에요. 그저 부러웠을 뿐이죠.”
“……부러울 일인가?”
그는 잠시 제 새카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마 루이스가 커다란 키를 부러워한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리라.
그럴 만도 하지.
이안도 시몬도 모두 ‘또래 중에 키가 작은 편’인 경험을 한 바 없으니 말이다.
“루이스.”
“네.”
그리고 시몬은 잠시 침묵했다.
물론 루이스는 참을성 있게 그가 제 말을 점검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언제나 생각을 소리로 변환하기 전에 그 단어와 의미를 꼼꼼하게 되짚곤 했다.
“기록의 시간을 찾는 건가?”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고 있었다.
조금 전에 시몬이 루이스를 부를 때, ‘기록의 시간?’이라며 이야기를 걸어왔으니까 말이다.
“그 책이라면.”
설마.
루이스는 양쪽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대출했는데.”
“저, 정말요? 혹시 다 읽으셨다면…….”
“다 읽지는 않았지만, 내어 줄 수 있어.”
“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다음 주까지만 읽으면 되고, 어차피 역사가의 서재도 읽어야 하니까요.”
“줄게.”
루이스의 긴 이야기에도 그는 짧은 대답을 분명하게 전해왔다.
그가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할 정도면, 그 고집은 누구도 꺾지 못할 것이다.
이미 깊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일 테니까.
“고마워요.”
“지금?”
음, 그러니까 이건 ‘지금 바로 빌려줄까?’ 라는 뜻일 거다.
“괜찮으세요?”
“오후까지 수업이 없으니.”
“그건 저도 그래요.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루이스는 몸을 빙글 돌려 스텔라를 마주 보았다.
“잘됐네요. 루이스.”
그녀는 루이스에게 대출 절차가 끝난 역사가의 서재를 건네준 후, 친절한 미소로 시몬 힐라드를 바라보았다.
“‘기록의 시간’의 대출 기한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 줄까요?”
시몬은 느릿하게 시선을 옮겼다.
루이스는 책을 꽉 끌어안으며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시몬의 목소리가 애정의 온기를 품으면 어떻게 변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필요 없어.”
온기는커녕 냉랭한 대답만 있었다.
게다가 어쩐지 그녀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루이스는 조심스레 시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무뚝뚝한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네.’
그러다 고개를 돌린 시몬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루이스는 황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자.”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스텔라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후, 곧바로 시몬을 따라나섰다.
몇 걸음 성큼성큼 나아가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 루이스와의 거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잘 따라갈 수 있는데.
루이스가 그의 곁에 도착했을 때 즈음. 그는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그의 시선이 루이스가 끌어안은 책을 향하고 있었다.
설마, 들어 준다는 소린가? 왜?
“다쳤다며.”
맙소사, 거기까지 소문이 들어간 건가. 루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졌어요. 이제는 아프지 않으니까요.”
“이안이 얼굴이 새파래져서 말하던걸.”
……또?!
“회장님께서 호들갑 떠시는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녀 앞에 내밀어 진 손이 거두어지는 일은 없었다.
루이스는 그의 손을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 기꺼이 그에게 책을 건넸다.
그는 루이스의 책을 소중하게 품은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는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대체 왜 회장님께서는.”
루이스는 불평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안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에 시몬 보다 좋은 상대는 없었다.
어쨌든 셋은 어린 시절을 공유한 사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호들갑을 떠시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괜찮아진 걸 두 눈으로 확인하셨으면서 말이에요.”
물론 시몬의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이 도서관 건물에서 한 참 떨어져 나온 이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걱정하는 거지. 약혼했으니까.”
약혼.
아, 그러고 보니 시몬도 두 사람의 태중 혼약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시몬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두 사람의 태중 혼약을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거다.
그런 성격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루이스는 시몬에게도 이안과의 ‘계약’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시몬이 소문을 내고 돌아다닐까 봐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시몬과 비교하면 교정의 돌멩이가 훨씬 더 수다스러운 존재일 테니까.
그에게 진실을 말하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루이스에게 있어서 시몬은 아주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하지?
‘저희 파혼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애초에 루이스는 이안과 정식으로 약혼한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 약혼은 진짜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그랬다.
지금까지 ‘내 약혼녀’라는 말을 사용한 이안이 가벼워 보일 테니까.
뭐라고 말해야 한담.
결국, 시몬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 루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시몬도 침묵을 지키게 되었고.
“여기에서 기다려.”
시몬이 방으로 들어간 사이 루이스는 문틈 사이로 그의 방을 살짝 구경했다.
조금 무례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학생들의 방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방 외에는 본 적이 없으니까.
언뜻 보이는 침대나 책상은 루이스의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의 신분이 대단한 만큼 뭔가 특별 대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자.”
곧 방에서 빠져나온 시몬이 루이스에게 제법 두꺼운 책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공자님.”
루이스는 두 손을 내밀어 책을 붙잡았다.
스륵.
하지만 그 책은 마치 그녀를 놀리려는 것처럼 손에서 빠져나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시몬은 루이스가 책을 붙잡지 못하도록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런 장난을 치실 줄은 몰랐는데요.”
“장난이 아니라.”
“아니라?”
“규칙.”
“규칙?”
루이스가 되묻기에 그는 다시 책을 내밀며 그녀의 실수를 짚어 주었다.
“공자님이 아니라 힐라드.”
“제가 공자님이라고 불렀었나요?”
“무척 자연스럽게.”
“그야 그게 제겐 자연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갑자기 힐라드 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네요.”
루이스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어딘가 공작님을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물론 시몬은 미래에 훌륭한 공작님이 될 터지만.
그러자 시몬은 꽤 선심을 쓰는 것 같은 얼굴로 다른 호칭을 찾아 주었다.
“그럼 시몬.”
“제가 공자……님 이름을 막 불러도 되나요?”
아무리 아카데미의 규칙이라고 해도, 루이스는 시몬의 이름을 멋대로 부르는 것에 묘한 저항감을 느꼈다.
이안보다 더 어려운 느낌이 드는 것은 그의 무뚝뚝한 성정과 어른스러운 표정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안은 ‘회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도망치는 게 가능했지만, 시몬은 그런 것도 없었고.
“그게 규칙이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요.”
루이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몬의 신기한 점은 언제 다시 바라보아도 곧바로 시선이 마주친다는 점이다.
꼭 그가 그녀를 줄곧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루이스의 착각이겠지만.
“책을 빌려주어서 고마워요. 시몬.”
“늦지 않게 반납해 줬으면 좋겠어.”
“물론이죠. 다음 주 이 시간에 돌려드릴게요. 괜찮죠?”
“문제없어.”
루이스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가 든 두 권의 책을 돌려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책을 내어주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네왔다.
“말해도 괜찮아.”
“네?”
“네가 뭔가 고민하기에…….”
그는 말을 삼키며, 루이스의 안색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아무래도 기숙사로 이동하는 동안 그녀가 우물거리며 고민하던 것을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은.”
루이스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가만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과 이야기를 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야기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음. 태중 혼약에 대해서요.”
“…….”
“아시다시피 어머님들 간의 친교로 이루어진 약속이고, 그 안에는 어떤 의무도 정치적 의도도 없으니까요.”
루이스는 제 말이 길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좋지 않은 일이다. 본질을 흐리게 되니까.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이야기를 단순하게 고쳐 말했다.
“그래서 잠시, 그 관계를 내려놓기로 했어요.”
“잠시?”
그는 애매한 기한을 지적했다.
“1년이요.”
물론 루이스도 곧바로 설명했고.
“…….”
시몬은 침묵했다. 아니 대답을 고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네게……시간을 청해도 되나?”
“지금요?”
“루이스가 괜찮다면.”
물론 괜찮았다. 게다가 시몬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포로로 잡힌 가여운 책을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대신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오늘은.”
아무래도 그에게 시간을 내어 준 동안은 계속 책을 들어주려는 모양이다.
그는 제 방문을 닫고 두어 걸음 먼저 나섰다.
루이스는 이번에도 반걸음 정도 그를 뒤따라 나섰다.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이세요?”
“좋아하는 곳.”
“시몬이 좋아하는 곳이요?”
“아니.”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힘차게 걸을 때마다 긴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팔랑이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루이스가 좋아하는 곳.”
“네?”
이제 보라색 눈동자가 다시 시몬을 바라본다.
천천히 깜빡이며 뭔가를 생각하는 걸 보니, 그의 말 너머에 있을 의미를 가늠해 보는 듯했다.
“제가 좋아하는 곳이 여기에 있어요?”
시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성실한 걸음으로 그녀를 인도하기를 택했다.
루이스도 그에게 캐묻는 대신, 두 눈으로 답을 만나길 고대하는 모양이다.
그를 종종 따라오는 걸음에 즐거움이 묻어나는 것을 보면.
시몬은 기숙사와 도서관을 지났다.
루이스는 그를 따르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아카데미를 관찰했다.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달리는 학생들.
높이 쌓아 올린 무거운 서류를 운반하는 직원들 그리고.
루이스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따듯한 햇살을 그러모은 표면에서 반짝임이 흐른다.
루이스는 그 빛이 익숙했다.
단번에 무엇인지 알아차릴 정도로.
“온실이 있었어요?!”
루이스가 놀란 얼굴로 묻기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는 이제야 알았다.
어째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 그가 그리도 자신 있게 말한 건지.
그의 말대로 그녀는 온실을 좋아한다.
그 안에서 부모님의 애정을 받았고, 이 세계로 오기 전의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치유 받았다.
이제 앞서 걷는 사람은 루이스가 되었다.
“웨인 힐 교수님께서 실험용으로 쓰시는 곳이지만.”
멈칫.
루이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실험용이라는 말에 조심스러워 진 탓이다.
“멋대로 들어가도 되나요?”
“힐 교수님은 모든 생물의 방문을 환영하시고, 너는 훌륭한.”
“생물이죠!”
“그렇지.”
“제가 생물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기뻐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그녀의 감탄에 시몬은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옅은 것이었지만.
루이스는 다시 부지런히 걸어 온실 앞에 도착했다.
유리 너머를 살짝 바라보았는데, 아쉽게도 힐 교수님은 계시지 않았다.
“아무도 없네요.”
“보통 그렇지.”
아무래도 이곳이 시몬 힐라드의 새로운 은둔 장소인 모양이다.
루이스는 그가 온실을 안식처로 삼았다는 점에서 묘한 보람을 느꼈다.
그가 조금이라도 식물이나 곤충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루이스의 영향일 테니까.
루이스는 작은 목소리로 ‘실례할게요. 교수님.’이라고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호흡했다.
건강한 흙냄새가 뻐근하도록 차오른다. 그것만으로도 루이스의 심장이 즐겁게 콩콩 뛰고 만다.
“……시몬은 틀렸어요.”
루이스는 중얼거렸다.
“여기는 제가 좋아하는 곳이라는 말.”
그녀는 여전히 온실의 문을 쥔 채로, 시몬을 돌아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바로 시선이 이어졌다.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루이스는 제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저는 온실을 사랑하죠.”
“그래.”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 스위니는 온실을 사랑하지.”
그리고 그녀의 말을 굳이 따라 했다. 마치 그 문장 전체를 익혀두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온실에서 마시는 아삼도.”
“더할 나위 없죠.”
“바로 준비하지.”
바로 준비한다고?
아무래도 오늘의 시몬은 루이스를 놀라게 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원작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온실을 소개해 주고, 그 안에서 홍차까지 마실 수 있게 해준다니.
이제 다시 시몬이 앞장서서 온실로 들어섰다.
사실 커다란 온실은 아니었다.
기숙사 방 정도의 크기에 작은 식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심겨있었다.
언뜻 보니 먹을 수 있는 채소들도 제법 있었다. ‘관리부인의 텃밭’이라고 적힌 거로 봐서는 주인이 있는 아이들인 듯싶었고.
온실의 가운데에는 쿠션이 놓인 긴 벤치가 하나, 그리고 낡은 티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뭔가 편안해지는 광경이다.
루이스는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엎드렸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하자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스위니 온실 말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 티포트에서 홍차가 또르르 떨어지는 맛있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는 여전히 테이블에 턱을 괸 채 그 완벽한 향기와 색을 감상했다.
“어떻게 하죠?”
루이스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얌전히 찻잔을 들었다.
“완벽한 세계가 여기에 있었네요.”
최고의 찬사에도 시몬은 그녀와 마주 앉아 제 찻잔을 가져올 뿐이었다.
“고마워요. 제게 이런 세계를 알려주어서요.”
루이스는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식물에 붙은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시몬은 그 즐거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괜찮은 건가 싶어서 말이다.
그는 많은 사람과 관계하며 자라지는 않았지만, 약혼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때로는 꽤 힘겨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라색 눈동자는 커다란 즐거움에 반짝일 뿐이다.
이 즐거움이 진심이라면 다행이다.
그에게 있어 루이스는 거의 유일한 친구니까.
그렇지만, 만약에.
저 너머에 시몬으로는 만날 수 없는, ‘우울한 루이스’가 있다면.
아마 그건 그녀가 사랑하는 식물들만이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여 그녀가 감정적으로 복잡하고 힘든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괜찮을 거다.
치유에 도움이 될 이곳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몬.”
“……?”
“예전에 제가 은방울꽃을 선물 했던 것 기억해요?”
“기억하지.”
“실은, 지난밤에 그날 꿈을 꿨어요.”
루이스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꽃을 받은 시몬이 무어라 대답했었는데, 제가 제대로 듣지 못했거든요……. 아마 그게 줄곧 신경 쓰였던 모양이에요. 하긴, 이렇게 갑자기 말씀드려도 그런 것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요.”
물론 기억하고 있다.
시몬은 ‘기록의 시간’을 집어 들었고, 그 사이에서 말린 꽃잎으로 장식된 책갈피를 꺼냈다.
그는 책갈피를 루이스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이 마치 ‘그날의 대답’이라는 듯 말이다.
루이스는 마른 꽃잎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비록 납작하게 눌려 있었지만, 그 가련한 모양과 색은 은방울꽃이 분명했다.
“말려서 책갈피를 만든다고 말씀하셨던 거였어요?!”
루이스의 물음에 그는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다.
「소중히 간직할 테니까.」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 아직도 조금 부끄러웠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