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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8화 (8/92)

?8. 허리를 꽉 끌어안은 초밀착 삽화

개강 첫날부터 시험이라니!

“교, 교수님, 그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루이스는 얼른 손을 들고 항의했다.

누구라도 이런 일을 당하면 이럴 것이다.

잠시 루이스를 바라보던 교수님은 출석부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누구인지 확인을 하려는 듯 말이다.

“그대는 필시, 루이스 스위니로군.”

“네, 맞아요. 이 시간을 처음으로 아카데미 수업을 시작하는 학생이고요.”

“아카데미의 첫날에 시험을 치르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던가?”

“그야, 그런 규칙은 없지만…….”

“그렇다면 문제가 없군.”

루이스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 앞에 앉아있던 남학생도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가문의 후계가 되기 위해서, 이 수업을 수강한 그 학생 말이다.

“교수님. 수강자격을 시험한다는 건, 학생을 가려 받으시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 아카데미에서 말이죠.”

예의 바른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비난이 담겨있었다.

아카데미는 차별과 제한이 없는 학문의 성이다.

그것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지켜진 소중한 가치관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에도 교수는 그다지 위기감을 느끼는 얼굴이 아니었다.

도리어 휴이트 교수는 의연하게 어깨를 펴고 남학생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렇다면 묻지.”

그리고 반문했다.

“자네는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춤을 가르칠 수 있나?”

“……예?”

“혹은 글자만 겨우 익힌 외국어로 시를 창작할 수 있겠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기에 교수는 재차 설명했다.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춤을 배우기 전에 제 몸의 균형을 익혀두어야 하고, 시를 짓기 전에 그 언어의 감각과 문화와 감성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언뜻 교수님의 말씀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최소한의 교양과 지식에 대한 시험을 이미 받았다.

입학시험을 통해서 말이다.

어쩌면 교수님은 그 시험만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다른 자질을 요구하고 계신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뭘까?

‘역사와 역사가’라는 수업에서 요구되는 개인의 자질이란.

루이스의 경우, 역사의 단순 암기라면 솔직히 자신 있었다.

그건 아마 그녀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특히 이안의 경우는 더더욱. 황태자의 의무 중 하나는 이 나라와 이를 둘러싼 세계정세를 익히는 것이니까.

“모두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군. 좋아 이렇게 되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교수는 남학생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시선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만약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시엔 당장 내 강의실에서 나가게. 바로 사무실로 달려가 수강을 취소하도록.”

남학생의 양쪽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잔뜩 긴장한 것이 틀림없었다.

대답에 따라 가문의 후계자에서 영원히 탈락할 수도 있을 테니까.

교수가 드디어 문제를 냈다.

“너 자신의 가치관을 정의 내려보게.”

“……예?”

역사에 관한 문답을 예상했던 학생이 멍청히 되물었다.

물론 놀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루이스도 역사와는 조금도 관계없는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가치관을 정의하라니.

철학 수업에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역사 강의를 들으러 온 것뿐이다.

남학생은 우물거리며 ‘올바른 생활 습관’이나 ‘가족의 전통’과 같은 말을 웅얼거렸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다면.

교수는 시선을 돌려 다른 학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물론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종이로 적어 내라고 했다면, 조금 더 그럴듯한 답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상투적인 관념을 겨우겨우 짚어나갈 뿐이겠지만.

“그러는 자네는 어떻지?”

질문의 촉이 이제 루이스를 향했다.

“교수님, 저는.”

그리고 루이스는 감히 교수의 마음을 짐작했다.

“역사가의 서술에서 그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네 학습 계획을 묻지 않았다.”

“그걸 가르쳐 주실 분은 교수님이시고요.”

“당치않군.”

교수는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렸다.

“역사와 역사가는 과거의 기록을 들추며 암기하는 초등 교육 시간이 아니다. 제대로 된 역사가를 키워내기 위한 고등 커리큘럼이지.”

제대로 된 역사가는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중심, 가치관. 사고의 일관성을 지켜주는 단단한 뿌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그저.”

교수는 루이스는 물론 다른 학생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분명하게 결론을 내렸다.

“타인이 흘려놓은 물살에 휘둘리게 될 뿐이지. 물속에 빠져버린 낙엽처럼 말이야.”

그는 출석부를 탁 소리가 나도록 덮었다.

그가 먼저 강의실을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망했네.”

남학생이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다음 학기에도 휴이트 교수의 수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있었다는 소문이 도는 날에는 다시 아슬아슬한 수강 인원으로 시작하게 될 거다.

물론 교수님은 또다시 학생들의 능력을 시험할 거고.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는 누구도 이 수업을 수강할 수 없게 된다.

루이스는 클레어가 들려준 ‘학생회의 할 일’을 떠올렸다.

「억울한 일을 당한 학생이 있을 때는 함께 싸워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건 루이스가 무언가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거다.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그녀가 나서면 이안도 도와줄 것이다. 학생회의 회장이니까.

“교수님.”

“수업은 끝이네. 루이스 스위니. 사무실에 돌아가 수업을 취소하겠다고 말해도 좋아. 언제든 승인해주지.”

“아뇨, 저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요.”

“나는 자네들을 가르칠 마음이 들지 않아.”

“가치관은 외부적 환경이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겨나죠.”

루이스는 쉬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 때문에 부모와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훌륭한 환경을 조성해 줄 의무를 갖고요.”

“즉.”

교수는 출석부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형형한 시선에는 얼핏 분노가 비쳤다.

“내가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네의 견해로군.”

“……어떤 관점에서는요.”

루이스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고, 휴이트 교수는 그녀의 눈동자를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가늠해 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이다.

루이스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희미한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보는데.”

……창가에서 헛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루이스는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귀찮은 얼굴을 한 이안이 턱을 괸 채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그녀는 제가 들은 것을 의심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그는 학생회장이다. 누구보다도 학생의 편에 서야 하는 사람.

그런데 이 수업을 폐강하는 데 동의한다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제 것인 양 머릿속에 넣어둘 경우, 곧 선입견의 포로가 될걸.”

그는 루이스가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굳이 사견을 덧붙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접한다고 하여 금방 선입견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접하기만 하면 다행이게? 그들의 그럴듯한 논리는 너를 설득하고 굴복시킬걸.”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그 판단이 가능한 휴이트 교수님께서 교단에 서시는 거지.”

“그건 이상해요! 훌륭한 가치관을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이안은 루이스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바로 그거.”

“……?”

“그대는 아카데미에서 다루는 역사관은 훌륭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이미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한 거야.”

“그건…….”

루이스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다른 남학생이 고개를 돌려 이안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는 오랫동안 검증된 것. 가능한 한 정설에 가까운 걸 취급하는 거잖아?”

“다수결로 훌륭함을 결정지을 수는 없지.”

“지성의 결론이 훌륭함에서 멀어졌다는 건, 오랫동안 진실을 갈구하는 학자들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남학생의 질문에 이안은 대답 대신 교수를 돌아보았다.

“교수님.”

휴이트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언을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이 수업의 첫 번째 주제로 논의하기에는 마침 좋은 것 같습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시대가 만들어 낸 역사관에 관한 것 말입니다.”

“……자네는 그다지 나와 공감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저는 누구와도 공감하지 않습니다. 교수님.”

이안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고, 교수는 잠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다음 시간에 계속하지. 과제로 읽어야 할 책은 내일 게시판에 공고할 거야.”

천천히 교실을 나서던 교수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몸을 돌렸다.

“오늘 물어본 문제는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험에서 다시 다뤄질 거다. 별로 달라진 대답이 없을 때는 대단한 성적을 기대해 보는 것이 좋을 거야. 특히…….”

말끝을 흐린 교수의 시선이 루이스를 향해왔다.

윽. 이런 식으로 표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최고 학생의 명예를 누리며 아카데미를 졸업할 계획에서 이미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 *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의 수업은 루이스가 기대한 대로 평범했다.

교수님들은 친절하고, 학생들은 적당히 의욕과 무기력 사이에 있었다.

루이스는 그 평범함이 좋았다. 또 그렇게 지내는 시간에 흡족했다.

이 세계에서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은 주인공인 이안과 스텔라로 충분했고, 루이스는 그들을 응원하기로 했으니까.

그녀는 오랜만에 ‘원작 속 악녀, 못된 루이스 스위니’를 떠올렸다.

하지만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 걸까.

이렇게 루이스가 되어 지내는 동안, 그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원작의 악녀에게도 조금은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이다.

아마 부러웠던 것이리라.

주인공에게만 주어지는 화려한 빛과 상냥한 세계를.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스텔라를 괴롭히는 건 참 나빴다.

‘참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었지.’

루이스는 가방을 고쳐 매고는 잠시 그 악행들을 떠올려보았다.

‘뜨거운 걸 든 스텔라에게 발을 걸어서 넘어지게 하고, 과제를 다른 거로 알려주기도 하고, 실수인 척 날카로운 가위로 상처를 낸 적도 있었어.’

다시 떠올려보니 정말 못됐다.

그렇게 하고도 눈물을 흘리며 이안에게 달려가, 스텔라가 잘못한 일이라며 위로를 바라기도 했었다.

혹은 돈의 힘을 이용해서 다른 학생이나 교수를 끌어들이기도 했었고.

‘그리고 도서관에서도…….’

루이스는 어느새 도착한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고전 양식을 본떠 지은 이 건물은 아카데미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스텔라는 조금이나마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서 사서 선생님을 돕는 일을 했다.

물론 루이스의 괴롭힘은 도서관에서도 빠짐없이 계속되었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순조로운 학교생활을 하겠지.’

평범한 우등생이며, 황태자의 연인으로서 말이다. 물론 아직 그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빨리 행복해지길.

장서실로 들어선 루이스는 천천히 서가를 죽 훑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참 좋다.

어느 도서관이든 같은 분류법을 적용하고 있어서, 규칙성만 알고 있다면 바라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사서 선생님께 여쭤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며 운명적인 책을 찾는 것도 좋아했다.

가끔 시선을 잡아끄는 책등을 만나곤 하니까.

이건 대한민국에 있을 때의 자신이 남긴 거의 마지막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

루이스는 역사서가 정리된 서가를 찾아 들어갔다.

서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고요했다.

그녀는 손끝으로 정리된 책을 하나하나 훑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오늘 밤에 하나 읽어두고 싶은데.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다.

한참 집중하고 있을 때 곁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바로 건너편 서가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다리 위에 선 한 여학생이 제법 두꺼운 책을 놓친 것뿐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평범한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그 여학생이 지닌 아름다운 붉은색 머리카락 때문이기도 했다.

‘스텔라…….’

책이 떨어진 소리에 놀란 것은 스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얼른 근처의 학생에게 사과하듯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책을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이스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더라.

루이스는 잠시 이마 사이를 손끝으로 꾹꾹 누르며, 원작의 몇 페이지를 떠올렸다.

「사서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정리목록과 실제 서가는 너무나도 달랐다. 스텔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 학교의 부자들은 ‘읽으면 제자리에’라는 간단한 일조차 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한심하도록 가난한 라피스 백작가로 말할 것 같으면, 백작 영애 스텔라의 꼼꼼한 청소와 정리로 그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스텔라는 일단 무거운 사다리를 기대고 그 위로 올라섰다.

처음에는 다소 높은가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이 높이에 익숙해졌다. 이후로는 쉽게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책 한 권을 바닥으로 놓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손에 힘이 풀린 모양이다.」

‘그래서 스텔라는 잠시 제 손가락을 주물렀어.’

루이스는 흘금 고개를 돌려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다리 위에 오른 그녀는 잠시 제 손바닥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 후엔 사서 선생님께서 괜찮냐고 물어보셨고.’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정말로 사서 선생님께서 스텔라에게 다가갔다.

“스텔라, 괜찮니? 힘들면 쉬어가며 하렴.”

「네, 괜찮아요. 거의 다 했으니까 전부 끝내고 쉴게요.」

“네, 괜찮아요. 거의 다 했으니까 전부 끝내고 쉴게요.”

맙소사! 똑같아!

루이스는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원작의 대사를 듣는 것은 이 세계로 와서 처음이니까.

사실 그녀가 이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스텔라는 다시 도서목록을 면밀하게 살폈다. 이제 두꺼운 양장본을 옮길 차례다.

가느다란 손으로 시커먼 양장본을 집어 들었다. 생각 이상의 무게에 잠시 손목이 휘청였고, 그녀는 다시 책을 놓치고 말았다.

‘안돼……!’

스텔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기울이며 팔을 뻗었다.

끼익.

책장에 기대어 둔 나무 사다리에서 기묘한 소리가 났다. 책을 향해 뻗어 나가던 그녀의 몸은 이제 바닥을 향해 머리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안이다.

마침 근처에 있었던 그가 달려와 바닥에 처박힐 뻔한 그녀를 온몸으로 구해주었다.

물론 이 장면 뒤로는 몹시 훌륭한 삽화가 곁들여졌다.

남자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여자 주인공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초밀착 삽화 말이다.

설마 그 장면을 현실에서 보게 되는 걸까.

루이스는 심장 근처로 손을 올린 채, 스텔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삽화적 순간을 기다렸다.

“앗……!”

스텔라의 입술에서 작은 비명이 흘렀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두꺼운 책이 떨어졌고, 스텔라는 황급하게 몸을 뒤로 젖히며 팔을 뻗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순간에 깜짝 등장해야 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붉은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흐트러진다.

삐걱거리는 사다리의 소리.

그리고 먼저 바닥에 떨어진 책 소리가 차례차례 루이스의 감각에 들어왔다.

맙소사, 어쩌면 좋아!

루이스의 다리가 자신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보다 한 뼘이나 더 큰 스텔라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쿵!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지나가고, 루이스는 간신히 눈을 떴다.

일단 등이 아팠다.

떨어지는 스텔라를 끌어안으며 바닥으로 등이 처박힌 탓이다.

감각이 하나하나 깨어난다.

몸 위로 떨어진 스텔라의 무게감.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휘어 감은 루이스의 팔.

……음?

루이스는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위로 떨어진 스텔라가 고개를 들어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그러니까, 미안해요!

처음부터 삽화에 끼어들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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