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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7화 (7/92)

?7. 교수와 학생 관계

모든 것은 평가받는다.

그건 교수의 수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교수야말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교수는 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주기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연구 성과,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토론회 그리고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모두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런 점에서 새 학기의 출석부를 받는 일은 교수들에게 언제나 떨리는 일이다.

지난 학기의 수업 평가에 따라 수강 인원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인기 있는 교수는 별생각이 없겠지만 말이다.

“후.”

‘식물과 곤충 그리고 흙’ 수업을 담당하는 ‘웨인 힐’은 아카데미 사무실 앞에서 한숨을 뱉었다.

그는 얼핏 보면 학생처럼 보였지만, 이 아카데미의 어엿한 교수였다.

수업을 진행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 교수지만 말이다.

더불어 수업을 원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아서, 폐강이 되는 아픔을 두 번이나 경험한 교수이기도 했다.

과연 이번 학기는 어떨까?

웨인 힐은 잠시 무시무시한 학장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힐 교수님. 부디 다음 학기에는 많은 학생에게 생물의 경이로움을 가르칠 수 있다면 좋겠군요.」

물론 웨인도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언제나 인기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그건 아마 그의 성정 탓일 거다.

수업 중에 제대로 된 농담 한번을 건네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

조금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그보다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는 한계까지 두껍게 만든 안경을 괜스레 고쳐 썼다.

그러고도 긴장이 잦아들지 않아서 조금 긴 회색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좋아.

그는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들고 온 두꺼운 식물도감을 꽉 끌어안았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사무실 문고리를 밀어 열었다.

보통은 조용하고 엄숙한 사무실이지만, 새 학기에는 그 사정이 다르다.

더구나 이렇게 신입생들이 입학한 시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시간표를 받아가는 신입생, 출석표를 받아가는 교수로 북적거리는 데다가, 사무실 통상업무까지 빠짐없이 진행되는 상태다.

‘새 학기 야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저어.”

웨인은 머뭇거리며, 출석부 제작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아, 힐 교수님 오셨네요!”

사근사근한 어린 남성직원이 그를 맞아 주었다.

표정은 친절한데 그의 눈가가 거뭇거뭇했다. 괜찮은 걸까.

하지만 웨인은 괜찮냐는 걱정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저 ‘추, 출석부’라는 짧은 단어를 더듬거리며 내뱉었을 뿐이다.

정말이지 이 소심한 성격.

너무 싫다.

“아, 식물과 곤충 그리고 흙 수업의 출석부 말이시죠?”

발랄하게 대답한 직원은 커다란 서랍을 열어서 파일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종이 파일이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웨인의 심장도 똑같이 흔들린다.

저 무서운 종이 파일 안에 ‘폐강’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을 두 번이나 보았던 탓이다.

물론 폐강이 되면 좋은 점도 있다.

개인 연구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연구 지원비도 줄어들뿐더러, 이렇게 연이은 폐강이 계속되면 언제 이 아카데미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아무쪼록 수업은 하는 편이 좋았다.

“아, 여기 있네요!”

직원이 얇은 종이 파일을 꺼내 들었다.

……얇은!

웨인 힐은 얼른 파일을 건네받고는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섰다.

맙소사. 출석부가 얇아도 너무 얇다.

이런 경우 두 가지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는데, 폐강을 막을 수 있는 최소 인원인 다섯 명만 수강했거나.

‘폐강했거나…….’

제발, 풀뿌리의 여신님! 대지의 어머니! 폐강만은 막아주세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파일을 열었다.

차마 단번에 그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잠시 창밖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뒤에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총 수강 인원 : 5’

다섯, 다섯 명……!

웨인 힐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다섯 명은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그에게는 생명줄을 이어 붙여 준 커다란 은인들이었다.

수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이건……!

“다행이다…….”

감격하는 그의 곁에서 그의 마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웨인 힐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여학생이었다.

허리까지 떨어지는 긴 금발에 조금 작고 가녀린 듯한.

빳빳한 제복을 보니 신입생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듯도 한데. 어디더라?

좀처럼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웨인 힐은 조금 더 그녀를 관찰했다.

여학생은 조금 전에 받아 온 출석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하는 대로 시간표가 완성된 모양이었다.

웨인의 출석부처럼 말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학생에게 동지의식을 느끼다니 참 괴이한 일이다 싶어서.

그러다 문득.

그녀가 고개를 돌려 웨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건강한 호기심이 가득한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툭.

웨인 힐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들고 있던 출석부와 식물도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윽!”

그리고 식물도감의 단단한 모서리가 하필이면 그의 발등을 찍어 내렸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바닥에 주저앉았다.

찍힌 발등도 아프고, 책 모서리가 구겨지는 것도 슬펐지만 일단 지금은.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다.

신입생이랑 눈이 마주쳤다고 놀라서 제 발등을 찍어 누르는 교수라니.

누가 봐도 한심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그의 수업을 듣는 다섯 명 중, 한 명이라도 수강을 취소한다면 큰일인데.

“괜찮으세요?!”

여학생이 얼른 그의 앞에 마주 앉으며 물었다.

“괘, 괜찮습니다.”

웨인 힐이 제 발등을 문지르는 동안, 그녀는 앞에 떨어진 식물도감을 얼른 주워들었다.

“로저스 박사님이 정리하신 식물도감이네요.”

그녀는 책 표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조금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웨인 힐은 비로소 고개를 들어 눈앞의 학생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식물도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몹시 즐거워 보였다.

그러니까 저건, 좋아하는 책을 만난 사람의 눈빛이다.

“소중한 책이 찌그러져서 어쩌죠?”

그녀가 책 모서리를 손끝으로 쓸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웨인은 책을 받아들고는 감사의 의미로 조금 고개를 숙였다.

“읽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귀한 책인데.”

그녀는 여전히 책 표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웨인은 이 책의 고귀함을 알아주는 어린 소녀가 무척 신기하기도 하여,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읽어봤습니까?”

“아버지의 서재에서요. ‘가장 아끼는 책’만 모아둔 서가에 보관해 두셔서 몰래 읽어야 했지만요.”

“아버님께서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분이신가 봅니다.”

“책을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라도 로저스 박사님의 식물도감은 귀중하게 생각할걸요?!”

여학생은 여전히 웨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조금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로저스 박사님은 화가이며 모험가이고 학자였죠. 그 모든 재능의 집합체가 바로 이 한 권의 책인걸요!”

물론 웨인은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 그렇습니다. 박사께서 직접 다니며 그리고 기록한 이 한 권의 책의 가치는 상상을 불허 하죠.”

“이미 이백 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이백 년이 더 지난다고 하더라도 아니, 이천 년이 흐른다고 해도 변함없이 소중한 책일 거예요!”

그녀의 열렬한 대답에 웨인 힐은 슬그머니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느새 발등의 통증도 잊힌 지 오래였다.

“……죄송해요. 제가 느닷없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요.”

열정적으로 책을 찬양하던 여학생은 문득 제 모습이 조금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시간표에 좋아하는 수업이 무사히 들어가서 굉장히 들떴나 봐요. 저.”

“이해합니다. 그런 일은…….”

웨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을 무사히 진행하게 되어서 기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살그머니 제 소개를 덧붙였다.

“전, 루이스 스위니에요. 이제 입학했고요.”

“아.”

웨인 힐은 그제야 눈앞의 소녀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올해의 수석 학생이군요!”

“그렇게 기억해 주신다면 조금 창피하네요.”

“그리고 스위니 가문의 외동딸이시고요.”

생물에 관해 연구하는 웨인 힐은 그녀의 가문에 대해 잘 알았다.

함께 연구를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기도 했었으니까.

“그럼…….”

루이스의 시선이 정면으로 웨인을 향해 온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라는 시선이다. 물론 그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직에 앉은 사람들은 거의 40대를 넘기는 사람들뿐이다.

최연소 교수 기록을 갈아 치우며 이 자리에 앉은 25세의 웨인 힐은 ‘아카데미의 교직원’ 정도로 보일 뿐이니까.

“저는…….”

그는 식물도감과 바닥에 떨어진 출석부를 함께 챙겨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어디에서 용기가 났는지, 루이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그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몹시 놀라운 행동이었다.

“웨인 힐이라고 합니다.”

그의 손에 의지하여 자리에서 일어선 루이스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웨인 힐 교수님?!”

“예.”

그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루이스는 들고 있던 시간표를 꽉 끌어안으며 재차 물었다.

“23살이라는 나이로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천재, 웨인 힐 교수님이란 말씀이세요?!”

“처, 천재는 아니지만…….”

“저. 교수님의 논문을 아버지의 ‘가장 아끼는 책’ 서가에서 읽었어요!”

“스위니 님은 늘 저에 대해 과대평가하시죠. 부끄러운 논문이 그런 영광된 서가에…….”

그는 두꺼운 책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카데미에 오면 교수님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어요! 너무 기뻐요.”

루이스는 잠시 손목에 걸어 둔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가야겠네요.”

“수업……인가요?”

“네. 첫 수업부터 지각할 수는 없잖아요. 원하지 않았던 수업이라고 해도 말이죠.”

어깨를 으쓱인 루이스는 곧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만나 뵈어서 기뻤어요. 교수님.”

“저, 저야말로…….”

기뻤다는 말은 어쩐지 나오지 않았다. 진심인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곤란해 하는 그의 얼굴만으로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그녀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상냥한 아이구나.

그가 그리 생각할 때 즈음에는 시간표와 노트를 끌어안은 루이스 스위니가 몇 걸음 멀어진 후였다.

그 발랄한 걸음이 복도 너머로 사라지고 난 후에야 웨인은 출석부를 펼쳤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익숙한 이름 하나에 시선을 집중했다.

‘루이스 스위니.’

조금 전 만났던 성실한 학생이 그의 수업에도 들어오는 모양이다.

로저스 박사의 책을 읽을 정도로 식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니.

그와 그녀는 제법 좋은 교수와 학생 관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어쩐지 말이다.

* * *

운도 좋지.

교실로 달려가는 루이스도 꽤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존경하는 교수님을 직접 만난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회는 최고예요!”

강의동 3층의 한 교실에 들어서며, 루이스는 발랄하게 이야기했다.

창가에 앉아있던 이안은 나른한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그 뭔가 기쁨과 흥분 가득한 얼굴로 보아 뭔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짧게 말해.”

“폐강의 위기에 빠진 곤란한 사람을 돕는 일은 아주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보라색 눈동자가 빛나기에 이안은 쓰게 웃었다.

그녀는 아마 ‘식물과 곤충 그리고 흙’이라는 수업이 무사히 인원수를 채운 것에 안심하는 것이리라.

“정확히는 곤란한 ‘루이스 스위니’를 돕는 일이 되었지.”

덕분에 이쪽은 아주 재미없는 교양수업을 추가로 듣게 되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학생회는 모든 학생에게 공정하다.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단 한 명의 학생이 학생회의 일원이라고 해도 빠짐없이 도와준다.

루이스는 자리에 앉아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엊그제 클레어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인기 없는 수업을 진실로 원하는 학생도 있는 법이야. 그 학생들은 수업이 폐강되면 무척 슬퍼할 테고.」

클레어의 말을 들었을 때는 대체 누가 그리 인기 없는 수업을 수강하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니.”

‘식물과 곤충 그리고 흙’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루이스는 몹시 만족했다.

이제는 그녀와 같은 상황에 빠진 다른 학생들을 기쁘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령, 지금 들어야 하는 ‘역사와 역사가’라는 수업처럼 말이다.

“고마워. 이렇게 수업을 같이 신청해 줘서.”

근처에 앉은 남학생 하나가 루이스와 이안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모 귀족 가문의 아드님이었다. 아카데미에서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좋아하는 수업이 폐강되는 건 끔찍한 일이니까요.”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대답했다.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야…….”

“네?”

좋아하지도 않는 교양수업을 구태여 신청했다고? 어렵고, 까다로운데 성적까지 짜게 주는 이런 수업을?!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숨을 뱉었다.

“우리 조부님은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셔. 허먼 휴이트 교수님의 수업에서 최고점을 받지 않으면, 후계자 후보에서 제외하겠다고 하셨어.”

그는 형제가 다섯이나 있고, 누이가 셋이나 더 있다는 사정을 덧붙이며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수업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 사람은 후계자 후보에서 완전하게 제외되었다는 이야기도.

“우리 조부님은 휴이트 교수님의 연구를 늘 후원하시지. 그러니 후계자가 될 사람이 그분의 업적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만…….”

역사란 암기와 상상력 그리고 어두운 곳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깊은 학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적어도 이 남학생의 경우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후계자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이 수업에서 살아남을 작정이었다.

“수업이 아예 사라졌다면, 후계자 후보로 남을 가능성도 같이 사라졌을 거야.”

“무사히 다섯 명이 모여서 다행이네요.”

루이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남학생 외에도 순수하게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 한 명. 그리고 루이스를 비롯하여 학생회에서 나온 학생이 셋으로 겨우 인원이 채워졌다.

“응, 정말 다행이야. 이제 열심히 하는 일만 남은 거지.”

“잘 될 거에요.”

루이스의 격려에 그가 빈 노트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이 열렸다.

구김 하나 없어 보이는 정장을 갖추어 입은 남자가 중앙까지 걸어 들어왔다.

이 수업의 담당 교수, 허먼 휴이트.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루이스는 정수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공포라고 해야 할까. 이 느낌.

어쨌든 그가 몹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어째서일까. 학생이 적어서?

그의 주름진 입가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먼 휴이트다. 올해도 쓸모없는 놈들이 단체로 수업을 들으러 왔군.”

물론 그의 시야에는 이안이나 루이스까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재능도 머리도 없는 놈들은 당장 내 수업에서 나가라! 멍청한 놈들을 위해서 수업을 해 줄 만큼 한가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교수는 침묵했다.

정말로 학생이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물론 모든 학생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참 만에 휴이트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네놈들에게 재능도 머리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여기에 앉아있는 건가?”

“…….”

그 물음에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재능과 머리를 시험하지. 모두 빈 노트를 꺼내라. 지금부터 시험을 칠 테니까.”

“시, 시험이요?!”

처음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루이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남학생에게서 말이다.

“그래. 네놈들의 그 아둔한 머리가 내 제자로 적합한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불만이라도 있나?”

“하지만 지금 수강 인원은 다섯 명이고…….”

남학생이 작게 웅얼거리는 말에 교수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단 한 명이라도 엉터리 답을 냈을 시에는 자연스럽게 폐강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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