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 년 동안 내게서 도망가지 못했을 때
“……이안.”
작은 입술 사이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제대로 그를 불러주었다.
처음으로.
이안은 루이스가 그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에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라고 부를 때도 멋대로 기어오르는 아이였다.
이름을 부르고 나면 얼마나 더 그를 기가 막히게 할지, 무척 흥미를 갖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루이스.”
이번에는 이안이 루이스를 불렀다.
그리고 바라보았다.
잔인할만치 붉은 노을의 단말마 앞에 선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알아왔던 루이스와는 무척 달라 보였다.
정말로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오랜 관계를 그만두라는 것은 꽤 잔인한 말이다.
그 관계가 진심이든 장난이든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어떤 다른 감정의 잔재이든.
그 슬픈 말을 내뱉은 입술이 자연스레 미소를 그리고 있다.
아니, 저건 무언가를 숨기는 미소다.
수많은 신하가 이안의 앞에서 지어왔던 것과 똑같은 미소다.
황태자 전하를 위해서, 라는 말로 제 잇속을 챙기는 자들이나 지을법한 비겁한 미소다.
대체 왜. 네가?
네가 그리 웃고 있지?
「뭐, 수석을 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니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능숙하게 해낼지도…….」
이안은 조금 전에 복도에서 제가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이렇게나 능숙하게 표정을 지어내는구나 싶었다.
실은 저리 생각하면서도, 그에게만큼은 다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멍청했지. 정말로.
씁쓸한 마음이 뱉는 말에는 작은 심술이 섞이고 만다.
“내 약혼녀를 약혼녀로 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대하면 좋지?”
“평범하게 대해주세요.”
“어려운 말이군.”
“어차피……. 진짜 약혼녀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가짜 약혼녀도 아니지.”
이안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황비님의 말씀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불충을 저지르는 건 아니지?’라며 덧붙였다.
“하지만. 이 약혼은 공식적인 것도 아니고…….”
루이스가 우물거리기에 이안이 대뜸 끼어들었다.
어쩌면 충동이었다.
“그대가 허락한다면 공식적으로 만들어도 상관없어.”
“미, 미쳤어요?!”
루이스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기겁하듯 비명을 질렀다.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질 만큼.
“……굉장한 반응인데. 그거. 내가 그렇게 싫은 건가?”
그가 묘하게 기운이 빠진 얼굴로 물어보는 것에 루이스는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안과 엮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러다가 루이스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날에는 지옥과 파멸의 대 환장 파티가 시작될 거다.
그리고 이안은 그런 루이스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채, 스텔라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거고.
“저는 그저.”
루이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결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오해?”
“네. 누군가가 ‘내 약혼녀’라는 말을 듣고, 우리 사이를 오해하면 정말 곤란하지 않겠어요?”
루이스는 동의를 구하는 얼굴로 그를 빼꼼히 올려다보았다.
“난 조금도 곤란하지 않은데.”
“제, 제가 곤란해요!”
“호오.”
이안은 무척 흥미롭다는 듯 그녀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고 보니, 내 약혼녀께서는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셨지. ‘몹시 두근두근 (중략) 사랑 점’을 빌리기 위해서 말이야.”
“그, 그건!”
“게다가 갑작스럽게도 ‘내 약혼녀’라는 호칭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셨고. ‘누군가’에게 오해받기 싫다는 이유로 말이야. 그렇지?”
루이스는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가 늘어놓은 일들은 모두 사실이긴 한데, 어째 이렇게 들으니 그가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야 루이스가 따로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다는 것 같지 않은가.
저, 루이스 스위니.
마음에 품은 남자가 있다면 오직 아카데미의 학장님뿐입니다.
최우수 학생이 되어서 졸업식에서도 그분에게 배지를 받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라고요.
루이스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은 이안의 넓고 깊은 인내심을 단번에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누구야?”
“……예?”
“오해받고 싶지 않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야 나도 더 조심하든지 할 것 아냐.”
“특정한 상대는 없는데요…….”
루이스는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물론 스텔라라는 특정한 상대가 있기는 했지만.
“있는 것 같은데.”
이안은 그녀의 턱을 당겨 다른 곳으로 흘러간 시선을 제게 향하도록 했다.
“어, 없어요! 정말로요.”
그 고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던 이안은 결국 조금 한숨을 쉬고 말았다.
표정이나 감정을 숨기려거든 좀 끝까지 해 주면 안 되는 건가.
그렇게 빤히 보이는 얼굴로 ‘특정한 상대가 없다.’라는 말을 믿으라고?
돌겠네. 대체 누구지?
어쨌든 교내에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렇게 기겁하면서 ‘내 약혼녀’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니까.
잠시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루이스에게 꽤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설마 쌍방관계였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루이스 스위니에게도 눈이라는 것이 달려있다면, 그 교활한 뱀 같은 자식이 좋아해서 이렇게 헬렐레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 외에 또 누가 있지?
이안은 아카데미에 함께 재학 중인 제 사촌도 떠올랐다. 설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쪽은 아니겠지.
애초에 그의 사촌은 이안이 그녀를 ‘내 약혼녀’라고 부르는 것을 몇 번이나 들어보았을 테니까.
……대체 누구지.
“일단은 알았어.”
이안은 턱을 감싸던 손으로 그녀의 볼을 두어 번 톡톡 치고는 팔짱을 끼우며 한 걸음 정도 물러섰다.
그녀의 목적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천천히 지켜보면 될 일이다.
“그대의 말에 동의해. 내 언행이 제법 오해를 살 만하다는 것도.”
곤란해 하던 루이스의 얼굴이 활짝 피어난다. 그렇게 좋은 걸까.
이안은 묘한 불쾌감을 누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약속하지. 루이스 스위니에게.”
둘의 시선이 정면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태중 약혼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잊도록 하겠다. 물론 그대를 그릇된 호칭으로 부르지도 않을 거야.”
그는 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을 수락해 주었다.
하지만 저리 선언하는 얼굴이 너무나도 엄숙하고 진지하여, 루이스는 차마 고맙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려웠다.
“가, 감사…….”
겨우 떨린 입술로 그녀가 인사를 전하려고 할 때였다.
“단, 일 년 동안만.”
갑자기 표정을 바꾼 이안이 장난이 섞인 말투로 조건을 덧붙였다.
루이스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일 년 동안만이라니?
“충분하지 않은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왜 말이 안 되지?”
“그야…….”
일 년 뒤라면 이안이 스텔라에게 완전히 사랑을 고백한 이후다.
두 사람은 다른 학생들의 눈을 피해서 다양한 독자 서비스 컷을 생산해 내느라 혈안이 되어있는 시기고.
“그땐……따로 만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누가?”
“그야, 우리 중 누구라도요.”
“나는 그럴 예정이 조금도 없는데.”
웃기고 있네.
루이스는 아무 데서나 키스하는 이안의 뻔뻔한 삽화를 몇 번이나 봤다.
(물론 환호하면서.)
키스만 했으면 다행이게!
나중에 발매된 19금 개정판은 더욱 굉장하다는 후기가 줄줄이 별 다섯 개의 행진을 그리며 이어졌었다.
물론 루이스는 나이의 장벽으로 읽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못 믿겠다는 표정이지?”
“안 믿겨서요.”
“나에 대한 신뢰가 그렇게 형편없을 줄은 몰랐는데……. 그럼 이렇게 하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던 이안은 한 가지 조건을 더 덧붙였다.
“어느 한쪽이라도 연인이 생긴다면 태중 약혼은 깔끔하게 끝내는 거로.”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건이 붙는다면 문제없다. 그는 끝내주는 연애를 시작하게 될 테니까.
“대신.”
“대신?”
“일 년 후에도, 두 사람 모두 특정한 상대가 없다면.”
느릿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안이 씩 미소를 짓는다. 루이스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건 그가 그녀를 괴롭히기 전에 짓는 미소였으니까.
“그때는 정식으로 약혼을 진행하지.”
“네?!”
“루이스 스위니가 정식으로 내 약혼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야.”
“미쳤어요?!”
“아직 제정신이야. 그리고 그 정도 조건은 붙어 있어야, 루이스 스위니가 용기를 내서 얼른 연애를 시작하지 않겠어?”
“그런 조건은 없어도 괜찮아요!”
“뭘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연애 따위는 예정에 없다.’는 내 말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던 루이스는 어디로 간 거지?”
“그야…….”
“꼭 내가 당장 누군가에게 반해서 열렬한 연애라도 시작할 것처럼 굴었던 게 어디의 누구더라?”
“그렇게 굴지는 않았어요.”
“그런 표정이었어.”
“애초에 태중 혼약이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셨던 것은 전하, 아니 이안이잖아요!”
“물론 그건 구시대의 유물이야.”
“그런데 어째서 저와 정말로 약혼을 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유물을 소중히 하는 것이 황태자의 역할이거든.”
윽.
루이스는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의 조건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둘은 일 년간 태중 혼약에 대한 구속력을 잃는다.
일 년이 지난 후. 둘 중 한 명이라도 연인이 생긴다면, 태중 혼약에 대한 것은 영원히 함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구시대의 유물을 지키기 위해 약혼을 현실화한다.
‘음……. 정말로 약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어차피 이루어질 리 없는 일이니까 상관없을지도.
“알았어요.”
루이스는 굳게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겠어요.”
“좋아, 그렇다면 나도 약속을 지키지.”
“그건 감사드려요.”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이안은 무척 엄격한 얼굴을 하고는 진지하게 선언했다.
“약혼이 성립된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파혼은 안 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물건을 사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환 환불이 가능한 시대에!”
“나는 그대에게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인가?”
“……그건 아니지만요.”
“그럼. 만족스러운 약혼자를 구매하게 되겠군.”
“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약혼했을 경우의 이야기이죠?”
“그래. 루이스 스위니가 일 년 동안 내게서 도망가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지.”
어째서일까.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꼭 먹이를 노리는 사자와 같아서, 루이스는 어깨가 조금 움츠려 들었다.
* * *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루이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안이 아무리 사자처럼 무섭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카데미는 아주 넓고, 학생은 무척 많다.
개설되는 과목도 많고, 몇 개의 과목이 제약을 두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물론 운이 나빠서 수업이 몇 개 겹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그중에 두서너 시간을 이안과 공유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루이스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제 방 앞에 도착했을 때는, 한 여학생이 루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검은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그녀는 자신을 ‘클레어 이리스’라고 소개했다.
“저는 루이스 스위니라고 해요.”
“알고 있어. 네가 입학식에서 배지를 받을 때 얼굴을 익혀두었거든. 올해의 수석 학생이지?”
“네, 맞아요.”
“일단 내가 널 찾아온 건, 아카데미의 전통을 알려주기 위해서야.”
“전통이요?”
“뭐, 구시대의 유물 같은 거지만.”
클레어는 가벼운 어투였지만, 루이스는 어깨를 움찔거려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이스의 곁에는 구시대의 유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전통적으로 수석 입학생은 학생회에서 봉사하거든.”
“학생회요?”
“대단한 것은 아니야.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한다거나……하는 취지로 세워졌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거의 잡일꾼에 가깝지.”
잡일꾼이라는 말에 루이스는 곤란한 듯 미소를 지었다.
‘최고 우수 학생’을 목표로 하는 그녀는 무엇보다도 성적관리를 우선으로 하고 싶었으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아, 그래도 좋은 점이 있어. 교수님들의 눈에는 확실히 띌 수 있으니 다양한 추천서를 모을 수 있어.”
교수님의 추천서!
루이스의 눈이 반짝 뜨였다.
“졸업 후에도 학생회 출신 끼리는 위아래로도 챙겨주는 편이야. 요직에 앉은 사람치고 학생회를 거치지 않은 이는 없으니, 꽤 유용하겠지.”
게다가 사업가에게 필요한 양질의 인맥까지!
어떻게 하지? 아주 달콤한 제안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일꾼 일을 하다가 성적을 망치게 되면, 모처럼 마련해 놓은 좋은 인맥도 소용이 없을 텐데.
“아, 그리고 성적에 대한 것 말인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시험을 앞두고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니까.”
클레어 이리스는 몇 가지 장점을 더 덧붙였다.
시험 기간에 사람이 붐비는 도서관이 아닌 쾌적한 학생회실에서 공부할 수 있다던가.
성적이 훌륭한 학생도 많이 있으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다던가.
“하지만 넌 ‘사업가의 스위니’니까.”
그녀는 빙긋 웃으며 또 다른 장점을 내걸었다.
“네가 마땅한 기획서만 작성한다면, 학생회의 자금을 운용하여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겠지.”
그건 사업적인 측면을 말하는 거다.
이런 모의 실기는 루이스에게 훌륭한 경험이 되어 줄 거다.
아 어쩌지.
진짜 넘어가 버릴 것 같다.
루이스는 갈팡질팡하며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으니.
“물론, 지금 바로 결정하라는 소리는 아니야.”
클레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루이스를 진정시켰다.
“내일 아침 8시에 이번 학기 학생회의 첫 모임을 해. 혹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8시까지 강의동 1층에 있는 학생회실로 찾아와.”
“저어…….”
루이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처럼 권해주셨지만, 어쩌면 저는…….”
“오지 않아도 괜찮아. 말했지? 수석 학생이 학생회에 봉사하는 건 구시대적인 유물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루이스는 클레어의 권유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이안과 나누었던 약속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 * *
아침 일찍 눈을 뜬 루이스는 가장 먼저 씻고, 신경 써서 제복을 갖추어 입었다.
그리고 차분히 머리를 빗어 내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7시 30분.
그녀는 거울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며, 마지막 고민에 빠졌다.
학생회.
꽤 매력적인 제안인데 어떻게 할까?
사실은 어제부터 이걸 고민하느라 꽤 골치가 아팠다.
이안의 몹쓸 제안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응?’
이안의 제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다.
그렇구나.
역시 뭔가 바쁘고 일이 많으면, 그런 자잘한 일은 신경을 쓸 틈도 없을 거다.
루이스는 그저 학생회의 일을 하면서, 가끔 이안과 스텔라를 즐겁게 바라보면 되고.
게다가 학생회는 서로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모양이니, 어쩌면 이안이 그녀를 도와주겠다며 참견을 할 일도 없어진다.
마음을 정한 루이스는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 둔 가죽 가방과 아카데미의 지도를 챙겨 들었다.
기숙사 밖으로 나오니, 새 학기의 시작에 어울리는 완벽한 날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예감이 좋네.
좋은 일이 아주 많이 생길 것 같다.
지도를 따라 강의동으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인 탓에, 무척 조용했다.
루이스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학생회실 앞에 섰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은데.
들어가도……되겠지?
그녀는 작게 노크하고는 곧 문고리를 쥐었다.
문을 밀어 열자, 좁은 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 놓은 모양이다.
루이스는 완전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가에 몸을 기댄 채 쓸데없을 정도로 상큼하게 미소 짓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루이스는 잠시 제 눈을 의심했다.
“어서 와, 루이스 스위니.”
이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