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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4화 (4/92)

?4.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숨을 쉬는 방법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순서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그 와중에 그와의 가까운 거리를 쓸데없이 신경 쓰는 자신이 있었다.

아마 그녀에게 작은 말로 속삭이느라 그랬던 것이겠지만. 그렇게 주연급의 얼굴을 들이대는 것은 반칙이잖아요.

“뭘 그렇게 놀라?”

“노, 놀라죠.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면.”

“멀리서 작게 불렀는데 못 듣는 것 같아서, 뭔가 재미있는 게 있는가 했지.”

“그, 그게.”

루이스는 괜스레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이안은 조금 전까지 루이스의 시선이 향했던 서가를 바라보았다.

“이런 책도 읽는 건가?”

그의 질문에 루이스는 그것이 어떤 책인지도 모른 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훔쳐보고 있었어요.’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 네. 요즘 관심이 생겨서 관련분야를 챙겨보고 있어요.”

“……관심? 정말로?”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차 질문해 왔고,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책이길래 반응이 저런 걸까.

하지만 여기는 아카데미의 도서관이다. 분명히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도서만을 모아 두었을 것은 분명했다.

“놀랍군. 내 약혼녀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는데.”

“예?”

뒤통수라니.

설마 ‘절대왕정의 몰락’ 이런 책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겠지.

루이스가 불안해하던 차, 이안은 차분한 목소리로 책 제목을 읽어주었다.

“몹시 두근두근! 그이에게 당장 고백하고 싶은 당신에게 전하는 별자리 사랑 점.”

“…….”

대체 뭐란 말이냐. 그 망측한 제목은.

“흥미로운 제목이기는 하군.”

물론 루이스도 흥미롭기는 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책 보다도 그 제목이 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안은 ‘몹시 두근두근 (중략) 사랑 점’을 꺼내어 적당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자자리, 사자자리가 어디에…….”

끔찍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자, 장난으로 훑어보려는 것뿐이에요.”

“관련 분야를 꼼꼼하게 챙겨볼 정도로 말이지?”

윽.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상관없잖아요.”

루이스는 그가 사자자리를 찾아내기 전에 얼른 휙 소리가 나도록 책을 빼앗았다.

“빌리려고?”

이안이 묻자, 루이스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이 책을 대출하지 않으면, 이안이 신이 나서 책을 빌리고는 그녀를 놀리는 구실로 써먹을 것이 분명했다.

멀미와 더불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저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건데, 왜 여기에 숨어 있던 것을 걸려서는!

“그렇다면 대출증 만드는 법을 도와주도록 하지.”

“그 정도는 사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어요.”

“도와주고 싶은데.”

“왜요?”

“그야, 그대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과 내 이름이 나란히 들려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거든.”

루이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카데미에는 그를 지켜줄 시종 아저씨가 없으니 더욱 노골적으로 찌푸릴 수 있어서 좋았다.

“표정이 아주 불경하구나.”

이안이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타박했다.

“입학식을 무사히 마친 덕분에 신분 감각을 잃어버렸거든요. 어쨌든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이 도서관에 있을 다른 누군가를 찾아보는 게 어때요?”

루이스는 슬쩍 스텔라를 곁눈질했다.

그녀는 여전히 주인공다운 면모를 뽐내며 독서에 빠져있었다.

“다른 누군가?”

“예. 도움이 필요한 다른 신입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루이스의 말에 이안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고, 곧 스텔라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시선이 그곳에서 멈춘다.

루이스는 두 손을 심장 앞에 모은 채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반했나?’

그야 물론 반하고 싶겠지! 이 세계의 여자 주인공인데! 게다가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한참 스텔라를 바라보던 이안은 루이스가 곁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원작인력의 법칙이란 말인가. 서로에게 자석처럼 끌리고 마는……!

이안은 스텔라와 바로 마주 섰다.

이제 그 역시 햇살의 영역에 들었다.

아, 이 장면 본 적 있어.

1화 삽화였어!

이렇게 마주친 후, 이안이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지.

「신입생?」

그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하기에 루이스도 침을 꿀꺽 삼켰다.

“책을 세 권이상 쌓아 놓고 보는 건 교칙 위반인데.”

……자, 잠깐만요. 남자 주인공!

대사가 틀렸잖아요!

하지만 루이스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아직 두 번째 대사가 남아있었다.

「별일이네. 이런 곳에 처박히는 녀석은 별로 없는데.」

라고 말하면서, 나른하게 웃는 것이 두 번째 대사다.

그리고 지금 그는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았어. 완벽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대사를 쳐주세요.

“다 읽은 건 북 카트나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해.”

그리 말한 이안은 고개를 반짝 돌려 루이스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제 된 거지?’라고 허락이라도 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루이스는 아득해지는 기분에 잠시 책장에 이마를 처박았다.

이안이 왜 의료동을 가장 먼저 알려 주었는지 알 것 같다.

당장 가서 잠시 눕고 싶었다.

* * *

루이스는 짐을 정리하고 싶다는 핑계로 얼른 제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전원 기숙사 제도인 만큼, 학교의 한 편에 길고 높게 지어진 기숙사 건물은 모두가 개인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학생 기숙사인 3층으로 올라가자 어렵지 않게 ‘루이스 스위니’라고 적힌 작은 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옷장과 간단한 욕실이 딸린 작은 방이다.

방 안에는 이미 누군가 미리 가져다 놓은 짐이 놓여 있었다.

루이스는 가방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일단 작은 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 내렸다.

하루가 전부 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피곤해지고 말았다.

‘잠시만 잘까…….’

학교 구조 같은 것은 나중에 천천히 지도를 보면서 돌아다니면 그만이다.

물론 인맥을 위해서라도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게 다 황태자 전하, 아니 이안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여자 주인공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면 어쩌란 말이야.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았다. 그런 소설 따위는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을 거야.

‘이러다가 이 소설이 망해버리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설마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슬픈 현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는 그 당시의 기분은 거의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그렇게나 부러워하던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도 잊었다.

물론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부럽지도 않았고.

‘어쨌든 이 세계와 나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전하께서 어서 스텔라와 정상적인 관계가 되어야 해.’

하지만 어떻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는데.

루이스는 답답한 마음에 빌려온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사자자리’라고 중얼거리면서 페이지를 넘겼었지?

루이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자자리의 페이지를 펼쳤다.

‘누구보다도 과시욕이 있는 당신은 사랑의 방해자가 있을수록 더욱 타오릅니다.’

맙소사, 이 책 너무 정확해.

분명히 이안이 제 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도, 서브 남주가 스텔라에게 마음을 고백한 후였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사자자리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맹목적입니다.’

과연 사자다운 면모다.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개의 문장을 더 읽다가 곧 책을 덮어버렸다.

그러니까, 요점은 이거다.

이안이 스텔라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루이스는 잠시 눈을 감고 이안의 행태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남자는 18살이 된 지금까지도 루이스를 ‘내 약혼녀’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그녀를 놀리기 위한 말일 뿐. 그들이 진정 깊은 관계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으리라.

더구나 그의 지위는 황태자.

아무리 세간의 영향이 없는 아카데미라고 하더라도 그의 배경이 전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스텔라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결코.

그렇게 결심한 루이스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이안과 제대로 담판을 지어 놓아야 했다.

* * *

“엄청 귀엽더라. 루이스 스위니.”

방으로 돌아가는 이안에게 옆 방의 친우가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아마 그와 루이스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이안은 제법 가벼운 투로 대꾸했다.

“처음 봤어?”

“가까이에서는. 스위니 가문은 조금 특별하잖아? 파티에서 만날 기회도 흔치 않고.”

‘특별’하다는 말에는 평민인 주제에 돈은 더럽게 많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어쨌든 작고 하얗고 귀엽더라.”

“자세히도 봤네.”

“예쁘니까 저절로 자세히 보이더라고. 네 여자친구?”

가벼운 듯한 물음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 내면에 숨겨진 의도는 꽤 무거울 거다.

특히 그가 수도 백작 가문의 귀한 삼남이라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안이 누군가를 연인으로 선언하는 일은 정치적인 문제이니까.

“설마.”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워낙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서. 어머님들끼리 아카데미 동기시거든.”

“물론 그 이야기는 들었지.”

“굳이 따져보자면 동생……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 녀석도 나도 형제가 없으니까.”

이안은 ‘동생’이라고 말하면서 조금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여동생이 있다면 딱 그런 느낌일 거다.

그녀는 그에게 맹렬하게 맞서주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지켜보는 것이 몹시 재미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안과 친구는 나란히 이웃한 각자의 방문 앞에 섰다.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이안은 조금 닳은 자국이 남은 문고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골랐다.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던 친구가 짧은 말로 다음을 재촉했다.

“뭘?”

“루이스 스위니는 무서운 녀석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안은 비로소 빙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소중한 이웃이 무서운 내 여동생에게 마음을 둘까 봐, 몹시 걱정되어서.”

“안 되냐?”

“안 되지.”

“깜찍한 루이스 스위니에게 이렇게 무서운 오라버니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두어야겠네.”

이안은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래. 단단히 명심하도록.”

“학생 회장님을 어찌 거역할까요.”

의미심장한 얼굴로 히죽 웃는 꼴이 조금 불쾌했다.

어쨌든 참 귀찮은 일이다.

무엇을 해도 가짜 웃음으로 마음을 떠보는 이들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것은.

아마 그런 점에서, 루이스가 특별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작은 얼굴에 다양한 표정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미소 뒤에 다른 음흉함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애써 분노를 삼키지도 않았다.

표리가 일치하는 유일한 사람.

그야 물론, 걱정도 된다.

어디까지나 오랜 친구이자, 오라버니 같은 입장에서 말이다.

루이스는 사업가를 희망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느 사업가가 좋고 싫음을 얼굴에 전부 적어놓고 산단 말인가.

그녀의 미래를 생각하면, 루이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큰소리를 칠 수 있어야 한다.

짜증이 나더라도 웃어야 하고, 싫은 인간에게 친절을 베풀 수도 있어야 한다.

이안이 그러하듯 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숨기는 루이스 스위니라니.

‘뭐, 수석을 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니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능숙하게 해낼지도…….’

이안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기숙사 복도 너머로 루이스가 보였다. 쭈뼛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을 보니 뭔가를 찾는 모양이다.

맙소사.

똑똑하다고 생각한 지 일 초 만에 가뿐하게 그 생각을 뒤집으러 나타나셨군.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남학생 기숙사 복도를 어물쩍거리는 건 그다지 현명한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뭐랄까.

틈이 많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무서운 루이스 스위니’가 다른 남학생들에게는 꽤 귀염성 있게 비치는 모양이니 조금 걱정이다.

이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 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그를 발견한 루이스의 얼굴이 밝아진다.

보라색 눈동자가 잠시 예쁘게 반짝였고, 빨라진 걸음에 길게 늘어진 금발이 경쾌하게 흔들린다.

아마 그의 방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뭔가 기특하긴 한데, 조금 걱정된다.

“수석이라고 들었는데?”

그녀가 가까워지자 이안은 잔뜩 비꼬는 말로 이야기를 걸었다.

“수석이죠. 그런데 그게 왜요?”

“그렇게 똘똘한 아가씨가 어째서 남학생 기숙사를 기웃거리냐고 묻는 거야.”

“교칙 위반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문제없네요. 그렇죠?”

그게 그렇긴 한데.

아니, 왜 반박할 말이 없지?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좋아, 말해.”

루이스는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주변을 의식하며 곤란한 듯 웃었다.

“여기는 좀…….”

“그럼 내 방에서?”

이안이 문을 열기에 루이스가 손뼉을 쳤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방에는 아무도 없고.”

이런 빈틈 덩어리 같은 아가씨를 봤나!

이안은 루이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그렇게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건 좀 어떨까 싶은데.”

“하지만 저는 늘 전하의 방에 놀러 갔었잖아요?”

그건 궁에서 시종을 세 명 이상 대동했었을 때의 이야기다.

“어쨌든, 루이스 스위니. 넌 조금 더 주변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그리고 전하라는 몹쓸 호칭이 아직도 남아있었군.”

“아.”

루이스는 잠시 제 입술 근처를 톡톡 건드리며 ‘깜빡했네요.’라며 실실 미소를 흘렸다.

“어쨌든 조용히 대화할 장소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안이 먼저 걸음을 옮겼고, 루이스가 반걸음 정도 뒤에서 따라붙었다.

* * *

그가 루이스를 이끈 곳은 기숙사의 옥상이었다.

이안이 단단한 철문을 밀어 열자, 바로 정면으로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노을, 그것도 구름이 잔뜩 그림을 그려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의 노을이었다.

루이스는 난간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작게 벌어진 입술로 자신도 모를 감탄사를 쏟아내며.

그녀가 낮은 난간의 근처까지 아슬아슬할 정도로 달려가자, 이안은 저도 모르게 팔을 뻗었다.

“진짜, 이 꼬맹이가!”

허리를 확 끌어안은 단단한 팔이 그녀를 뒤로 당겨왔다.

“난간으로 돌진하는 머리로 대체 수석은 어떻게 한 거야?!”

걱정인지 놀림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루이스는 고개를 조금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제대로 안전한 곳에서 멈출 생각이었어요.”

“그러셨겠지.”

흘긋 내려다보는 얼굴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내 약혼녀께서는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난간 앞에 딱 멈추어 서서 무척 안전하게 석양을 감상하셨을 테고.”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난간?

하늘 위만 바라보았던 루이스가 비로소 옥상의 난간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낮았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과했다.

지금까지는 그의 가짜 약혼녀 놀이를 적당히 받아주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사자자리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맹목적입니다.’

이안은 조금 더 맹목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으니까.

오직 스텔라에게.

루이스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빙글 몸을 돌렸다.

그의 은발이 노을의 색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색은 여자 주인공인 스텔라의 것과 무척 닮아있었다.

‘역시……. 두 사람은 운명이야.’

“진지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루이스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몹시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듣고 있어. 매사에 진지하신 나의 약혼녀 씨.”

장난이 섞인 가벼운 대답이 도리어 고마웠다.

두 사람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공유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의 무게는 여전히 가볍기 짝이 없다는 뜻일 테니.

루이스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숨을 토해내듯, 준비했던 말을 단번에 쏟아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전해졌을까.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황급히 되물어 왔다.

“……뭐?”

루이스는 기꺼이 재차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태중 약혼을 언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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