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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여자사람친구입니다-2화 (2/92)

?2. 달콤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

루이스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소중한 약혼녀.’

저 사람은 어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저리도 뻔뻔하게 입에 담을 수 있는 걸까.

“전하.”

루이스는 여전히 그에게 한쪽 뺨을 내어 준 채로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빼앗듯 끼어들었다.

“이안.”

새삼스레 제 이름을 말하면서 말이다.

“예?”

“이안이라고 부르라고.”

“전하신데요?”

“그대가 조금은 규칙을 숙지하고 왔을 줄 알았는데.”

그는 뺨에 올려 둔 손을 떼어내고는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교문을 기준으로 세간의 지위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해.”

그야 그렇다고 듣기는 했다.

하지만 황태자의 이름을 찍찍 부를 정도로 자유로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

루이스는 문득 자신이 신분제도에 몹시 녹아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바깥의 지위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어색한 것을 보면.

그는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래서, 나를 뭐라 불러야 한다고?”

“전하요.”

루이스는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송구하게도 저는 아직 입학식을 치르지 않아서, 교칙의 영향을 받지 않거든요.”

“……고집하고는.”

“세심하다고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루이스는 그에게 대항이라도 하는 듯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작은 것 하나라도 그에게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과 인생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 세심한 루이스. 어쨌든 이쪽도 세심함을 발휘해 보자면, 의료동은 저쪽이야.”

그는 느닷없이 대각선에 자리한 하얀 건물을 가리켰다.

“예?”

갑자기 의료동은 왜 가리키는 건가 싶어서, 루이스는 그대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의료동.”

“예, 의료동이 저기에 있네요.”

“……안 가봐도 되나?”

“누가 저기에 누워있나요?”

“미래의 그대가.”

“……저주수업에서 제게 저주라도 내리셨나요?”

“그런 망측한 수업은 없어.”

이안은 루이스의 앞머리 사이로 손바닥을 밀어 넣었다.

마치 체온이라도 재어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얼굴이 찬데.”

그는 허리를 숙여 루이스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답지 않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세심한 루이스는 오랫동안 마차를 타면 늘 멀미를 했지.”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마차란 무척 불편한 이동수단이다.

딱딱한 바퀴가 울퉁불퉁한 지면의 상태를 그대로 마차 내부까지 전달해 오니까.

몸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멀미까지 찾아왔다.

“전하께서 그리 세심하게 제 상태를 기억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루이스는 경계하는 얼굴로 한 걸음 멀어졌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얼른 정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그는 몸을 곧게 펴고는 조금 전까지 그녀의 이마에 닿아있던 손을 탁탁 털어냈다.

뭔가 끔찍한 것이라도 묻어있는 양 말이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도록 해 준 것은 그쪽이었잖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게?

그의 말을 곱씹던 루이스의 얼굴이 결국에는 붉어지고 말았다.

13살 즈음, 그녀는 마차의 멀미와 메스꺼움을 참을 수 없어서, 뱃속에 얌전히 자리한 점심을 다시 세상에 내어놓은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운데, 하필이면.

그 자리에 이안이 있었다.

경계해야 할 적에게 순순히 약점을 쥐어주다니!

“그, 그러니까 그건……!”

“알아, 불가항력.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나도 딱히 그걸 놀리려는 건 아니었어.”

그는 루이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장난스럽게 히죽거렸다.

“걱정해 주려는 거지.”

그게 걱정을 하려는 인간의 표정이란 말인가. 몹시 즐겁고 신나 보이는데 말이다.

어쨌든 정말이지 싫은 사람이다.

대체 이런 남자의 어디가 좋아서, 원작의 루이스는 그런 행패를 부리고 돌아다닌 거람.

그녀는 새삼 두 눈을 깜빡이며 눈앞의 남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잘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루이스의 꽃길을 지옥 길로 한 번에 끌어내릴 수 있는 위험인물이다.

먹이를 주면 안 된다.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루이스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학식으로 향하는 다른 학생들이 모두 커다란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멀리 교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높이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면, 슬슬 루이스도 들어가야 할 시간인 것 같다.

“그럼,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의료동의 위치를 알려주신 것은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

루이스는 가볍게 몸을 숙여 인사한 뒤 그를 스쳐 지나갔다.

“루이스.”

바로 그의 어깨 즈음을 스칠 때, 다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 때문에 긴 금발이 흔들렸기에 그녀는 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흘긋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몸이 좋지 않으면, 입학식 중간에 빠져나와도 상관없다.”

“걱정이 지나치시네요.”

“그런가?”

그는 그리 물으며,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가리는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조금 넘겨주었다.

“난 그저.”

그리고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비밀스러운 슬픈 역사가 전교생 앞에서 되풀이 되는 것을 막고 싶을 뿐이야.”

진짜 이 사람이!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가 모욕을 주거든 참지 말아라’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부모님의 교육이 아무래도 오늘에서야 꽃을 피우려는 모양이다.

물론 황태자를 상대로 참지 않아도 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아 참, 여기는 신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전하, 몇 년 사이에 더욱 성격이 지독해지셨네요.”

“우아하신 내 약혼녀께서는 못 본 몇 년 사이에 말씀이 과격해졌군.”

이안은 웃으며 덧붙였다.

“황족 모욕죄로 잡혀갈걸.”

“그 정도로요? 아직 ‘짜증 난다.’ ‘재수 없다.’ ‘전하의 상냥함을 기록한 것보다 사막에 사는 지렁이의 생존 일기가 훨씬 더 길 것이다.’ 라는 말이 남아있는데요?”

“좋아, 방금 모욕죄 성립.”

루이스는 턱을 들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교문을 기준으로 세간의 지휘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러자 그도 지지 않고 대답해 왔다.

“그게 입학식도 마치지 않은 스위니가의 루이스께서 하실 말씀이신가?”

“윽…….”

잊고 있었다. 그걸 빌미로 그에 대한 호칭을 정정하지 않았지.

어쨌든 그와 이렇게 가까이 말을 섞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누군가가 두 사람을 보고 몹시 가까운 사이라고 오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말이라는 것은 힘이 있다.

누군가가 이안과 루이스를 엮어서 떠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쓸데없이 그와 마주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지금 만나 뵐 수 있어서 기뻤어요. 앞으로는 자주 마주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피차 관여하지 말고, 각자 갈 길을 가죠.’라는 뜻이다.

그는 여자 주인공에게 빠져서 순조롭게 자유연애를 즐겨야 한다.

그리고 루이스는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최고의 학생이라는 명예와 함께 졸업하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 외로 자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럴 것 같지는 않네요.”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였고, 그는 애매한 미소만 지었다.

“어쨌든 입학식이 끝나고 나면, 그대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걸 기대하고 있어.”

“물론이에요. 전하와 마주치게 된다면 말이죠.”

“그래, 마주치게 되겠지.”

서로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은 뒤에는 각자 반대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가 어째서 교문 쪽으로 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동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주치게 될 거라고?’

루이스는 그가 남긴 말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원작의 그는 입학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가시게 달라붙는 루이스를 피해 다니곤 했다.

어떻게든 여자 주인공과 달콤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이번에는 루이스도 그를 피할 테니, 둘은 훌륭하게도 서로를 꺼리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루이스가 추구하는 그와의 관계였다.

태중 약혼이라는 말에 멋대로 휘둘리는 것도 이제는 끝이다.

완전히 끝.

* * *

이 세계에서 눈을 뜬 루이스가 황태자인 이안을 처음 만난 곳은 성전이었고, 그 날은 장례식이 있었다.

당시의 루이스는 6살의 몸을 가졌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선명한 대한민국의 기억을 가진 십 대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 장례식은 무척 기괴한 것으로 비추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째서 아무도 울지 않지?’

모두 어두운 옷을 입고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는 없었다.

망자의 신분이 ‘황비’라는 높은 신분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더욱 의아했다.

목놓아 우는 이 라고는 오직 단 한 사람.

루이스의 어머니뿐이었다.

평민 출신의 황비, 그리고 귀족의 신분으로 작위 없는 사업가와 결혼한 루이스의 어머니.

두 사람은 환경이 극명하게 바뀌었다는 점에서도 잘 맞았지만, 그 전에 아카데미의 동기생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좋은 친구 사이라고 했다.

루이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혹시 네가 딸을 낳는다면, 우리 이안과 혼인을 시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말이다.

사람들은 오열하는 어머니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루이스는 원작을 읽었으니, 그 시선의 의미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황제가 유일하게 사랑한 평민 출신 황비는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이라고 했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지극하게 사랑하고, 유일한 친구에게 편지를 적는 것이 그녀의 낙이었다.

그러니 수도 귀족들에게 황비의 죽음이란, 곧 새로이 총애를 받을 여성이 등장할 가능성이 열린 ‘기쁜 일’이었을 거다.

장례식은 그 기쁨의 정점이었을 테고. 그런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스위니 부인이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장례를 마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신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수습 사제들이 신전을 정리하고, 촛불을 끌 때도 그녀는 그곳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루이스는 말없이 어머니의 곁에 앉아 있었다.

눈물을 먹고 축축해진 손수건을 바꾸어드리고 싶었지만, 이 이상 여분이 없었다.

「스위니 부인.」

빛을 잃어 어두워진 신전의 구석에서, 차분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스는 두 눈을 깜빡이며 어둠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은 빛이 지닌 색채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몹시 불경 하지만, 루이스는 순수하게 그 소년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황자 전하.」

황자 전하?

어머니의 목소리에 루이스는 작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 나라에서 ‘황자 전하’라고 불릴 수 있는 소년은 딱 한 명뿐이다.

이안 오드모니얼 크론드.

어머니께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표하셨지만, 놀란 루이스는 눈을 깜빡이는 것 마저 잊을 정도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조의를……. 흐, 흐흑.」

어머니는 차마 끝까지 말씀조차 할 수 없었다.

제 친구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이렇게 어린 아들에게 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어린 이안은 그녀의 맺어지지 못한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어 건네주었다.

그의 손수건은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의 루이스가 여섯 살의 몸을 하고 있었으니, 그는 겨우 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감사합니다, 스위니 부인.」

어른의 허리를 겨우 넘어서는 어린 소년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재차 손수건을 내밀었다. 어서 받으라는 듯이.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고개를 저으셨다.

세상의 어느 누가 어미 잃은 아이의 손수건을 빼앗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 대답하는 소년의 아랫입술에는 수없이 많은 잇자국이 남아있었다.

제 입술을 괴롭도록 깨물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울 수 없다고 정해 둔 것이 아닐까.

루이스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눈물을 흘릴 소년의 작은 등을 생각했다.

그건 그가 이 세계의 남자 주인공이라거나, 무척 부유한 황태자라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었다.

누구나 가족을 잃으면 아프다.

더구나 소년에게 어머니란 각별했으리라.

어머니와 친구일 정도라면 무척 다정하신 분임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조의를 표합니다. 전하.」

루이스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향해 몸을 숙였다.

조금 건조한 듯한 새파란 눈동자가 그제야 루이스를 향했다.

「고맙다. 루이스 스위니.」

그가 그리 대답하는 순간에 그의 입술 위로 붉은 핏방울이 살짝 배어 나왔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황족에게 다가서는 것은 몹시 불경한 것이나, 당시의 루이스는 그러한 자잘한 예법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어린 소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어 내렸다.

이 작고 말랑말랑한 입술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참았던 거구나.

「손수건은……. 전하를 위해서 사용해 주세요.」

루이스는 손을 거두며 그의 하얀 손수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조금 서툰듯한 자수가 다정한 마음을 담아 남겨있었다.

감히 추측하건대, 돌아가신 황비께서 직접 남기신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 손수건이 전하께 위로가 되어줄 테니까요.」

「…….」

그의 손이 천천히 손수건을 다시 품에 넣었다.

루이스가 황자에게 대단한 무례를 저질렀다는 건, 그의 뒤에 서 있던 시종들이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것을 보고 나서 알았다.

하지만 아마 루이스는, 예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어린 소년이 어머니의 잔재도 없이 홀로 슬픔을 삼키길 바라는 사람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 * *

그 날 이후, 황제께서 모든 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안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마저도 놀라워하는 이 소식에 루이스는 그저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녀가 읽은 원작에서 그가 ‘황태자’로 묘사되었으니, 응당 그러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황태자가 되든 공주님이 되든 루이스에게는 조금도 관계가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루이스 스위니’로 안전하고 쾌적하게 생존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생존에 필요한 건 돈이고, 돈을 벌고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지식이다.

그러니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함께하시는 온실 사업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두 분은 사랑스러운 딸이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에 관해 묻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셨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그녀의 곁에 나란히 붙어서, 계절별로 피어나는 꽃과 열매에 관한 이야기를 언제나 재미있게 들려주시곤 했다.

하지만 가끔 그녀의 온실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날이 있었다.

「전하.」

루이스는 주기적으로 온실로 찾아오는 이안을 다소 노골적으로 귀찮게 바라보았다.

황비님의 타계 후, 그는 때때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스위니 부인을 찾아오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전하께도 또래 친구가 필요하시니까.’ 라며 책을 읽는 루이스를 강제로 끌어다가 그 자리에 합석시키곤 했다.

「스위니 부인. 그대의 따님께서 나를 몹시 불경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누구라도 독서 중에 끌려 나오면 그럴 것이에요. 전하.」

루이스는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녀의 말이 또 예법에 어긋난 모양이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시종 아저씨가 또 굉장히 몹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책만 읽는 것은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전하께서도 아직 어린 나이셔요.」

「그래서 이렇게 온실에 와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지난번과 비슷한 말로 투덕거리기 시작하자 시종의 얼굴이 또 구겨진다.

하지만 루이스는 어머니께서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이렇게 심술이 처덕처덕 붙은 이야기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말이다.

「어쩐지 황비께서 제게 태중 혼약을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네요.」

반갑지 않은 단어에 루이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태중 혼약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루이스 스위니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단어니까.

「태중……혼약?」

게다가 그 말을 처음 전해 들은 것 같은 이안이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걸까?

그렇다면, 어머니!

당장 말씀을 멈추세요!

그 몹쓸 정보가 저 악마의 귀에 들어가면 당신의 딸이 먼 미래에 몹시 괴롭게 된다고요.

「그럼요.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예. 무척 흥미롭군요. 가능하다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이안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고, 루이스는 지옥으로 조금 당겨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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