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니까, 이건 사랑이지?
“진지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루이스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몹시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듣고 있어. 매사에 진지하신 나의 약혼녀 씨.”
장난이 섞인 가벼운 대답이 도리어 고마웠다.
황태자인 이안과 루이스가 아무리 오랜 시간을 공유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의 무게는 여전히 가볍기 짝이 없다는 뜻일 테니.
루이스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숨을 토해내듯, 준비했던 말을 단번에 쏟아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전해졌을까.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황급히 되물어 왔다.
“……뭐?”
루이스는 기꺼이 재차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태중 약혼을 언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루이스는 그가 말을 잃은 것을 처음 보았다.
몹시 놀라게 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지만, 선택권이 없는 일이었다.
루이스에게 황태자와의 약혼이란, 그저 삶을 망치는 독에 불과하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원작을 읽었으니까. 이 세계에 오기 전에, 완결까지 전부다.’
* * *
같은 옷을 입으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체형이나 얼굴의 생김새는 물론이고, 경제 사정과 가정 사정 따위까지.
그러니 대한민국의 교복이라는 옷은 참 아이러니하다.
모두 같기 위해 입혀놓은 똑같은 옷이 사실은 모두의 다름을 드러내는 쉬운 잣대가 되어 버리니까.
소녀의 아침은 제 소매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곤 했다.
소매에 남은 시커먼 자국.
그러니까 속된말로 찌든 때라고 하는 것.
평범하게 부모가 빨아주는 블라우스를 입고 다니는 아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국이다.
재킷을 입으면 전부 가려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팔을 뻗을 때마다 드러나는 소맷단이 싫어서, 점점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쉬는 날이면, 소녀는 구립 도서관의 멀티미디어 실에 삐딱하게 앉아서 다시는 보지 않기로 다짐했던 친구들의 SNS를 홀린 듯 구경하곤 했다.
예쁜 카페며, 해외 같은 곳에서 찍어 올리는 인증샷이 줄줄이 올라온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질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소녀는 가끔 눈을 감고 희망하기도 했다.
‘내게, 제대로 된 환경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매일 같이 행복할 거다. 완벽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굽이 닳지 않은 신발을 신고, 그리고 또.
이 평범한 머리를 보완하기 위한 학원이나 특별한 과외를 받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녀는,
누구나 그러하듯.
제게 없는 것을 동경했다.
다만 소녀의 동경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생존의 문제였다.
이미 벌어진 격차는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거다.
그것은 도서관에 올 때마다 읽어보는 신문이나 신간 도서의 제목만 읽어봐도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세상에 대해 알수록, 배울수록.
점점 더 어둠만 커진다.
등 떠밀려 나아가는 흙수저의 미래에는 그 어떤 희망도 없음을, 이 도서관의 모든 활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소녀는 달콤한 현실도피에 빠져들곤 했다.
수단은 독서였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것이 특히 좋았다.
대한민국이 아닌 배경에서, 손가락만 까딱해도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간단한 이야기.
문학성도 개연성도 필요 없었다.
그저 주인공이 끊임없이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때때로 독서 중에 눈을 감고, 여자 주인공이 되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
최근 읽은 소설은 ‘아카데미의 가짜연인’이라는 로맨스 판타지.
귀족 혹은 부자들만 다닌다는 아카데미에서 쫄딱 망한 백작가의 여자 주인공이 황태자와 만나서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거머쥐는 이야기였다.
‘두근두근하고 재미있었어. 비록 악녀인 ‘루이스 스위니’가 주인공을 괴롭히는 부분에서 심하게 짜증이 나지만.’
물론, 소녀가 구립 도서관에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망상을 즐긴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주 비밀스러운 취미다.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그리고 하늘의 신께서도.
아주 오랫동안 혼자만 간직해온 취미이니까 말이다.
* * *
‘그랬었는데…….’
소녀는 두 눈을 깜빡이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며칠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자그마한 고사리손을 말이다.
보들보들한 손과 함께 보이는 것은 새하얀 레이스 소매였다.
손질이 어려워 보이는 섬세한 레이스에는 구김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녀가 입은 옷은 패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아도 ‘꽤 비싼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몸과 환경, 모든 것이 한순간 바뀌었고, 한동안 소녀는 제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 끝에 낸 결론.
‘나는 다른 아이의 몸에서 깨어났어.’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똑똑.
조심스럽지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소녀가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곧 황금 장미 장식이 달린 문이 열렸다.
“얘야!”
그리고 잠옷을 입은 부인이 그녀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낯선 곳에서 사흘간 관찰한 결과로, 소녀는 저 부인이 이 몸의 어머니라는 점을 알았다.
그것도 딸을 무척 사랑하고 아끼는 좋은 어머니 말이다.
그녀는 단숨에 달려와 소녀를 품에 안아 주었다.
새벽 동안 차게 식어 내렸던 소녀의 몸이 어머니의 온기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맙소사, 어제저녁에 미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유모가 이제야 전해주었지 뭐니. 네 유모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 미리 알았다면 널 혼자 자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어머니는 소녀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안아 주며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소녀는 부인의 호들갑이 낯설었다.
이런 지극한 관심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나 다른 환경 때문일까, 소녀는 낯선 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고,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혹여 무언가 잘못될까 두려워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말했다가는, 다정하고 따스한 걱정을 받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비록 그것이 진정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처음이니까.
“……저는.”
소녀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거,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어가 아닌 낯선 언어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것만큼은 처음부터 가능했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 딸.”
어머니는 시선을 맞춰오며 다정하게 소녀를 불러주었다.
아이를 낳은 여인임에도 그녀의 미모는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널 걱정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란다.”
“정말로 괜찮아요.”
열이 났던 것은, 아마.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뇌를 혹사한 탓일 거다.
어머니께서 작고 붉은 뺨을 걱정스레 쓰다듬어 주자, 작게 하품이 나왔다.
“더 자겠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누우렴. 잠을 때까지 곁에 있을 테니.”
소녀는 커다란 침대에 얼른 누웠다.
곧 다정한 손길이 그녀의 머릿결을 훑어내린다.
심장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좋다.
포근한 이불과 과분할 정도의 관심.
하지만, 이런 생활에도 단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잘 자렴, 작은 루이스 스위니.”
이 몸이 바로, ‘루이스 스위니’라는 사실이다.
루이스 스위니가 누구냐고?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소녀가 얼마 전까지 읽었던 소설 ‘아카데미의 가짜연인’에 등장한 악역이었다.
그냥 악역이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는 않았을 거다.
‘내일의 웹소설’에서 그 소설이 연재될 당시에는 ‘루이스 스위니 척살 부대’라는 독자층이 있을 정도였다.
수만 독자가 한마음으로 그 추악한 악녀의 몰락을 염원하곤 했다.
심지어 작가님도 ‘작가의 말’에 이렇게 남긴 적이 있었다.
‘드디어 다음 화에 루이스 스위니가 척살됩니다. 사이다 살포 주의! 꺅!’
소녀는, 아니 루이스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한탄했다.
‘정말 운이 없어도 지지리도 없지.’
이 세상에 신 같은 건 없다.
있다면 이렇게 불공평하게 누군가를 괴롭힐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명실상부 최고의 흙수저로 살아가게 하더니.
책 세계로 빙의를 시킨 후에는 명실상부 최고의 악녀로 살아가라고?
‘어떻게 빙의를 해도 이런 캐릭터야? 보통은 주인공의 몸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거 아니었냐고!’
정말 이 모든 일을 주관한 신이 있다면 당장 가서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주인공을 해 주면 좋았잖아! 착하고, 똑똑하고……모두에게 사랑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데!
‘응……?’
루이스는 문득 제 머릿결에 닿은 다정한 손길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건 사랑이지?
그리고 제가 입은 옷과 화려한 방을 떠올렸다.
소설 속 루이스 스위니는 비록 악역일지언정, 가난한 여자 주인공과는 달리 몹시 부잣집 아가씨라는 설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단한 금수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언제나 동경해 왔던!
어디 그뿐인가.
루이스는 가느다랗게 뜬 시야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제 금발을 바라보았다.
다섯 살 아이임을 고려하더라도 이 몸의 외모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물론 소설 내에서도 제법 아름다운 미소녀로 묘사되곤 했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단다. 루이스.”
문득 소곤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딸이고, 후계자이며, 빛이란다. 네 아버지와 난 언제나 널 지지할 거야.”
눈물이 나도록 달콤한 이야기다.
후계자라는 말도, 지지해 준다는 말도.
루이스는 신에게 삿대질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얼른 반성했다.
가난한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남자 주인공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루이스 스위니에게는 탄탄한 가문과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빼어난 외모가 있는데.
이 순간이 꿈이든 뭐든 좋았다.
그렇게나 바라던 것을 그저 하루라도 더 길게 느껴보고 싶었다.
혹여 이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대한민국 흙수저인 힘 없는 자신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테니까.
* * *
‘책 속을 살아가는 현실이 혹여 꿈이라면, 깨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일까. 아니면 기도가 아니었어도 그녀는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던 것일까.
대한민국의 흙수저 소녀로 다시 눈을 뜨게 되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녀는 루이스가 된 자신에게 익숙해졌다.
제 손을 내려다보아도 거울을 보아도 놀라지 않았다.
부잣집 아가씨의 삶은 그녀가 살아왔던 것과는 비교할 바 없이 순조롭고 편안한 덕분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루이스는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루이스, 우리의 자랑스러운 보물.”
“이렇게 멋진 딸이 있어서 우리는 항상 행복하단다.”
게다가 커다란 저택의 하인과 하녀들 역시 그녀를 귀여워해 주었다.
“정말이지 어른스러운 아가씨야. 항상 누구에게나 상냥하시고.”
“항상 존댓말을 쓰는 말투도 얼마나 깜찍하신지!”
“다른 집 아가씨들은 그 고집을 받아주느라 하녀들이 죽어 나간다는데, 우리 아가씨는 아직 어린데도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주시지.”
그렇게 집 안에서 귀염받는 사람은 바깥에서도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어디를 가더라도 귀한 사람으로 존중받았다.
완벽한 생활.
그러나 그녀는 기고만장해지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루이스 스위니는 악역.
자칫 그녀가 그릇된 행동을 한다면, 모든 달콤한 것은 사라지고 그녀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까 항상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 모든 것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도록.
‘원작 길’이 아닌 ‘꽃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말이다.
시간은 흘렀다.
루이스 스위니가 열일곱 살이 되던 봄.
그녀는 거울 너머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온 부드러운 금발, 흔치 않은 엷은 보랏빛의 눈동자. 그리고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녀의 얼굴은 노력으로 이루어 낸 상냥한 미소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원작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루이스는 최근 들어 그렇게 자신을 격려하곤 했다.
원작의 시작점인 아카데미 진학을 앞두고서 말이다.
* * *
시엔티아 아카데미.
루이스는 그 웅장한 건물을 바라보며 잠시 깊은 감상에 빠져들었다.
‘여기가 소설의 배경이었던 곳…….’
황태자와 가난한 귀족 가문의 여자 주인공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평생을 약속하는 로맨틱한 장소.
하지만 ‘루이스 스위니의 몰락’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태중 약혼 관계였던 황태자에게 시원하게 차이고,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다가 결국에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지.’
그녀는 가문의 사업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폐인이 되어서 몹시 불행해졌다.
‘으, 절대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모처럼 금수저로 태어났는데 정말 아깝잖아.’
물론 이 세계의 황태자 전하께서는 대단히 근사한 외모를 타고나셨다. 그야말로 남자 주인공답게 말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직접 만나본바.
그는 루이스를 괴롭히는 심술쟁이일 뿐이다. 그의 다정함은 가뭄에 지렁이가 산책을 나올 횟수보다도 드물었다.
‘뭐, 생각해보면 여자 주인공도 아닌 나한테 다정할 필요는 없지.’
괜히 쓸데없이 엮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남자라면 그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탄탄대로인 꽃길을 함께 걸을 근사한 남자 말이다.
그러니까, 이 아카데미에서 루이스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절대로, 절대로.
‘황태자 전하를 사랑하지 말 것!’
물론 여자 주인공을 쓸데없이 괴롭히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는 어디까지나 ‘원작을 충실이 읽은 팬’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소설 같은 (정말 소설이지만) 연애를 즐겁게 구경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기대된다.
좋아하는 소설이 웹툰이 되거나 드라마가 될 때마다 기뻐했는데, 이건 아예 현실이 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체험형으로!
덕후 중에 이렇게까지 성공한 덕후는 없을 터!
루이스는 동경해 온 커플이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올랐다.
“툭하면 혼을 빼고 멍하게 있는 점은 아직도 고치지 못한 모양이지?”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루이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선명한 햇살 아래로 보이는 푸른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
결이 좋은 은빛 머리카락. 그리고 루이스를 훨씬 넘어서는 커다란 키.
아마 그는 수많은 군중 속에 있더라도 홀로 눈에 띄는 사람이리라.
이안 오드모니얼 크론드.
이 세계의 황태자이며, 그녀가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원작에서는 싸늘할 만치 루이스를 내쳤던 비정한 사람.
루이스는 애써 미소를 그렸다.
어쨌든 형식뿐인 약혼이 깨어진다고 하더라도 사업가의 후계자로서 그럭저럭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에…….”
예를 갖추어 몸을 숙이려는 찰나.
그의 긴 손가락이 루이스의 뺨을 가볍게 꼬집어왔다.
조금은 삐딱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내 소중한 약혼녀께서 입학하시길 꽤 고대하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