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다음 날, 마리는 다시 클로얀 지방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바로 가는 건가?”
“네, 폐하. 죄송해요.”
마리는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떠나고 싶지 않았다. 라엘도 아쉬운 얼굴이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녀를 품 안에 가둬만 두고 싶은 그인데,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다만 둘의 얼굴은 아쉬움이 담겨 있을지언정 어둡지는 않았다. 어제 했던 서로를 향한 서약이 둘의 영혼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강하게 이어주는 느낌이었다.
“마리, 이걸 받도록.”
라엘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의아한 얼굴로 상자를 열어 본 마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상자 안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들어 있었다.
“정식 혼인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약을 했는데 무슨 징표라도 주고 싶었다. 원래는 식을 치르면 주려고 했던 반지이다.”
마리는 눈가가 시큰해졌다.
“고마워요…….”
마리는 급히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라엘은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다 괜찮으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도록.”
“네, 폐하.”
마리는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라엘에게 건네주었다. 낡은 은목걸이였다.
“이건?”
라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의 유품이에요. 금방 돌아올 테니, 돌아올 때까지만 맡아주시겠어요?”
라엘은 잠시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세월이 깃들긴 했지만, 흠집도 거의 없어 마리가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품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건가?”
“네, 어차피 금방 돌아올 테니까요.”
마리는 ‘금방’이란 단어를 거듭 강조했다.
“금방 돌아올 테니, 잘 간직하고 있어주세요.”
그래, 조금만 더 있으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것이다. 그때는 그와 떨어지지 않을 거다. 둘은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아쉬운 작별의 키스였다. 그렇게 둘이 아쉬움에 떨어지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오르며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급보입니다! 클로얀 지방에서의 급보입니다!”
마리와 라엘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죠? 클로얀 지방에서?”
마리는 다급히 물었다.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등줄기에 스쳐 지나갔다.
‘설마? 모리나 왕녀와 관련하여?’
다행히 그녀가 걱정하는 종류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심각할지도 모를 문제였다.
“클로얀 앞바다의 에투나섬의 활화산이 분화를 시작할 징조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
마리와 라엘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리는 다급히 마차에 올랐다.
“폐하, 지금 바로 클로얀 지방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화산이 정말로 분화한다면 주변은 초토화될 것이다. 총독인 그녀가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했다.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떠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당부했다.
“마리! 나와의 약속을 절대 잊지 말도록!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히 나에게 돌아와라! 알겠나?”
마리는 강한 의지가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폐하. 반드시 약속할게요.”
마리는 다급히 클로얀 지방으로 돌아갔다. 라엘은 떠나는 마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서약까지 했건만, 그녀가 떠나니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았다. 가슴 한구석을 칼로 도려낸 것만 같았다.
“……하아.”
라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오른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 지금에라도 힐데른 자작을 붙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라엘은 입을 다물었다. 오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힐데른 자작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국을 위해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차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 난 그녀를 믿기로 했다.”
“폐하.”
오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라엘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 혹시라도 오늘의 내 선택이 제국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때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
라엘의 선언에 오른이 굳은 얼굴을 했다. 황제의 책임. 결코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무거운 단어였다. 라엘은 오로지 그녀를 위해 큰 부담을 지기로 결정한 것이다.
* * *
마리와 경호를 맡은 근위 기사들은 죽어라 말을 달려 클로얀 지방에 도착했다. 마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클로얀의 수도인 커먼성이 아닌, 문제가 발생한 에투나섬에 인접한 해안가로 향했다.
“화산의 상태는 어떻죠?”
해안가에 도착한 마리는 다급히 물었다. 현장에는 미리 린 남작과 관리들이 도착해 있었다.
“좋지 않습니다. 아직 분화를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여러 징후를 고려할 때 머지않은 시기에 용암이 분출될 것이 분명합니다.”
“섬의 주민들을 대피시킬 배는 수배하였나요?”
“네, 인근의 모든 배를 모았습니다.”
“바로 대피를 시작해야겠어요.”
마리는 섬사람들의 대피를 지휘하기 위해 배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녀가 직접 섬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인물이 있었다. 반 제국 운동의 중심이자 모리나 왕녀의 추종자인 왕실 기사단의 바르한 백작이었다.
“왕, 아니, 총독 각하께서 직접 섬에 들어간다는 말씀이오?”
“그렇소. 무슨 문제라도?”
폰틸 남작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르한 백작을 바라보았다.
“섬 안은 위험하지 않소? 그런데 각하께서 직접 들어간다고?”
폰틸 남작은 이 작자가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바르한 백작은 심각했다. 그의 입장에서 그녀는 클로얀 왕가의 마지막 핏줄이다. 절대 이런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위험하지. 당연히 위험하고말고. 잘못했다가는 화산 분출에 휘말릴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면?”
바르한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국의 입장에서도 그녀는 예비 황후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위험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다니.
“당신 말처럼 원래는 말리는 게 맞겠지만…… 황제 폐하도 그렇고, 우리 예비 황후마마도 그렇고 항상 앞에 서는 것을 당연히 여기시는 분이라 말릴 수가 없군. 우리는 그저 아무 일 안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해 지킬 수밖에.”
“……!”
“총독 각하의 옆에 있다 보면 앞으로도 이런 모습은 자주 보게 될 것이오. 그러니 익숙해지는 게 낫소.”
그렇게 이야기한 폰틸 남작은 굳어 있는 바르한을 놔두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바르한은 고개를 돌려 갑판에 서 있는 마리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화산을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바르한은 혼란스럽게 생각했다. 그때, 마리가 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향은 다르지만, 클로얀 왕국민들을 위하는 마음은 백작이나 저나 같아요. 그러니 제가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지켜봐 주세요.”
바르한은 굳은 눈동자로 한참이나 마리를 바라보았다.
* * *
에투나섬은 해로상 중요한 길목에 있어 교역이 발달한 섬이었다. 섬의 크기도 매우 컸다. 섬 안에 바다로 향하는 큰 강도 있을 정도였다. 거주하는 인구도 만 명이 넘었다. 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면 어떤 희생이 발생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사람들을 육지로 대피시켜야 했다.
“서둘러 움직여 주세요!”
“네, 각하!”
배를 충분히 모았으니 어떻게든 대피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예상 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섬 주민들 일부가 대피를 거부한 것이다.
“사람들이 섬을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요?”
“네, 각하. 육지로 가도 살아갈 방법이 없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폰틸 남작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는 섬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했다. 모든 삶의 기반이 섬에 있으니 차마 떠날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리라.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일단 목숨 먼저 구해야 해.’
그렇게 생각한 마리는 섬사람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한시가 급했다. 마리는 먼저 섬사람들의 대표들을 만났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섬을 벗어나 탈출해야 해요. 언제 화산이 분화할지 몰라요.”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평생을 섬에서 살아왔습니다. 모든 터전이 섬에 있는데, 이곳을 떠나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으면 목숨을 잃을 뿐이에요. 섬을 떠나기 꺼려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일단 살고 나서 생각해야죠.”
마리는 다급히 대표들을 설득했다. 그때, 한 대표가 의외의 제안을 하였다.
“각하, 화산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런 방법은…….”
화산 분출은 자연재해다. 자연재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고개를 저으려던 마리의 머릿속에 한 가지 지식이 떠올랐다. 바로 이전에 꾸었던 꿈, ‘위대한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에게서 기인한 지식이었다.
‘잠깐. 방법이 한 가지 있잖아.’
화산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얌전히 용암만 흘러나오는 화산과 화산재나 화산쇄설물이 터져 나오는 폭발형 화산. 그중 화산재나 화산쇄설물이 터져 나오는 폭발형 화산은 피하는 것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에투나섬의 화산은 용암만 흘러나오는 얌전한 화산이야. 이런 화산의 경우 용암이 흐르는 길을 인위적으로 틀어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마리는 생각했다.
‘용암이 바다로 향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끝낼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너무 위험해. 대피하는 것이 답이야.’
그 순간이었다. 대표들이 그녀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제발 부탁합니다, 각하! 방법이 있다면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 섬은 선대로부터 이어진 모든 것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제발 도와주시옵소서!”
마리는 고뇌에 빠졌다. 거절하려 했으나 그들이 너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결국, 그녀는 조건을 걸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용암의 길을 바다 쪽으로 돌려 볼 거예요. 대신 작업에 참여할 수 없는 아이나 노약자는 미리 배를 타고 육지로 피난해야 해요. 그리고 연안에 배들을 대기시키고 있다가 화산의 분출이 임박해지면 그때는 무조건 모두 대피해야 해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모두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작업은 바로 시작되었다. 일단 아이나 노약자를 미리 배로 대피시키고, 일할 수 있는 이들은 마리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시작했다.
‘이쪽 지역이 다른 곳보다 지대가 다소 낮아. 흙으로 된 지역이라 땅을 파내기도 용이하고. 바다를 향해 해자처럼 길을 만들면 용암의 진행 방향을 틀 수 있을 거야.’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난에 대항하려 하다니. 무모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삽을 든 주민들은 의지에 불타올랐다.
“총독 각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총독 각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거야!”
그간 마리가 해낸 일들은 에투나섬에도 퍼져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마리 폰 힐데른이 자신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용기백배하여 뛰어들었다. 그렇게 작업에 뛰어든 사람은 무려 일만 명에 가까웠다. 남녀 할 것 없이 일부 노약자와 어린애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참여한 것이다.
“더 깊게 파 주세요! 바깥쪽으로는 용암이 넘치지 못하게 제방을 쌓아주세요!”
마리는 화산에서 도시로 향하는 길목 중 지대가 낮은 지역에 바다로 향하는 해자를 파고, 측면에 제방을 올렸다. 한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니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마리는 초조한 눈으로 화산을 바라보았다. 화산이 언제 분화를 시작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징조를 보인 지 벌써 2주였으므로,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네, 각하!”
섬사람 모두가 우렁차게 답했다. 그때였다. 가만히 마리를 바라보던 바르한 백작이 이를 악물더니 입을 열었다.
“전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백작?”
마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르한의 얼굴은 쳐다보기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기 굳어 있었다.
“이제는 그만 섬을 떠나셔야 합니다.”
마리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떠나지 않아요.”
“더 섬에 머물다가는 화산에 휩쓸릴 수도 있습니다!”
바르한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모리나 왕녀는 왕가의 마지막 핏줄이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왕가의 핏줄을 이으신 전하는 그 누구보다 귀중합니다. 전하께서는 이런 곳에서 위험을 감수할 만한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마리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저들의 목숨은요? 저들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은가요?”
평소와 다르게 차가운 목소리에 바르한은 흠칫 놀랐다.
“전 왕가니 뭐니, 그런 것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들을 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
바르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리는 바르한을 내버려 두고 다시 사람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자,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그쪽에는 더 경사를 깊게 해서 작업해 주세요!”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지휘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땀이 구슬구슬 맺혀 떨어졌다. 바르한은 그런 마리의 모습을 나무처럼 굳어 바라보았다. 마리가 남긴 말이 그의 가슴에 움푹 박혀 들어갔다.
* * *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신 걸까. 금방이라도 용암을 토할 것 같은 화산은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분화하지 않았다. 마리와 섬의 주민들은 그 천금 같은 시간을 이용해 용암의 진행을 틀 길과 방파제를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화산이 분화했습니다!”
“용암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화산의 동태를 살피던 이가 다급히 소식을 전했다. 마리는 다급히 주변에 지시했다.
“주민들의 대피 상황을 확인하세요! 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지대로 피하라고 하세요!”
“네, 각하!”
용암의 진행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용암의 기세가 거세면 다 무용지물이다. 마리는 작업을 끝낸 후 주민들을 강제로 대피시켰다. 일부는 배로 피난시켰고, 남은 주민들은 섬 내 고지대로 옮겼다.
‘제발. 무사히 끝나길.’
마지막까지 진두지휘하느라 섬에 남은 마리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고지대로 피난해 용암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뻘건 용암이 산을 덮으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게…… 화산.”
지켜보던 누군가 두려운 신음을 흘렸다. 시뻘건 용암은 마치 지옥의 불길처럼 가로막은 모든 것을 불태우고 녹이며 전진했다.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잔혹하고 무서운 광경이었다.
‘아니야. 아직 몰라. 아무리 용암이 뜨거워도 바위나 철을 녹일 수는 없으니까. 막을 수 있을 거야.’
만약 저 용암이 도시를 덮친다면, 섬사람들의 모든 것은 한순간에 파괴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막아 내야 했다. 이윽고 용암이 그들이 만든 해자에 도달했다.
“오오! 용암이 바다로 향합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리가 의도한 대로 용암은 마치 도랑에 들어온 물처럼 바다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 클로얀 만세!”
“총독 각하 만세!”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뜻밖의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
“용암이 해자를 넘어 제방을 녹이고 있어!”
사람들의 안색이 하얘졌다. 생각보다도 용암의 기세가 더 거셌다. 굉장히 깊게 해자를 팠건만, 용암이 해자의 수용량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임시로 방어벽을 만들긴 했지만, 이대로는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안 돼!”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방어벽이 무너지면 바로 도시였다. 미리 대피한 덕에 인명 피해는 없겠지만, 그들의 모든 터전은 용암에 휩쓸려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방법이 없을까?’
마리도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방법이 없었다. 넘치는 용암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초조하게 용암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에 한 가지 시설물이 들어왔다. 강물을 모아 둔 둑이었다. 마리는 번뜩 방법을 생각해 냈다.
‘혹시 저 둑을 무너뜨리면 용암의 기세를 꺾을 수 있지 않을까?’
둑을 무너뜨리면, 지형상 저장되어 있던 물은 용암의 진행 경로로 흐르게 될 것이다.
‘시도해 볼 만해. 용암의 분출도 무한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 기세를 꺾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다만 문제가 있었다. 둑의 위치가 용암이 흐르는 곳 지근거리여서 작업을 하기가 무척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어쩌지.’
마리는 굳은 얼굴로 둑을 바라보았다. 시뻘겋게 흐르는 용암을 보니 아무리 그녀라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뜻밖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었다.
“안 됩니다.”
바르한이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듯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으로 그녀를 이끌고 가서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위험한 곳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마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곤란한 남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바르한이 뜻밖의 말을 하였다.
“전하께서는 이곳에 계십시오. 둑을 무너뜨리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백작?”
바르한의 눈빛에 결연함이 감돌았다.
“전 전하의 신하입니다. 앞으로 위험한 일은 직접 나서지 말고, 저 같은 아랫사람에게 맡겨 주십시오.”
마리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신하라니. 바르한이 처음으로 그녀를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녀는 바르한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바르한의 눈빛은 일말의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마리는 그의 마음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러면 부탁할게요.”
“명에 따르겠습니다.”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 바르한은 지원자를 모집하여 둑으로 향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수많은 이가 자원하였다.
“자, 힘을 내라! 빨리 둑을 무너뜨려야 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합심하여 달려든 결과!
쿠르릉!
강물을 모아 둔 둑 일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였고, 곧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용암을 향해 돌진했다.
치이익!
물과 용암이 뒤섞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도시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던 용암은 물과 뒤섞이며 기세를 잃었고, 결국 해자와 방어벽을 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갔다. 그리고 용암의 분출도 끝이 나고 이윽고 도시가 위기에서 벗어난 순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만세!”
“클로얀 만세!”
“총독 각하 만세!”
기적적으로 자연재해를 막아 낸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만세를 외쳤다. 물론 그 함성의 종착지는 그들을 구해 낸 마리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화산을 막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각하.”
얼굴에 흙먼지가 가득한 폰틸 남작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를 포함한 근위 기사들도 섬사람들을 돕느라 많이 애썼었다.
“고생하셨어요, 남작. 덕분에 잘 끝났어요.”
“아닙니다. 모두 각하의 공이지요.”
그렇게 그들이 기쁨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전신이 먼지에 뒤덮인 사람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마리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바르한 백작이었다. 폰틸 남작을 다른 곳으로 보낸 마리는 홀로 바르한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어요, 백작.”
그녀의 말에 바르한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주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께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 * *
그때, 저 머나먼 서제국에서 요하네프 3세는 병석에 누워 정보부 부부장 로이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클로얀 지방 에투나섬에서 화산이 분화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요하네프 3세는 혀를 찼다.
“가뭄에 대홍수에, 이번엔 화산이라니. 정말 별일이 다 일어나는군.”
로이스도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하네프 3세는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입안에 집어넣고, 약이 쓴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별일 없이 해결되었겠지.”
“네, 맞습니다.”
로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모리나 왕녀가 또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요한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 일도 우리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군. 아니, 오히려 잘됐어.”
요하네프 3세는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그녀가 공을 세울수록 우리에게는 이득이니까.”
“네, 맞습니다. 이제 완전히 때가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계획들은?”
“그것도 다 순조롭습니다.”
로이스는 기밀이 담긴 서신을 보며 답했다. 바로 린 남작, 아니, 그들의 라키 드 스토른 백작이 보낸 서신이었다.
“동제국 3군단도, 이스트반 백작가도, 심지어 동방 교국과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합니다.”
“역시 라키군. 훌륭해. 내가 누워 있는 중에도 다 잘 처리했군.”
“네, 열쇠가 되는 모리나 왕녀를 시작으로 동제국은 한 번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돌연 요하네프 3세가 거칠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커억.”
그렇게 한참이나 기침을 한 요하네프 3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다 순조로운데,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군.”
요하네프 3세는 입가를 가렸던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몸이 악화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
손수건에는 시뻘건 선혈이 가득했다. 바로 그가 토해 낸 것이었다.
“폐하…….”
로이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요한의 얼굴은 마치 시체와도 같았다. 파랗게 질려 이제는 혼자서 거동이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요한은 이전처럼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어차피 계획은 다 이루어지고 있으니 상관없지. 내가 쓰러져도 우리 유능한 재상님이 나머지는 다 이루어줄 테니.”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다만 그녀와 재회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게 안타깝군. 최소한 그때까지는 버텨 줘야 할 텐데.”
“폐하.”
“어어, 그렇게 슬픈 표정 지을 필요 없어. 나는 만족하고 있다고. 비록 짧더라도 누구보다도 굵게 살고 가는 것이니까. 제국을 일통할 황제로서 말이야.”
로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폐하의 이름은 통일 제국의 초대 황제로서 누대에 걸쳐 이어질 것입니다.”
요한은 파리한 얼굴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모리나 왕녀의 마음만 훔치고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은데. 그건 무리겠지?”
“네, 그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윽, 너무 단박에 부정하는 것 아니냐?”
투덜거리던 요하네프 3세의 표정이 어느 순간 진중해졌다.
“로이스. 이제부터 할 말은 너만 명심하고 있도록.”
“폐하?”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라키를 죽여라.”
로이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지금 뭐라고?’
라키 드 스토른 백작은 요한 최고의 측근이다. 그런데 죽이라니? 하지만 요한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으면 스테판이 황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스테판, 그 아이는 라키를 감당하지 못할 게 분명해.”
스테판 대공. 그는 요하네프 3세의 동생으로 서제국의 제1황위 계승자였다.
“라키는 조절되지 않는 칼날이야. 지금에야 내가 있으니 억누를 수 있지만, 종국적으로 그의 광기는 모두에게 큰 해악을 끼칠 게 분명하다.”
로이스는 요한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스토른 백작에게는 조절되지 않는 광기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답한 로이스는 순간 이런 걱정이 들었다. 만약 요한이 예상보다도 더욱 빠르게 악화해 스토른 백작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그때는 스토른 백작의 광기가 어떤 식으로 뻗게 될까? 만약 문제가 생기면 과연 그 광기를 억누를 수가 있을까? 로이스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불안감을 떨쳤다.
‘일단은 요하네프 3세 폐하의 계획을 이루는 데 집중하자.’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순간, 동제국과 서제국은 하나가 될 것이다. 바로 요하네프 3세의 깃발 아래에. 그리고 그 대계는 바로 클로얀 왕국의 모리나 왕녀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로이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간단한 뒤처리 후 마리는 클로얀의 수도인 커먼성으로 돌아왔다. 남은 문제는 에투나섬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관이 마무리할 것이다. 누가 일부러 퍼뜨리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가 해낸 일은 이미 커먼성 전체에 퍼져 있었다.
“역시 총독 각하.”
“이번에도 또 대단한 일을 해내셨다는군.”
사람들은 그녀의 행렬을 바라보며 떠들었다. 누군가가 탄식하듯 이야기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모리나 왕녀는 돌아오지 않는군. 난 이제는 모리나 왕녀가 아니더라도, 저 힐데른 자작이면 우리가 섬기기에 부족하지 않은 분 아닌가 싶네.”
“하긴…….”
다른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했다. 그 누가 그녀가 부족하다 할 수 있겠는가. 모리나 왕녀가 그립긴 하지만, 저 소녀라면 그들을 다스리기에 일말의 부족함도 없었다.
“난 이런 생각도 드는군. 모리나 왕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힐데른 자작의 몸을 빌려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그게 무슨 말인가?”
“그냥. 저분의 행적이 과거 왕녀 전하의 행적과 너무나 닮지 않았나 해서.”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고 보니 닮긴 닮았다. ‘얼굴 없는 성녀’, 모리나 왕녀와 저 소녀 총독의 행적은 신기할 정도로 똑 닮았다.
“혹시…… 모리나 왕녀가 저분인 것은 아니겠지?”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저분은 제국의 예비 황후마마야.”
“하지만 클로얀 왕국민이었다가 전쟁 때 포로로 끌려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모리나 왕녀께서도 딱 저 나이실 텐데?”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듣다 보니 묘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왠지 그럴싸하게도 들리는 이야기였다.
“에이, 설마…… 말도 안 돼.”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 소녀가 모리나 왕녀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너무 공교롭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헛소문으로 치부되며 사그라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일까? 한번 불씨가 피어오른 의문은 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의도라도 한 것처럼. 그림자가 파고들 듯 클로얀 왕국민들 사이에 마리에 대한 의구심이 번졌다.
* * *
마리는 사람들 사이에 은밀하게 퍼지는 자신에 대한 소문을 까마득하게 모른 채 업무에 열중했다.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고 가을이 깊어 가던 어느 날 밤. 바르한 백작이 그녀에게 대화를 청했다.
“왕녀 전하를 뵙습니다.”
단둘이 있게 되자 바르한은 무릎을 꿇으며 그녀에게 예를 표했다. 마리는 왠지 그의 예가 좀 더 극진해졌음을 느꼈다. 이전에는 형식적인 면이 다분했다면, 지금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말씀하세요, 백작.”
마리는 그가 결론을 내렸음을 알아채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바르한 백작은 왕실 기사단의 단장이자 반 제국 운동의 구심점이다. 그의 결정에 따라 클로얀 왕국 귀족들의 움직임이 결정될 것이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사안에 대해 고하고자 이렇게 면담을 청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백작은 돌연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하!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소신은 도저히 전하의 의견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클로얀 왕가의 재건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마리는 탁 하고 기운이 빠졌다. 역시나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을 바쳐온 충성이고 신념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꾸겠는가?
“……그렇군요.”
마리는 뭐라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그렇게만 답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런데 그때 바르한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전 전하를 따르겠습니다.”
“백작?”
“그간 유심히 지켜보고 깨달았습니다. 왕국민을 위하는 전하의 마음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란 것을. 지금껏 왕가의 어떤 국왕도 왕녀 전하처럼 백성들을 위하는 고결한 마음을 가지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그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렇기에 전하께서 어떤 길을 걷더라도, 그 길은 왕국민들을 위한 것이라 믿기에! 이 바르한, 비록 뜻이 다르더라도 왕녀 전하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마리의 가슴이 진동했다. 드디어 바르한이 그녀를 받아들인 것이다. 깊고 깊은 골이 그녀를 다리로 해서 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 벅찬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백작, 한 가지만 약속할게요.”
마리는 마주 무릎 꿇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건 클로얀 왕국민을 위한 것이 될 거라는 것. 저를 믿어주세요.”
그녀는 왕가의 재건을 바라지 않는다. 비단 라엘과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일말의 애착도 없는 왕가의 재건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싶지 않았다. 혹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욕을 할지도 모른다. 왕족으로서의 사명을 외면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클로얀 왕국민들을 외면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그녀는 왕국민들을 위하는 방법이 꼭 왕가 재건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클로얀 왕국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게 한때 모리나 왕녀였던 그녀의 진심이었다.
“최선을 다할 테니, 저를 믿어주세요.”
바르한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미 전하께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니 신하에게 믿어 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제 모든 것을 바쳐 전하를 따를 뿐입니다.”
그의 강직한 성격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마리는 그가 자신을 진정한 주군으로 받아들였음을,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그녀도 그 충성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리라. 그게 군주와 신하의 올바른 의무이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바닥이 차가워요.”
“감사합니다.”
마리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고, 바르한도 희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만난 후 처음으로 보는 미소였다. 그렇게 둘 사이에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흐르는데, 생각지도 못 한 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각하! 각하! 큰일 났습니다!”
폰틸 남작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죠?”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온 폰틸 남작의 안색은 파리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이렇게 놀란 모습은 처음인지라, 마리는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작?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각하, 적이 이곳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무려 3만 명입니다! 당장 피해야 합니다!”
“……!”
마리와 바르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갑자기 무슨 적이란 말인가? 그것도 3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라고?
“도대체 어떤 적이? 설마 서제국이 침공을 시작한 것인가요?”
“서제국이 아닙니다.”
폰틸 남작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 동제국의 3군단입니다! 3군단이 이곳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마리의 손이 떨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동제국의 군대가 왜? 폰틸 남작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3군단의 목표는 바로 각하입니다! 각하께서 모리나 왕녀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며, 제국을 우롱한 죄인의 목을 베겠다며 진군하고 있습니다!”
쨍그랑!
마리의 손에 밀려 잉크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마리의 얼굴이 파래졌다. 상상하지도 못 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건 앞으로 다가올 소용돌이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 * *
다급한 속보가 속속 전달되었다.
“데운성이 점령되었습니다!”
“3군단이 세이펜 성읍을 초토화시켰다고 합니다!”
클로얀 지방 전체가 공황에 빠졌다. 3군단이면 동제국 서부 지방에 주둔하며 클로얀 지방을 보호하던 군단이다. 그런 군단이 갑자기 클로얀 지방을 공격하다니? 더구나 3군단이 꺼낸 말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제국의 예비 황후이자 총독인 마리의 진정한 정체가 모리나 왕녀였고, 그녀의 목을 베기 위해 클로얀 지방을 공격하는 거라니?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3군단의 공격은 진짜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군 경로에 있는 마을들이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각하! 각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총독부의 관리들이 마리에게 외쳤다.
하지만 마리도 이번 사태만큼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3군단이 왜 클로얀 지방을? 아니, 어떻게 내 정체를 알고?’
머리가 하얗게 질려 생각이 이어져 나가지 않았다. 마치 추위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한 관리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관리들은 아직 그녀가 모리나 왕녀란 소문을 믿지 않고 있었다.
“각하! 카운 성읍이 또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마리는 주먹을 움켜쥐며 물었다.
“폰틸 남작에게서 소식은 없나요?”
그녀를 호위하던 폰틸 남작은 3군단을 제지하기 위해 뛰어갔다.
“3군단에 도착했는데,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어 보지 못하고 결박되었다고 합니다!”
마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3군단은 오로지 황제 라엘의 명만 따른다. 하지만 저 공격이 라엘의 뜻일 리가 없다. 분명 무슨 문제가 생겼다. 순간 그녀의 머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3군단장 알베론 백작이 서제국과 결탁하고?’
마리의 몸이 벼락에 맞은 듯 떨렸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만약 3군단의 알베론 백작이 요하네프 3세와 결탁했다면 모든 게 설명돼! 날 노리는 것은 핑계고 클로얀 지방을 서제국에게 넘기려는 속셈인 거야!’
마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요하네프 3세가 어떤 간계를 부렸기에 알베론 백작이 서제국에 넘어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알베론 백작은 원래부터 출세욕이 많았던 자이니, 후에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을지도. 어쨌든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3군단을 막을 권한을 가진 분은 오로지 폐하밖에 없어요. 제국의 지원이 있기 전까진 어떻게든 버텨야 해요.”
“네, 각하!”
3군단이 이상 행동을 보인 순간, 황궁으로도 소식이 갔을 거다. 그러니 지금쯤 라엘이 행동에 나섰을 확률이 높았다. 지원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폐하.’
마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불렀다.
* * *
마리의 예상대로 3군단의 이상 행동은 곧바로 황궁에 전달되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당장 알베론 백작을 송환해야 합니다!”
황궁의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외쳤다.
“예비 황후마마가 모리나 왕녀라니! 알베론 백작이 미친 것이 분명합니다!”
대신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마리가 모리나 왕녀란 사실은 라엘과 오른 등 극히 일부만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었다. 일반 대신들로서는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더구나 무단으로 클로얀 지방을 공격하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상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라엘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서제국과 결탁한 거겠지.”
“……폐하?”
대신들은 흠칫 얼굴을 굳혔다. 황제의 목소리가 너무나 차가웠다.
어째서인지 분노보다는 마치 살이 베일 것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그 말씀은 3군단장인 알베론 백작이 서제국측으로 배신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오른 공작이 하였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소. 그렇지 않으면 3군단장 알베론 백작의 지금 행동이 설명되지 않으니까.”
그 말에 대신들이 더욱 분노하여 외쳤다.
“당장 알베론 백작을 벌할 토벌군을 보내야 합니다!”
“맞습니다! 더구나 예비 황후마마가 모리나 왕녀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다니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대신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예비 황후 마리 폰 힐데른을 모독한 알베론 백작을 거칠게 욕하였다.
“우리 예비 황후마마가 모리나 왕녀일 리가 없소.”
“맞습니다! 유언비어를 퍼뜨려도 정도껏 퍼뜨려야지!”
그런데 대신들이 마리를 옹호하면 옹호할수록 라엘과 오른의 얼굴은 굳어만 갔다. 결국, 라엘이 입을 열었다.
“그만, 이만 물러가도록.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대신들이 물러나자 어전에는 오른과 라엘만 남게 되었다.
“폐하…….”
오른은 라엘의 표정을 살폈다. 라엘의 얼굴은 딱딱하다 못해 살이 베일 듯한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사태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일이 일어나 버렸다. 이대로라면 클로얀 지방은 서제국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그가 사랑하는 마리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출정을 준비해라.”
라엘은 입을 열었다.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로.
“내가 직접 알베론 백작의 목을 베겠다.”
“……!”
오른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하지만 얄궂은 운명의 장난일까? 그 순간, 또 다른 급보가 전달되었다.
“폐하! 폐하! 큰일입니다!”
얼굴이 사색이 된 전령이 어전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클로얀 지방의 일이냐?”
“아닙니다! 남부 지방의 일입니다!”
라엘과 오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부 지방의 급보라면 예상되는 것이 있었다.
“이스트반 백작가의 일인가?”
“네, 맞습니다! 이스트반 백작가가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서쪽에서는 클로얀 지방이 혼란스러운데 남쪽에서는 이스트반 백작가가 반란을 일으켰다니. 다만 라엘과 오른은 이번만큼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군.”
“네, 과거 레이첼 영애의 일 때부터 이스트반 백작가가 서제국과 한패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니까요.”
이스트반 백작가는 과거 경합 당시 간악한 음모를 꾸몄던 레이첼의 가문이다. 그들이 언제고 문제를 일으킬 것은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에 그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대로 진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들은 이스트반 백작가에 대한 대처를 말했다. 어차피 대비하고 있던 일이라 큰 문제는 없을 거다. 그런데 전령의 표정이 이상했다. 여전히 창백한 표정인 게 숨이 넘어갈 듯한 얼굴이었다.
“폐, 폐하……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도, 동쪽에서……!”
전령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동방 교국의 함대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무려 15만 명의 대군입니다!”
절망과도 같은 소리였다.
* * *
클로얀 지방뿐 아니라 남부의 반란, 그리고 동방 교국의 침공까지! 동제국에 미증유의 위기가 닥쳐왔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위기가 한번에?’
클로얀의 수도 커먼성에서 소식을 들은 마리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연히 이런 일이 겹칠 리가 없어. 이건 모두 서제국의 음모야!’
마리는 요하네프 3세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그를 도와줄 수 있지?’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차오른 생각은 그에 대한 걱정이었다. 곤경에 빠진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걱정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일단 클로얀 지방의 문제라도 내가 해결해야 해.’
마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클로얀 지방이 서제국의 손으로 넘어가면 동제국은 끝이었다. 막아 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3군단은 오합지졸 해적이 아니야.’
지난번 해적들은 기지를 발휘해 물리칠 수 있었지만, 제국의 정예인 3군단은 그런 임기응변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3군단의 표면적인 목표는 바로 나야. 내가 가서 담판을 지어야 할까?’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가서 해결될 상황이면 죽음을 무릅써 보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해 내, 마리. 제발. 제발……!’
하지만 마리의 바람과 다르게 상황은 더 악화되어 갔다. 린 남작, 아니, 서제국의 라키 드 스토른 백작이 꾸민 음모가 방점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각하! 각하! 큰일 났습니다! 빨리 밖으로 나와 보십시오!”
“……!”
“왕국민들이 몰려와 각하를 찾고 있습니다!”
마리는 다급히 왕성의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몰려든 군중을 본 그녀는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몰려와 그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해명해 주십시오, 총독 각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제국군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까?”
군중은 혼란과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뭐라고 해명해야 하지?’
마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 일단 진정해 주십시오. 사태를 해결 중이니…….”
그녀는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하지만 군중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이윽고 이런 질문이 터져 나왔다.
“각하께서 모리나 왕녀 전하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맞습니다! 대답해 주십시오!”
“각하께서 저희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던 모리나 왕녀 전하가 맞으십니까?”
마리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아…….’
군중의 눈빛에는 두려움 속에서도 흐릿한 기대가 떠다니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지만, 자신들이 존경하는 총독인 그녀가 모리나 왕녀가 맞으면 좋겠다는 기대였다.
“각하께서 모리나 왕녀가 맞는다면, 저 제국군 따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왕녀 전하께서 이끌어주기만 한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군중 사이에서 한 명, 두 명 외치기 시작했고, 그 외침은 곧 왕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대답해 주십시오!”
“왕녀 전하가 맞는다면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마치 성벽이 터져 나갈 듯한 열기. 마리는 창백하게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군중을 바라보았다.
‘아, 안 돼. 저들을 진정시켜야 해. 내가 모리나 왕녀라는 걸 알게 되면 저들이 날 여왕으로 추대하려 할 거야.’
그녀가 가장 바라지 않는,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저, 저는…….”
워낙 떨려서일까?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생각지도 않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 인물이 나타났다.
“각하께서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제가 대신 답하겠습니다.”
“……!”
마리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여인처럼 아름다운 얼굴, 옅은 백금발. 린 남작이었다.
‘린 남작이 왜?’
린 남작은 먼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항상 단정하게만 웃던 평소와 다르게 짙은, 마치 뱀의 것과 같은 미소였고 마리는 등줄기에 서늘한 불길함이 들었다.
‘설마?’
마리는 손을 뻗어 그를 말리려 하였다. 하지만 한발 늦은 뒤였다. 린 남작, 아니, 서제국의 라키 드 스토른 백작이 이렇게 선언해 버린 것이다.
“여러분의 말이 맞습니다. 이분의 진정한 신분은 클로얀 왕가의 마지막 후예 모리나 왕녀 전하로, 클로얀 왕국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지금껏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
순간 마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나, 난 그, 그렇지 안…….”
스토른 백작은 그런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 곧 나락에 떨어질 그녀의 모습이 기대된다는 듯. 기이한 쾌감과 열락이 섞인 미소였다.
“왕녀 전하께서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정체를 숨긴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때가 왔습니다! 모리나 왕녀 전하의 이름 아래 클로얀은 진정한 왕국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 말에 왕국민들은 열화와 같은 소리를 외쳤다.
“와아아!”
“모리나 전하 만세! 클로얀 왕국 만세!”
이윽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외침이 터졌다.
“우리는 왕녀 전하를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왕녀 전하, 아니, 여왕 전하 만세!”
한 명, 두 명 사이에서 나온 여왕이란 단어는 해일이 오듯 군중을 휩쓸었다. 수많은 왕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외쳤다.
“저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여왕 전하 만세!
“클로얀 왕국 만세!”
그리고 그 외침을 듣는 마리는-
‘아…….’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성벽에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 이렇게?’
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 확실한 것이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다는 것을. 그렇게 그녀의 세계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날, 온 제국에 놀라운 소식이 퍼졌다. 클로얀 왕국의 모리나 왕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그 정체는 믿을 수 없게도 마리 폰 힐데른. 추앙받던 제국의 예비 황후로 왕국민들의 지지 속에 독립 클로얀 왕국의 여왕으로 추대되었다고 온 제국에 퍼지게 되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정세 속에서 마리는, 아니, 모리나는 클로얀 왕국의 여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