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있는 시녀님-1화 (2/54)

Chapter 1

안개가 낀 듯 흐릿한 시야. 나는 이것이 꿈속임을 깨달았다. 나는 꿈속에서 또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꿈속의 나 ‘그녀’를 불렀다.

「오늘은 어떤 차(茶)지?」

「철관음(鐵觀音)입니다, 주인님.」

부드러운 음성.

「철관음?」

「네, 청, 푸젠성 남쪽에서 나는 우롱차의 일종으로 맑은 맛이 좋다고 해요.」

꿈속의 ‘그녀’는 맑은 향의 차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절도 있고,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차 맛을 본 남자는 감탄을 뱉었다.

「정말 맑군. 역시 최고의 솜씨야.」

「감사합니다. 차의 품질이 상품이어서 더 맑은 맛이 나는 것 같아요.」

「아니야. 다른 사람이 끓였으면 이런 맛이 나지 않았겠지.」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비올라, 너는 내가 가진 최고의 보배이니까.」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마리는 번뜩 눈을 떴다.

‘꿈이구나. 비올라가 누구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건축 양식이나 가구를 봤을 때 제국의 저택도 아닌 것 같았다.

‘저기 서쪽 끝 섬나라 잉글랜드 쪽인 것 같은데. 그나저나 되게 생생한 꿈이네.’

꿈은 짧지만 굉장히 생생했다. 마치 비올라란 하녀의 삶 일부분을 대신 경험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요란한 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마리, 일어났어? 늦겠어! 빨리 가자.”

그녀와 같은 방을 쓰는 동료 시녀, 제인이었다.

그녀는 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5시 30분.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늦을 것이다. 마리는 서둘러 시녀복을 걸치고, 근무 장소인 백합궁으로 향했다.

동료 시녀인 제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마리, 오늘은 꼭 잘해. 수잔 시녀님이 벼르고 있는 거 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실수하면 그냥 꾸지람으로 안 끝날 수도 있어.”

“응, 잘할게.”

그렇지 않아도 그녀도 걱정이었다. 상급 시녀인 수잔이 자신을 혼내는 게 갈수록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틸지.

‘꿈속 하녀처럼 나도 일을 잘할 수 있었으면.’

꿈속의 그녀는 그야말로 완벽한 하녀였다.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은 물론이고, 식사 시중, 다도, 서류 정리 등의 난해한 일도 못하는 게 없었다. 아니, 단순히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허드렛일도 예술이 되었다. 그야말로 메이드계의 마스터라고 할까나? 그녀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일할 수 있으면 혼나지도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

곧 백합궁에 도착한 그녀는 배정받은 장소로 향했다. 그녀가 새벽에 일할 곳은 1층 응접실 근처의 복도였다. 귀빈들이 일어나 돌아다니기 전에 간단히 청소를 끝내고, 아침 식사가 끝나면 주방으로 가 뒤처리를 해야 한다.

“수고해, 마리.”

“응, 있다가 봐.”

제인에게 인사하며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기필코 실수 없이 일해 꾸지람을 듣지 않으리라. 그렇게 의지를 돋우며 복도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응?’

딱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이한 이질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세, 세상에. 이게 뭐지? 내 눈이 잘못됐나?’

그녀는 입을 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리의 눈에 새롭게 펼쳐진 세상은…….

‘더, 더러워.’

……더러웠다.

‘원래 여기가 이렇게 더러웠나?’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벽 구석구석의 때, 창틈 사이의 짙은 먼지, 바닥에 붙어 있는 희미한 찌꺼기 등 온통 눈에 거슬리는 것투성이였다.

‘왜 지금까지 몰랐지?’

저 오래된 때들은 하룻밤 사이에 생긴 게 아니었다. 이전부터 있었던 것인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돋보기로 보듯 선명하게.

‘수잔 시녀님 오기 전에 빨리 닦자.’

너무 손댈 게 많아 도저히 시간 안에 못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서둘러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댔다. 그리고 빡빡 밀려는 순간, 다시 한번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편하지?’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지기라도 했는지 걸레질이 굉장히 가벼웠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걸레가 지나갈 때마다 묵은 때가 쓱쓱 닦여 나갔다. 또 어디가 더러운지 눈에 확연히 보이니 힘을 분산하는 것도 편했다.

‘마치 꿈속의 하녀라도 된 것 같잖아.’

마리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어젯밤 꿈속의 그녀도 비슷한 능력이 있었다. 남들의 눈에 안 띄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볼 수 있는 안목, 능숙한 청소 실력. 모두 그녀의 능력 중 일부였다.

‘설마…… 에이.’

꿈을 꾸었다고 그 꿈의 주인공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게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너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생긴다면 너는 그 능력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니?”

갑자기 떠오르는 남자의 목소리.

‘마, 말도 안 돼. 정말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그렇게 혼란에 빠진 와중, 복도 청소가 끝이 났다.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와!”

그녀는 청소가 끝난 복도를 돌아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뱉었다. 깨끗했다. 단순히 깨끗한 수준이 아니라, 은은하게 광이 나는 것 같았다.

‘이걸 내가 청소한 거란 말이야?’

그녀는 눈을 껌뻑거렸다. 스스로 해놓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심지어 시간까지 남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복도 옆 응접실을 바라보았다.

‘여기도 더럽네.’

정확히 말하면 늘 관리하는 곳이니만큼 깨끗한 축에 속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곳저곳 손댈 곳이 보였다.

‘어쩌지? 시간이 남긴 남는데.’

응접실은 그녀의 담당 구역이 아니니 더럽든 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자꾸만 청소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더러운 잡티를 모조리 없애서 매끈매끈 광택이 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지, 진짜 내가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당황스러워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과 별개로 그녀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일단 눈에 가장 거슬리는 것들 위주로.’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카펫 구석에 굴러다니는 작은 먼지를 쓸었고, 정원을 내다보는 창가의 얼룩도 제거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그녀는 본격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청소했다. 선반을 닦은 후, 미묘하게 흐트러진 장식용 그릇들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조각상 구석의 먼지를 닦았다. 눈에 안 띄는 의자 다리들도 깨끗하게 해준 것은 물론이다.

‘카펫도 한번 빨고 싶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매서운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마리! 청소 안 하고 뭘 하고 있니? 오늘 렉싱턴 백작가에서 궁을 방문하기로 해 바쁜 것 몰……!”

수잔 시녀였다.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던 수잔은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마리가 청소해 놓은 복도를 본 것이다. 수잔은 눈을 크게 뜨고 복도를 살폈다.

‘뭐야, 왜 이렇게 깨끗하지?’

원래 마리는 꼼꼼하지 못해 늘 더러운 부분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깨끗했다. 아니, 단순히 깨끗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그녀가 맡은 구역만 따로 리모델링이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눈에 안 띄는 부분도 잘 청소했는지 살펴봤지만, 역시나 완벽했다.

‘저 못난이 마리가 이렇게 깔끔하게 청소를 해놨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마리, 오늘 누가 도와줬니?”

마리는 답했다.

“……제가 했어요, 시녀님.”

“네가? 말도 안 돼. 혼내지 않을 테니 솔직히 말해봐.”

“정말로 제가…….”

마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수잔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로? 말도 안 돼.’

그녀도 마리가 못난 부분이 많지만, 거짓말하는 아이는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더 따져 볼까 하다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알겠다. 그러면 일단 주방으로 가서 뒷정리를 도와줘.”

“네, 시녀님!”

다람쥐처럼 주방으로 가는 마리를 보며 수잔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로 저 아이가 한 일인지는 더 지켜보면 알겠지.’

어차피 조금만 보면 알 일이니까. 수잔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수잔은 모르고 있었다. 아직 놀람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 * *

마리가 능숙해진 것은 청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거리를 뚝딱 해치웠다.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게 아니었다. 그녀가 닦은 그릇은 마치 광이 나는 것 같았다.

“저거 마리 맞지?”

“그,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주방의 동료 시녀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마리를 바라보았다. 설거지를 끝낸 마리는 주방용 걸레를 들고, 어지럽혀진 부분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전쟁터 같던 주방이 인테리어 전시 룸처럼 깔끔하게 변모했다. 남은 식재료의 보존 처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

시녀들은 그런 그녀를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모두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중에는 늘 심하게 구박하던 주방의 책임 시녀도 있었다.

‘저 아이가 원래 저렇게 일을 잘했었나?’

책임 시녀는 눈을 깜빡였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책임 시녀도 저 어린 시녀가 매사에 늘 열심히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이 굼뜨고 실수가 잦아 매번 심하게 혼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평소에 너무 심하게 혼냈나?’

저렇게 잘하는 모습을 보니, 평소에 도를 넘게 혼냈던 것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책임 시녀는 한참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마리.”

“네, 네? 시녀님?”

정리 삼매경에 빠져 있던 마리는 주방의 책임 시녀가 자신을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책임 시녀는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열심히 하는구나.”

“……!”

생각지도 않은 말에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가?’

저 책임 시녀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비단 저 책임 시녀뿐 아니라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구박만 했지. 더구나 놀라운 일은 끝이 아니었다.

“오늘 수고 많았다. 나머지는 우리가 정리할 테니 오전 일과 시작할 때까지 가서 조금 쉬고 있어.”

“아, 괜찮습니다!”

“아니야. 네가 처음으로 기특한 모습을 보여 특별히 상을 주는 거야.”

마리는 지금 상황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내가 이런 칭찬을 받다니?!’

책임 시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하렴.”

그렇게 주방 밖으로 나온 마리는 탕비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옆 청소 도구를 모아 놓는 탕비실은 그녀 같은 하급 시녀들의 휴식 장소였다.

‘내가 칭찬을 받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믿을 수 없어.’

그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물론 별것 아닌 간단한 칭찬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왜 이렇게 애가 못났지?”

“잘하는 게 뭐니?”

그렇게 맨날 못난이로 구박만 받다가 처음으로 듣는 칭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칭찬을 들은 건 기쁘지만, 뭔가 이상했다.

‘난 원래 이렇게 유능하지 않은데…….’

정말 꿈속의 하녀라도 된 것 같지 않은가?

‘정말 그 남자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라도 한 걸까?’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일단 열심히 일하고, 원인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하렴.”

그녀는 방금 들었던 칭찬을 떠올렸다. 다시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에게 다가온 믿을 수 없는 일이 축복인지, 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만 더 이 기적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마리는 생각했다.

그렇게 마리의 새로운 시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정말로 꿈속의 주인공 ‘비올라’ 같은 능력을 보여 주었다. 청소면 청소, 빨래면 빨래, 설거지면 설거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수잔도 결국 그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잘못 봤던 것 같구나.”

“수잔 시녀님?”

마리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나한테 혼나느라 많이 속상했지?”

“……!”

마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야. 어쨌든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았어. 노력하더니, 최근엔 정말 많이 나아졌더구나. 앞으로도 이렇게만 잘해 주면 좋겠구나.”

그 말에 마리는 가슴이 찡하고 울렸다.

“네, 감사합니다, 시녀님.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마리, 차 시중은 들어봤니?”

“아직 차 시중은…….”

그렇게 대답하다 마리는 입을 다물었다. 수잔 시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달은 것이다.

“시녀님?”

“그래, 너도 슬슬 차 시중을 들어야지. 이제부터 틈틈이 연습하도록 하렴.”

“……!”

차 시중! 그건 귀인들을 직접 모시는 중급 시녀의 업무였던 것이다.

“왜? 못 하겠니?”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마리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현실인가 싶었다. 수많은 하급 시녀 중에서 차 시중을 맡는 것은 극히 일부. 귀족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므로 절대 아무에게나 차 시중을 맡기지 않는다.

‘내가 차 시중을 맡게 되다니.’

수잔의 방에서 나온 그녀는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픈 것 보니 꿈은 아닌데.

그렇게 그녀는 차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그녀는 차 시중도 능숙했다. 수잔이 감탄해 외쳤다.

“대단해, 마리! 어떻게 그렇게 절도 있는 동작을? 이전에 차 시중을 들어 본 적 있는 거니?”

하지만 그녀가 차 시중을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있었을 리가 있겠는가? 마리는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정말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그때 남자의 기도가 진짜로 이루어져서?’

고민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녀의 혼란과 별개로 백합궁의 시녀들 사이에서 마리의 이름은 갈수록 높아졌다. 뭐든지 잘하는 마리로!

“고마워, 마리.”

“역시 마리네. 이것도 좀 부탁해.”

지금까지 구박받았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삶이 바뀌었다. 마치 신데렐라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일상이 또다시 뒤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안개가 잔뜩 낀 흐릿한 영상. 마리는 자신이 또다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지난번 하녀 마스터인 비올라의 꿈을 꿀 때와 똑 닮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꿈속의 ‘나’는 성벽 위에 올라가 눈을 감고 있었다. 누군가 그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을 하고 있지, 피오나?」

「바람을 느끼고 있어요.」

「바람?」

남자는 꿈속의 ‘나’에게 말했다.

「또 영감을 얻고 있는가 보군.」

꿈속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대단해. 이미 대륙 최고의 경지이면서, 한시도 쉬지를 않는군.」

「…….」

「그러면 다음 작품은 바람을 담은 작품이겠군. 기대하지.」

그러며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정원의 구도자(求道者), 피오나.」

거기까지 꿈을 꾼 마리는 번뜩 눈을 떴다.

‘무슨 꿈이지? 지난번과 같은 꿈인가?’

하녀 마스터 비올라 때의 꿈처럼 굉장히 생생했다. 마치 실제로 꿈속의 인물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 꿈은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었다.

‘피오나라고? 뭐 하는 인물이지?’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꿈속 인물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지난번과 다르게 꿈이 굉장히 단편적이었던 탓이다.

‘바람을 담은 작품이라고? 그리고 정원의 구도자? 무슨 말이지? 정원사인가?’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변한 게 있나 싶었지만, 특별히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하긴 꿈을 꾸었다고 꼭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아직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는 그 정체가 불명확했다. 설마 꿈을 꾼다고 꿈속의 능력을 매번 사용할 수 있겠는가? 아마 지난번이 특별한 경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방 밖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마리! 마리!”

“네!”

방문을 여니, 한 선배 시녀가 서 있었다. 마리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 여기에는 무슨 일로?”

“지금 시간 괜찮지? 수잔 시녀님이 널 부르셔.”

마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급자인 수잔이 그녀를 따로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는 수잔의 방으로 갔다.

“수잔 시녀님, 무슨 일로 저를?”

“아, 마리. 어서 와.”

수잔이 웃는 낯으로 그녀를 맞았다. 이전 잡아먹을 듯한 태도와 비교하면 참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

“고생이 많지? 요즘 계속 잘해 줘서 고맙구나.”

“아닙니다.”

마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 칭찬을 들었다.

“궁에서 요즘 너에 대한 칭찬이 참 많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처럼만 계속 잘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잠시 그녀에 대해 칭찬하다가, 수잔은 용건을 꺼냈다.

“사실 이렇게 부른 것은 근무처 이동 때문이란다.”

“근무처 이동이요?”

“그래. 네가 잠시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해 주어야 할 것 같아.”

“어느 곳으로 가게 되나요?”

수잔은 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얼마 뒤에 제국 탄신연회가 있는 거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다. 제국에서 가장 큰 행사로, 일주일 내내 큰 연회와 축제를 벌인다. 이제 얼마 뒤면 황궁의 모든 시녀는 축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없게 될 것이다.

“마침 이번 기념일이 3황비 마마의 기일과 겹쳐서, 황태자 전하의 친모이신 3황비 마마를 기리는 의미로 장미궁의 정원을 새로 꾸미고 있단다.”

“…….”

“그런데 일손이 많이 모자라 우리 쪽에 지원 요청이 들어왔어.”

“그러면 가서 정원을 꾸미면 되는 건가요?”

“아니, 정원을 꾸미는 일은 당연히 전문 정원사들이 진행할 거야. 마리, 너는 가서 정원사들을 보조해 주기만 하면 돼.”

“……그렇군요.”

설명을 끝낸 수잔은 고개를 갸웃했다. 특별히 어려울 것은 없는 일인데, 마리의 얼굴이 이상했던 것이다.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

“마리,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그러면 바로 그쪽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아해하는 수잔을 뒤로하고 마리는 방을 나온 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원 공사라고?’

그녀는 어젯밤 꿈을 떠올렸다.

「그러면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정원의 구도자(求道者), 피오나.」

정확한 것은 몰라도, 꿈속의 주인공은 아마 정원과 관련된 예술을 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이번 일과 상관이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마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정원 공사는 모두 정원사들이 할 거고, 어차피 시녀인 나는 가서 허드렛일만 할 테니까.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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