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있는 시녀님-0화 (1/54)

능력 있는 시녀님

Prologue

나는 못난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없었다.

“애가 착하긴 한데, 왜 이렇게 굼뜨지? 잘하는 것도 없고.”

이게 나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나를 찾은 아버지, 클로얀 왕국의 국왕에 의해 왕녀로 궁에 들어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천한 핏줄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못났지?”

그게 왕궁에서의 나의 평가였다. 왕비인 새어머니도, 왕자인 두 오빠도 모두 나를 천시했다. 그래도 나는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왕궁에서 내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씩씩하게 지내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씩씩하게 지낸다고 해서 못난 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난 늘 무시당하는 못난이였다. 왕국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해 시녀로 끌려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마리!”

“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헐레벌떡 달려갔다. 매서운 인상의 여인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급 시녀인 수잔이었다.

“너 도대체 청소를 하긴 한 거니? 이 먼지 도대체 뭐야?”

왕국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할 때, 나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시녀로 모습을 분하고 있었다. 아무리 못난이여도, 왕가의 핏줄을 제국군이 살려 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제국 황궁에 끌려와 허드렛일을 하는 하급 시녀가 되었다.

“똑바로 좀 해!”

나는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왕녀에서 하급 시녀가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똑같이 못난이였고, 구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

그나마 내 유일한 장점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씩씩함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착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면 주님께서 축복해 주실 거란다.”

“이런 저도요?”

“그럼. 주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신단다.”

엄마가 옛날에 했던 이 말을 믿고 있었으니까. 잘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이지만, 신께서는 이런 나라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저도 언젠가 축복해 주세요.’

그런데 그런 내 기도 때문일까? 어느 날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 * *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어느 여름날, 내 나이 17살 때였다.

“병에 걸린 죄수를 돌보는 일이요?”

“그래. 너 말고 우리 중 누가 그런 일을 하겠니?”

황궁 하급 시녀의 업무는 정말 다양했다. 청소, 설거지, 빨래 등의 간단한 허드렛일부터 수많은 고된 일까지.

황궁의 감옥에 갇힌 죄수가 병에 걸리면 보통은 치료 없이 지켜보지만, 병증이 심해지면 간병을 해준다. 그런 경우 간병은 하급 시녀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늘 내 몫이었다.

“왜 못 하겠니? 하기 싫어?”

“아, 아니요.”

솔직히 나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죄수의 간병이라니, 누가 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당연히 나에겐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간병이라고 해봤자 식사 수발 정도니까. 별것 없을 거야. 힘내자.’

그렇게 생각하며 기운을 돋운 나는 감옥에 딸린 병실로 향했다.

“이쪽이다.”

간수의 안내에 따라 방에 들어가니 고약한 악취가 훅 느껴졌다.

‘아.’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딘가 익숙한 냄새. 그건 바로 엄마가 죽을 때 느껴지던 죽음의 냄새였다.

“어차피 곧 죽을 놈이다. 특별히 대단한 놈도 아니니, 대충 돌보면 돼.”

나는 간수의 말을 알아들었다. 굳이 신경 써서 간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마 내가 이 자리에서 나 몰라라 도망가도 별말 하지 않으리라. 아니, 어쩌면 그쪽을 더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그렇게 간병하는 시늉만 하고 도망 오는 시녀도 많았다. 어차피 죄수니까, 아무도 신경 안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돌아가도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어릴 적 돌아가셨던 엄마가 떠올라서이기도 했고, 침상에 누워 있는 죄수의 눈빛이 쓸쓸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슨 죄를 지은 죄수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돌아가면 이 남자는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리라. 그렇게 두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네가 나중에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못난이지만, 그래도 작은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간병을 시작했다.

“어차피 곧 죽을 놈인데,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쓸모없는 일이야.”

간수가 뒤에서 혀를 찼다. 나는 그 핀잔을 뒤로하고 죄수를 열심히 간병했다. 죽을 떠서 먹이고, 차가운 수건으로 열을 식히고, 더러운 몸을 씻겨 주었다.

“쯧. 소용없다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열심히 간병했지만, 간수의 말대로 죄수의 상태는 계속해서 악화되었다. 나는 죄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엄마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생명이 꺼졌기 때문이다.

‘엄마 보고 싶다.’

죽어가는 죄수를 보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며 가슴이 울컥했다. 가난했지만 유일하게 행복하던 시절. 그때로 돌아가 엄마 품에 안기고 싶었다. 괜히 눈물이 돌아 남몰래 손등으로 눈가를 닦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고…… 맙다.”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죽어 가던 죄수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고, 고맙다. 정말로…….”

힘겹게 말을 한 죄수가 고개를 돌려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곧 죽음을 앞둔 죄수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죄수는 똑같은 감사를 반복했다.

“고…… 맙다. 정말로.”

“아, 아니에요. 저는 그냥 할 일을…….”

“아니, 그냥 버려두어도 되었을 텐데, 정말…… 고맙다. 덕분에 쓸쓸히 죽지 않게 되었어.”

말을 할수록 죄수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나는 그것이 죽기 직전, 일시적으로 기운이 돌아오는 회광반조의 증상임을 눈치챘다.

“네 이름이 무엇이지?”

“마리. 마리예요.”

나는 그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마지막에 너를 위해 기도해 주고 싶구나. 혹시 바라는 것이 있느냐?”

그 물음에 나는 고민했다. 원하는 것?

“무엇이든 좋단다. 너를 위해 기도해 주마.”

그 말에 나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남자가 기도해 준다고 해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말동무나 해주기 위해서였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능력?”

“네, 저는 엄청 무능하거든요. 그래서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그가 힘겹게 미소 짓는 것이 느껴졌다. 내 소원이 아이처럼 느껴진 것이리라. 하지만 난 진지했다. 평생 못난이로 살았으니, 언젠가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능력이면 정확히 어떤? 능력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느냐. 정확히 말해보아라.”

“음…….”

나는 고민했다.

“일단 시녀 일을 아주 잘하고 싶어요.”

“시녀 일?”

고작 바라는 소원이 시녀 일을 잘하게 해달라니. 남자는 너무 소박하다고 느낀 듯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 들어서 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다른 일들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미술도 잘했으면 좋겠고, 음악도 잘했으면 좋겠고, 공예도 잘했으면 좋겠고, 요리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리고?”

나는 신이 나서 계속해서 말했다. 워낙 못난이로 구박받으며 자라서일까? 잘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았다.

“활도 잘 쐈으면 좋겠고, 춤도 잘 췄으면 좋겠고, 카드 게임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아, 의사 선생님처럼 사람을 고치는 의술도 있었으면 좋겠고, 나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능력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많이 바라죠?”

“그래, 욕심쟁이구나.”

남자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냥 해본 말이에요. 소원은 누구나 빌 수 있잖아요.”

“그래, 그렇지.”

침상에서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

“너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생긴다면 너는 그 능력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니?”

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신나서 떠들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남자의 눈동자가 워낙 진지했던 탓일까? 이전부터 생각하던 것을 대답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의미 있는 삶?”

“네.”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이지?”

“그건…….”

나는 고민했다. ‘의미 있는 삶’이란 것의 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구는 성공에 가치를 둘 것이고, 누구는 돈에, 누구는 명예에, 누구는 자기 수양에. 100명이면 100명 모두 다 다른 대답을 하겠지.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제 소원이에요.”

그 대답에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착한 아이구나.”

“아, 아니에요. 그냥 생각만…….”

정말 기특하다는 목소리여서 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니?”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마리예요.”

“아니.”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난 너의 진실 된 이름, 진명(眞名)을 묻는 거란다.”

“……!”

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나의 진실 된 이름이라고?’

‘마리’는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내겐 그 누구도 모르는, 나 자신도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설마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은 투명하고 맑았다.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야. 내 정체는 아무도 몰라. 그냥 물어본 것일 거야. 하지만…….’

그때 남자가 말했다.

“신께 너의 소원을 빌어주고 싶구나. 너의 진실 된 이름을 말해다오.”

나는 한참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꺼내서는 안 될 이름이지만, 남자의 목소리에는 거절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있었다.

“모리나 드 브란데 라 클로얀.”

클로얀 왕국의 고귀한 핏줄, 모리나.

그게 바로 내 진실 된 이름이었다. 말을 꺼낸 나는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남자가 내 정체를 간수에게 밝히면 나는 곧장 체포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남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이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모리나, 예쁜 이름이구나.”

그는 마치 신부님이 하듯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흠칫 놀랐으나 그 손길을 피하진 않았다. 왜일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의 기도는 굉장히 짧았다.

“주의 종이 주께 바라옵니다. 이 소녀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주시옵소서. 나의 주께 간절히 부탁드리오니,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기도를 끝낸 남자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마치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나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마 오늘 돌아가면 다시 그를 볼 수 없으리라.

“평안히 쉬세요.”

병실을 나오니, 밖에서 대기하던 간수가 말했다.

“수고했다. 고생했어. 이제 오지 않아도 될 거야.”

늘 핀잔을 주던 간수였지만, 한결같은 내 태도에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잘해 주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간수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마지막 남자의 모습 때문일까? 괜히 마음이 심란해져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자, 마리. 빨리 자야 내일도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할 수 있어.’

간병이 끝났으니 이제는 다시 궁으로 돌아가 새벽 청소부터 시작해 온종일 고된 일을 해야 했다.

‘내일도 또 하루 종일 혼나겠구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하루 종일 꾸중을 들을 게 걱정이었다.

‘아까 전 남자에게 말했던 것처럼 일을 잘할 수 있었으면.’

나는 그런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잠들어서일까? 그날 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다른 나라 대저택의 하녀가 되는 꿈이었는데, 꿈속에서의 그녀는 나와 달랐다. 나처럼 구박받는 못난이가 아닌,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일 잘하는 최고의 하녀였다.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해, 마치 정말로 내가 꿈속의 그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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