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외전. 마태석과 한서윤 (4) (109/112)

#109화. 외전. 마태석과 한서윤 (4)2021.11.16.

#19. 사귄다니까.

“이게 뭐라고 병문안까지 와.”

태석은 진심으로 창피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호와 소란, 찬규와 연희, 나린과 성준까지 우르르 다 몰려왔기 때문이다.

“병원은 면회 인원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 퇴원할 때까지 기다린 거잖아요.”

연희가 야무지게 대답했다. 여기는 태석의 집이다.

“인원이 정해져 있으면 따로따로 오면 되는 거 아니야?”

“면회도 피곤한 일이에요. 선배님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여러 번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죠.”

“이건 괜찮고?”

어느새 사람들이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강호가 제집인 듯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고 내용물을 훑더니 딸기청과 탄산수를 꺼내 에이드를 만들면서 물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시끄러운 거 좋아하면서.”

“나 이제 조용한 거 좋아해.”

“퍽이나.”

소란이 딸기 에이드를 태석에게 가져다주면서 웃었다.

“저녁은 뭐 시킬까요? 이 동네는 뭐가 맛있어요?”

“피자. 여기 피자 잘하는 집 있……. 그게 아니라, 좀 이따 서윤이 올 거니까 너네 빨리 가.”

“형수님 오시면 뵙고 가야지, 버르장머리 없이 어딜 그냥 가. 형수님은 몇 시에 오시는데?”

찬규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저 형수님 소리가 전엔 마음에 걸리더니 이젠 흐뭇하기만 했다. 태석이 대단한 발표라도 하는 양 흠흠,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실은, 서윤이랑 나 진지하게 만나기로 했다.”

다들 관심을 보일 줄 알았더니 각자 뭘 꺼내 먹고, 흘린 걸 닦고, 창밖을 보고, TV 리모컨을 찾고 하면서 산만하기만 했다. 심드렁한 반응에 태석이 답답한 듯 말을 이었다.

“여보세요, 나 한서윤이랑 사귄다니까.”

“언젠 아니었어?”

나린이 아무렇지 않게 묻는 말에 태석의 마음이 다 상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받고 싶은데.

“그전엔 아니었고, 이제 진짜 사귀는 거라고.”

그 말에 찬규가 감탄했다.

“와, 찐사랑이네.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한 검사님 구하려고 칼까지 맞은 거야? 형 진짜 대박.”

그렇지, 이런 반응이 나와줘야지. 태석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대의 참사랑이란 게 말이다. 그냥 말로만 좋아한다 떠들어서 되는 게 아니고, 내가 이 사람을 위해 진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냐, 하는 그런…….”

“그래서 그 피자집 이름이 뭐야? 여기 랭킹 1위 하는 데야?”

찬규가 배달 어플이 뜬 휴대전화를 쑥 내민다. 태석의 참사랑에 대한 일장연설은 딱히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어, 여기 맞아. 일단 세트 중에서…….”

태석도 반사적으로 피자 메뉴를 보기 시작했고, 그의 모습에 강호가 싱긋 웃었다. 진짜 연인이 되었다니. 잘됐다. 정말 잘된 일이다, 하며. 나린과 성준 커플에 이어 태석과 서윤 커플에도 나름 지분이 있는 백강호였다.

  #20. 확실히 보낼 방법 피자 주문을 마치길 기다린 소란이 태석에게 말했다.

“서윤 선배님이랑 사귀시는 거, 정말 축하드려요.”

“아, 고마워.”

소란을 보는 태석의 마음이 더없이 산뜻했다. 접촉사고에서 박후만을 만나고 덜미를 잡으면서 사건이 끝까지 잘 마무리될 수 있었던 건 결국 소란을 좋아한다는 그의 착각 때문이다. 아니, 덕분에. 그 덕분에 삼 형제와 박 여사의 만행을 완벽하게 까발릴 수 있었고, 강호를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덕분에 서윤을 다시 만났고, 서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소란을 아끼던 마음 위로 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니, 감사한 일들로 보상받은 기분이다.

“다친 곳도 금방 나으실 거예요.”

“역시 우리 라니라니 말도 참 예쁘게 하…….”

“우리 라니라니, 그런 호칭은 이제 삼가야겠지.”

강호가 날 선 음성으로 잘랐다.

“그걸 한 검사님도 별로 좋아하진 않을 텐데.”

“아.”

오케이, 오케이, 태석이 수신호를 하며 끄덕였다. 서윤의 선배랍시고 누가 옆에서 ‘우리 유니유니 한서윤이’ 하면 굉장히 불쾌할 것 같다. 그제야 늘 도끼눈을 뜨고 절 바라보던 강호를 이해했다.

“그 칼잡이, 남홍구 의원이 보낸 거라면서요? 진짜 미쳤나.”

“왜 기사 한 줄이 안 나와? 어디 제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연희와 찬규가 격분했다. 사실 남 의원은 괴한을 보내 서윤에게 겁만 주려 했다. 험한 꼴 보기 전에 적당히 손 놓으라는 메시지만 줄 생각이었다. 검사에게 칼을 써봤자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저 위협만 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태석이 덮치는 바람에 칼을 쓰고 달아났고, 멀리 가지 않아 잡혀 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서윤이 바로 경찰에 연락해 달아난 경로와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체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사야 조만간 지겹게 쏟아질 거야.”

내 여자를 위협한 자. 태석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 의원이라. 확실히 보낼 방법은 있다. #21.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서윤이 퇴근하고 나오는 시각이다. 오늘은 태석과 함께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사할 집을 찾는 일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앞에 있던 검은 세단 뒷좌석 창문이 지이잉 내려갔다. 순간 서윤이 멈칫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얼굴을 아는 사람이 바로 그 안에 있다. 현재 총리 임명을 앞둔 마신준 전 시장이다. 인품이 훌륭한 건 물론이거니와 재산 문제도, 세금 문제도, 아들의 병역 문제도 모두 깨끗하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아주 가볍게 넘긴,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정치하는 사람으로 논란이 전혀 없을 순 없지만 대부분 정적들이 만든 루머였고, 그 누구보다 청렴하고 훌륭한 인물인 점엔 이견이 없다. 그런 거물이 제 앞에 있으니, 아무리 대범한 서윤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서윤 검사님.”

마 전 시장이 인자한 음성으로 그녀를 불렀다.

“마태석 애빕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윤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올 것이 왔구나. 서윤은 고개를 숙인 채 네, 하고 대답했다.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할 시간이다. #22. 무소의 뿔처럼 태석의 집에서 반대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네, 하고 물러서야 할까. 꿋꿋이 버텨내야 할까. 사실 몇 번이나 생각했다. 시작하는 상황에 그런 것부터 따져야 하는 게 서글프지만 그만큼 태석의 집안과 제 처지는 태양과 지구 사이만큼이나 멀기만 했다.  

“봤어? 마태석 아버지 청문회.”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더라. 다 까봐라, 하고.”

“말씀은 또 왜 그렇게 잘하셔. 화술이 진짜 세련된 분이지.”

“마태석이 그랬었잖아. 아버지의 가장 큰 오점이 자기라고.”

  법조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마신준은 점잖은 성품이다. 어디서 마태석이 왔나 다들 의아해했지만, 활력이 넘치는 기업가인 어머니 김윤주 대표를 보면 다들 그 피를 인정했다. 어쨌든 그 정도로 마신준은 존재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거물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자리를 옮긴 곳은 근처의 한정식집. 미리 연락해두었는지 안쪽 밀실로 바로 안내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태석이에겐 연락해뒀습니다. 이따 이쪽으로 올 겁니다.”

“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보자고 했는데요.”

“네, 말씀하십시오.”

서윤이 두 손을 모은 채 마 전 시장의 말을 기다렸다. 좋은 말로 할 때 우리 태석이 그만 만나요. 그런 얘기겠지. 그러면……, 성인으로서 저희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대답해야 하나……. 어떡하지. 저 때문에 금쪽같은 아들이 다치기까지 했는데. 그런데도 계속 만나겠다고 마냥 우겨도 되나. 어째야 하지……. 하아, 숨 막힌다……. 그때 마 전 시장이 입을 열었다.

“남홍구 그 개누무시키가 그랬다지요.”

너무나도 정중한 말투라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분명 개누무……, 어쩌고 욕 같은 말이 스친 것 같은데. 어쨌든 남홍구, 라는 이름은 정확하게 들렸기에 서윤이 대답했다.

“아, 네……. 피습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남홍구 의원이 보낸 자라고 합니다.”

“그 얼빠진 시키가 언젠가 일을 칠 줄은 알았는데.”

이번엔 똑똑히 들었다. 욕을 하신 게 맞다.

“한 검사님이 많이 놀랐겠습니다.”

“……아드님이 저 때문에 다쳐서, 죄송합니다.”

후우, 겨우 숨을 내쉬며 서윤이 답했고, 마 전 시장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들 다쳤는데 괜찮은 애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분노를 억누른 음성이다. 웃고 있지만 이를 가는 표정이다. 이로써 교제 반대는 더더욱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식 다친 아비 앞에서 원인 제공한 사람으로서 서윤은 기가 눌릴 수밖에 없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사죄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마 전 시장이 고개를 저었다.

“한 검사님이 미안해할 일이 아닙니다. 그건 다…….”

“…….”

“남홍구 그 개누무시키, 내 이놈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는 마신준의 품격을 가볍게 눌러버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남홍구를 잡아다가 사지를 찢어놔도 분이 안 풀리겠단 얼굴이다. 서윤은 매스컴을 통해 늘 인자한 마신준만 보다가, 자식 일에 이토록 감정이 들끓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친근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진짜 가깝게 여길 분은 아니지만.

“그래서 내가 찾아온 참인데, 한 검사님이 지금 하는 일들 말입니다.”

“아, 네.”

“상부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밀고 나가세요.”

“네?”

마신준의 용건은, 서윤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적당히 끝내라느니, 대충 손 떼라느니, 그런 말 다 무시하고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나아가란 말입니다.”

그동안 이번 사건 수사지휘와 공소를 두고 압박만 받던 서윤에게 단비처럼 반가운 말이다.

“잘못한 놈들이 벌은 안 받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궁리나 하고. 한심한 잡것들 같으니. 쓸어버릴 놈들 있으면 앞뒤 가리지 말고 싹 다 쓸어버려요. 그러라고 나라에서 돈 받는 거 아닙니까, 한 검사님.”

그는 남홍구를 비롯한 이들로부터 크게 덴 적이 있다. 워낙 지저분한 정치를 일삼는 이들이다. 이번 총리 후보자가 된 후로도 그 정적들의 공격에 몸살을 앓기도 했다. 맞서 대응하자니 똑같은 놈이 되는 것 같고, 당하고만 있자니 열불이 터지고. 결국 자업자득으로 파멸에 이를 날만 기다려왔다.

“그러니 한 검사님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서윤도 그러고 싶었다. 다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 많았다. 그런데 마신준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자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영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뭐, 한 검사님 뒤를 봐주고 백이 되어주겠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런 건 한 검사님 쪽에서 거부할 테니까.”

마신준은 서윤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덧붙였다. 서윤의 가슴에 한 자락 남은 찝찝함까지 전부 거두어주면서 말이다.

“내가 한 검사님 백이 되는 게 아니라.”

“…….”

“한 검사님이 내 백인 거죠.”

마신준이 다시금 인자하게 웃었다. 일개 평검사가 차기 총리의 백이라니.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마신준이 하니 진실처럼 들렸다. 그게 얼마나 큰 응원의 말인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마신준이 네, 하고 대답하기 무섭게 문이 드르륵 열리자마자 화사한 인상의 여인이 들어서며 대뜸 다다다 쏟아냈다.

“뭐야, 벌써 만나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늦게 오라 그런 거지? 당신 혼자 먼저 얘기하고 싶어서.”

뒤이어 들어오는 사람은 마태석이다.

“서윤이 긴장한 얼굴 좀 봐. 와, 진짜 아버지 너무하시네. 나한텐 7시까지 엄마 모시고 오라고 하셨으면서.”

마신준이 살짝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두 사람 있으면 어디 말할 기회나 있…….”

“아무리 그래도 당신같이 재미없는 사람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줘야지. 들어오자마자 딱 느껴지잖아, 이 경직된 분위기 어쩔 거야.”

“아버지가 원래 융통성이 없는 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 서윤이에게 엉뚱한 소리는 안 하셨으리라 믿어요. 자, 말씀해보세요. 무슨 얘기 하셨어요?”

이 모든 대화가 모자가 들이닥친 후 인사는커녕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서윤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마태석이 두 명 있는 기분이랄까. 두 배로 정신없고 시끄러운 느낌이다. #23. 나라는 내가 구했지. 식사를 마친 후 부모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태석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남홍구 의원 일은 아직 보도 전인데 어떻게 아신 거야?”

“내가 일렀거든.”

태석이 당당하게 고백했다.

“너 이렇게까지 어려움 겪게 하는데, 마침 아버지도 그쪽 파에 맺힌 게 많아서 아시면 가만히 계시진 않을 거거든. 봐봐, 바로 너한테 달려오셨잖아.”

“……보통은 이런 일, 부모님 걱정하실까 봐 숨기고 그러지 않나?”

“내가 왜? 안 그래도 아버지가 벼르던 인간인데. 나 다친 거야 어차피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야. 아실 거면 하루라도 빨리 아셔야지.”

하여튼 마태석, 사람 통해 일 해결하는 데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덕분에 서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고. 남 의원 측은 기존 죄목에 더해 검사를 상대로 테러를 가한 점, 수사를 두고 압박을 한 점 등까지 밝혀지며 큰 파장이 예고되는 바. 그야말로 그쪽도 자업자득이다.

“사실은, 너랑 내 사이 반대하실 줄 알았어.”

“반대? 반대를 왜 해?”

서윤의 말에 오히려 태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부모님과 함께한 자리가 비정상적으로 편안했는데, 태석이 묻는 말을 들으니 서윤은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게 왜. 나도 귀한 사람인데. 형편이 조금 어려웠을 뿐, 나도 귀하게 태어나 열심히 살아온 사람인데. 감정의 변화를 눈치챈 듯 태석이 운전대를 잡지 않은 오른손을 뻗어 서윤의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아마 네가 앞으로 우리 아버지께 많은 힘이 될 거야.”

“……정말 그럴까?”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엄마랑 같이 돈 쓰기 좋아하고 사람 모으기 좋아하고. 그러니 큰 뜻 품고 나가시려는 아버지가 엄마랑 나 때문에 많이 곤란하고 힘드셨거든.”

그렇다고 아버지 발목 잡을 정도로 방탕하게 산 건 아니지만, 돈 쓰는 스케일이 워낙 큰 모자다 보니 정적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물론 문제 삼을 정도가 아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무리 없이 올라가긴 했어도,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 할 일 천지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너라는 말에, 쌍수 들고 환영하시더라. 원래 너를 알고 계셨대.”

“나를?”

그건 몰랐던 이야기다.

“부산지검 있을 때 네가 그쪽 인사 몇이나 골로 보낸 적 있다며. 다들 손대기 까다로워하는 일이었는데 아주 잘해냈다고 아버지가 칭찬하시더라고. 나도 몰랐던 일들까지 쫙 꿰고 계시던데. 네 행보에 관심이 많으셨었나 봐. 아무래도 네가 당신과 결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서윤에게 너무나 현실적인 일이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 착실하게 걸어온 길 끝에 환한 빛이 드리웠다.

“엄마야 늘 아버지 편이고.”

“…….”

“나야 당연히, 네 편이고.”

태석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럼 세상에 우릴 반대할 사람은 없는데. 설마 네가 반대하는 거 아니지?”

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저를 웃게 하는 남자. 이보다 더 근사한 상대가 어디 있을까.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나라는 내가 구했지.”

아무래도 이 남자는 제가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무척이나 오랜 시간 마음에 품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제가 그보다 훨씬 더 애타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오랫동안 가슴앓이했던 마음을 보상받을 생각까진 없었지만, 착하고 사랑스러운 이 남자는 알아서 몇 배로 갚아주고 있다.

“그래, 나라는 네가 구한 걸로 하자.”

서윤의 쿨한 인정에 태석이 기분 좋은 듯 그녀의 손등을 가져가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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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 밖 한강을 따라 반짝이는 불빛이 참 아름다웠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마음도, 참 아름다웠다. 이제껏 몰랐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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