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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아침에 헤어지기 싫은 신혼부부 (68/112)

#68화. 아침에 헤어지기 싫은 신혼부부2021.06.26.

- 그러니까 꼭 오셔야 합니다.

그제야 성준은 알겠다는 듯 되물었다.

“혹시 집들이 음식 때문이야? 내가 가서 할까, 아니면 미리 준비해 갈까?”

자연스레 묻는 말에 상대방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준이 건넨 말이 미안한 마음이라도 드는 듯이.

- 음식 부탁드리려고 모시는 거 전혀 아닙니다. 음식은 제가 알아서 준비할 예정이니 형님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매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싶다. 전에도 강호는 제게 식당 일만 하는 것이 답답하지 않냐고 물은 적 있다. 대외활동이 전무한 자신을 걱정해 사람들이 많이 오는 자리에 일부러 초대해주는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고마워서라도 얼굴은 비추고 와야겠다. 혹시 소란이 바쁘면 좀 도와주기라도 할 겸.

“그래, 주말이랬지? 시간 알려주면 갈게.”

- 네, 1시에 오시면 됩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혼한 동생에게 집들이 초대를 다 받고, 기분이 묘했다. 소란이 강호를 만나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뿌듯했다. 성준은 다시 노트북을 펴고 아까 하던 작업을 이어 했다. 혼자 요리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 몇 달 사이 제법 익숙해졌다. 작업을 마무리한 그가 사이트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와…….”

잠시 후 확인하니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조회수가 믿기지 않았다. ‘준의 부엌’. 사이트에 영상을 올리며 SNS도 시작한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겨우 두세 자리에 머물던 조회수는 이제 영상을 올릴 때마다 수십만 단위를 거뜬히 넘겼고, 구독자 수 역시 무서운 기세로 상승 중이다. 2주 전 올린 콘텐츠 하나가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덕분이었다. 그 영상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지금껏 올라온 다른 영상들까지 정주행을 시작하며 채널 전체가 탄력을 받아 성장하고 있다. 유별나게 대단한 영상은 아니었다. 겨울 간식이라는 콘텐츠 아래 고구마 맛탕부터 호떡, 붕어빵, 팥죽을 만들고 세팅하는 모습까지 찬찬히 담아냈을 뿐이다. 일반적인 레시피 전달용 영상보다는, 감성적인 분위기에 잔잔한 느낌이 마치 영화에 가깝다는 평이다. 여기에 좋은 재료를 골라 손질하는 모습과 간식 하나까지 제대로 만들어내는 요리 실력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에 댓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팥죽 쑤는 영상을 내가 스무 번째 보고 있을 줄이야.] [호떡 누르개 쥔 손은 왜 저렇게 예뻐. 보기만 해도 탈모가 낫는 기분.] [이거 제목 바꿔야 할 듯. 올겨울 붕어빵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어이없네. 고구마 튀기는 소리가 이렇게 힐링일 일이야?] [맛탕 이대로 만드니까 진짜 맛있음. 영상미에 가려졌는데 곳곳에 꿀팁 천지. 님들 모해 주접만 떨지 말고 빨랑 만들어 잡숴봐.] 영상에 성준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았다. 요리하는 몸은 상반신 위주로만 나왔고, 대부분의 설명은 자막으로 대체했다. 간간이 그의 음성으로 내레이션을 덧붙였는데 그게 또 반응이 폭발적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온몸에서 뿜어내는 ‘잘생긴 기운’은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저 손은 분명히 잘생긴 손이다. 목소리마저 잘생겼다. 이건 우주가 보증 서는 미남이다. 우리 준 님은 뼛속까지 미남이다, 그런 댓글이 대세였다. 이쯤 되면 반응이 부담스러워서라도 죽을 때까지 얼굴은 못 나오겠단 의견이 이어졌다. 이후로 준의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그의 요리와 보이지 않는 잘생김을 찬양하는 댓글들이 위트 있게 이어졌다. 차분하고 서정적인 영상과는 대조적으로 다소 경망스러운 댓글들이 의외의 케미를 일으키며 ‘영상맛집’, ‘감성요리맛집’, ‘댓글맛집’이라 소문나기 시작했다. 영상뿐 아니라 댓글까지 볼거리의 하나로 자리 잡으며 ‘준의 부엌’ 채널은 점차 인지도가 높아졌다. 시작이 이럴진대 앞으로야 말해 뭐 할까. 그가 사진을 업데이트하는 SNS 팔로워 수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다이렉트 메시지로 여러 업체에서 협력 제의도 왔다. 조그마한 밥집 주방 안에서 손님을 위한 상을 차려내던 성준에게 새로운 날들이 펼쳐진 것이다.  

“거봐요. 내가 뭐랬어. 잘될 거랬죠.”

  그녀의 목소리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나린의 말이 맞았다. 당시 그녀가 알음알음으로 식당에 찾아온 손님들에게만 선보이긴 아까운 솜씨라며 인터넷을 좀 이용해보라 했을 때, 성준은 뒷걸음질 쳤다.  

“식당이 알려지는 건 원치 않아서요. 지금보다 바빠지면 소화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라서.”

“식당을 홍보하라는 얘기가 아닌데. 성준 씨가 품고 있는 그 많은 콘텐츠를 세상에 꺼내 보이라는 거예요.”

  그녀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눈으로 말했다.  

“성준 씨 음식을 먹고 누군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좋다면서요. 그러면 되도록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따뜻해지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내내 차갑게만 보이던 모습과 영 딴판이었다. 그녀의 안에 숨겨진 열기가 뜨겁게 전해졌다.  

“그게 고부가가치예요. 성준 씨의 주방을 좀 더 넓은 세상으로 확대하는 일. 같은 노동 강도로도 훨씬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일. 그게 지금 온라인에선 가능하다고요.”

  갑작스럽게 그녀와 멀어진 후에는 마음이 허해 견딜 수 없었다. 제대로 연애를 한 것도 아니면서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조금 바빠져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게, 그녀가 권했던 온라인 활동이었다. 보름이 넘게 책을 보고 검색하고 강의도 들으며 공부했다. SNS를 개설하고, 사이트에 첫 영상을 올렸을 땐 빈 벽에 대고 떠드는 기분이라 쓸쓸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쌓여가는 반응이 흥미롭기도 했다. 무엇보다 점심 장사로 그치는 식당 외에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더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소란의 결혼식이 있던 12월 초 이후로는 더 자주 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동생을 보내고 혼자 있으니 더욱 집중할 수 있었기에 크지 않은 반응에도 성준은 성실히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딱 1년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연말 즈음에 올렸던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가 수백만에 이르며 반응이 빵하고 터져 지금에 이르렀다. 석 달 만에 달라진 일들이다. 협찬과 출간 제의, 협업 제안이 오기도 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조건으로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워 모든 걸 고사하는 중이다. 다만 제 요리와 세상 사이에 단단한 끈이 새롭게 엮인 기분이라, 성준은 모처럼 설렜다. 다리를 다쳤던 십 대. 학업을 접고 식당 주방에서 보냈던 이십 대. 본의 아니게 큰 세상과는 단절된 상태로 보냈다. 흘려보낸 시간에 후회는 없지만 조심스럽게 시작한 소통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사실이다. 절 따스하게 보듬어주었던 어머니의 요리가 바탕이라 더욱 기뻤다. 자신의 요리를 매개로 온라인상으로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또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이는, 역시 나린이다. 그녀는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요즘은 여기 반찬 아니면 밥을 못 먹겠어요. 좀 팔아보는 게 어때요? 나한테만이라도.”

  한때 식당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녀다. 얼마 전 소란의 병원에서 마주쳤을 때, 잘 지냈냐고 묻지 말고 밥은 먹었냐고 할 걸 그랬다. 밥 먹었냐고. 나 없이, 괜찮냐고.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헛웃음이 밀려 나왔다. 가당키나 한 사람인가. 그녀에겐 제 존재 자체가 부담일 텐데. 그래서 먼저 선을 그었던 것도 바로 자신이었는데. 붙잡지 않는 그녀가 야속하지도 않았는데. 이제 와 뭘. 대체 뭘 어쩌려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그리움은 제 것이다. 오롯이 제 것이어야만 했다. 그녀에게서 먼저 돌아선 벌은 그걸로 충분할 거라, 성준은 생각했다. ◇ ◆ ◇ 주말이 지나고 출근하는 길. 소란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목요일에 퇴근할 때와 월요일인 지금 출근하는 자신은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 살면서 보낸 가장 특별한 주말, 그와는 진짜 부부가 되어 있었다. 강호의 차가 로펌에 다다랐다. 그는 운전대를 잡지 않은 오른손으로 여전히 소란의 손을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도착했는데.”

소란이 조심스레 하는 말을 못 들은 체하며 그는 엄지로 가만히 그녀의 손등을 문질렀다. 살이 닿아 비벼지는 느낌이 아찔하다. 겨우 손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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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싫다.”

낮은 음성이 열기에 휩싸여 있다. 차에서 내리기 싫은 건 소란도 마찬가지였다. 뜨겁게 보낸 첫 주말의 후유증이 너무도 깊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부부들이 이러려나. 생업의 현장으로 다들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발이 안 떨어지는데.

“이따가 외근 나갈 때 차 없어서 또 불편한 거 아닌가.”

강호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하고 그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탄 건 소란의 선택이다. 최대한 그와 오래 있고 싶었다.

“괜찮아요, 택시랑 지하철 타면 되니까. 오늘 외근은 많지도 않고.”

“외근용으로 차 한 대 보내줄까. 기사 붙여서.”

헐.

“아이고, 아닙니다.”

출퇴근은 남편이 시켜주고, 외근은 기사 딸린 차량으로 한다니. 팔자가 좋아도 탈이 날 만큼 좋은 거 아닌가. 외근용 차량 운용비와 기사 월급을 합치면 제 월급과 별 차이도 없을 텐데,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돈 지랄인지. 다만 한 기업을 이끄는 그가 계산에 취약한 것도 아닐진대 스스럼없이 차를 보내겠다고 하는 걸 보니, 결국 강호에게 그 정도는 합리적인 교통비 수준이란 것이다. 어쏘 변호사의 월급은 귀엽게만 보일 테고. 그와 사는 세계가 이렇게나 달랐음을 실감하니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제 차로 출퇴근할게요.”

안타깝지만 함께하는 출퇴근은 오늘로 끝내야겠다. 그를 너무 사랑하고, 별도 달도 따주겠다는 마음 역시 고맙지만 지금의 자리는 소란 스스로 만들어냈다. 자신의 대단했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고 싶지 않고, 쉽게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강호는 손을 놓고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렇게 해.”

네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그녀의 말을 존중해 수긍하던 강호가 입을 열었다.

“음, 혹시 이건 어떨까.”

“뭔데요.”

“네 차는 회사에 주차해둬. 출퇴근은 지금처럼 나와 함께하고. 외근 나가야 할 땐 회사에 주차해둔 차를 이용하면 되는 거지.”

“오, 좋다.”

소란이 손뼉을 짝 치며 웃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나랑 이렇게 계속 출퇴근 같이하는 거.”

행여 그가 귀찮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아무래도 시간을 맞춰야 하니 번거롭게 느껴질 텐데.

“너만 좋으면 나야 당연히 괜찮지.”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넘칠 만큼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쪽으로든 행복한 건 분명했다. ◇ ◆ ◇ 밤에 헤어지기 싫은 연인이 결혼을 결심한다고 하던가. 그럼 아침에 헤어지기 싫은 신혼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소란은 겨우겨우 그의 차 조수석 시트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잡은 손을 놓는 건 또 어찌나 힘이 들던지. 물론 짙은 윈도 틴팅을 믿고 짧지만 깊은 키스도 나누었다. 어쨌든 붙이고 있던 모든 걸 떼어내기란 심장을 뚝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이제 정말 헤어져 서로의 일터로 향할 시간이다.

“들어가.”

강호가 조수석 차창을 내렸다.

“먼저 가요.”

“들어가는 거 보고.”

“출발하면 들어갈게요.”

오늘 그는 안에 받쳐입은 셔츠 위로 자신이 골라준 타이를 매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지난 주말 터틀넥을 입은 데 이어 큰 거부감 없이 타이까지 맨 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그래서인가. 차가울 만큼 깨끗한 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더 멋있다.

“아님 동시에 갈까요?”

기어이 하나, 둘, 셋, 하고 헤어지게 생겼다. 그 정도 유치한 행동엔 면역이 없는지 결국 강호가 백기를 들었다.

“그만 들어가. 갈 테니까.”

소란이 고개를 끄덕였고, 차창이 부드럽게 올라갔다. 이내 그의 차가 대로로 진입했다. 잘 가요, 잘 가. 소란은 애틋한 눈빛으로 강호의 차를 떠나보냈다. 퇴근만 간절히 기다리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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