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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나 좀 제발, 그다음 (64/112)

#64화. 나 좀 제발, 그다음2021.06.12.

난 어제 못 잤는데. 오늘은 너도 못 잘 거야.

“내가 안 재워.”

그의 말속에 숨은 의지가 결연하다. 들춘 파자마 안으로 천천히 등허리를 문지르는 손길과 달리 입술은 단숨에 포개졌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왔다. 눈이 나풀나풀 내리기 시작했다. 불을 밝히지 않은 채 드레스룸과 침실의 간접조명만으로 밤을 맞이하는 순간. 입술이 맞물리며 질척이는 소리가 뒤엉켰다. 가장 예민한 살덩이가 안쪽에서 휘감기자 소란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녹아버릴 것 같다. 그녀는 견디기 위해 팔을 뻗어 그의 목을 안았다. 자연스레 강호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움켜쥐었고, 꽤 자극적이었는지 그가 입술 사이를 벌리고 파고드는 움직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반응과 반응이 얽히는 일이다. 한쪽만 안달 나서도 안 되고, 한쪽이 무감해도 안 되었다. 부싯돌의 철과 석영처럼 동시에 부딪쳐 발화되어야 비로소 열기가 피어오른다. 서로를 향한 갈급한 욕망이 마침내 폭발했다. 키스하면서도 그녀의 등과 허리를 손으로 쓸어 만지던 손이 앞으로 돌아왔다. 옷 속의 늑골 보호대가 건드려지고 그 위로 봉긋하게 부푼 살을 가만히 움켜잡자,

“흣…….”

소란에게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아픈가.”

그가 입술을 깨물 듯 머금으며 묻는 말에 소란은 부인했다.

“아니, 아니요.”

숨이나 한번 내쉬려는데 쉽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떨려서.”

후우.

“……떨려서 그래요.”

“나도 그래.”

거짓말.

“……나도 떨려.”

전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떨린다고 했다. 무섭게 느껴질 만큼 싸늘한 눈매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눈 밑이 조금 붉은 것도 같다. 물기로 잔뜩 젖은 저 입술이 방금까지 저와 키스하던 것이라니 현실감이 없었다.

“아프면 팔을 때려.”

갈비뼈든, 다른 어디든, 아프면 안 되니까.

“아프게 하려고요?”

“어떻게 느낄지 모르잖아.”

평소보다 현저히 가라앉은 음성이 지독히 섹시했다.

“그러고 싶진 않지만.”

간신히 건네는 경고이자 마지막 배려라는 듯, 아프면 팔을 때리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소란의 파자마 단추를 풀었다. 느릿한 움직임에 오히려 소란의 입이 바싹 말랐다. 포장을 풀 듯 윗단추를 몇 개 풀어내 어깨로 펼쳐 내렸다. 오프숄더 블라우스처럼 소란의 팔에 걸쳐 내려진 파자마는 상체를 드러나게 했다. 선이 고운 어깨부터 팔까지,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열기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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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옷 안 탐스럽게 꽉 담긴 맨살에 그가 입술을 눌렀다. 소란의 등이 전율에 휩싸였다.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기에 고개를 뒤로 젖히자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게 틈을 내준 셈이다. 그간의 키스는 절제의 산물이었을까. 이 순간의 그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굶주린 짐승 같다. 이제야 먹잇감을 손안에 쥔 듯 거세게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격정적이었다.

“하…….”

순식간에 옷가지가 헤쳐지는 동안 소란은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녀 역시 내내 기다렸으니까. 어둑한 사위에 미약한 빛만이 어렸다. 남자의 다리 위에 앉은 채로 맨살이 공기에 닿는 느낌은 지극히 생경했다. 그가 티셔츠를 위로 벗어내 바닥으로 툭 떨어뜨렸다. 넓게 펼쳐진 어깨와 생각보다 두툼한 몸통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수차례 봤던 몸이지만 균형이 완벽한 근육은 봐도 봐도 감탄스러웠다. 다만 그 품에 갇힌 지금이 위험하게 느껴질 뿐. 맹수에게 사로잡힌 연약한 생명체가 된 듯하다. 그에겐 겨우 한 줌도 안 될 듯한 섬섬한 존재. 몸이 닿아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 전반적으로 낯설다. 보기 좋게 탄탄하고 거대한 몸은 막상 받아들이기 버거울 게 분명한데.

“자, 잠깐.”

저지해봤자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소란은 질주하는 차량 앞에 방지턱을 놓았다.

“저 아직 환자예요.”

지레 겁먹고 하는 말. 그는 말랑한 살에 입술을 눌러 찍고 욕심껏 만끽하며 답했다. 방지턱 앞에서도 속도를 늦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부우우웅, 거침없이 달려 나가면서도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알아.”

“아는데…… 읏.”

“조심할게.”

거짓말. 몰입하면 잊을 거면서.

“보호대 풀지 마.”

보호대 위를 쓰다듬는 손길은 꽤 정성스러워 믿어달라 말하는 것 같았다. 자제할 수 없게 될까 봐. 혹시 정말 잊게 될까 봐. 강호는 가슴 밑을 감싼 보호대만은 남겨주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옷가지를 두고 몸에 보호대만 남아 있는 게 왠지 더……, 좀 그런데……. 이게 더 야하잖아. 흑. 소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자신을 가뿐히 안아 올렸다. 공중에 붕 뜬 채 옮겨지는 순간에는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대단한 팔과 허리에 서린 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드레스룸에서 나와 침대 앞에 선 그는 소란을 내려놓았다. 거추장스럽게 남은 옷들을 벗어낸 강호가 그녀의 위를 점령했다. 소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토록 색정적인 밤의 분위기는 처음이다. 침대로 온 후의 그는 광포하게 날뛰는 맹수의 본능을 짓누른 채 소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을 들였다. 천천히, 느릿느릿. 오히려 그게 더 자극적이다. 시간을 두고 먹어치우는 편이 훨씬 맛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정찬을 즐기는 듯 여유가 넘치는 속도와, 적나라한 입술의 움직임은 서로 이율배반적이다. 한 침대에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그는 손쉽게 해내었다. 당장이라도 뜨거운 안쪽 깊숙이 파고들어 마음껏 탐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오직 강호만이 아는 것이다. 기어이 소란이 입술을 깨물고, 여린 손으로 시트를 틀어쥐고, 발가락 끝이 동글게 말려 애원하듯 울먹일 때까지 기다려냈다.

“제발. ……제발요.”

“제발, 뭘.”

탁해진 음성이 귓가를 적셨다. 소란은 그의 굵고 단단한 팔을 꽉 붙들었다가 다시 목을 끌어 제게로 당겼다. 안달 난 마음에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전부로 남았다.

“알잖아…….”

알면서 그래. 원망스러운 마음에 탓이라도 하듯 팔을 찰싹 치자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그만하라는 신호인가.”

아프면 팔을 때리라고 했지.

“아니, 아니라고…….”

아닌 거 알면서. 뭘 원하는지도 다 알면서.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천연스러울까. 나는 이 품에 갇혀 딱 미치겠는데.

“그럼?”

눈물 맺힌 눈가가 사랑스럽다는 듯 그가 입술을 대며 물었다. 뺨, 입술, 귓가, 목, 어깨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시 제 것이라는 인장을 남기듯 천천히 입술을 찍어눌렀다.

“제발……. 하아, 나 좀 제발…….”

“나 좀 제발, 그다음.”

그녀로 하여금 먼저 매달리며 사정하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100퍼센트 달성이다. 소란은 그를 꽉 안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귀에 속삭였다. 사귀기도 전에 대표님 몸을 원한다고 했던 당돌한 발언과는 비할 수 없이 높은 수위의 말을. 강호를 제 안으로 거침없이 당기는 말을. 뜨거운 밤의 본 게임으로 들어가는 말을. 결국 소란의 입술로 받아내었다. 그녀를 달구며 느리게 지피던 불은 순식간에 화르르 번져나갔다. 그가 더 이상 견딜 이유는 없다. 소란이 원하는 순간. 아니 원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 정확히 그 순간에 거친 해일처럼 덮쳐들었기에 말도 못 할 충족감으로 온몸이 뒤흔들렸다. 간절하게 애원했던 그 지점이 맞아떨어졌으니 폭발열이 상당했다. 소란 혼자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널, 얼마나.”

몰아쉬는 숨에 떨림이 배어 있다.

“이렇게 안고 싶었는지.”

모르지. 너는 모르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엉망으로 흐트러진 얼굴까지 미치게 예쁘다는 걸, 너는 정말 모르겠지. 그녀의 깨문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열었다.

“참지 마, 소리.”

여린 빛무리가 그녀의 살결 위로 맺혔다. 몰아치는 동작에 빛이 흔들렸다. 붉은 입술을 베어 물고 빛무리를 손 가득 넣어 뭉갰다. 유려하게 치는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가 눈을 꽉 감았다.

“떠.”

“흐응…….”

“나 봐야지.”

서늘한 음성으로 다정한 척해봤자 소란이 속진 않는다. 모든 걸 눈에 담고 싶다. 야하게 흩어지는 소리까지 모조리 입에 담고 싶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그녀는 최소한의 부끄러움까지 기어이 날리게 하는 강호가 얄미운 듯 말했다.

“못됐어……. 진짜.”

그녀가 눈물 맺힌 눈으로 올려보았다. 분한 모양인데 그게 왜 그렇게 또 예쁜지.

“더 못되게 굴 건데.”

“……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잔뜩 풀어진 얼굴로 반말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침대에서의 소란은 그를 폭주하게 했다.

“그래, 더.”

“지금보다 더……?”

강호는 말없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갈라진 등 근육은 소란을 품은 채 거칠게 일그러졌다가도 다시 부드럽게 풀어졌다. 끝까지 몰아붙이는가 싶다가 숨 쉴 틈을 내어주었다. 그러다 침대 옆 협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소란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여기 그런 게 왜…….”

난데없이 서랍에서 나타난 피임 용구에 그녀가 놀랄 수밖에 없다. 이곳 1층 침실은 자신이 쓰던 곳인데. 저런 걸 넣어둔 기억은 없는데. 여유롭게 착용한 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숨이 막힐 듯한 소란에게 들려온 소리.

“내가 넣어놨어. 필요할 것 같아서.”

침실을 세팅하면서 벌써 마련해두었다니. 이 남자의 준비성에 감탄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폭탄을 안고 있었던 것도 확실하다. 오늘 밤 분위기에 이끌려 어쩌다 이뤄진 일이 아니란 것도, 호시탐탐 기회를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것도,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도, 소란은 전부 다 알게 됐다. 이로써 하늘을 수놓은 불꽃은 거세고 화려했으며, 그 아름다움은 오래오래 격하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섬광처럼 사라졌다. 깍지를 꽉 낀 두 손이 젖었다. 바르르 튕겨 오른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한참이나 몰아서 내쉬는 숨이 여전히 뜨거웠다. 소란은 마법에서 풀린 기분이었다. 가쁜 호흡 끝에 돌아오는 정신이 못내 민망해 소란은 스윽 일어나려 했다.

“어디 가려고.”

“먼저 씻으…….”

단숨에 몸이 당겨졌다. 뒤에서 꽉 끌어안은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내뱉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아닌데? 분명히 끝났는데? 소란이 어리둥절해 돌아보려는데 그의 몸이 뒤에서 뭉근히 눌렸다. 그는 건재했다. 이렇게 금세?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놀란 그녀가 바르작거렸지만 가둔 품은 여전히 단단했다. 하하……. 소란은 말없이 웃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정말 많이 참았거든.”

마늘과 쑥만 먹고 견디기 힘들어 도망간 호랑이는 필시 그의 조상이 아닐 것이다. 옆 동굴에 인내하고 또 인내하여 기필코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호랑이가 있었다면, 바로 그의 핏줄일지도.

“겨우 시작인데, 이렇게 가면 안 되지.”

“아니, 그냥 좀 씻으려는 것뿐…….”

“씻으면서도 해도 상관은 없어.”

“네?”

“아니면 그냥 여기에서?”

무슨 선택지가 겨우 그거 두 개뿐이냐고 항의하고 싶다. 그러나 신랑에겐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첫날밤이다. 소란이 지칠 틈 따위는 주지 않았다. 한번 내뱉은 말은 칼같이 지키는 그는 오늘 밤 안 재우겠다던 다짐을 무리 없이 실행에 옮겼다. 더 못되게 굴 거라는 말까지도. 그의 일언은 중천금이었다. ◇ ◆ ◇ - 밤사이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수도권 일대가 마비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아직 눈이 그치지 않아 출근길 혼잡이 예상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이윤수 기자 연결해보겠습니다. - 네, 이윤수 기잡니다. 새벽부터 곳곳에 사고가 빈발한 데다 수습이 늦어지는 곳이 많아 현재 수도권 전역으로 교통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폭설에 한파까지 겹쳐……. 밤새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거실 통유리창 앞에 서서 정원을 바라보는 소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벽에야 둘 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그녀는 방금 일어난 참이다. 그가 혹시 깰까 봐 조심조심 침대에서 빠져나온 소란은 일부러 거실에 있는 욕실에서 몸을 씻었다. 욕실에 걸린 얇은 배스로브만을 입고 나온 그녀는 옷을 가지러 드레스룸이 있는 침실로 향하던 길이다.

“눈이 대체 얼마나 쌓인 거야.”

바깥 풍경을 보자마자 놀라서 틀어둔 거실의 TV 뉴스에선 연신 폭설로 인한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정원의 등이며 나무, 오두막까지 뒤덮인 눈은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아 그야말로 순백의 절경이다. 오두막이 안 무너진 게 다행인가. 물론 그 정도로 허술하게 만든 건 아니겠지만. 폭설로 인한 혼돈과는 멀리 떨어져 미지의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하긴. 밤새 내린 눈 만큼이나 이 신혼집의 밤도 꽤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품에서 절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협탁 속 서랍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고, 그의 체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난스레 “강호 씨는 몸도 좋고, 잘하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이었다. 아니, 누가 무엇을 상상하든 직접 경험해본 자신이 말하건대, 무조건 그 이상이다. 쾌감에 치달으면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지쳐 죽을 듯한데도 그에게 안기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제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중에 강호가 “보약 먹자.” 했던 건 꿈이 아니겠지. 내 남편 너무 무서운 거 같아……. 이제 까불지 않을게요……. 그때 마침, 로펌으로부터 재택근무를 권고한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급하지 않은 상담이나 일정은 모조리 취소하고, 자택에서 가능한 업무 위주로 소화하라는 내용이었다.

“와아, 심하긴 심하구나.”

소란은 오늘 재판이나 급한 외부 미팅이 없어 다행이다. 기업 자문 건과 전자 소송에 관한 업무만 집에서 처리하면 될 것 같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주말까지 보내고 나면 상황은 조금 나아지겠지.

“읏.”

소란의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이 터졌다. 그가 조심해준 덕분인지 늑골 쪽은 크게 아픈 느낌이 없다. 늑골 보호대 역시 일찌감치 풀어 침대 옆 바닥에 떨어뜨렸는데도 괜찮았다. 그러나 온몸이 다 욱신거렸다. 밤새 무리를 한 건 분명했다.

“그래도 눈이 와서 다행이네. 출근 안 해도 되니.”

폭설이 나를 돕는구나. 그때 커다란 몸이 뒤에서 저를 안았다. 그를 기억하는 소란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극한의 쾌락과 격심한 피로 사이 어디쯤에서.

“일어났어요?”

“음…….”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배스로브만 입은 소란을 뒤에서 바짝 끌어안은 채 그녀의 정수리에 뺨을 기울여 대었다. 이제 막 잠이 깬 맹수의 낮은 음성이 느른하게 흘러나왔다.

“오늘 출근을, 안 한다고.”

혼잣말을 들은 모양이다.

“아아, 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나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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