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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성준의 두 엄마 (60/112)

#60화. 성준의 두 엄마2021.05.29.

  성준의 부모님은 일찌감치 이혼했다. ‘산후 우울’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도 않은 옛날이었다. 다들 아기 낳고 잘만 키우는데 뭐가 힘드냐는 말로 감정을 짓누르던 시대였다. 그러나 성준의 아버지는 본래 자상한 인품이라 아내의 감정기복을 최대한 공감하고 이해하며 살피려 했다. 출퇴근하면서도 새벽과 밤에 집안일을 해놓고 저녁과 주말엔 무조건 아기를 데리고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노력조차 역부족이었다. 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친어머니는 핏덩이나 다름없는 성준을 보면서 때때로 분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산후 우울’의 선을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다.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예쁘게 꾸미고 다녀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분노는 극에 달했다.

“널 괜히 낳았어. 내 인생이 망가질 것도 모르고.”

아기를 눕혀놓고 폭언을 퍼부어댔다. 배고플까 봐 젖을 물리다가도 힘껏 빠는 아기의 입 힘에 성질이 나서 휙 떼어내버리기도 했다. 물려서 피가 맺힌 가슴은 아프기만 한데 으아앙 우는 아기가 꼴 보기 싫어 이불을 덮어버렸다.

“시끄러워. 그만 좀 울어!”

낳았다고 저절로 모성이 생기는 건 아니다. 남편이 잘해준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녀에겐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남편과 아기의 존재가 절 갉아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산하고서야 제게 이 길이 맞지 않는 걸 깨달은 게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요새 힘들다며? 나랑 스트레스 좀 풀러 갈래?”

“어딘데?”

“가보면 알아. 내가 특별히 데려가주는 거야. 아무나 못 가거든.”

그즈음 친어머니가 지인을 따라 발을 들인 곳은 불법도박 업장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대단한 분위기도 아니다. 그저 커튼만 내렸을 뿐인 멀쩡한 집 안에 가볍게 화투를 치듯 삼삼오오 모여 있을 뿐이다. 뭔가 잘못된 걸 느끼고 곧장 발길을 돌렸어야 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선뜻 들어선 그곳에서 신세계를 맛보았다. 도박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성준의 친어머니는 대기업에 사원으로 재직 중인 아버지가 월급을 받아 오는 족족 노름판에 갖다 붓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겐 거짓말을 일삼았다.

“오늘은 기분이 괜찮아 보이네. 어디 다녀왔어?”

“애 데리고 공원 한 바퀴 돌았지.”

“잘했어. 바람도 쐬고 그래야 기분도 좋으니, 외출 자주 하고 그래.”

남편이 안심하여 회사 일에 전념하자 그녀는 더욱 대담해졌다. 남편의 이름으로 친지들에게 돈을 꿔서 가져가기도 했다. 푼돈이 목돈이 되어갔다. 아직 기기만 하던 성준을 업고 하우스에 앉아 있는 날이 태반이었다. 성준이 걷기 시작한 후로 데려가기 힘들어지자, 집 문을 잠그고 아이를 혼자 둔 채 나가기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위험한 일이지만 도박에 정신이 팔린 그녀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리 없다. 돈이 떨어지고, 빚은 잔뜩 지고, 더 이상 그곳에 마음대로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또 빚을 내 돌려 갚았지만, 점점 그마저 어려워졌다. 궁지에 몰린 처지를 비관하다 성준을 때리기 시작했고, 비틀린 감정을 그렇게 발산하곤 했다. 처음에는 안 아플 정도로 기저귀 찬 엉덩이를 팡팡 치거나 머리에 꿀밤을 때리다가, 점점 과격해졌다. 나중엔 몸이 붕 뜰 정도로 팔을 잡아당겨 팍 팽개치거나, 안아달라 다가오는 아이를 거칠게 밀치기도 했다. 학대가 더 심해지기 전에 성준의 아버지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몸에 든 멍이 친어머니의 짓이라니.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참담했다.

“잘못했어. 내가 고칠게. 응? 내가 더 노력할게. 나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친어머니는 엉엉 울며 잘못을 고했다. 빚은 성준의 아버지가 어떻게든 갚아나가기 시작했고, 친어머니한텐 도박 치료와 심리 치료를 받게 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도루묵이 되곤 했다. 어쩔 땐 성준을 위협하다가 어쩔 땐 또 껴안고 울었다. 어린 성준은 극과 극을 달리는 엄마의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두려웠다. 제법 오랜 시간을 노력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다. 아버지는 회사에 다녀야 하니 친가에서 머물며 조부모 손에 맡겨 성준을 키웠고, 친어머니는 자주 찾아와 패악을 부렸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아들 얼굴도 마음대로 못 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면접교섭권이라는 게 있어. 만날 수 있는 날을 정해놨잖아.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애가 혼란스러워한다고.”

그 무렵 성준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도장 앞에 죽치고 있다가 조부모가 보이지 않으면 성준을 끌고 가기도 했다.

“엄마 인생 망하게 해놓고 너는 아무 생각이 없니? 세상에 태어난 게 미안하지도 않아? 엄마한테 어떻게 보상할 거야, 어?”

아들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스스로 망친 인생을 두고,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해서다. 함부로 성준을 끌고 가고, 폭언에 폭행을 또 일삼기도 했다. 결국 성준의 조부모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성준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찰나의 틈을 노리며 달려드는 간악한 친어머니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성준아. 이제 우리 둘이 살자.”

“둘이서? 아빠 회사 가면 나는 어떡해?”

“아빠 이제 회사 안 갈 거야.”

“정말?”

“그래. 성준이랑 같이 있을 거야.”

“계속?”

“응, 계속.”

아버지는 퇴직했다. 성준을 데리고 이전에 살던 동네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게 은부동이었고, 이때 성준의 나이 일곱 살이었다. 새로 이사 온 곳에 서점을 차리고 성준과 내내 붙어 있게 된 후에야 아버지의 나날도 조금은 평온해졌다.

“아빠하고 계속 같이 있으니까 좋아.”

성준도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너 예전에 태권도 좋아했잖아. 이 동네에도 도장 있던데, 한번 가볼래?”

“아니, 싫어.”

성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선가 엄마가 나타날 것만 같아 무서웠다. 유치원도 가지 않고 내내 서점에서 아버지 옆에만 있으려고 했다. 그러다 여덟 살이 되었다. 초등학교는 가야만 했다. 아버지가 성준이 하교할 시간이면 늘 학교에 데리러 왔지만 가끔 일이 생겨 못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깨에 멘 가방을 두 손으로 꽉 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힘겹게 집으로 향하곤 했다. 무서웠다. 엄마가 나타나 가방을 확 낚아챌 것만 같아 몸이 떨렸다.  

“너 때문에 엄마 인생이 망가졌잖아!”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툭하면 화풀이를 해대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했다. 내가 엄마를 힘들게 했구나. 나는 정말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나 봐.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의 속은 시든 꽃처럼 생기를 잃었다. 하루는 서점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데, 부드러운 음성이 발길을 붙잡았다.

“성준아, 지금 집에 가니?”

우뚝 멈춰 선 성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사거리 식당 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네에…….”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하자, 아줌마는 활짝 미소 지었다.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안 오셨어?”

“네에……. 서점 화장실이 고장 나서 오늘 고쳐야 한대요…….”

“그랬구나. 들어와서 간식 먹고 가. 서점엔 아줌마가 전화해줄게.”

“괜찮아요…….”

성준이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아줌마가 다시 말했다.

“고구마 맛탕 했는데. 이거 되게 맛있어.”

맛탕? 그건 무슨 맛이지……?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에 ‘맛’이 들어가지? 호기심에 고개를 들자, 아줌마 옆에 선 딸 소란이 나무젓가락을 꽂은 무언가를 맛있게 먹으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히 자른 고구마 같긴 한데 겉이 반질반질 반짝거리고 깨가 뿌려진 게…… 너무나 맛있어 보였다.

“마땅 이거 대개 마시쪄.”

네 살짜리 소란이 엄마의 말을 따라 하며 해맑게 웃었다. 성준과 눈이 마주친 소란은 신나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무젓가락에 서툴게 꽂은 맛탕을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자, 머거.”

가방끈을 움켜쥔 성준은 소란과 맛탕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구마가 마치 보석 사탕처럼 반짝거렸다. 달콤한 냄새가 콧속으로 훅 끼쳤다. 여덟 살 평생 처음 느껴본,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럼…… 하나만.”

성준은 조그맣게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소란으로부터 받아 든 젓가락을 쥐고 입을 작게 열어 고구마를 한입 물었다. 달콤하게 코팅된 겉면이 바삭하게 부서졌다. 고소하고 포슬포슬한 고구마를 씹자 성준의 입속에는 달달한 맛이 가득 찼다. 눈이 동그래졌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니. 아빠가 슈퍼에서 간식으로 사주는 과자나 빵과는 차원이 달랐다. 공장이 아닌 주방에서 직접 만들어낸 음식엔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고구마를 씻고, 자르고, 튀기고, 설탕과 물엿을 섞어 시럽을 만들고, 코팅하고, 깨를 섞고. 고구마가 맛탕이 되는 단계마다 정성이 들어갔을 터였다.

“아까 영서랑 민기도 잔뜩 먹고 갔어. 괜찮으니까 안에 들어와서 먹고 가.”

맛탕은 꼭 아줌마의 부드러운 음성 같았다. 소란의 밝은 웃음 같기도 했다.

“그럼…… 조금만요.”

성준은 쭈뼛쭈뼛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담긴 맛탕이 성준을 반겼다. 아빠가 남이 주는 건 함부로 받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줌마의 식당은 동네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존재했다. 아줌마는 식당을 운영하며 그때그때 남은 식재료로 간식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소란이만 먹이기엔 너무 많은 양을 만들었다면서. 찐 옥수수, 뭉갠 감자, 달걀에 적셔 구운 식빵, 맵지 않은 양념을 바른 떡꼬치, 채소 속을 가득 넣어 튀긴 고로케 등. 동네에 몇 안 되는 아이들은 오며 가며 아줌마의 간식을 먹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원을 가다가, 사거리 ‘지연이네 밥집’에 사랑방처럼 들락거렸다. 아줌마는 식당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걸 원체 좋아하는 듯했다. 어쩔 땐 아이들의 간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부러 재료를 주문할 때도 있어 보였다. 베푸는 삶은 온정으로 돌아왔다.

“소란 엄마, 이거 우리 시골에서 보내준 고춧가루랑 참기름이야. 떨어질 때 됐지?”

“뭘 또 주세요. 어제 옥수수도 한 상자 주셨으면서.”

“아, 그냥 먹어.”

“감사해요.”

“그렇게 애들 맛있는 거 해주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내가 더 고맙지.”

동네 이웃인 부모들은 아줌마에게 농산물이나 화장품 세트, 생활용품, 혹은 소란이 가지고 놀 책이나 장난감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성준의 아버지도 감사 표시로 아줌마에게 잡지나 편하게 읽을 소설책, 소란이의 그림책 같은 걸 가져다주기도 했다. 골목마다 정이 넘치던 시절이다.

“성준아, 찐빵 먹고 갈래?”

“네!”

어느덧 성준도 아줌마가 부르면 사양하지 않고 뛰어 들어가 웃으며 맛있게 간식을 먹었다. 그늘져 있던 얼굴도 조금씩 밝아졌다. 아버지가 없으면 친엄마가 나타날까 불안에 떨던 마음도 잦아들었다.

“그거 아니? 사실 세상의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은 다 상상일 뿐이래.”

아줌마는 아무렇지 않게 툭 던졌다.

“무섭고, 불안하고, 그런 건 가슴속에만 있는 거야. 진짜가 아니고.”

“그래요?”

“응, 괜히 떨 거 없어. 그 안에만 갇혀 있을 필요도 없고.”

당시에는 어렵게 느껴졌지만 아줌마의 목소리는 어떤 위로보다도 성준의 마음을 단단하게 붙들어주었다.

“사실은 아줌마도 힘들 때가 참 많았는데.”

“그럴 때 어떻게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해지더라고.”

해사하게 웃는 미소에 성준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아줌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멋진 어른이구나.

“그러니까 성준아,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자주 놀러 와.”

  성준의 나이 열 살, 소란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아줌마가 재혼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줌마가 내 엄마가 된다니. 소란이가 내 동생이 된다니. 괜찮겠냐고 조심스레 묻는 아버지에게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태어나 가장 신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며칠이나 잠을 설쳤다. 자꾸만 꿈에서 깰 것만 같아 두려웠지만, 그건 가짜 마음이라고 했으니 행복한 생각만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서점을 정리하고 아줌마의 식당을 리모델링해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2년간이 성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 자상한 아빠와 상냥한 엄마, 귀여운 여동생. 언제나 웃음이 흐르는 집, 따뜻하고 맛있는 밥, 사랑하는 가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성준이 다시 태권도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뛰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성준에게 새엄마가 된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 성준이도 씩씩해서 태권도 배우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어릴 때 했었어요.”

“그래? 다시 배우고 싶진 않아?”

도장 앞에 기다리고 있던 친엄마 때문에. 도복을 움켜쥐고 흔들며 욕하던 친엄마 때문에. 띠를 빼앗아 채찍처럼 손에 감아 제 등을 갈기려 하던 친엄마 때문에. 나는 망가졌는데 너는 속 편하게 이게 다 뭐냐며 눈을 부라리던 친엄마 때문에, 성준은 태권도마저 구역질이 날 만큼 싫어졌다. 그러나 새엄마의 따사로운 빛이 가만히 저를 감쌌다.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용기를 내. 아빠가 도장 보내주신다고 했다며. 성준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마음과는 달리 성준의 시선은 항상 태권도복을 입은 친구들에게 머물러 있다. 새엄마는 이를 알고 끊임없이 응원해주었다. 성준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아빠와 새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도장을 찾았다.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다시 태권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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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길게 가지 못하고 2년 후 새엄마는 안타깝게도 돌아가셨다. 이후 성준은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재능과 끈기, 집념 모든 면이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다. 새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 성준의 인생에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분.

“엄마. ……엄마.”

  봉안당에 처음 딴 메달을 놓아드리던 날, 성준은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 슬퍼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참아내며 앞만 보고 달렸는데, 그날은 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저 메달 땄어요. 엄마…….”

목에 걸어드렸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아빠 말고 다른 어른이 제게 웃어주고 손을 내밀어준 건 처음이었다. 그토록 따뜻한 품도 처음, 그토록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도 처음, 그토록 예쁘게 건네는 말도 처음. 엄마는 제게 다 처음이자 전부인 분이셨다.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아버지도 그랬겠지만, 저 역시 엄마로 인해 새 삶을 살게 된 거나 마찬가지다. 엄마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소란을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건 이들 부자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연이네 밥집’이자 ‘달 뜨는 밥집’.

엄마의 소중한 그 공간을 끝까지 지켜내어 여기에 이르렀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모두를 이곳에 모이게 하였다. 인생은 아픔과 행복의 물고개가 번갈아 밀려드는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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