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깊은 인연 (2)2021.05.25.
아기는 살았다. 하지만, 아기의 엄마 아빠는 숨졌다. 지연이 들어갔을 때 이미 아기아빠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을 거둔 후였고, 아기엄마는 자다가 깼지만 연기를 마신 후였다. 한밤중에 발생한 화재에 자다가 사망하는 건 대부분 그런 경우라고 했다. 유독가스를 마신 줄도 모르고 숨질 수도 있으며, 깨어 있더라도 유독가스에 중독돼 몸이 경직되어 대피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 숨이 한 자락 붙어 있던 아기엄마는 곁에 잠든 아기를 겨우겨우 이불 속으로 끌어 제 품에 안았다.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그 지옥에서 아기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견뎠을까.
“억장이…….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로도 모자랍니다…….”
한 부부가 지연을 찾아왔다. 비통한 얼굴로 입을 뗀 이는 아기의 할아버지, 그리고 옆에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이는 아기의 할머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기아빠의, 부모님이셨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고 참담한 심정으로나마 이렇게 지연을 찾아온 건, 손자를 구해준 데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어려운 걸음을 한 참이다.
“그 애는 자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숨 한 줄기 붙잡고도 버티고 있었는데, 나는 내 아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보냈네요.”
아기의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 애’는 아기엄마였다. 눈이 시뻘게지도록 눈물을 꾹 참고 있는 할아버지는 죄책감에 가득 찬 얼굴이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고급스러운 세단을 타고 온 부부의 곁에는 비서로 보이는 이들이 동행했고, 품위 있는 차림새를 보니 보통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이런 재력가 부부의 아들이 어째서 허름한 빌라 반지하에서 생활하다가 불행한 사고를 겪어야 했을까. 알고 보니 아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하여 나온 것이었다. 내쳐진 거나 다름없다.
“우리가 끝까지 받아주지 않으면, 그 애와 헤어져 돌아오겠거니 하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죠. 심지어 아들의 건축 일까지 어렵게 했고……. 그래야 우리 말을 듣겠지 하고…….”
할아버지는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고 했다. 아들을 이겨먹겠다는 헛된 오기 때문에 이런 불행을 겪게 된 것이라고. 그 말을 듣는 내내 지연의 가슴도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참 좋은 언니였는데. 자신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 집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언니였는데. 제겐 그런 존재였던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겐 내쳐질 만큼 부족한 사람이었다니.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다 내 잘못입니다. 내 잘못.”
“왜 당신 잘못이에요. 내 탓이지. 아기 낳았다는 말에 당신이 마음이 약해져 찾아가보려고 했을 때도 내가 말렸잖아요. ……내가, ……내가 미쳤지. 정말 내가 나쁜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 그랬던 건데…….”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게 너무나 괘씸해서……, 아들 없는 셈 치자 했는데…… 내가 내 심장에 칼을 꽂은 거예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서로 자기 탓을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저 사고였다. 골목으로 난 창문이 잠기지 않아 자꾸만 열린다고 했는데, 그 사이로 누군가 지나가며 버린 담배꽁초가 떨어져 들어온 것이다. 퍼석퍼석 건조한 가을밤. 화재는 순식간이었다. 한밤중이 아니었다면, 잠들지 않았다면, 골목에 누군가 더 있었더라면. 이제는 무용한, 수많은 가정이 그날 밤을 아프게 붙들었다. 그러나 모두 소용없다. 젊은 부부는 이미 허망하게 떠난 후니까.
“제가 조금만 더 일찍 돌아왔었으면……, 그럼 두 분 모두 그렇게 되지 않으셨을 텐데…….”
지연의 목이 메었다. 아기뿐 아니라 아기엄마, 아빠도 모두 살 수 있었을 텐데. 잠깐의 시간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는 게 믿기지 않고 원통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새댁 덕분에 그래도…… 우리 강호가…….”
할머니가 눈물 그득한 눈으로 지연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았다.
“덕분에 살았어요. 우리 아기가 새댁 덕분에…….”
아들 내외를 잃었지만, 그래도 손자가 살아남았다. 두 부부는 회한으로 얼룩진 얼굴로 연신 감사하다, 또 감사하다 말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정든 이웃을 떠나보낸 후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에서도 그나마 아기가 살았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기는 할아버지 부부가 거두어 키울 거라 했다. 그들은 지연에게 증서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사례입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거액이 적힌 증서였다.
“세금 떼고 맞춘 금액이니, 여기 우리 직원이랑 얘기하면 통장으로 안전하게 넣어줄 겁니다.”
“아니, 바, 받을 수 없어요. 제가 어떻게 이런 큰돈을…….”
지연은 화들짝 놀라 증서에서 손을 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받아주셔야 우리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한테는 그 돈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손주를 안겨줬는데.”
마침내 참고 있던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지연이 아니었다면 간발의 차로 손주까지 떠나보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받아주지 않은 아들 내외에 손주까지 한꺼번에 다 잃었더라면 이들 부부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기가 내외의 품에 안긴 건 정말이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니 제발, 받아주시지요.”
정중하게 전하는 뜻에 지연은 울먹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장에 정말 큰돈이 들어왔다. 반지하에서 벗어나 근처의 신축 빌라를 사서 이사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남은 돈으로는 가게 하나를 얻어 차릴 수도 있었지만, 귀하디귀한 돈이라 더 이상 손대지 못하고 그냥 통장에 남겨두었다. 어느덧 임신 후기에 접어든 몸으로 이사를 마친 지연은 먹먹한 마음에 울다 잠이 들었다. 형편이 나아지고 주거 환경이 전보다 훨씬 좋아지자 떠난 아기엄마, 아빠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이후 지연이 낳은 아기는 딸이었다. 반찬가게 일을 계속하면서 딸을 키우는 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나 통장의 돈을 생활비로 쓰기 시작하면 바닥나는 건 순간일 것이다. 지연은 어떻게든 견디면서 아기를 재우고 반찬을 만들고, 또 쪽잠을 자면서 버텨냈다. 남편을 잃고, 이웃을 잃고, 그렇게 가슴을 짓누른 아픔은 아기를 열심히 키우는 동안 조금씩 옅어졌다. 몸이 힘드니 슬퍼할 겨를도 없다는 말이 맞다. 2년쯤 지났을까. 반찬가게는 수요가 더 많은 동네로 이전한다고 했다. 지연이 사는 곳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더 이상 일을 받아서 하기 어려워졌다.
“사거리에 새로 지은 건물, 거기 과일가게 옆자리가 아직 비었다고 하더라. 자기 솜씨 좋으니까 아예 식당을 해보는 게 어때? 소란이도 좀 컸겠다, 가게에 데리고 있으면서 할 만하지 않겠어?”
반찬가게 사장이 식당 개업을 제안했고, 지연은 그제야 통장에 묵혀두었던 돈을 두고 고민했다. 아기를 계속 잘 키우려면 번듯한 가게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단 생각은 했다. 이래도 될까. 정말 내가 그 돈을 써도 될까. 몇 번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임대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지연이네 밥집’은 엄마가 꿋꿋하게 잘해내겠다는 약속 같은 마음으로 내건 간판이었다. 처음 식당을 열고서 그 앞에서 지연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앞치마를 한 채 엷은 미소를 띤 지연은 세 살배기 소란과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 ◆ ◇
“여기, 이 사진이란다.”
백 회장이 품에서 천천히 사진을 꺼내놓았다. 낡고 바랜 사진 속에 정말 엄마와 자신이 있는 걸 보고, 소란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소란의 앨범에서도 본 적 있는 사진이다. 어릴 적에 ‘달 뜨는 밥집’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이전이다. 제 기억보다도 동네 사람들의 말로 들어 더 친숙한 그 이름, 지연이네 밥집. 이 사진을 백 회장도 가지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안사람 떠나보내고 난 후에 다른 이를 시켜 유품을 챙겨두게 했는데, 이 사진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한참 찾았지 무어냐.”
백 회장이 먹먹한 눈빛으로 소란을 바라보았다. 옆에 선 강호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집어 올렸다. 지난 크리스마스, 소란의 어머니 기일에 봉안당에 가서 뵈었던 사진 속 바로 그 얼굴이다.
“이분이……, 장모님께서…….”
하아, 터져 나오는 숨이 말을 가로막았다. 강호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길이 번지는 집에서 아기였던 날 안고 뛰어나오신 분이 소란의 어머니, 장모님이셨다니. 내 부모님과 그토록 각별한 사이로 지낸 분이셨다니. 이상하긴 했다. 옆 동네인 금부동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그 지역이 분명 꺼림칙했는데도, 희한하게 소란이 살던 집과 식당에는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소란을 좋아해서라고 생각했다. 모든 불가능을 깨뜨려주는 그녀이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다고 여겼다. 돌이켜보니 단순한 운명의 끌림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이었어.”
이미 촘촘히 엮인 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백 회장이 도착하기 전 성준이 말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났다고. 강호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사진 속 어린 소란과 그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벅차고 감격스러운 마음과 더불어 안타깝고 그리운 감정까지 넘실거리며 밀려들었다. 옆에 선 소란이 가만히 손을 뻗었다. 따스하고 조그만 손이 강호의 손을 감싸 쥐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며 백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은 지 2년 만에 우리 직원에게 연락이 왔더랬지. 덕분에 어엿한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며 면목이 없다고 하더구나. 우리로선 몇 번을 말해도 모자랄 정도로 고마운 일이었는데, 소란이 네 어머니는 그 돈 쓰길 그렇게나 면구스러워했어.”
사례금을 받고 집을 사서 이사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게는 2년이나 흐른 후 차리게 된 거라 백 회장도 나중에서야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강호를 데리고 식당에 한번 갔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네 어머니는 우릴 다시 보곤 강호 부모 생각이 났는지 계속 미안해했으니……. 절대 미안한 일이 아닌데도 얼굴을 보면 어쩔 수 없는가 보더구나. 그럴수록 우리도 마음이 아팠고.”
소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우리 엄마. 그랬겠지, 그랬을 거야. 당신이 아기를 구했다는 생각보다는, 아기엄마와 아빠를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눌렀겠지. 고맙기만 한 일도 아니고 미안하기만 한 일도 아니다. 다행일 수만도 없고 오롯이 불행인 것만도 아니다. 세상일이 그렇듯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감정과 사건 속에서 그들의 인연도 그것으로 갈무리하기로 했다.
“서로 더 볼 엄두가 나지 않더구나. 먼 훗날 웃으며 다시 볼 수 있을 때 그리하자고. ……그렇게 인사하며 헤어졌었지.”
어느 쪽도 먼저 찾지는 못했다. 백 회장 부부는 은부동 소리만 들어도 아들 내외가 떠올라 힘겨웠다. 물론 지연이 다시 소식을 전해왔다면 분명 반갑게 맞았을 테지만. 하나 그녀가 너무 일찍 떠났다. 그렇게나 빨리 세상을 떠난 줄 모르고 살았다. 이름마저 가물거릴 정도로 멀어진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사례도 충분히 했고, 인사도 서로 나눌 만큼 나누었기에 사실 더 보지 않아도 되긴 했다. 서로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만남이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백 회장은 죽기 전엔 그 임신부를 다시 찾아, 장성한 강호를 데리고 인사라도 꼭 한 번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백 회장은 그저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에 몸을 싣고 갔을 뿐이라, 건물 외관이나 이름, 주변까지 전부 변한 그곳이 30년 전 바로 그 식당일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성준의 식당에 들렀다가 스치듯 던진 물음에 이렇게 커다란 진실로 화답받게 될 줄, 진정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거짓말 같은 현실이 있다니. 소란은 강호에게서 사진을 넘겨 받아 들고는 가만히 말했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겨우겨우 소리 내어 말했다. 엄마가 곁에 계셨으면 얼마나 감격하셨을까. 그 어느 때보다 엄마의 빈자리가 애석했다. 성준이 소란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였다.
“어머니께서 식당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셨는데……. 그게 다 좋은 분들과의 인연이 깃든 곳이라 그러셨나 봐.”
당시 소란과 성준은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자세한 사정까진 몰랐다. 다만 성준은 아직도 선연히 기억하고 있다. 식당을 소중히 가꾸고, 그곳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나갔던 그 시절의 어머니를. 성준이 아버지와 함께 은부동에 이사를 와 어머니를 처음 본 건 일곱 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