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네가 직접 입혀줘2021.03.23.
“강호 씨한테 선물하고 싶어서요.”
소란의 말에 태석은 심장이 덜컹했다. 아내가 남편의 옷을 선물해주겠다는데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이렇게 반응하는 제 가슴이 야속하기만 했다.
‘미친놈. 정신 아직도 못 차렸냐.’
뭐든 다 갖고 살아왔다. 손에 넣지 못한 건 없었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거나, 불가능한 걸 아등바등 갖겠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저 원하면 저절로 제 것이 되었다. 순탄한 인생이고 불만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던 태석이기에 순간순간 드는 이런 감정들이 불편하고 이상하기만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의 목덜미를 잡는 듯했다. 태석은 애써 밝게 말했다.
“역시 내가 이 시대의 트렌드세터지. 예전부터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내가 사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유행을 선도하곤 했거든.”
“맞아요. 완전 워너비죠.”
농담이었는데 소란은 넙죽 받아주었다.
“선배님 안목이라면 강호 씨한테 어울릴 옷도 잘 아실 것 같은데, 혹시 퇴근 언제 하세요?”
“내가 골라줘?”
“네. 그래주시면 너무 좋죠. 시간 안 되시면 그냥 괜찮은 매장들만 알려주셔도 감사하고요.”
태석은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가자. 선물 고르러.”
가슴 찢어지는 일인 걸 알면서도 태석은 그녀와의 동행을 택했다. 감정이 하는 일에 이유란 없었다.
◇ ◆ ◇
‘와, 비싸네.’
이른 퇴근 후 태석과 함께 그의 단골 편집숍에 온 소란은 티셔츠 한 벌의 가격표를 뒤집어보곤 놀란 숨을 몰래 내쉬었다. 이럴 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제 옷을 이만한 가격으로 사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강호에게 선물하기엔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거나 입진 않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태석은 강호에게 선물할 만한 옷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건 어때?”
태석은 차분하고 어두운색의 셔츠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강호가 얼굴이 흰 편이라 어두운색이 잘 어울리던데.”
“아, 컬러는 좋은데요.”
“좋지?”
“네, 그런데 터틀넥을 사고 싶어서요. 선배님 입으신 것 같은 스타일이요. 얼마 전에 어떤 배우도 입고 나왔는데 괜찮더라고요.”
특별할 거 없는 스타일이긴 했다. 그냥 턱 아래까지 올라오는 터틀넥일 뿐이다. 그런데도 소란은 아까부터 이걸 고집하고 있다. 태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호 이런 거 안 입지 않나. 목 답답한 거 싫어하던데.”
강호의 주변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취향이다. 이유까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저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랬죠.”
“이제 입는대?”
“음, ……그럴걸요?”
소란은 행거에 걸린 옷을 차분히 살펴보며 대답했다.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져 태석은 가만히 멈춰 섰다. 하긴. 어떤 격식 있는 자리에서도 절대 타이를 매지 않던 강호가 결혼식에서는 소란을 불러 보타이를 착용하지 않았던가. 싫은 옷도 아내가 원하면 입을 수밖에 없는 걸까. 천하의 백강호라도?
“선배님 이건 어떨까요? 괜찮아요?”
소란이 차콜 컬러의 터틀넥을 하나 꺼내어 들고 물었다. 태석의 눈에도 꽤 괜찮았다. 저걸 강호가 입는다면. 소란의 말대로 그 위에 핏 좋게 떨어지는 코트까지 걸친다면. ……부정하고 싶지만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리라.
“잘 어울리겠다.”
태석은 비겁한 수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직면해 그게 질투라는 걸 인정하고야 말았다.
“백강호는 좋겠네. 이런 와이프도 있고.”
담백하게 전하는 진심에 계산대 앞에 선 소란은 그저 환히 웃었다.
“감사해요. 선배님 덕분에 선물 고르기가 수월했어요.”
“그럼 다행이고.”
잘 포장한 옷을 건네받은 소란이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저녁 드실래요? 도와주셨는데 밥은 제가 사야죠.”
발렛 맡긴 차를 기다리며 태석은 잠시 고민했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 남편 선물 고르는 자리에 기어이 따라올 정도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저녁까지 같이 먹을 수 있다니 그건 또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어쩐지 이 제안을 수락하면 안 될 것 같다. 제 마음을 모르는 소란과 마주 앉아 단둘이 식사를 하는 건 그녀에게도, 제게도, 또 강호에게도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 나 저녁은 선약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아쉽네요.”
“다음에 하자, 다음에.”
태석은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호수처럼 맑게 웃었다.
“네, 다음에 꼭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소란을 보는 그의 가슴은 내내 저릿하기만 했다. ◇ ◆ ◇ 소란은 어쩌다 보니 집에서 혼자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강호에게 주기 위해 하루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돌아온 그녀는 뭘 먹을까 고민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말끔히 정리된 내부에는 음식이 가득했다. 오전에 가정관리팀이 다녀간 날이다. 백 회장이 신경 써준 덕분에 일주일 중 정해진 요일마다 집안일과 주택 관리를 돕기 위해 관리사들이 방문하고 있다.
“먹을 게 많긴 한데…….”
혼자 거하게 차려 먹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소란은 저번에 가져다 둔 것이 생각났다.
“아, 열무김치!”
성준이 사무실까지 찾아와 건네주었던 열무김치. 강호가 먹고 싶다고 했다지만 아직 그럴 기회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서둘러 만들어 가져다준 성준의 공이 무색하게 뚜껑도 열어보지 못했다.
“그거 먹어야겠다.”
소란은 서둘러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주방으로 돌아왔다. 진공 포장한 열무김치를 열어 밀폐용기에 옮겨 담고, 먹을 만큼 그릇에 덜었다.
“와, 끝내주네.”
하나를 집어 그대로 입에 넣어본 소란은 황홀한 표정으로 감탄했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밥에 물 말아서 이것만 먹어도 꿀이니까. 자리에 앉은 소란이 세 입쯤 먹었을 때다. 전화벨이 울렸다.
“어……?”
계나린이다. 소란은 왜 전화를 했을까 의아해하며 받았다.
“여보세요.”
- 우소란 씨.
“네, 언니.”
- 지금 집에 있어?
“네, 그런데 왜…….”
- 그럼 문 열어. 차고 문.
“네?”
- 나 집 앞이야. 우소란 씨 집.
◇ ◆ ◇ 위이이잉. 웅장한 대문 옆 차고 문이 열렸다. 나린은 그 안으로 부드럽게 차를 몰고 들어가 정차했다. 다섯 대는 주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고다. 강호의 서류가방을 가지고 내린 나린은 주택 안으로 통하는 출입구로 향했다. 소란이 버튼을 눌렀는지 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내부로 들어가자 차고 옆 계단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마치 갤러리 입구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홍찬규가 구경 오고 싶어 할 만하네.”
회장님 스케일 보소. 나린마저 감탄하면서 감각적인 조명이 빛을 비추는 계단을 밟아 1층으로 올라가던 때였다.
“언니.”
소란이 놀란 얼굴로 내려왔다.
“마중 나오는 거야? 대저택에서 길 잃어버릴까 봐?”
“어쩐 일이세요? 강호 씨는 지금 없는데.”
“알아. 전주 갔잖아. 이거, 백강호 심부름이야.”
나린은 그의 서류가방을 들어 보였다.
“아.”
“급하게 출장 잡혀서 사무실에 두고 간 거야. 집에 가는 길에 하는 수 없이 내가 가져온 거고.”
소란은 살짝 이상하단 생각을 했다. 나린은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했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집에 가는 길은 아니지 않나. 나린은 아무렇지 않게 앞서 계단을 올랐다.
“나 집 구경 좀 하자.”
부르기도 전에 먼저 들이닥친 시누이 포스로 나린이 1층으로 향했다.
“아, 네. 언니, 저녁은 드셨어요?”
“안 먹었지. 그런데 여기 구조 독특하네.”
현관에 당도해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은 나린이 1층 중문 앞에 섰다. 소란은 그녀가 신고 온 플랫슈즈를 가지런히 정리해두고서 중문을 열었다. 선물을 받을 적에는 탐탁지 않은 얼굴이더니, 나린은 볼 때마다 저걸 신고 있다. 소란은 신발을 선물해준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린이 전보다 많이 마른 것 같았다. 입덧이 심하더니 역시 잘 못 먹고 있었구나. 괜히 짠해져 소란은 나린을 주방으로 안내했다.
“저녁부터 드실래요? 저 마침 먹던 참인데.”
식탁을 본 나린이 눈썹을 찡그리며 팔짱을 꼈다.
“집에 먹을 거 없어? 백강호가 굶겨?”
광활한 식탁 위에는 물에 만 잡곡밥 한 사발, 그리고 그릇에 담긴 열무김치가 전부다. 자린고비도 이것보단 풍족하게 먹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초라한 밥상이다.
“아니, 먹을 거 많아요. 금방 차려드릴게요. 앉으세요.”
소란이 웃으며 얼른 수저 한 벌부터 제 맞은편에 놓아주었다. 그리곤 서둘러 냉장고를 열어 이것저것 꺼냈다. 주방 옆 욕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나린은 식탁 앞에 앉았다. 저녁까지 먹고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맛깔스럽게 보이는 열무김치가 자신을 끌어당겼다. 소란이 냄비에 국물 요리를 담아 데우고, 아기자기한 접시에 반찬을 하나하나 담으며 손님상을 준비했다. 가만히 앉아 열무김치를 노려보던 나린은 소란이 놓아둔 젓가락을 천천히 들었다. 맛만 좀 볼까, 하고 열무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이내 나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삭 씹는 순간 입안에 감칠맛이 단번에 퍼졌다. 개운하게 매운맛이 사각거리는 열무에 제대로 배었다. 조미료로부터 느껴지는 쩍쩍 들러붙는 맛이 아니다. 입속에 착 번지는 산뜻한 맛에 침이 절로 샘솟았다. 또 먹고 싶은 맛이 분명했다.
“나 밥부터 주면 안 돼?”
연이어 세 번이나 열무김치를 먹은 나린이 소란에게 말했다. 그새를 못 참고 김치를 집어 먹는 그녀를 보며 소란이 웃었다.
“아, 네. 드릴게요.”
소란이 얼른 퍼다 준 잡곡밥을 받아 든 나린은 무아지경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였다. 소란이 반찬을 옮기려다 말고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이거 더 없어?”
“……네?”
“열무김치, 더 없냐고. 이게 다야?”
“있어요, 있어.”
소란이 얼른 김치 용기를 꺼내어 덜어다 주었다. 그러니 밥이 또 비었다.
“밥도 더…….”
“드릴게요, 드려요.”
눈치 빠르게 움직여준 소란 덕분에 나린의 식사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밥을 맛있게, 많이 먹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임신을 확인한 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맛이다. 두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더 먹고 싶었지만 배가 불러 숟가락을 놓아야만 했다. 하얗게 불태운 얼굴로 나린이 물컵을 들자 소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짜 맛있죠? 그거 저희 오빠가 직접 담근 거예요. 산 거랑은 정말 다른 맛…….”
“우소란 씨 오빠가?”
“네. 친정 오빠가 식당 하거든요. 저번에 부대찌개 집에서 얘기했는데. 아, 기억 못 하시겠지만 아무튼 그래요. 오빠 솜씨가 되게 좋아요.”
나린이 한숨을 탁 내쉬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맛. 그건 그 사람의 음식이라서였다. ◇ ◆ ◇ 나린이 돌아가고 난 후, 소란은 다시 집에 혼자 남았다. 강호는 오늘 많이 늦을 모양이다. 지방에 갔으니 바로 올라오기 어려울 수도 있고. 소란은 잠시 고민하다가 메모지를 꺼냈다. 우리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그렇게 쓴 메모지를 쇼핑백에 붙이고는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소란은 ‘촉각 방어’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뇌에서 억제 및 방어를 담당하는 방어적 촉각 시스템과 차별적 촉각 시스템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방어적 촉각 시스템이 우세할 경우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 있었다.(*촉각 방어, 觸覺 防禦, tactile defensiveness. 특수교육학 용어사전, 2009, 국립특수교육원)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로, 그리 위험하지 않은 자극조차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강호처럼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한다니 크고 작은 강박 증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반드시 치료해야만 하는 질환도 아니라고 하였다. 다만 강호에겐 좋지 않은 기억이 엮여 있기에 소란은 그가 이겨낼 수 있길 바랐다. 그건 강호가 원한 것이기도 했다.
“네가 낫게 해주든가.”
“제가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당사자의 의견이니 소란도 사명감이 생겼다. 그래서 터틀넥을 준비했다. 강호에게 정말 근사하게 어울릴 것 같은 이 옷을 굳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규정했다. ‘첫 크리스마스’라는 건 상징적인 의미기도 했다. 그녀가 상처 입은 마음을 내려놓았듯, 그 역시 이 옷을 당장 입을 수 없을지라도 이렇게 함께 시작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 같이 저녁도 먹고 선물도 건네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이렇게 마음을 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소란은 그의 드레스룸에 들어가 잘 보이는 곳에 쇼핑백을 올려두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 나린이 집을 돌아보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두 사람 살림은 언제 합치려고?”
“살림이요?”
“사랑해서 한 결혼이라며. 계약서 없앨 거라며. 이렇게 1층, 2층 나눠서 살 필요 없을 거 아냐.”
“강호 씨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그래, 자랑하더라.”
소란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안 그래도 나린에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우리 둘이 이제 진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니, 기분이 묘했다. 무를 수도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나 좋기도 했다.
“뭐가 그렇게 좋아?”
순간 드레스룸 거울에 비친 제 모습 뒤로, 강호가 보였다. 헉, 하고 놀란 소란이 돌아보았다.
“언제 오셨어요?”
“지금. 전화 안 받던데.”
“아, 휴대전화를 1층에 두고 올라왔어요.”
강호는 먼 길을 다녀와 피곤한 얼굴로 코트를 벗어 의자에다 툭 올리고는, 셔츠 소매 단추를 풀었다.
“여기 마음대로 출입하는 걸 보니 계약서는 이제 정말 없앨 때가 된 것 같은데.”
“아, 네.”
살림도 합쳐야겠고요. 어째 소란은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그러고 나면 제 욕망 열차가 무섭게 폭주해버릴지도 모르는데,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차마 묻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는데 강호가 쇼핑백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아, 선물이에요. 이거 두고 가려고 올라왔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메모지를 본 그가 하루 지났는데 이제 와 왜 챙기냐는 듯 되물었다.
“네, 꼭 드리고 싶어서요.”
소란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강호가 쇼핑백에서 상자를 꺼냈다.
“지금 보시게요?”
“그래. 궁금해.”
혼자서만 몰래 보라 할 이유는 없다. 소란은 그가 상자를 열어 옷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막상 강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긴장됐다. 이미 단추도 잠가주었고, 타이도 매주었다. 머플러도 둘러준 적 있다. 그러나 터틀넥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앞서 단추나 타이, 머플러는 정 갑갑해 못 견딜 것 같으면 풀어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야만 하는 터틀넥은 좀 더 나중에 시도하는 쪽이 좋을 것 같긴 했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것도 아닌데.
“……터틀넥?”
강호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 생각지 못한 게 나왔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주는 선물은 당장 입으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촉각 방어 극복을 위해 함께 힘써보자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해주어야 했다. 소란이 막 입술을 열려고 할 때였다.
“그게요.”
강호가 터틀넥을 그녀에게 툭 건네주었다. 그러곤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인 그가 소란을 보며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 하나, 또 하나 풀어나갔다. 열린 셔츠 사이로 슬쩍 드러난 맨가슴, 그리고 복근에 소란이 당황할 때쯤, 어느새 끝까지 단추가 풀렸다. 단숨에 그가 휙 셔츠를 벗어버렸다. 눈앞에서 예고 없이 펼쳐진 상의 탈의에 소란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거.”
강호가 고갯짓으로 그녀의 손에 들린 옷을 가리켰다. 내리깔았다가 드는 눈이 미친 듯이 섹시했다.
“네가 직접 입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