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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난 너를 원해 (27/112)

#27화. 난 너를 원해2021.02.02.

“다녀오십시오.”

강호의 집 차고에 들어온 후 김 실장이 짧은 인사를 건넸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비서를 향해 묵묵한 태도로 말한 강호는 걸음을 옮겼다. 지하 차고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실내 공간은 따뜻한 조명의 라운지로 만들어져 있다. 이를 지나 1층 현관으로 올라온 강호는 중문 안쪽을 잠시 바라보았다. 조용하기만 한 실내. 그녀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아직 저녁도 되지 않은 시각, 소란은 퇴근 전일 것이다. 오늘도 늦으려나. 어차피 자신은 곧 출장을 가니 볼 수도 없겠지만. 며칠이나 제대로 보지도 못했더니 이 넓은 집에 마치 혼자 사는 기분이다. 그는 씁쓸해 마른침을 삼키며 2층으로 향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강호는 제 침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고 라운지엔 김 실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서둘러 지갑을 챙겨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침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드레스룸에 들어서다 말고 강호는 멈춰 섰다.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야구보다 더 그루브가 살아 있는 섹시한 음색. 분명 사람의 노랫소리다. ‘긱스’의 ‘짝사랑’이라는 곡, 그런데 여자의 목소리다. 원곡자의 노래가 아니라 커버곡인 걸까. 드레스룸 너머 열린 문 안쪽에서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뭔가를 틀어놨었던가,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내 사랑 맨날맨날 활활 타올라 문이 열린 저곳은 분명 자신이 사용하는 욕실이다. 음악이든 라디오든 튼 적 없는데, 이상하다. 강호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지 촉촉하게 물기 어린 목소리가 마치 드럼 스틱처럼 그를 두드려댔다. 힘을 뺀 음성인데도 사이사이 쫀쫀함이 느껴졌다. 유혹의 노랫소리. 역시 세이렌이 그 안에 있었다. 자신을 죽일 셈이 분명했다.

“난 너를 원해! 포도보다 더! 난 니가 좋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파닥거리는 손에서 거품이 튀어, 하얀 거품이 공중에서 가볍게 흩어졌다. 너무 놀라 아무런 표정도 없이 굳어버린 강호의 눈에 비친 건, 소란이다. 욕조에 기대앉아 다리 하나를 곧게 뻗어 들고선 거품을 문지르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소란. 새하얀 나신의 그녀는 목욕 중이었다. 물에 담근 몸 위로 거품이 아슬아슬 얹어져 있기에 최악의 사태만은 면할 수 있었다. 소란의 목소리가 사라지니, 그녀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뿐이다. 둘 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놀라 얼어붙어 있는 동안, 노래는 쌀쌀한 공기를 채우며 울려 퍼졌다. 난 너를 어쩜 짝사랑하나 봐 난 너를 진짜 사랑하나 봐 미치겠다. 누가 내 심정을 노래로 불러놨어. 난 너를 원해 난 니가 좋아 난 너를 원해 막바지로 치달은 노래가 미친 듯 사랑을 고백했다. 나도 그래, 너를 원해. 나도 네가 좋아. 죽을 만큼 너를 원해. 강호의 마음이 딱 그랬다. 그녀가 부르던 노래는 강호의 심장을 헤집어놓았고, 아찔한 그녀의 모습은 눈까지 멀게 하는 것만 같았다. 시각과 청각의 동시 공격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그게, 저, 여길 일부러 쓰려고 한 건 아니고, 1층에 온수가 안 나와서…… 그러니까 온수 문제로 부득이하게 제가 이 꼴로 이렇게. 정말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녀가 물속에 몸을 깊게 눌러 묻듯 숨기며 해명했다. 강호는 문득 정신이 들어 휙 돌아섰다. 저 때문에 놀랐을 텐데. 벗은 몸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해명이나 하게 만들었다. 눈부신 그녀의 모습에 그저 넋이 나가서.

“지갑 가지러 왔어. 바로 나갈 거니 편하게 해.”

툭 내뱉자마자 강호는 문밖으로 나와버렸다. 드레스룸 소품 정리대 위에 지갑이 있다. 지갑을 낚아챈 그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발을 옮겼고, 손힘이 조절되지 않아서 그만, 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침실 문까지 닫아버렸다.

“하아…….”

적당히 예뻐야지. 사람 미쳐버릴 정도로 예쁘면 대체 어쩌란 건지. 노래는 왜 또 그렇게 섹시하게 잘해. 그녀의 환한 미소, 또 때로는 정중하고 사무적인 태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나른하게 늘어진 모습까지, 자꾸만 새로운 면에 반하고 또 반해버린다. 강호는 한숨을 내쉬며 차고로 향했다. 한집에 사는 건 정말이지, 위험한 일이다.

  ◇ ◆ ◇ 역대급 흑역사를 생성했다. 소란은 2층 욕실 청소까지 마치고 제 방으로 내려와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쿵, 쿵.

“최악이야, 진짜.”

주거 공간 분리니 뭐니, 계약에 어긋난다니 뭐니, 그런 소리 할 땐 언제고 주인이 집 비우자마자 벌거벗고 욕실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물론 강호가 없으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뻔히 들켜버리지 않았던가. 절 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하던.

“하, 그 눈빛은 정말…….”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살벌한 눈이 제일 문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문까지 쾅 닫아버리지 않았던가.

“후우…….”

어째서 그와 부딪히기만 하면 이렇게 난감한 사건의 연속인 걸까.

“내가 문제지, 내가 문제야.”

용케 잘 피해 다녔다 싶었는데 큰 사고를 칠 줄이야. 창피하고, 부끄럽고, 쪽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럴 때가 아니야.”

소란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출장을 갔다고 했지. 내일 온다고 했나. 아무래도 그가 돌아오기 전 주말 내내 다른 데 가 있어야겠다. 일요일 밤에 늦게 들어와서 다시 월요일 새벽 일찍 출근하면……, 그를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좋아.”

그럼 어딜 가지? 그녀는 일단 연희에게 전화했다. 명분은 확실하다. 남편이 출장 갔으니 시간이 붕 뜬 주말, 친구와 함께 보내는 것쯤 이상한 일이 아니잖나.

- 어, 소란아.

“연희야, 주말에 뭐 해? 나 서후 보러…….”

- 잠깐만. 아니, 기저귀도 챙겨야 한다니까. 하나만 챙기면 어떡해. 거기 기저귀 파우치 있잖아. 오빠 아우, 진짜.

뭔진 몰라도 소란과 통화할 여유가 없는 건 확실했다.

- 소란아. 뭐라고?

“아니. 어디 가?”

- 응, 나 막 퇴근했는데 바로 시댁 가야 해. 내일 우리 아버님 생신이셔서. 오빠랑 짐 싸는 중이야.

“그렇구나.”

- 근데 왜?

“어, 아니야.”

주말에 자신과 놀아줄 시간은 전혀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연희와 이따금 주말에 즉흥적으로 함께 바람을 쐬러 가기도 했는데. 역시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니 그런 부분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잘 다녀와. 오랜만에 서후 보시고 너무 좋아하시겠다.”

- 응, 언제 오냐고 계속 기다리셔.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너도 주말 잘 보내고.

“그래.”

소란은 전화를 끊고서 침대에 발랑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디 혼자라도 갈까? 그건 또 내키지 않는데. 그렇다고 수많은 지인 중 갑자기 연락해 불러낼 사람이 없는 것도 씁쓸했다. 검색이나 할 요량으로 소란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SNS 앱을 켰다. 어딜 가면 좋을까.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바로, 태석의 피드. 제주도 2박 3일. 내일은 #한라산 #등산크루 #겨울세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태석은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서 제주도에 가 있는 것이다. 아래 적힌 내용을 본 소란은 이거다, 하며 일어나 앉았다.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 란이란이 무슨 일이야?

“선배님 지금 제주도세요?”

- 어, 봤구나.

“네, 혹시 내일 한라산 크루 누구누구예요? 저도 가도 돼요?”

- 여길 온다고? 너 지금 어딘데?

“서울이요.”

태석이 웃으며 대답했다.

- 에이, 뭐야. 제주도 온 줄 알았네. 내일 성판악휴게소에서 새벽 6시 집합이야. 어떻게 오려고.

“시간은 저번이랑 같네요.”

2년 전 가을에 가본 적 있다. 그때도 태석을 따라서였다. 취미가 다양한 태석은 등산 모임을 주최하는 파운더(founder)로도 활동해 그의 산행에 종종 함께했다. 멤버 중엔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도 있고, SNS로 모인 다른 이들도 많다. 여덟 시간 가까운 한라산 등반은 힘들긴 했지만 성취감이 대단했다. 게다가 겨울 풍광이 그렇게나 예쁘다는 소리에 꼭 다시 가보고 싶기도 했다.

- 이번엔 나 포함 다섯 명. 다른 크루들은 대부분 신규라 아마 너 모를 거고, 김은미 변호사 온다고 하긴 했는데 너 진짜 오려고?

“네, 일단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소란은 전화를 끊고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다. 제주 가는 비행기야 시간대별로 수도 없이 많지만 마침 금요일 저녁이라 두 시간 후에 떠나는 비행기 좌석을 겨우 구했다.

“준비하고 공항 가면 되겠다.”

제주에 도착하면 9시 반. 공항에서 나와 제주 시내 저렴한 호텔에 들어가면 대충 10시에서 10시 반 사이. 잠만 자고 새벽에 출발하여 집결지인 성판악휴게소에 6시까지 도착하는 건 문제가 없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몰아치는 일정에 잡생각 할 여유 따윈 없을 것이다. 그게 너무 좋았다. 알몸으로 그의 욕실에 침범해 욕조를 차지하고 있던 흑역사는 멀리멀리 날리고, 제주도 한라산의 굳센 정기를 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 제주도가 자신을 부르는 기분. 애타게 어서 오라 마구마구 부르는 기분.

“흠, 예감이 아아주 좋아.”

소란은 태석에게 내일 새벽에 뵙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서둘러 짐을 챙겼다. 혹시 몰라 마련해둔 아이젠(등산화에 덧신는 겨울철 등산용구)을 드디어 쓸 날이 왔다. 모든 게 완벽하다. 역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의 편인가. 조금 전 욕실에서 맞닥뜨린 남편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지난날은 안녕. 소란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부지런히 가방을 쌌다.

“떠나요오 둘이서어, 아니지. 떠나요오 혼자서어.”

‘제주도 푸른 밤’ 노래의 가사를 바꿔가면서 흥얼거렸다. 둘이 아닌 혼자.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떠난 출장지가 어디인지를. 혼자 떠나는 제주도가 아니라, 둘이 떠나는 제주도가 맞다는 것을. ◇ ◆ ◇ 다음 날 오후. 강호는 제주도 토속음식점 ‘순아할망네’에 와 있었다. 전부터 공들여 접촉해왔던 이곳의 메뉴와 레시피를 드디어 독점 계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인인 할머니의 아들이 식당 운영을 이어받으면서 새롭게 결정한 사안이다. 원래는 어제저녁에 최종 미팅을 하고 오전에 계약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오후로 미뤄졌다.

“할머니는 좀 괜찮으신가요?”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주인인 아들이 강호를 별채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할머니가 아침에 배탈이 크게 나 아들이 모시고 응급실에 다녀오는 바람에 계약은 오후에 하기로 했고, 강호 역시 비행기 시간을 바꾸어 기다렸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식당은 오래되었지만 규모가 제법 컸고,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에게 알려진 맛집이었다. 이곳의 레시피 계약을 진행하여 홈쿡 메뉴를 새로 짜고, 재료 공수를 위해 안정적인 거래처까지 확보하고 나면 그의 고객들은 이제 제주 향토 음식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강호는 주인과의 최종 계약에 진지하게 임하며 일을 진행해갔다.

“어제도 술은 안 드셨는데, 이제 계약도 끝냈겠다 막걸리 한잔하고 가시죠, 대표님?”

계약을 마무리 지은 후 주인이 친근하게 권했고, 강호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닙니다. 서울에 올라가봐야 해서요.”

“오신 김에 하루 더 쉬었다 가시지 벌써 돌아가시게요?”

“아내가 기다려서요.”

희망사항이다. 기다려줬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다르다.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게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려운 아내라니. 어제 본 아내는 제 욕실에 있었지만, 그조차 허상이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아슬아슬한 거품으로 가린 몸을 들켜 낭패한 표정이었으니까. 평범한 부부 사이라면 그조차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을 텐데. 제 마음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으나 아직 소란은 아니다. 그걸 알기에 강호는 내내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달아나게 하지 않기 위해. 부디 그녀가 제 곁에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었으면 하고. 안달이 난 마음 따위 애써 누르고 또 누르는 중이다. 잘해주다 보면 그녀도 절 돌아봐주겠지. 마음을 열고 그러다 보면 속도가 서로 맞게 되겠지. 하지만 잘해주고 싶어도 얼굴을 봐야 잘해줄 것 아닌가. 맞닥뜨렸다 하면 화들짝 놀라 달아나기 바쁜 소란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는 점점 더 간절해졌다. 언제까지 이 마음을 참을 수 있을지 이제 모르겠다.

“월요일에 담당자가 바로 전화드려 이후 일정 보고 진행할 겁니다. 좋은 파트너가 되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별채에서 나온 강호와 주인은 악수를 나눴다.

“몸국 한 그릇 하고 가시면 좋은데.”

“어제 어머님께 대접 잘 받았습니다. 다음에 다른 직원이랑 함께 오면 그때 또…….”

강호가 하던 말을 멈추고 식당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그 눈빛이 너무도 형형하고 살벌하여 주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뭐, 뭐가 있습니까?”

강호의 시선이 향한 쪽을 돌아보았지만, 안쪽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한라산 등반객들이 대여섯 명 있을 뿐. 주인은 달리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강호는 저벅저벅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활달하게 웃으며 막걸리병을 쥔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여자 쪽으로.

“이야, 역시 돔베고기엔 땅콩 막걸리가 또 최고지. 란이란이 우소란이, 한 잔 더!”

“석이석이 마태석이! 내가 또 막걸리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깔깔 웃음소리가 테이블 주변으로 퍼졌다. 죽이 척척 맞아 너무도 다정한 사이로 보였다.

“오, 흐른다, 흐른다.”

여자가 들고 있는 그릇 밖으로 막걸리가 하얗게 넘쳤다. 아까운 듯 얼른 그릇에 입술을 대려는 여자, 그 뒤로 다가간 강호가 막걸리 그릇을 들어 올렸다.

“어어?”

졸지에 막걸리를 빼앗기고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히이익.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마치 숲길을 헤매다 호랑이라도 만난 듯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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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거지?”

뜻밖의 등장에 다들 눈만 껌뻑거리는데 강호에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이 여기 왜…….”

제 아내, 소란 말고는. 아, 또 한 사람. 그녀의 옆에 있는 마태석이다.

“형이 얘기해, 지금 여기서 뭐 하는지.”

“우리…….”

“우리?”

“한라산 등반하고 내려와서…….”

“한라산?”

“점심 먹는 중인데. 보다시피.”

태석의 말이 이어질수록 강호의 눈빛은 싸늘해졌다.

“잠깐 얘기 좀 해.”

강호가 소란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도저히 못 참겠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앞서가는 제 마음을 잡아채어 그녀와 속도를 맞춘다고? 젠장. 웃기는 소리. 식당 건물 밖으로 나온 강호는 그녀와 마주 섰다. 당황한 소란이 숨을 참은 채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우소란.”

어떡하냐, 너를. 앞으로 난 참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네가 따라와.”

이제 속도는 네가 맞추는 거야, 나한테. 더는 천천히 못 가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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