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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아기가 그렇게 예뻐? (24/112)

#24화. 아기가 그렇게 예뻐?2021.01.23.

“대표님 1층 주방에는 왜…….”

“앉아. 아침 먹고 가.”

지금 아침이 문제인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소란은 노트북 가방을 의자에 얹으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표님. 이건 계약서에 명시한 바와 다릅니다. 분명히 주거 공간을 분리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했지.”

“그런데 왜 지금 여기 계시는 건지.”

강호는 막 구운 토스트를 접시에 담았다. 갈색빛으로 딱 좋게 구워져 있어 소란의 눈은 절로 토스트로 향했다. 그가 접시를 테이블로 옮겼다.

“우소란은 1층, 백강호는 2층, 각 층의 침실 및 서재, 드레스룸, 알파룸을 개인 공간으로 사용한다. 지정한 개인 공간은 상대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한다.”

“네, 맞습니다.”

“개인 공간으로 지정한 곳은 각 층의 방이고.”

설마.

“그 외 거실 및 주방, 욕실, 계단, 현관 등은 공용 공간에 해당하지. 물론 루프톱과 정원, 차고 역시 개인 공간은 아니야. 그렇지?”

“쉽게 얘기해서 이 주방은 공용 공간이기 때문에 대표님께서 자유롭게 사용하시겠다는, 그런 말씀인가요?”

“맞아.”

소란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각 층의 주방이나 욕실 등은 개인 공간의 부속 시설입니다만.”

2층에 멀쩡한 주방을 놔두고 강호가 1층까지 올 필요가 뭐 있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계단 한 칸 한 칸까지 전부 나눠야 하는데, 설마 1층 전체가 네 땅이다, 우기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아예 서로의 층에는 출입을 엄금한다는 조항을 붙이고 싶은 거야?”

“그것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고요.”

꼭 필요한 조항이라면 최초 계약서 작성 당시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금 자체는 붙일 수 없다.

“생활하다 보면 부득이한 경우가 분명히 생길 텐데, 그때마다 조항을 수정하거나 예외를 두는 건 번거로우니까요.”

다만,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개인 공간을 각각 1층과 2층으로 나눠 사용하기로 했으니 그에 따른 부속 공간도 당연히 각자 알아서 사용하기로. 그게 상식 아닌가.

“달걀은 스크램블. 괜찮아?”

상대방은 태연하게 달걀의 상식이나 논하고 있다.

“좋죠, 달걀은 역시 스크램블이 부드럽……, 그게 아니라.”

“샐러드는 발사믹과 오일만 뿌렸는데, 다른 드레싱을 원하면 새로 해주고.”

“발사믹 좋아해요.”

소란이 자꾸만 말려드는 듯하단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아침상이 차려졌다. 신선한 채소에 달걀, 갓 구운 빵에 각양각색의 잼과 스프레드까지. 커피를 곁들인 완벽한 아침이었다. 결혼 후 첫 출근 날. 이런 아침식사를 두고 백강호와 마주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저는 아침을 먹지 않는 편이라서요. 대표님 식사하시고 출근하세요, 그럼.”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던데. 안 그러면 종일 난폭하게 군다고.”

자리에 앉은 강호가 바삭,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소란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잖아?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그럴 리가요.”

“형님이 그러시던데.”

정보의 출처를 듣고서 소란은 놀라 자리에 앉았다.

“오빠랑 그런 얘기도 하셨어요?”

“하면 안 되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자나 깨나 제 걱정인 성준 오빠는 백강호를 붙들고 별별 소리를 다 한 게 분명하다. 실상은 달랐지만.

“나는 아침잠이 없는 편이야. 새벽에 운동하고 난 후 아침식사를 만들 건데, 우 변호사도 원하면 같이 먹든가.”

“매일요?”

백강호가 손수 아침밥을 만든다고? 원하면 같이 먹자고? 호강인지 고문인지 잘 모르겠다.

“내일은 한식으로 할 예정이야.”

“한식 좋습…… 아니, 굳이 1층에 내려오셔서 제 음식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식사 준비는 각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으니까요.”

“나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대로 하는 거야.”

“2층 주방에서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2층에는 에어프라이어와 오븐이 없어.”

소란은 의아해 식탁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에어프라이어와 오븐을 이용한 요리는 하나도 없는데?

“앞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묻지도 않았는데 강호가 대답했다. 그리곤 소란이 또 뭔가 트집 잡을 틈도 없이 덧붙였다.

“2층보단 1층 주방이 훨씬 동선이 편리하고 조리도구도 더 많아. 앞으로 나는 1층 주방을 사용하려고 해.”

“흐음. 지금이라도 주거 공간을 바꿀까요? 대표님께서 1층을 통으로 사용하시고, 제가 2층을 쓰는 편이 더 편하실 것 같은데.”

“아니, 침실과 서재는 2층이 마음에 들어. 이미 세팅을 끝낸 짐을 옮기기도 불편하고. 그냥 이대로 하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소란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애초에 대문까지 따로 들어가는 집에 살지 않는 이상, 집 안에서 부딪히는 거야 당연한 일인 것을. 저보단 강호가 더 맞닥뜨리는 걸 싫어하여 볼 일이 없겠구나 싶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원수지간도 아닌데 일부러 피하는 게 더 이상하지. 강호는 그저 절 집 안에 돌아다니는 반려견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냥 자연스러운 동거인으로. 신경 쓰지 말아달라 읍소했더니 정말 신경을 하나도 안 쓰는 것 같다. 여기에 저만 감정이 널뛰어봤자 우스운 꼴 보이기 딱 좋다. 소란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받아들여야 해. 나는 모아이인상, 너는 울산바위. 우리는 돌과 돌 관계야.

“어쨌든 나는 오늘과 같은 아침을 보낼 예정이니, 나머지는 우 변호사의 자유야.”

“네, 일단 알겠습니다.”

계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묘하게 계약한 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혼이 펼쳐지고 있다. 이건 누구의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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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소란은 적당히 부드러운 스크램블드에그와 아삭함이 느껴지는 샐러드를 한입씩 먹었다. 조리가 복잡한 음식은 아니지만 좋은 재료의 맛 그대로가 살아 있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한식이라면, 내일은 어떤 메뉴를 생각하세요?”

“콩나물국에 갈치구이.”

헙, 맛있겠다. 소란은 포크를 입에 문 채 감동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대표님도 바쁘실 텐데 아침부터 너무 번거롭지 않으시겠어요?”

“우리 회사 집밥 키트를 이용할 생각이야. 메뉴 체크와 문제점 점검 등, 일종의 모니터링 차원에서.”

“그걸 이용하면 아침이 훨씬 간편하겠어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딱이네.

“그러니까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어. 난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서.”

“아, 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소란의 가슴 한쪽을 무겁게 짓누르던 부담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사실 그녀는 성준이 매일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기에, 결혼하면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언제까지고 성준의 아침식사를 바라며 살 순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소란도 익숙해져야 했다. 편의점이나 빵집에서 산 음식으로 대충 때워보기도 하고 거르기도 하고, 바쁘지 않을 땐 직접 차려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노력하던 참이다. 그래도 성준의 아침밥이 최고란 건 변함 없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강호가 차리는 밥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다니.

‘나 뭐야, 결혼 잘한 거 같은데.’

소란은 향긋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시계를 보았다. 아직은 출근까지 여유가 있다. 일찍 준비하고 나와 다행이다. ◇ ◆ ◇

“뭐야, 뭐야, 잘 못 잤어?”

강호가 회사 집무실에 들어서자 찬규가 깐죽거리며 달라붙었다. 내내 오늘만 기다렸다는 듯.

“다크서클 뭐야? 볼이 움푹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얼마나 뜨거웠으면?”

“그만하지?”

“새신랑 신혼 초기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홍찬규 이놈 전형적인 너드인 줄로만 알았더니, 아주 발랑 까졌다.

“닥치고 떨어져.”

강호는 가지런한 앞머리로 덮인 찬규의 이마를 쭉 밀어냈다.

“이거 봐, 힘 넘치는 거 봐. 이 자식 진짜 어? 체력 너무 좋아, 어?”

할 말이 없다. 체력 너무 좋은 건 맞는데, 그 좋은 걸 어디 쓸 데가 있어야지.

“야, 야, 아무리 그래도 적당히 해야 한다. 갑자기 너무 그러면 몸 상한다니까.”

찬규가 싱글싱글 웃는데 똑똑, 문을 대충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계나린이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잘 왔다. 얘 좀 봐라, 결혼만 기다린 애처럼 밤새 무리하고 온 거. 얼굴 완전 상했지.”

찬규는 혼자론 부족했다는 듯 나린을 끌어들였다. 나린이 받아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찬규의 깐죽거림은 계속됐다. 강호를 놀릴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찬규에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애냐, 애야.”

나린은 한심하단 얼굴로 쯧쯧 혀를 찼다. 평소에도 찬규의 공격에 합세하진 않지만 오늘은 더더욱 아니다. 진짜 신혼부부도 아닌데 밤새 무리는 무슨 무리.

“자, 결재해. 건강식 새로운 라인업 재수정한 거야.”

나린은 서류를 강호의 앞에 탁 내려놓았고, 찬규가 앙탈을 부렸다.

“뭐야, 내가 먼저 왔는데. 나 앱 패치 건으로 상의할 거 있어서 왔는데.”

“번호표 뽑았어?”

“아니.”

“그럼 꺼져.”

“어허, 대표님한테 말씀이 심하시다.”

“네, 홍 대표님, 꺼지세요.”

나린은 시큰둥한 얼굴로 정정했다. 찬규는 강호와 함께 이 회사의 공동대표긴 하나 자리에 어울리는 위엄 따위는 전혀 없다. 그게 또 찬규의 매력이지만.

“하여튼 계씨 저거, 누가 데려갈지. 쯧쯧.”

찬규가 한발 물러나 소파에 앉았고, 강호는 내심 그에게 동의했다. 계나린 성격이 보통 아닌 건 잘 알고 있다. 누가 데려갈지 걱정이기도 했다. 계약이 원래대로 진행됐다면 저 폭탄을 떠안을 이는 바로 자신이었다. 물론 허울뿐인 결혼이라 감당할 만은 했지만. 그런데 지금 위험 경보가 울린다. 어쩌다 우리 형님이 계씨랑……. 집무 테이블 앞에 앉은 강호의 시선이 나린의 배로 향했다.

“결재나 하라고, 결재.”

눈길을 느낀 나린이 서류철로 테이블을 탁탁 쳤다.

“줘.”

그녀의 배에서 눈을 뗀 강호는 서류를 넘겼고, 그사이 찬규는 영상통화라도 하는지 휴대전화를 든 손을 쭉 뻗으며 화면을 향해 다른 손을 흔들었다.

“오구오구, 우리 떠후 잘 자떠요? 할모니랑 우유도 먹어떠요? 아빠 보고 싶어떠요?”

근무환경 최악이다, 정말. 툭하면 아들 서후에게 전화를 걸어대는 찬규를 보며 강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도 우리 떠후 너무너무 보고 시푼데, 지금 가까? 아빠 가까?”

어떻게 하면 사람 혀가 반만 남을 수 있는지. 예전의 찬규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별의별 게임에 코딩에, 심심하면 어플 하나씩 뚝딱 만들어내며 놀곤 했다. 하지만 이제 휴대전화의 사용 용도는 오로지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거나, 아들의 사진을 보거나, 아들의 영상을 가지고 편집을 하거나. ……천재와 바보는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한때 실리콘밸리 천재 엔지니어였던 홍찬규는 지금, 아들에게 폭 빠진 그냥 바보였다. 이럴 때면 강호가 뭐라 할 틈도 없이, 보통 나린이 한소리를 하곤 했다. 시끄럽다든가, 구석에 가서 하라든가, 제발 나가라든가. 찬규의 혀 짧은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류를 살피던 강호는, 곧 나린의 차디찬 음성이 날아들겠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책상 앞에 붙어 있던 그녀의 그림자도 없다. 계나린 어디 갔지? 갑자기 찬규가 큰 소리를 터트렸다.

“아, 뭐야, 깜짝이야!”

고개를 든 강호의 시야에, 영통 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찬규가 들어왔다. 그의 뒤에 바짝 붙은 나린이 허리를 숙여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모습도.

“진짜 놀랐잖아. 오구구 우리 떠후 놀라떠요? 울지 마, 괜찮아, 이 아줌마 귀신 아니야.”

프레임 속 아빠 너머로 스으윽 들어온 여자를 보고 서후가 깜짝 놀랐나 보다. 으아앙, 소리가 강호에게까지 들렸다. 웃음기 하나 없이 냉정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더 놀랐겠지.

“야, 그러게 너는 왜 갑자기 나타나서 애를 놀라게 하고. 어휴.”

“울기만 하는데 아기가 그렇게 예뻐?”

“당연히 예쁘지! 말을 말자. 네가 뭘 알겠냐.”

찬규가 나린을 타박하며 얼른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멀뚱히 서 있던 나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뭘 잘못했냐.”

“넌 존재 자체가 잘못이야.”

강호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며 휙 사인하고 서류를 내밀었다.

“전보다 낫네. 이대로 진행하고 여기 보완할 거 메모했어. 담당자 정해지면 알려줘.”

“알았어. 그런데.”

“그런데 뭐.”

“내가 그렇게 인상이 안 좋아?”

강호가 나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하는 거야.”

“거울 없어?”

나린의 눈에 분한 빛이 어렸다.

“웬만하면 서후한테 얼굴 보이지 마. 자다가 경기해. 한창 좋은 것만 봐도 모자란 시기에.”

“아, 진짜 이것들이.”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하다. 나린이 욕이라도 쏟아낼 듯한 기세로 강호를 쏘아보았다.

“나도 경기해. 나 요즘 예민하니까 그만 노려보고 나가.”

“예민하긴, 신난 거 아니었어? 우소란 씨랑 결혼해서.”

“내가 신난 걸로 보여?”

“보여.”

잘 보네. 역시 계나린 예리한 데가 있단 말이지. 그러니 더더욱 나린에게 이 마음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강호는 슥 화제를 돌렸다.

“언제 얘기할 거야?”

“뭘 얘기해?”

“우리 형님께, 그 얘긴 언제 할 생각이냐고.”

“뭐래.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나린이 딱 잡아떼려는데, 강호가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왜 상관이 없어. 엄연히 말하면 그 애, 내 처조카가 되는데.”

처조카. 다소 센 공격에 나린이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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