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어른의 키스2021.01.19.
“소란이 지금, 키스하고 싶은데.”
“…….”
“해도 돼요?”
그녀의 말에 강호의 칠흑처럼 검은 눈이 더욱 짙어졌다. 제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가까이 선 그녀에게선 향긋하고 달콤한 술 내음이 풍겼다. 아찔한 향기에 강호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해도 되냐니.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나. 취한 그녀를 당기지도, 밀어내지도 못하던 그 순간. 소란이 그의 목을 감싸 당기며 까치발로 몸을 높였다. 초오옥. 물기 어린 입술이 뭉근하게 닿아 눌렸다. 빈틈없이 포갠 입술은 서로의 자리를 찾은 듯 꼭 맞았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강호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녀의 말캉한 살갗을 고스란히 느꼈다. 소란의 드리운 속눈썹 위로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밖에서 스며든 별빛이 내려앉았다. 이대로 영원 속에 갇혀도 좋을 것만 같다. 마침내 입술을 떨어뜨리고 선 그녀가 너무나 예쁜 미소를 지으며 강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질러주었다.
“두 번째 키스네요.”
입을 맞춰놓고도 태도는 여전히 평온하다. 하나 발그레한 뺨, 새빨간 귀 끝. 그녀 역시 터지는 불꽃 같은 감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강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당당히 제 입술을 훔치고, 다시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 확인까지 시키는 그녀의 얄궂은 손을 움켜쥐고서.
“이런 걸 키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지.”
두 번째 ‘키스’가 아니라, 두 번째 ‘입맞춤’임을 일깨워주었다. 소란이 결혼식에서의 스킨십이 키스가 아니라고 부인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소란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는 중이다.
“키스하고 싶다며.”
“…….”
“하려면 제대로.”
강호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부드럽게 감싸고, 방금까지 맞닿았던 입술을 다시 입술 사이로 머금었다. 흡, 서툴게 삼키는 숨이 촉, 감싸는 입술 너머로 사라졌다. 소란의 눈이 감겼다. 예민한 피부 위 자잘한 주름마다 짜릿한 감각이 새겨졌다. 몸에서 이렇게까지 예민한 부분이 있었나 싶다. 진득하게 닿아 열리는 입술 사이로 깊은숨이 얽히었다. 등줄기에 짜릿한 전류가 일었다. 모조리 삼키고 싶다. 그녀의 모든 걸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싶다. 애타게 참고 또 참아왔던 가장 말초적인 본능에 잠식당했다. 복잡한 생각 따위 다 집어치워. 그녀의 입술 안쪽을 헤집고 들어간 지금이 못 견디게 좋았다. 이 순간이 생의 끝이라 해도 좋을 만큼.
“흐음…….”
틈이 생기자 그녀의 가느다란 숨이 터져 나왔다. 부드럽고, 또 세밀하게 숨을 빨아들이는 동시에 여린 살이 섞였다. 놓아줄 수 없다는 듯, 놓치기 싫다는 듯. 지금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는 듯. 강호는 그녀의 안을 헤집고 들어가 농밀하게 움직이며 제게로 더 바짝 당겼다. 은빛 실이 엮이고 가장 예민한 살이 닿아 말캉하니 얽혀들었다. 파르르 떠는 움직임이 좋았다. 빠져나갈 수 없이 단단히 갇힌 채로 어찌할 바 몰라 하는 그녀가 품 가득히 느껴졌다. 고개의 방향을 바꾸고, 은밀하게 비벼진 속살이 모로 틀어지며 더욱 짜릿한 감촉이 온몸을 덮쳐들었다. 내가 얼마나. 소란아, 내가 얼마나 이런 순간을 바라고. 또 기다렸는지 너는, ……너는 모르지. 열락의 문이 열렸다. 키스만으로도 절정의 끝에 다다른 듯 그녀의 할딱이는 숨이 가르릉 입술 끝에 맺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쩌면 그 앞에도, 또 그 앞에도 열렸을지 모른다. 강호가 폭풍우처럼 거센 키스 속에서도 몸을 돌려 그녀를 감추었기에 적나라한 장면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두 사람만의 아득한 세상에선 ‘제대로 된’ 어른의 키스가 농염하게 펼쳐졌다. ◇ ◆ ◇ 잠이 든 걸까. 소란은 입술을 떼자마자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턱.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 안아 올린 강호는 본관 건물을 빠져나와 빌라 룸으로 향했다. 실내로 들어서서 소란이 사용 중인 침실로 갈 때까지 그녀는 눈을 감은 상태였다. 잔뜩 적셔둔 입술만이 강렬한 키스를 기억하는 듯 붉게 여물었다. 잘 정돈된 순백의 침대 앞에 서서 강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상황인지나 알고 자는 것인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지. 이토록 깊은 밤, 무방비 상태의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알고나 있는 건가. 그는 천천히 소란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흐으음, 그녀가 눈을 감고도 생글 웃으며 몸을 돌렸다. 독한 술에 진하디진한 키스까지, 오늘 밤의 모든 것이 흡족했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였다.
‘……웃어?’
날 미치게 해놓고, 너는 지금 웃어? 토끼가 아니라 여우다. 그것도 너무나 요염한 여우. 호랑이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여우는 지금 신나게 자신을 요리하는 중이다.
“으음…….”
소란이 다시 몸을 돌렸다. 원피스 자락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늘씬하게 드러났다. 강호는 뜨거운 숨을 탁 토해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소란이 있다. 하지만 기억에도 없는 밤을 보내고 싶진 않다. 적어도 그녀와의 시간은 서로의 마음에 온전히 새기고 싶은 마음. 그건 진정으로 소란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기억할 수 있을 그때. 다시 하자. 진짜 두 번째 키스. 홀로 힘겨운 싸움을 견뎌낸 그는 시트를 당겨 소란에게 덮어주었다. 찬물에 샤워하고 자면 밤이 끝나리라. 버티기 힘든 신혼의 달콤한 이 밤. ◇ ◆ ◇ 물론 그건 강호의 착각이었다. 가슴속 거센 진동은 겨울철 찬물 샤워로도 가시질 않았다. 거실로 나온 그는 소란의 닫힌 방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친놈.”
자조하듯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그는 거실 한쪽의 미니바에서 투명한 술을 꺼냈다. 보드카를 한 잔 따라 단번에 들이켰다. 찬물로도 안 되면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오늘은 자야 한다. 어제도 밤을 새우지 않았던가. 오늘까지 잠을 못 자면 신혼 이틀째 밤샘을 기록하는 셈이다. 그것도 참 영양가 없게. 보드카를 연달아 두 잔 마신 강호는 방으로 들어갔다. 홧홧하게 타오르는 몸은 내내 열기에 가득 차 있다. 강호는 티셔츠를 벗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뒤척이던 그가 다행히 잠이 들긴 했는데…….
“……흐으음.”
컴컴한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번쩍 눈이 뜨였다. 이건 분명…….
“혼자 자기 싫은데.”
그녀의 음성이다. 게다가 팔에 착 감겨드는 건 또 분명…….
“같이 자면 안 돼요?”
그녀의 살.
“흐억.”
강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놀라서 협탁 위 터치 스탠드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불 위로 그녀의 어깨엔 가느다란 끈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겉옷은 아니다. ……그럼 설마 옷을 벗었어?
“진짜 아무 짓도 안 하고 잠만 잘 건데.”
그녀에게서 보드카 냄새가 난다. 목이 마른 듯 입술을 짭 부딪쳤다가 그 사이로 내미는 붉은 혀끝이 앙증맞았다. 설마 물을 마시려고 나갔다가 탁자 위에 있던 보드카를 마신 건가? 그녀에게도 수난의 밤이지만, 당하는 건 그였다.
“소란이 못 믿어? 손만 잡고 잔다니까. 소란이 약속할게, 진짜.”
아련하게 눈썹을 늘어뜨리며 그녀가 바짝 다가왔다.
“잠깐, 자, 잠깐.”
진정하자, 진정해.
“그냥 손만 잡고 같이 자요. 소란이 소원이야.”
그놈의 소원. 후우, 강호는 긴 숨을 내뱉었다. 소란은 결국 그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것도 강호의 손을 붙들어 잡은 채로. 슬슬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가려는 시도도 먹히지 않았다. 조금만 손을 빼려는 기색이 보여도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더욱 꽉 붙드는 통에.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이 다 되어서야 스르르 눈이 감겼다. 이불 속 다소 노출이 심한 차림으로 그녀와 누웠지만 들끓는 열망이 가라앉은 후에 남은 건 온통 따뜻함이었다. 꼭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가만히 공기를 데우며 겨울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 ◆ ◇ 순간 소란의 머릿속은 기억이 펑펑, 불꽃 터지듯 축제를 벌였다.
“그냥 손만 잡고 같이 자요. 소란이 소원이야.”
싫다는 그에게 구차하게 매달린 건 본인이었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소란에겐 아니었다. 오히려 더 끔찍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가 한숨을 쉬고, 저를 내치려 하고,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도 자신은 끝까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서 결국 잘못은 모두 제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보면 서로 스파크가 튀어 밤을 보낸 것보다 훨씬 안 좋은 경우다. 전자는 관계가 다소 복잡해지더라도 개선과 발전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오로지 저만 안달이 나 들이댔던 거 아닌가. 강호가 질색하며 자신과의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사람이 깔끔해야지.’ 소란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어제는 제가 만취해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였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주의하겠다.”
“네, 절대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게요. 약속드려요.”
“실수라.”
“특히 옷을 벗고 대표님 침대에 들어간 건 최악이란 거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더워 그랬던 것뿐이고 사심은 전혀 없었으니 그 점 부디 이해하고 용서해주세요.”
거짓말을 조금 보탰다. 사심은 당연히 있었으니까. 그를 볼 때마다, 그의 향기를 맡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보고, 또 그의 몸에 가슴이 반응할 때마다 매 순간 흑심을 품었던 건 분명하니까. 그렇다고 사실대로 고할 순 없다.
“키스를 한 건.”
“……키스요?”
“그것도 사과할 건가.”
“키스했다고요? 저랑, 대표님이요?”
첩첩산중이다. 기억이 전부 난 줄 알았더니 반 토막짜리였다. 키스, 그 중요한 걸 몰랐네.
“했지. ……소란이 지금 키스하고 싶은데, 해도 돼요? 라고 물어보고서.”
왜 살아 있었을까.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접시에 물을 받아서 코부터 박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소란은 대역죄인의 심정으로 겨우 말을 이었다.
“키스……는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 못 하는 게 더 큰 잘못이란 거 알아요. 어떻게든 대표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스킨십에 관한 계약 조항을 위반한 것도 알고 있고요. 제가 배상은 어떻게 하면 좋을…….”
“위반하진 않았어.”
강호는 묵묵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위반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협의가 없는 스킨십, 부부 관계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이를 어길 시, 상대가 원하는 금액으로 배상한다.] 조항을 다시 떠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소란에게, 그가 이어 말했다.
“협의가 없진 않았거든. 우 변호사는 분명히 내게 의견을 먼저 전달했고.”
“…….”
“사전에 의사를 표한 후 행위를 취했으니, 딱히 계약을 위반한 건 아니야.”
계약의 빈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협의가 없는’이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허용의 범주에 있는지, 강호는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빈틈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꿰뚫었다.
“그러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 배상하지 않아도 되고.”
그가 자신을 지긋지긋한 눈으로 보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어쩌면 강호는 생각보다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은 남자일지도 모른다. 아님 초인과 같은 인내심으로 참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량을 베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걸로 됐다. 더는 건드려서는 안 된다.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지. 이만큼 봐줬는데 선을 또 넘어버리면 그땐 더 큰 화가 닥쳐올 것이다. 그게 삶의 섭리 아니겠는가. 소란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부디 그가 어제의 추태는 잊어주시길 바라며.
“앞으로 좋은 아내로, 좋은 파트너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녀는 기필코 투명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강호가 원하는 부부상이 바로 그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에.
“집을 같이 사용하는 것뿐이지 너랑 나랑 서로 생활하는 데엔 간섭하지 말자는 거잖아.”
“그래, 말하자면 투명인간 같은 거지.”
“그건 나도 바라는 바거든. 회사에서 일 때문에 보는 것도 모자라 백강호랑 집에서까지 봐야 한다니. 어휴, 벌써 숨 막혀.”
“마찬가지야. 서로 머리카락 하나도 눈에 띌 생각하지 말자.”
계나린과 백강호가 계약서를 작성하던 당시, 소란은 그 옆에서 들었던 대화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땐 이렇게 될지 몰랐지만 이젠 제가 나린을 대신해 그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슈퍼 꿩 본인은 알 턱이 없다. 강호는 결코 슈퍼 꿩이 투명인간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쟁취하여 이 결혼을 백년해로로 이끌겠다는,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찬 희망을 소란은 아직 알지 못했다. 신혼집에 도착했다. 차고를 통해 안으로 들어선 소란은 1층으로 올라와 위용이 느껴지는 커다란 중문 앞에 서서 그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는 들어가보겠습니다. 대표님도 올라가서 편히 쉬세요.”
내부로 계단이 이어져 있지 않고, 중문 밖으로 계단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다. 투명인간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설계였다. 새삼 강호의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소란은 조용히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중문을 열어 캐리어를 끌고 혼자 1층 실내로 들어서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다. 더는 절대로 강호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결혼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지. 앞으로 그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소란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곳이 이제, 제집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소란이 사용하는 1층의 가장 넓은 방은 안쪽으로 큰 규모의 드레스룸과 욕실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그렇기에 쾌적한 분위기에서 출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마치 드라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에 다소 기분이 얼떨떨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호강을 누려도 되나, 싶은 마음. 소란은 깔끔한 정장에 코트, 그리고 노트북과 자료를 넣은 가방을 들고서 방에서 나왔다. 아침을 꼭 먹고 가는 편이지만 새로운 환경에선 그렇게 챙겨 먹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샌드위치라도 사려고 생각을……. 달그락. ……하는 참이었는데. 방을 나와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향하려는 소란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있으니. 고소한 토스트와 달걀 볶는 냄새가 주방으로부터 밀려 나오고 있다.
“……대표님?”
하얀 와이셔츠에 슬랙스를 입은 긴 다리. 하체 위로 가볍게 두른 진회색 얇은 앞치마. 혹시 광고 촬영 중인가 싶을 정도로 근사한 모습의 그가 주방에 서 있다. 아침 햇살을 가득 내려받으면서. 소란은 잠시 멈춰선 채 계약 조항을 떠올렸다. 1층은 소란이, 2층은 강호가 사용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여긴 2층에도 주방과 바가 있는 집이다. 마음만 먹으면 1년 내내 서로 안 보고도 살 수 있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
“대표님 1층 주방에는 왜…….”
“앉아. 아침 먹고 가.”
이 집에서의 첫 아침,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영역을 침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