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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이렇게 본능에 충실하다고? (15/112)

#15화. 이렇게 본능에 충실하다고?2020.12.22.

톰 소여의 모험은 끝났다. 바짝 붙어 안긴 채 얽혀드는 시선이 진득했다. 눈 속을 깊게 파고들어 서로만 담으려는 듯 집요하고도 뜨거웠다. 몸의 맞닿은 부분이 홧홧하게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 모든 것이 산화하고 오직 둘만 남은 느낌에 소란은 숨이 막혔다. 그가 절 구해준 건 두 번째지만,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

‘이대로 키스해도, 좋을 것 같은데.’

소란의 가슴은 온통 흑심으로 가득했다. 열기로 타오르는 분위기에 제대로 휩쓸린 그녀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진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백강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퇴폐적인 눈빛, 제 숨까지 야하게 먹어치울 것만 같은 입술, 아찔하게 선 콧날까지. 이토록 섹시한 그가 절 시선으로 압살하는데. 게다가 절 감싼 팔은 또 얼마나 단단한지. 넓은 어깨와 강한 힘이 느껴지는 가슴까지…….

‘미치겠다, 정말.’

소란은 당장이라도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붙잡아 제게로 당기고 싶었다. 그도 그런 걸까. 심장까지 찌르고 들어오는 그 눈빛이 조금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쯤 소란은 오늘만 사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이대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그 순간. 휘이잉, 날렵한 바람 소리가 일었다. 소란은 마법에서 깨어나듯 눈을 크게 떴다. 강호가 손으로 움켜잡은 뭔가를 휙 옆으로 던지듯 날렸고, 작은 벌레 같은 것이 파닥거리며 잽싸게 멀어졌다.

“벌레가 있어서.”

“아, 네!”

정신이 바짝 돌아왔다. 머리를 쾅 얻어맞은 듯한 기분에 소란이 물러섰다. 절 안은 품으로부터 빠져나오려다가 그 바람에 쿵 넘어지고 말았다. 와, 다른 의미로 미치겠다. 소란은 또 귀가 새빨개지는 것 같아서 얼른 머리카락으로 감추었다. 다시 한번 수치사가 예견되는 가운데, 그녀는 강호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빛의 속도로 벌떡 일어섰다.

“하하, 주, 죽을 뻔했네요.”

떨어져서 죽는 게 아니라, 그의 열기에 잠식되어 죽을 뻔했다. 그리고 지금은 창피해서 죽을 것 같고.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하나도 안 감사해요. 차라리 떨어지게 두지 그러셨어요. 소란은 울 듯 말 듯한 마음으로 방긋 웃어 보였다. 표정이 이상할 것 같지만 도저히 관리가 안 되었다. 도망가고 싶다, 정말.

‘아니, 나 진짜 왜 그랬어? 백강호 눈빛 야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원래 저렇잖아. 원래.’

정신이 돌아오자 소란은 조금 전의 자신이 더 이해가 안 갔다. 그는 지금처럼 두 눈 뜨고 바라본 것뿐인데, 그 눈빛에 현혹되어 별별 생각을 다 한 것이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눈이 어쩌고, 입술이 어쩌고, 팔이 어쩌고, 가슴이 어쩌고…….

“내, 내려가야겠다.”

소란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조심하지, 또 넘어질 것 같은데.”

그러면 또 잡아주세요……, 가 아니라. 소란은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겨우겨우 표정을 가다듬은 그녀가 강호를 돌아봤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대표님 신경 쓰시게 해 죄송해요.”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다.

“신경 쓰이게 하면서, 쓰지 말라고?”

안 될 말이다. 백강호의 신경을 건드리면 절대, 절대 안 된다. 결혼이 코앞인데. 이러다 그를 놓치면 옳다구나 백진상이 달려들 테고. 그땐 진상을 피해 이민이라도 가야 할지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피해당하는 쪽이 손해까지 봐야 하는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호의 옆을 지켜야만 했다. 그의 계약 결혼 상대자로서 본분을 잘 지키면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버텨야만 한다.

“신경 쓰실 일 없게 하겠습니다. 그냥 대표님과 저 사이에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 벽을 허물 일이 절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대표님 길 가시면 됩니다.”

신뢰감 넘치는 미소를 띠어 보였다. 억지로 꾸미긴 했으나, 진심은 전해지겠지.

“그럼 출발하기 전에 주택 내부로 들어가서 공간 사용에 관해 협의했으면 하는데요. 잠시 시간 되실까요?”

“……공간 사용?”

그가 마뜩잖은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여전히 심기가 안 좋은 모양이다. 소란에게는 잔뜩 날카로워진 그의 눈빛이 오히려 더욱 섹시해 보였다. 조금만 더 찡그리면 훨씬 더 야할 것 같은데. 건드리면 안 되는데, 건드리고 싶다. 감정이 널뛰는 모습도 보고 싶다. 저 남자가 여자 때문에 울 일도 있을까. 울면 어떤 얼굴일까. 애타게 기다리는 표정은 또 어떨까. 세상이 발아래 있는 것처럼 오만해 보이는 그에게 평생 그런 일이 있기나 할까.

“주거 공간 분리에 대한 얘길 하는 거야?”

“……아, 네.”

소란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계약서에 협의한 내용은 이전에 대표님의 아파트를 기준으로 한 거니까, 이 집에 대해선 새로운 협의가 필요합니다. 곧 결혼식이니 오늘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 가능하실까요?”

“그래, 그럼 들어가.”

그가 먼저 걸음을 옮겨 건물 쪽으로 향했다. 휙 스치는 바람이 싸늘했다. 걸어가는 뒷모습은 왜 또 포스가 넘치는가. 모델이 따로 없네. 대체 뭘 먹고 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멋있…….

‘뭐야, 나 이런 여자였어?’

문득 소란은 어이가 없어졌다. 감정이고 뭐고 상관없이 이렇게 본능에 충실하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머릿속으로는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게 생겼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누가 그랬나. 여자는 좋아하는 남자와만 잘 수 있다고.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말은 틀린 것 같다. 좋아하지 않아도 강호의 손짓에 반응하고도 남게 생겼는데, 육체적 본능에 여자 남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미쳤지. 진짜 미친 거야.’

다만 인생이 걸린 사안이다. 이 섹시한 호랑이굴에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내쫓기는 게 문제인 상황이다. 그의 발목이라도 붙들고 매달려야 하는 지금, 소란은 본능 따위 가슴속에 고이고이 묻어놓고 철저하게 가면을 쓰기로 했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 ◆ ◇

‘미치겠다.’

여기도 미치는 중인 한 사람. 현관으로 들어선 강호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탁 내쉬었다. 잡아 뺄 타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절로 손이 목으로 향했다. 호흡이 달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요물인가.’

강호는 건물로 열심히 걸어오는 중인 소란을 바라보았다. 화사한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나만 쓰레기지. ……그래, 나만 쓰레기야.’

아까 오두막 계단에서 넘어지려는 그녀를 확 안았을 때. 복사꽃처럼 환하고 탐스러운 볼과 붉게 물든 입술이 그의 심장을 확 움켜쥐었다. 꽉 조여드는 숨에 아찔해졌다. 부푼 가슴과 낭창한 허리가 제 품에 있고, 몸 아래쪽이 빈틈없이 맞닿아 있는 그때. 강호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키고 싶단 열망에 휩싸였다. 모든 게 엉망이 될지라도. 설령 그녀가 절 떠난다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소란을 품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어도 좋다. 어디서든 좋으니 아직 자신이 보지 못한 그녀의 모든 걸 제 눈에, 제 가슴에, 제 품에 가득히 담고 싶었다. 그때 작은 벌레가 두 사람의 얼굴 사이로 날아들었다. 제 목 쪽으로 비행하는 벌레를 찰나의 속도로 휙 잡은 건 지극히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멍청하기도 하지. 거기서 그걸 왜 잡고 있었을까.  

“벌레가 있어서.”

“아, 네!”

  계단 아래로 구를 뻔했던 그녀는 얼마나 놀랐던지 제 품에서 벗어나려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강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좀 전, 제가 그녀를 안고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대로 그녀를 놓쳐도 좋다니. 그래도 마음대로 해버리고 싶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그녀를 참아내야 했던 10년이 무색하게도 잠깐을 못 견뎌 이 기회를 날려도 좋다는 생각을 했냔 말이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황당할 지경이다. 일단 결혼은 무사히 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아직 굴에 들어오지도 않은 토끼를 제 발로 걷어찰 뻔했다.  

“신경 쓰실 일 없게 하겠습니다. 그냥 대표님과 저 사이에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 벽을 절대 허물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대표님 길 가시면 됩니다.”

  그녀는 여전히 사무적이고.  

“그럼 출발하기 전에 주택 내부로 들어가서 공간 사용에 관해 협의했으면 하는데요. 잠시 시간 되실까요?”

  이 결혼에 감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마음을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우소란에게 천천히, 정성껏, 공들일 것이다. 제 숨을 틀어막고 심장을 누르고 눌러, 그녀와 속도를 맞추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제게 익숙해지고 마음을 열고 사랑을 느낄 때까지. 미친 본능 따위,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한이 있어도 참고 참아낼 것이다.

“대표님과 제가 1층과 2층으로 나눠서 사용하면, 부딪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좋은데요.”

너나 좋지. 나는 하나도 안 좋아. 게다가 1층과 2층 내부를 연결하는 계단은 없다. 현관 로비에서 1층으로 들어가는 문과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지하 차고로 연결된 계단이 분리되어 있으니 여차하면 종일 얼굴 한번 못 보고도 살 수 있는 구조였다.

“대표님은 1층과 2층 중 어디를 사용하시는 게 좋으신가요? 제가 맞추겠습니다.”

정 맞추고 싶다면, 함께 1층을 사용하는 게 좋겠군. 침실로 사용할 만한 가장 큰 방 채광이 훌륭하니, 침대 위에서 아침 햇살 받은 네 얼굴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없다.

“우 변호사가 1층을 사용해. 내가 2층을 쓰지.”

“네, 그럼 제가 1층을 쓰겠습니다. 가장 큰 방은 제가 침실로 쓰는 대신에 부부침실인 것처럼 꾸미면 될 것 같아요. 할아버님이나 다른 손님이 오실 경우를 대비해서요.”

“그래.”

태블릿을 꺼내 든 소란은 다른 방들도 돌아보면서 공간의 용도를 지정하고 메모해갔다.

“내일 잠깐 시간 내서 디자이너 미팅을 하지. 가구나 가전만 지정해주면 알아서 준비하도록 해놓을게.”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데 어쩌나 했어요. 저는 그럼 최소한으로만 준비해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뭐든 제일 좋은 걸로 제대로 골라. 두 번 사게 하지 말고.”

“이렇게 좋은 집에 그런 환경까지. 제가 다 누려도 되나 하고 조금 면목이 없어요.”

“자격 충분해.”

시간만 있다면 숟가락 하나, 베개 하나까지 의논하며 함께 사러 다니고 싶다. 같이 보낼 시간을 그리며 신혼을 준비하는 기쁨을 그녀와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에 비하면 이런 건 하찮을 뿐인데도 소란은 분에 넘치는 호강이라 한다.

“네 덕분에 내가 얻은 게 훨씬 많아. 이런 건 네가 공짜로 얻은 게 아니고 네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일 뿐이야.”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비할 바 없이 크다는 걸, 네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게 언제쯤일까. 그때까지 나는, ……견딜 수 있을까. 풍선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한껏 얇아진 막은 그 속을 드러낼 만큼 투명하다. 사랑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닌데. 아슬아슬한 감정과 본능 사이 줄타기는 계속되고 있다. ◇ ◆ ◇ 오지 않을 것 같던 결혼식 날이 되었다. 바쁜 업무 일정과 결혼 준비가 겹쳐 눈코 뜰 새 없었던 소란은 당일이 되자 차라리 후련했다.

“소란아, 진짜 어떡해. 너무너무 예쁘다! 화장도 너무 잘 먹고, 드레스도 정말 잘 골랐어. 완벽하다, 완벽해.”

연희는 연신 칭찬을 퍼부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래도 새벽부터 이어진 행군은 녹록지 않다. 전날 밤까지 업무를 미리 처리하느라 얼마나 골치가 아팠던지. 생략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은 생략했는데도 이렇게나 정신이 없다니, 결혼 두 번은 정말 할 일이 못 된다. 뭐, 어차피 백강호 옆에 딱 붙어 여생을 평온하게 누릴 생각이니 두 번 할 일도 없겠지만. 계약이 종신인 건 그녀에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시각 신부대기실 밖. 안으로 들어가기 전 태석은 심호흡했다. 그래도 갑갑한 속은 영 나아지질 않는다. 원인 모를 답답증이 계속되고 있다. 내일은 겨울 등산이라도 가야겠다. 로펌 식구들과 일요일마다 종종 산을 오르곤 했는데, 그 멤버 중 하나인 소란은 최근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바로 이 결혼 준비 때문이다.

“후우…….”

명치 끝이 아프게 눌린다. 태석은 잠시 심호흡을 또 한 번 하고는 애써 웃음을 활짝 머금고 신부대기실로 들어갔다.

“란이란이 우소란이!”

안으로 들어서던 태석이 흠칫 멈춰 선 채 감탄했다.

“이야, 뭔데 이렇게 예쁘냐? 오늘 아주 씹어먹네! 아까워서 우리 소란이를 어떻게 보내지?”

“빈말이라도 기분 좋네요. 감사해요, 선배님.”

“선배님이 우리 소란이를 왜 보내줘요. 여기 소란이 오빠가 딱 버티고 있는데.”

연희의 말에 태석은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환한 빛을 온몸에 머금고 서 있는 그는 길 가다가도 돌아볼 만큼 잘생겼다.

“아하,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 변호사 대학 선배이자 같은 로펌에 있는 마태석이라고 합니다.”

태석은 얼른 명함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네, 안녕하세요. 소란이 오빠 우성준입니다. 저도 말씀 정말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뵙네요. 소란이에게 도움도 많이 주시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휴, 도움은 무슨. 우 변이 다 제 밥그릇 똑소리 나게 잘 챙기는 거죠. 제가 미모라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데, 소란이 오빠분이 또 이렇게 저랑 대적할 만큼 미남이시네요.”

“과찬이십니다.”

화기애애한 웃음이 가득한 신부대기실.

“선배님 근데 엄청 일찍 오셨네요.”

“이런 날은 당연히 일찍 와야지. 신랑은 어디 있어? 곧 하객들 오기 시작할 텐데.”

때마침 안쪽에 마련된 룸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아휴, 신부님. 우리 신랑님이 기어이 타이는 안 하시겠다고…….”

드레스숍에서 파견 나온 도우미가 곤란함 가득한 얼굴을 내밀었다. 문을 붙잡고 선 남자는 강호였다. 이마를 드러내 맵시 있게 넘긴 머리, 늘씬하게 빼입은 짙은 네이비색 슈트의 그는 그야말로 근사했다. 다만 윗단추를 하나 풀어낸 흰 셔츠가 신랑의 차림으로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뿐.

“신부가 해줄 겁니다.”

“네?”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러 들어갔던 도우미는 아까보다 더 당황한 기색이다. 셔츠며 재킷에 손 하나 못 대게 하더니, 급기야 타이는 하지 않겠다는 신랑은 그녀의 헬퍼 인생 중 처음이다. 직접 착용하시면 정돈만 해드리겠다 해도 통하지 않았다. 암만 재벌가 도련님이라도 허우대만 멀쩡했지 아주 성격은 괴팍하시네, 속으로 별별 흉을 다 보던 차에 그가 문을 벌컥 열어버린 것이다. 신부가 해준다니? 손이 없어? 타이 하나 매는 데 왜, 굳이 신부까지 호출하지? 강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풍성한 꽃장식 사이에 단아하게 앉아 있는 소란을 향해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들어와.”

그녀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듯.

“네가 해줘.”

손에 든 보타이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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