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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스칼렛의 오두막 (14/112)

#14화. 스칼렛의 오두막2020.12.19.

소란은 갑자기 경찰서에 다녀오느라 이후 일정을 조정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비었지만, 단단히 기력이 쇠한 탓에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참이다. 소식을 들은 연희가 짬을 내어 쳐들어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경찰서 갔다 왔다며? 폭행이라니?”

“그러니까.”

“어떻게 됐어? 백진상 한 대 맞은 걸로 엄청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을 텐데.”

“대충 해결됐어.”

태석 덕분이다. 내내 진상을 달래주고 받아준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쌍방 오해로 불거진 가벼운 사건으로 보고 화해로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안 그랬으면 진상은 박 여사가 올 때까지도 고소해야 한다며 난리를 치고 있었을 게 뻔했다.

“와우, 마태석이 마태석했네.”

이야기를 다 들은 연희가 감탄했다.

“진짜 우리 태석 선배님은 노벨인싸상 드려야 해. 어떻게 백진상까지 구워삶냐. 그게 달랜다고 달래지는 거였어? 하, 대박.”

“내 말이. 그냥 단순히 받아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더라니까. 더 좋은 미래가 있다며 어르고 감싸는 스킬이 아주, 아무튼 선배님 덕분에 적당히 잘 끝냈지.”

진상이 하는 짓으로만 봐서는 결혼을 앞두고 꽤 골치가 아플 뻔했다.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다.

“나중에 백진상 엄마가 오시긴 했는데, 별 얘긴 없으시더라고. 강호 씨한테 여전히 저자세고.”

“아무리 친척이래도 딱히 가까운 건 아니라며?”

“응, 그런데 오히려 그 엄마는 강호 씨네 집 쪽에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더라고.”

“아무래도 척을 져봐야 좋을 게 없겠지.”

문득 연희가 덧붙였다.

“그런데 강호 오빠도 대박이네. 백진상 아구창을 날렸단 말에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그동안 진짜 백번도 더 패고 싶었는데.”

연희는 주먹을 세게 꽉 쥐었다.

“바람은 지가 피워놓고 네가 관심을 안 줘서라느니, 네가 바빠서 얼마나 외로웠던 줄 아냐느니,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헤어진 후에도 졸졸 쫓아다니고. 너 진짜 고생 많았어. 강호 오빠 있으니까 내가 다 든든해.”

소란은 정말 의외였다. 바로 주먹을 날린 백강호라니.

“너희 진짜 화끈하긴 하다. 불타올라 핫뜨핫뜨하더니, 너한테 헛짓거리한다고 바로 강펀치 날리고. 캬하, 연애는 이렇게 해야지. 체증 확 내려간다.”

고구마를 먹다가 목에 동치미 국물을 때려 부은 듯 연희는 편안한 표정으로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호 오빠 여자 때린다는 루머 있잖아. 찬규 오빠가 절대 아니라고 했거든. 아무리 사람이 좀 거침없고 세 보여도 여자는커녕 남자한테도 진짜 손이 나가고 그런 적은 없었다고.”

연희 역시 강호에 대해선 모르는 면이 많지만 이런 부분은 더더욱 뜻밖이기도 했다.

“그런데 백진상한테는 바로 주먹부터 나갔다니. 널 얼마나 좋아하면 그랬을까?”

이건 사랑이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연희는 흐뭇해했다. 소란도 궁금했다. 그가 참지 않은 진짜 이유. 자신과 정말 사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못 참은 이유가 뭐지. 소란은 진상이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백강호 그 자식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여자한테 손찌검은 예사고, 성격도 개차반이라고. 친척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냐?”

  진상은 강호에 대한 비방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그제야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듣고 누가 허허 웃을 수 있을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란 말이 있지만, 진상은 스스로 매를 벌었다. 본인이 자처했으니 안타깝지도 않다.

“근데 이건 다 뭐야? 밖에서 다들 먹고 있던데.”

“아, 강호 씨가 사다 준 거. 너도 먹어.”

테이블 위의 간식거리를 이제야 본 연희가 마카롱 비닐을 깠다.

“대박. 이런 것도 사다 줘? 너무 좋다.”

“그 디저트숍에서 강호 씨네 회사에 독점으로 온라인 판매 일임했나 보던데. 거기 일 때문에 다녀오는 길 같았어.”

“겸사겸사라도 어디야. 찬규 오빠는 이런 센스가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줘야 해. 사람인지 로봇인지 프로그래밍된 거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은근히 남편을 디스하면서도, 자기 아니면 안 된다며 귀여워하는 얼굴이다. 연희는 본인의 결혼 생활에 제법 만족하기에, 소란이 자신처럼 유부녀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우리 소란이 이제 꽃길 걷는 일만 남았네.”

연희가 방실방실 웃으며 앞날을 축복했고, 속사정은 모르는 그녀에게 소란은 그저 웃어 보였다. 어쨌든 오늘 일은 태석에게도, 강호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진상과는 어떻게든 끝을 봤을 것이다. 이런 식이 될지는 몰랐지만. 복잡하게 엉킨 실이 결혼을 앞두고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 ◆ ◇ 소란은 뜻밖의 결혼 선물을 받게 됐다. 그건 혼자만 받는 게 아니다. 강호도 함께였다.

“어떠냐, 아가. 마음에 드니?”

제법 높은 지대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저택이라 불러야 할 만큼 규모가 상당했다. 넓은 잔디밭 너머로 멀리 서울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이곳에 서서 강호의 조부 백 회장이 묻는 말에 소란은 어안이 벙벙해 돌아보았다.

“너무 과한 선물이에요.”

“과해?”

“강호 씨에겐 아니겠지만, 저한테는요.”

무척 넓은 부지에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름답고 세련된 주택은 마치 그림 같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잔디밭 한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로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오두막이 있다는 것이다. 저런 게 왜 지어져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아까 차고로 들어와 주차장과 연결된 로비로 올라오며 언뜻 본 것만으로도 저택 내부는 대단한 크기였다. 백 회장은 이 집을 결혼 선물로 주겠노라 했다. 그것도 강호와 소란의 공동명의로. 할아버지는 꿈에도 모르실 ‘계약’ 결혼의 대가로 받게 된 선물이 너무 엄청나서 소란은 덜컥 겁이 났다.

“전혀 과하지 않다. 너희 둘이 살기 충분한 집이야.”

백 회장은 마음을 굳힌 듯했지만, 그녀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금전적으로는 적당한 선에서 강호와 협의를 마쳤다. 소란도 얻게 될 이득이 있으니 반드시 돈만 보고 하는 결혼은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받을 생각도 전혀 없었다. 진상에게 진 빚을 청산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행여 서로의 길을 가게 되어 이혼하게 되더라도, 재산의 분할을 요구할 의사도 없었다. 이에 대해선 소란이 전문이라 계약 내용을 꼼꼼하게 잘 챙겨두었고, 강호는 원하는 대로 하라 했다. 자신도 자신이 쓸 만큼은 벌고 있으니,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저택이라니. 강호가 사는 아파트에 몸만 들어가기로 한 것도 나름 부담스러웠는데, 집을 증여해주시겠다니. 이걸 받으면 죄송해서 할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뵙냔 말이다.

“증여세 때문이라면 그것도 내가 다 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제 속도 모르시고, 백 회장은 그저 자상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소란은 양심이 심하게 찔렸다. 이 결혼이 결코 장난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이 큰 집에 살려니 관리, 유지비 때문에 걱정이냐.”

“물론 그것도 걱정…… 아니, 그게 아니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저는 가짜 손주며느리라 받을 수 없어요, 그럴 수도 없고.

“허허, 그것도 내 알아서 해줄 테니 아무 걱정 않아도 된다니까.”

“정 여기 살아야 한다면 그냥 강호 씨 명의로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할아버님.”

그러면서 소란은 강호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까탈스러운 눈빛으로 정원을 돌아보던 강호가 입을 열었다.

“제 아파트에 들어와서 살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 다 바쁘게 일하고 있어 주택을 돌보며 살기엔 부담스럽고요.”

소란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겁니다. 일단 그렇다고 해요. 사실 신혼집을 정할 때 선택의 여지 없이 강호가 거주 중인 아파트에 들어가기로 했다. 남들과 같은 절차로 집을 마련하고 혼수를 준비하는 결혼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주거지를 합치는 정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서 제 공간은 방 하나라고 여기면 그나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그런데 이게 다 뭔가. 저택이라니. 제 몫으로 이렇게 비싼 결혼 선물은 챙기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분에 넘치는 걸 넙죽 받았다가 무슨 사달이 날 줄 알고. 신혼집을 저택으로 받아 살게 되는 것보다, 강호의 넓은 아파트에 몸만 들어가는 편이 훨씬 소박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 할애비 소원이라도 그럴 테냐.”

“무슨 소원을 그렇게 남발하세요. 말끝마다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소원, 소원. 이제 안 통합니다.”

강호가 제법 강경하게 나오자 백 회장이 말했다.

“이 집, 내 선물이 아니라 네 아버지 선물이다.”

치트키가 사용된 듯 강호가 멈칫했다.

“……아버지요?”

소란도 의아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

“어릴 때라면 얼마나…….”

“생후 10개월쯤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키워주셨어.”

  분명히 강호가 돌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집이 어떻게 돌아가신 지 30년도 넘은 아버지의 선물이란 말인가.

“들어가보자. 안도 아주 잘 지어졌더구나.”

백 회장은 앞장서서 건물 현관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집을 구경시켜줄 생각에 한껏 신이 나 있었다. ◇ ◆ ◇ 먼저 출발하는 백 회장을 배웅하고 소란과 강호는 다시 잔디정원으로 올라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잔디는 푸릇푸릇해져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이다.

“……참 예쁘겠어요.”

“그렇겠네.”

소란은 먹먹한 마음으로 정원을 바라보았다. 강호의 아버지가 바랐을 풍경이 드넓은 잔디 위로 펼쳐지듯 보였다. 강아지가 뛰어놀고, 어린 남자아이가 아빠와 함께 공을 차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보며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마치 CF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다. 그들의 현실엔 없는, 꿈으로만 남은 그런 가족.

“손 좀 씻고 올게. 우리도 곧 출발하지.”

“네, 다녀오세요.”

할아버지의 긴 이야기를 들었지만 강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가 주택 건물로 향한 후 소란은 잠시 돌길을 걷다가 아까부터 궁금했던 나무 위 오두막 쪽으로 향했다.

“너무 예쁘다.”

가까이에서 본 오두막은 더 예뻤다.

“올라가봐도 되려나.”

아주 높진 않았다. 거치가 잘되어 있는 나무계단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도 예쁜 가족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이가 장난스럽게 오두막을 오르고, 신이 나서 엄마, 아빠를 부르는 모습. 그 귀여운 얼굴.  

“강호 애비가 도면으로 만들어 간직했던 곳이다. 직접 설계하고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려서 언젠가 꼭 짓고 싶어 했던, 그런 집이야. 여기가.”

  내부를 둘러보던 중에 백 회장은 말씀하셨다. 백 회장은 하나뿐인 아들이 회사 경영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공부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그게 건축이었다. 그러다 아들은 사무실에서 경리 업무를 보던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백 회장 내외는 그녀를 며느리로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는 없지만 어린 나이에 한 번 결혼했던 경험이 있는 여자였다.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술 취한 남편을 피해 도망쳤고, 남편은 그녀를 붙잡으려다 넘어졌다. 넘어지며 스스로 휘두르던 흉기에 깊숙이 찔리는 바람에 큰 출혈이 있었고, 그 남편은 제때 구조되지 못해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그녀는 고아였고, 다른 남자의 아내였으며, 잔인한 상처를 가슴에 새긴 여자였다. 강호의 아버지는 그녀를 품어주고 싶었으나 백 회장 내외는 아들이 환한 빛과 같은 사랑을 하길 바랐다. 처절한 아픔으로 얼룩진 사랑을 무작정 찬성할 수만은 없었다.  

“네 아빠는 모든 걸 포기하고 네 엄마를 선택했다. 우리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셈이었지.”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집 한복판에서 백 회장은 과거를 회상했다. 아들이 그토록 원하던 그곳에 서서.  

“둘이 어렵게 산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분한 마음에 거둘 생각이 들지 않더구나. 거두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 네 엄마, 아빠는 서로만으로 충분했다 하니까.”

  백 회장의 음성은 쓸쓸하고 회한이 가득했다.  

“널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외면했어. 그리고 후회했다. 네 아빠가 바란 건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며 얻는 행복이었는데. 우리가 결혼을 반대한 대가는 너무도 컸지.”

  아들을 잃은 셈이 아니라, 진짜 잃고 만 것이다. 빌라 반지하 방에서 살던 아들 내외는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산책 중이던 옆집 임신부가 창문을 깨고 들어가 아기를 안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강호 역시 그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아들 내외를 잃고 나서야 손주를 처음 품에 안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장이 가닥가닥 다 끊어지는 기분이었지.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지옥이 여기구나 했는데. ……걸음마를 시작한 네가 아장아장 와서 안기더구나.”

  백 회장도, 그리고 강호의 할머니도, 살아갈 이유를 다시 찾았다. 아들을 꼭 닮은 손주 강호는 백 회장 부부에게 기쁨이고 행복이고 아픔이고 후회였다. 온 정성을 다해 키웠다. 강호가 스스로 찾아갈 행복을 꼭 지켜주리라 다짐하면서.  

“그렇게 잃은 네 아버지. ……내 아들. 그놈이 언젠가 가족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꿈꾸며 반지하에 살 적에 이런 집을 설계했다고 하더구나. 사무실 동료가 내게 건네준 도면과 그림들을 30년 넘게 간직하고 있었어.”

  아들이 꿈꾼 그 집을 그대로 만들어서, 아들의 아들에게 선물하리라. 백 회장에겐 통한이 서린 집이요, 강호에겐 아버지의 숨결이 밴 집이었다. 다소 현실성 없이 ‘꿈’으로 가득한 설계를 백 회장은 어떻게든 실현해내도록 했다. 부지를 정하고 집이 지어지는 동안 수없이 방문해 직접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완성한 곳이다. 이곳을 거절한다? 말도 안 될 일이다. 오두막에 오르자 소란의 눈앞에 집 전경이 더욱 시원하게 펼쳐졌다. 통나무로 지은 내부는 아담하고 창까지 나 있어 안에서도 바깥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톰 소여가 된 듯한 기분이다.

“엄청 낭만적이네.”

저택도 그랬다. 2층에서 한 층 더 올라가니 커다란 다락 형식의 넓은 방이 있고 루프톱 테라스에는 제법 넓은 수영장과 자쿠지까지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는 창의력 대장이 될 수밖에 없을 환경이었다. 강호 아버지의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이미 강호는 다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생의 순간마다 부모의 빈 자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겠지. 어쩌면 저처럼. 이 집은 그 틈을 채워주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사정을 알고 나니 받기 겁나는 게 아니라,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여기 있어?”

아래쪽에서 강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두막 문을 열고 나간 소란은 활짝 웃으며 난간을 잡고 내려다보았다.

“네, 저 여기 있어요.”

그는 말없이 소란을 바라보았다. 올려다보는 표정이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같다.

“잠깐만 올라와보세요. 여기 되게 좋아요.”

강호가 천천히 나무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아직 안 보셨죠? 안은 어른 두 사람이 누워도 충분할 것 같은 크기예요. 창문도 있고, 진짜 예뻐…….”

그때 위이이잉. 얼굴 쪽으로 벌이 날아들었다. 화들짝 놀란 소란이 반사적으로 손을 드는데.

“움직이지 마.”

계단을 올라오던 그가 팔을 붙들었고, 벌이 힘차게 날갯짓하자 겁에 질린 소란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몸이 기우뚱 기울었고.

“어어어!”

죽었다. 이건 정말 큰일이다. 계단을 두 개 남기고 아래 서 있는 강호의 몸을 덮치며 넘어지면 두 사람 모두 여기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 거 죽어도 차라리 혼자 죽고 마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를 피하려고 한 순간.

“꺄아아악!”

난간에 휙 돌려 걸쳐질 뻔한 소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 잡는 손이 있었다. 하아…….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바짝 당겨 안는 바람에 하체가 완전히 밀착했다. 뒤로 젖혀진 소란의 상체를 받친 그의 팔이 태산처럼 강인했다. 그 옛날 클래식 영화 속 스칼렛 오하라가 된 기분이다. 톰 소여의 오두막이 격정로맨스의 공간이 된 건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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